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비스를 듣는 토요일 아침>  

또다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으른 토요일 아침이다. 다른 아침도 게으를  수 있는데 왜 토요일에 게으른 것만이 진정 '즐거운 게으름'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나 브릿팝 밴드 트래비스(Travis)의 [The Boy With No Name] 앨범을 틀었다. 빔 벤더스의 영화 [파리 텍사스]의 주인공 트래비스를 따서 밴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하덕규가 책을 많이 읽던 시절 서영은의 단편 소설에 감명 받아 '시인과 촌장'이라는 밴드 이름을 만든 것과 같은 방식이다. 그러고 보니 [택시 드라이버]의 주인공 이름도 트래비스다.

나는 어쩐 일인지 군대에 있을 때 내무반에 굴러다니던 [택시 드라이버]라는 해적판 소설책에 푹 빠져 며칠을 보낸 적이 있다. 겉장에 분명 로버트 드 니로의 사진과 함께 폴 슈레이더가 썼다고 나와 있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폴 슈레이더의 시나리오를 대충 소설로 개작한 게 틀림 없다. 그때는 저작권 개념이 전혀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아무튼 군대 가기 전 겉멋이 들어 비디오로 빌려 보았지만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던 마틴 스콜세지의 그 어려운 영화는 원작자 폴 슈레이더의 친절한 글에 의해 뒤늦게 공항동의 한 공병대 내무반에서 비로소 나의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영화를 볼 때 너무나 어렸던 나는 로보트 드 니로가 시빌 셰퍼드와 데이트를 한다면서 왜 포르노극장으로 그녀를 데려간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소설을 읽고 나니 비로소 바보 같은 트래비스의 뻘짓이 너무나 쉽게 이해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영상보다는 글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라고 하면 또 거짓말이고. 아내가 배가 고프다고 화를 내고 있으니 빨리 아침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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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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