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tvcf.co.kr/YCf/V.asp?Code=A000311812


누구나 일탈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들이 다 가는 정해진 길은 재미 없으니까요. 그래서 자우림이라는 밴드는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점프를~ 신도림역 안에서 스트립쇼를~'하고 노래했었죠. 그런데 그런 현대인의 욕구를 잘 건드린 캠페인이 나왔습니다. On-air 된지 며칠 안 된 유니클로 '감탄바지'바이럴입니다. 사실 본편 CM까지 그리 재미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좀 더 길고 자유롭게 생각을 펼칠 수 있는 바이럴에서는 드라마틱한 설정과 과장, 유머를 마음껏 살렸습니다. 남궁민이라는 모델도 흡입력이 있고 '감탄바지'라는 네이밍조차도 캠페인을 도와주고 있는 느낌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보셨나요? 뭐,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 아니냐고 애기하실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 아이디어를 끝까지 밀어 붙이고 유머의 디테일을 이토록 살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바이럴이 범람하는 요즘 같은 시대라면.  요즘은 클라이언트들마다 바이럴을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요구사항을 다 넣고 오너들의 개인 취향까지 반영한 이상한 바이럴을 만들게 하고는 그게 널리널리 퍼지길 바라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실 바이럴은 말 그대로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퍼지는' 건데 말입니다.

오늘 이 바이럴을 보고 많이 반성했습니다. 외국 레퍼런스를 보고 잘 만들었다고 하는 것과 우리나라 동업자들이 만든 작품을 보고 좋다고 칭찬하는 건 정말 다른 일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저도 당장 '재미있는' 바이럴 아이디어를 내라는 명령을 받고 끙끙대고 있는 빚쟁이 같은 입장이라서 괴롭습니다. 방법이 있나요. 그저 열심히 하는 수밖에. 점심 맛있게 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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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췌 버전

혜자 2017. 3. 13. 11:31



(몸살이 나서 한약을 지어 먹었던 윤혜자 여사의 초췌 버전. 날짜를 보니 3월3일이다. 성북동 스타벅스에서) 아내는 몸살이 나도 아프다는 소릴 잘 안해서 내가 모르고 지나갈 때가 많다. 미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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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꽃을 살까. 예뻐서? 향기가 좋아서? 꽃을 선물한다는 것은 그 꽃을 사서 들고 다니다가 상대방에게 전달할 때까지 쏟아지는 뭇사람들의 시선을 견뎌내야 하는 일이기에 더 소중하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몇 주 전 아내와 고속버스터미널 꽃시장에 갔다가 여자친구에게 줄 선물을 포장하고 있는 제대병을 만났다.그 친구는 하얀 여자 운동화가 들어있는 상자 안에 노란 꽃을 채워넣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물어보니 '오늘 제대하는 날'이라 여자친구에게 줄 선물을 포장하고 있노라고 했다. 기다리던 전역을 맞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갈 생각으로 그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좀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하며 환하게 웃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떳떳하다. 

그 청년도 그랬다. 앞으로 그의 인생에도 수 많은 어려움이 닥치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리고 지금 사랑하는 마음을 나중에도 기억할 수 있다면 남들보다 훨씬 행복할 것이다. 오랜만에 꽃을 사러 가서 꽃을 사러 오는 사람의 마음까지 살짝 엿본 것 같아서 하루 종일 기분이 흐뭇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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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맨체스터 그라나다 방송국에서 송출감독으로 20여 년간 일했던 리 차일드라는 사내는 어느날 갑자기 직장에서 쫓겨난다. IMF가 기승를 부리던 시절,구조조정에 휩쓸린 것이다. 퇴직 소식을 들은 그는 밖으로 나가 곧장 '6달러짜리 펜과 노트'를 산 뒤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던 이야기들을 소설로 쓰기 시작했다. 그 소설은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 머리 좋은 람보 - '잭 리처' 시리즈의 첫 권이었다. 


