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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다. 그래봤자 먹고 자고 하는 것을 빼면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라 내가 쓰고싶은 글까지 많이 쓰지는 못했지만 오랜만에 광고 카피가 아닌 글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그러면서도 편안하게 궁리할 수 있는 소중한 시공간이었다. 더구나 내 곁에는 무라카미 하루키나 스티븐 킹이라는 엉청난 선생님들이 있었으니. 나는 하루키나 킹 같은 작품을 쓰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당대의 문장 고수들에게 한 칼 가르침을 받으려 해 본 것이었는데 다행히 그들이 나를 내치지 않고 친절하게 거두어 주었을 뿐이다. 이만하면 워런 버핏과의 백만 불짜리 점심식사보다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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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웃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올해도 아내가 이렇게 웃고 살았으면 합니다.
"쓰기 전에 소설의 수준은 결정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작가가 초고를 쓰기 전 어딜 가는가, 무엇을 읽는가, 누굴 만나는가에 따라 소설의 내용과 형식이 완전히 달라지는 법이다.”
“돈 벌려고 간 겁니다. 간단해요…잠수사 일당이 백만 원이고, 시신 한 구당 오백만 원을 더 얹어 준다면서요? 민간 잠수사가 한 달 잠수하며 시신 열 구를 건졌다고 칩시다. 그럼 얼맙니까? 월수 3천만 원에서 시신 건진 값이 5천만 원이니, 한 달에 자그마치 8천만 원을 버는 겁니다. 그렇게 두 달이면 1억 하고도 6천만 원이죠. 두 달 동안 국가에서 공짜로 먹여 주고 재워 줬습니다. 생활비가 전혀 들지 않았다는 것이죠. 나야 핸들 잡는 재주밖에 없어 이러고 있지만, 잠수기능사 자격증만 있다면 당장 그 바다로 내려갔습니다. 잠수사들에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바로 맹골수돕니다.”
"정두야! 작년 봄 맹골수도로 내려오란 권유를 받고 내가 무슨 생각한 줄 알아? 간단해. 이게 옳은 일인가.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아닌가. 지금도 마찬가지야. 옳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난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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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러스트 앤 본]을 ‘Watcha play' 서비스로 보았다(서비스 가입을 해놓고 시간이 없어서 못보다가 며칠 전 해약을 했는데 이번달 말까지는 뭐든 볼 수 있다고 해서 문득 어제 이 영화를 찾아보았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녹과 뼈’라는 이 제목은 동명 소설집에서 따왔다는데 불어와 연관되어 가깝게는 ‘주먹다짐’을 뜻하기도 하고 넓게 보면 ‘녹을 벗겨내다’라는 의미로까지 확장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영어나 불어를 잘 하는 사람이라면 뭔가 좀 더 심오한 뜻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나는 그냥 그 정도로 어림짐작을 할 뿐이다. [예언자]나 [내 심장을 건너뛴 박동]의 자크 오디아르 감독이 만든 영화지만 내게는 마리옹 코띠아르의 영화라서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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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택이라는 아트디렉터가 있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광화문 집회 때마다 나가 전경버스 차벽에 영화 패러디 포스터를 붙이는 열혈 청년입니다. 왜 그런 일을 하냐고 물었더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도 광고일 해서 먹고사는 사람이라 그리 한가하지 않을 텐데 그 열정과 정성이 놀랍습니다. 이용택 실장은 작년에 제가 존경하는 카피라이터 정철 선배님과 세월호를 잊지말자는 공익광고를 몇 편 제작해서 페이스북에 공유를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제게도 세월호 카피를 쓸 수 있는지 문의를 해왔습니다. 망설였습니다. 자칫 하찮은 잔재주나 공명심으로 비쳐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친한 사이도 아닌데 프로젝트를 제안한 이용택 실장의 용기와 진심을 믿고 몇 개의 카피를 썼습니다.
'너희를 가라앉힌 건 우리가 아니지만 너희를 건져내지 못한 건 우리들이기에, 우리는 죄인이다’라는 카피를 제일 먼저 썼습니다. 써놓고 나니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렇게 다이렉트하게 써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슬픈 빅뱅.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에서 304개의 우주가 사라졌다’ 라는 카피를 썼습니다. 세월호 아이들 하나하나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모르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우주들이었으니까요.
푸르른 하늘과 힌 구름들 위에 떠 있는 노란 종이배 그림을 보며 천국을 생각했습니다. 아직도 세월호 안에 안에 갖혀있는 아홉 명을 생각하며 ‘그 누구도 하늘나라로 가지 못했어. 아직도 아홉 명은 바닷속에 있으니까. 함께 가야지’ 라는 카피를 썼습니다. ‘세월호를 인양하라. 진실을 인양하라’라는 카피를 붙일까 말까 하다가 붙였습니다.
‘4월 16일’이라는 날짜를 가지고 카피를 써봐야지 생각한 뒤 '4월16일'이라는 헤드라인 밑에 ‘4월 16일 생일인 분들 미안합니다. 4월 16일 결혼기념일인 분들 미안합니다…해마다 4월 16일만은 옷깃을 여미고 조용히 눈물을 흘립시다’라는 바디카피를 썼습니다. 마지막 줄은 '4월16일이 소중한 날인 모든 분들 죄송합니다'로 고치고 싶었는데 업무에 쫓겨 그러지 못했습니다. 제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 첫 출근일이 4월 14일인데 해마다 그때가 되면 세월호 생각만 하는 저의 처지를 떠올리면서 그런 분들이 많을 거란 생각에 써본 카피였습니다.
이용택 실장이 보내온 의자 그림에 ‘다시는 가만히 있으라 하지 않으마. 다시는 어른들을 믿으라 하지 않으마. 다시는 대한민국으로 너희를 부르지 않으마’라는 카피를 썼습니다. 마지막 문장이 너무 과격한 것 같다는 이 실장의 의견을 받아들여 ‘다시는 너희들을 그냥 보내지 않으마’라는 문장으로 고쳤습니다(지금 보니 오자가 나 있군요. 나중에 고치겠습니다).
어두운 막에 손을 대고 절규하는 듯한 그림이 왔길래 ‘2014년 4월 16일 이후 대한민국 사람은 누구나 세월호 안에 있습니다’라는 카피를 썼습니다. 사실 지금 대한민국은 거대한 세월호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너무 미안해서 미안하다는 말은 못하겠다’라는 카피는 제 업무수첩에 적혀 있던 글입니다. 언젠가 광고에 써먹으려고 메모해 놓은 글이었는데 이렇게 세월호 카피로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네이버사전을 찾아서 ‘미안하다는 말은 못 하겠다’의 ‘못’은 떼고 ‘그 누구도 하늘나라로 가지 못했어’의 ‘못’은 붙이는 것이라는 맞춤법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우리말은 참 어렵습니다.
또 한숨이 나옵니다. 도대체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난 걸까요. 우리는 평생 세월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운명입니다. 카피를 쓰면서 너무 가슴이 아프고 괴로웠지만 한 조각이라도 진심을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해야할 일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우리에겐 저 말고도 더 훌륭한 카피라이터, 아트디렉터, 감독님들이 많이 계시니 광고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작업은 계속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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