회사가 이사를 하게 되면서 개인 짐을 싸다가 예전에 쓰던 몰스킨 수첩을 찾았다. 내 이름이 인쇄된 수첩을 가지고 있었다니. 불과 몇 년 전 일인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수첩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하다가 찾은 글귀나 명언, 자료 등이 여기저기 깨알 같이 손글씨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나도 그때는 뭔가 되게 열심이었구나. 내 수첩을 보고 반성을 하게 되다니. 수첩을 버릴 수가 없었다. 이 몰스킨은 당분간 나의 '알리바이'를 위해 보관하자 마음 먹었다. 


그리고 새 노트를 하나 사야겠다,라고 마음먹었더니 여기저기서 한 번도 안 쓴 새 노트들이 쏟아져 나왔다. 쓴웃음이 나왔다. 중요한 건 노트가 아니라 마음이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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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일요일인 오늘 낮, 뒤늦게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보러 갔다. 극장은 아리랑시네센터. 2000년대 초반 정릉에서 혼자 살 때 갔던 것 말고는 십수 년만에 가보는 극장이다. 구민회관입구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누가"형!" 하고 부르길래 쳐다보니 같은 동네 사는 배우 박호산이다. 작품 연습하러 가는 길이라고 한다. 요즘 좀 뜸했는데 밖에서 우연히 마주치니 반가웠다.


버스를 탔더니 어떤 아저씨가 옆에 앉자마자 내 넓적다리를 꽉 잡는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손짓을 이상하게 하고 소리고 자꾸 지르는 폼이 뭔가 몸이 불편한 분 같았다. 이런 분은 혼자 버스에 타면 안 되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앉아 있다가 아리랑시네센터 정류장이 가까워져 내리려고 좀 비켜달라고 했더니 얼른 다리를 접어준다. 알고보니 선량한 사람이었다.

극장에서 표를 사고 나와 먹을 걸 파는 집을 찾아 헤매다가 웬 화덕피자집에서 칠천 원짜리 스파게티를 시켰는데, 끔찍했다. 스파게티를 내주고 남자 직원들끼리 점심을 먹고 있길래 혹시 피클은 안 주냐고 물었더니 냉장고에서 포장 피클을 하나 꺼내 주며 '200원인데 그냥 주겠다'고 한다. 돈 드릴게요, 라고 했더니 괜찮단다. 한숨이 나왔다.


극장에 올라가 표를 내보이는데 키가 작고 안경을 쓰고 목소리가 높은 남자 직원이 나를 쳐다보고 웃으며 "어떻게 저 있을 때만 오시나 봐요?!" 라고 인사를 한다. 저 여기 처음 오는데요, 라고 말이 헛나왔는데도 그 남자는 여전히 친한 사람 대하듯 싱글벙글이다.

극장에 들어가니 내 자리 뒤에 앉은 어떤 아저씨가 양말을 벗고 내 왼쪽 팔걸이에 발을 올려놓고 있었다. 발을 내려달라고 정중하게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두 줄 앞 좌석엔 할머니 두 분이 앉아 박근혜에 대해 큰 목소리로 얘기를 나누고 계셨다. 홍상수 영화를 보기엔 지나치게 고령이신 것 같아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자 뒤에 있던 그 남자 직원이 날 보고 또 인사를 했다. 영화를 같이 본 모양이었다. 엇 뜨거라 하고 얼른 밖으로 나왔다. 완전히 밖으로 나가려다가 아냐, 간단하게 영화 리뷰나 써야지 하고 극장 안에 있는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서 계단을 올라갔더니 그 남자 직원이 "뭐 두고 가셨어요?" 라고 반갑게 묻길래 그대로 다시 내려왔다. 이상한 날이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영화 리뷰는 다음에 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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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며칠 전, 작년에 극장에서 봤던 영화들의 제목을 인터넷으로 대충 찾아 봤다(아, <헤이트풀8>은 IP TV로 봤구나).

아가씨
곡성
부산행
밀정
내부자들
마스터
최악의 하루
더 킹
럭키
에브리바디 원츠 썸!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본 투 비 블루
바닷마을 다이어리
헤이트풀 8
캐롤
데드풀
빅쇼트
우리들
동주
4등
당신자신과 당신의것
태풍이 지나가고
카페 소사이어티
너의 이름은
녹터널 애니멀스
라라랜드

그리고 보고깊었는데 못 본 영화들.

더스트
신비한 동물사전
닥터 스트레인지
나, 다니엘 블레이크
비치 온 더 비치
로스트 인 더스트

좋았던 영화는 아가씨, 곡성, 내부자들, 마스터, 최악의 하루, 캐롤,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바닷마을 다이어리, 동주, 태풍이 지나가고, 헤이트풀8, 라라랜드

제일 좋았던 영화는 내부자들. 하나 더 하자면 캐롤.

싫었던 영화는 너의 이름은, 녹터널 애니멀스, 더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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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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