근대 이후 어떤 시대든 사람들을 잠 못 들게 하는 가장 크고도 지속적인 고민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명제일 것이다. 존재론과 맞닿는 이 고민은 자연스럽게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고민으로 옮겨가기 일쑤인데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이 두 가지 질문에 힌트를 주는 반가운 책이 한 권 나왔다. 바로 홍순성의 [나는 1인 기업가다]이다. 과연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위에서 예를 든 리 차일드 같은 경우는 정말 꿈 같은 얘기다. 직장을 그만 두고 이렇게 대중소설을 써서 단박에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분명한 건 싫든 좋든 누구에게나 직장을 그만두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인해 평균 수명은 점점 늘어 이제 우리는 거의 80세까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저자가 책 앞머리에서 소개한대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나 [쿨하게 생존하라]의 저자 김호 씨는 '직장과 직업을 혼동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직업은 직장과 관련은 있지만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생 직장'보다 중요한 '평생 직업’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 것일까. 

먼저 모험이 필요하다. 이 책의 저자 홍순성은 블로그 필명 '혜민 아빠'로 잘 알려진 1인 기업가다. 그도 한 때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직장을 버리고 독립을 결심했다. 그의 전공은 IT와 스마트 워킹이었지만 점점 작업과 공부의 지평을 넓혀 지금은 스마트워킹 컨설턴트, 전문 인터뷰어(팟캐스트 운영), 1인 기업 매니저(액셀러레이터), 그리고 8권의 책을 쓴 작가 등 다양한 직업을 소화하는 멀티 플레이어가 되었다. 

무엇이 그를 ‘1인 기업가’로 변신하게 만들었을까. 그는 우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불필요한 일에 시간을 빼앗기는 게 싫었다’고 말한다. 아침에 출근해서 회의 한 번 하고 서류 작업 좀 하다가 점심 먹고 들어오면 시간이 훌쩍 간다. 자기 일만 해도 모자랄 판에 단체 생활을 위한 ‘쓸데 없는 일들’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독립을 하면 최소한 그런 일들에서는 벗어날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직장에서는 좋아서 하는 일보다 시켜서 하는 일이 더 많다. 물론 전문적인 일일 순 있다. 그런데 회사를 떠나서도 그 전문성이 나를 따라다니며 계속 아이덴티티를 지켜줄까? 뭔가 나만의 컨텐츠를 개발해야 했다. 그는 그 길을 ‘온라인’에서 찾았다. 

그전까지는 일단 아침에 사무실에 나가 책상 앞에 앉아야만 사무를 볼 수 있었지만 이젠 거의 모든 게 온라인과 모바일 디바이스로 해결 가능해졌다. 홍순성은 아침에 커피숍으로 출근을 할 때가 많다. 거기서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혼자 생각한 것들을 노트북에 정리하고 자료도 서치한다. 강의 준비를 하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기도 한다. 뭔가 생각한 것을 남기는 곳은 우선 블로그다. 1인 기업으로 살아남으려면 일단 남과 다른 생각이 필요한데 그 생각은 글로 증명되어야 하고 어딘가에 남겨져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책 여기 저기서 ‘글쓰기와 블로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하지만 누구나 블로깅, 또는 SNS를 하기 때문에 글쓰기의 중요성은 한층 더 커졌다. 저자는 무엇보다도 글쓰기가 중요하다고 누차 말한다. 잘 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매일 꾸준히 쓰는 것이라고. 

이 책은 무조건 처음부터 ‘1인 기업가’가 되라는 허무맹랑한 강요를 하진 않는다. 대신 직장에 있을 때 점심 시간을 이용해서라도 차근차근 독립을 위한 준비를 하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하는 일에 더 집중하라고 충고한다.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성이 없으면 아무리 잘하는 일이라 해도 돈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일에 집중하기 위해 세 가지를 버렸다는데 그 첫 째는 운전대다. 자동차를 버리고 걸어다니며 시간적 여유도 즐기고 상념에 잠기기도 한다. 그리고 무거운 가방과 조급한 마음도 버렸다. 새처럼 가볍게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 뿐 아니라 저자는 우리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노하우들도 알려준다. 새로운 생각은 수첩에 적기도 하고 마인드맵이나 워크 플로위, 에버노트 등에 수집, 기록한다. 구글 알리미 서비스를 이용하면 좋다고도 알려 준다(난 아직 쓰지 않고 있지 않지만). 그는 언제부터 이런 것들을 다 알았을까. 아마도 스마트 워킹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공부하다 보니 어느덧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버린 것이고 그 노하우들은 그대로 독자들에게도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나도 홍순성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에버노트 전문가’ 로서였다.



