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락객

길위의 생각들 2017. 10. 31. 11:22

어젯밤 숙소에서 뉴스를 보니 단풍철을 맞아 전국의 산마다 행락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행락이라는 말의 어감이 왠지 불량스럽고 낮춰보는 것 같아 사전을 찾아보니 ‘놀거나 즐기러 온 사람’이란 뜻이란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무릇 사람이란 노는 것보다는 열심히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해야 한다고 배웠고 뭔가 즐기는 것은 쾌락(아, 여기에도 락이 들어가네)과 연결되어 괜히 떳떳치 못하다는 자기검열에 시달리며 살았던 모양이다.

순천에 내려온 김에 나도 행락객의 일원이 되기로 한다. 단풍이 이렇게 좋은데, 바람이 이렇게 시원한데 여기서 행락을 안 하면 뭘 한단 말인가. 단풍만큼이나 울긋불긋한 등산복을 입은 강천산 등산객들은 깔깔대고 웃으며 걷다가도 폭포가 나오면 멈춰서 사진을 찍었고 아름드리 세타콰이어가 나오면 얼른 가서 나무에 팔을 척 얹고 사진을 찍었다. 전망대엔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빼곡해서 오래 서 있을 수도 없었다.

즐거웠다. 단지 단풍과 계곡을 구경하기 워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란히 걷고 있다니. 울긋불긋 유치찬란한 자연과 울긋불긋 찰칵찰칵 히히하하 유치찬란한 행락객들. 이래저래 좋은 날이다. 이런 날을 자양분 삼아 또 일주일을 버텨봐야지. 아, 서울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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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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