예전에는 10년이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젠 10년 일하면 감각이 다하고 진이 빠져 물러나야 하는 인물이 될  수도 있다. 세상이 그렇게 변한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의 특별한 가치와 ‘즐겁게 일하는 것’의 중요성이다. 저자는 말한다. 초기엔 하고싶은 것만 하는 만용을 부리기 쉬운데 그것은 ‘예술가 마인드’다. 이건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하지만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하는 ‘장사꾼 마인드’도 있다. 예술가에서 장사꾼을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사람만이 ‘1인 기업가’로 즐겁게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에 다닌다고 남의 사업을 다 성공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창업 관련 전문가라고 해서 창업 상담할 때마다 대박이 나는 것도 아니다. 그런 면에서 홍순성은 좀 믿을 만하다. 일단 남들보다 먼저 바람 부는 벌판에 나와 온몸으로 부딪쳐가며 ‘1인기업’을 몸소 일구어봤고 지금도 끊임없이 구체적인 노하우를 축적, 전파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구나 그 경험은 여전히 블로그, SNS, 팟캐스트 등 다양한 채널로 업데이트 되며 누구나 손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저자가 여러번 주장했듯이 책만큼 생각이 잘 정리되고 집약적으로 전파되는 매체도 드물다. 

이 책은 당장 ‘1인 기업’을 준비하려는 사람들에게 눈이 번쩍 뜨이는 고마운 선물이 되겠지만 나는 그보다 지금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장 독립이 필요한 사람에겐 그대로 따라해야하는 메뉴얼일지 몰라도 아직 약간의 심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이 책을 조금 더 비판적으로 읽으며 자신의 생각을 첨가하는 ‘인문학적’ 접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탈무드의 마지막 페이지는 늘 새로운 생각을 위해 백지로 비워져 있다고 했던가. 이 책도 마찬가지다. 처음 마음의 불씨는 홍순성이라는 저자가 피웠을지 몰라도 그 불을 가꾸어 가는 것은 오직 독자인 당신의 몫이다. 정답은 없고 이미 경험한 자의 진솔한 충고만 있을 뿐이다. 다행히 그 충고는 매우 유용하고도 구체적인 듯하다. 

 (*사족 : 내가 읽은 책은 초판1쇄인데, 218페이지 셋째 줄에 이원태 작가를 ‘이원탁’ 이라고 썼다. 아마도 같은 문장에 나오는 김탁환 작가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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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책꽂이에서 J.D 샐린저의 단편집 [아홉 가지 이야기]를 꺼내 <웃는 남자>라는 단편을 읽었다. 1920년대 맨해튼에 살던 꼬마의 이야기다. 소년은 '코만치 클럽'이라는 어린이 야구단에 소속되어 주말마다 낡은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시합을 하러 갔는데 이 팀의 코치 겸 운전사가 '추장'역할을 맡고 있었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는 젊은 추장은 버스를 운전하고 가다가 어느 순간 멈춰서서 이야기 보따리를 꺼내 아이들을 매료시킨다. 그 주에 하던 얘기는 '웃는 남자' 였다. 어렸을 때 중국인들에게 납치를 당해서 얼굴이 망가진 남자의 복수극인데 매번 클라이막스에서 끝나고 다음 주를 기약하는 방식이라 아이들의 원성이 대단했다.

버스 운전석에는 어떤 여자의 사진 액자가 매달려 있었는데 그녀는 추장의 애인인 메리 허드슨이라고 했다. 정말인가 아닌가 궁금해 하던 차에 어느날 추장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길에서 여자를 태우고 야구장으로 갔다. 그녀가 바로 메리 허드슨이었다. 그녀는 포수 그러브를 끼고 그날 감기에 걸려 시합에 빠진 친구 대신 이루수를 맡아 경기를 하며 소년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웃는 남자와 메리 허드슨. 소년은 아마도 이 두 가지 때문에 매주 코만치 클럽 시간을 기다렸던 것 같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메리 허드슨은 추장 앞에 나타나지 않았고 소년의 행복한 시절은 추억이 되었다.

이 짧은 소설을 읽으면서 추억의 드라마 <캐빈은 열두 살>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 저녁 TV에서 들려오던 캐빈의 목소리. 캐빈의 형이 월남전에 나갔다가 죽었으니 이 소설과는 연대가 안 맞지만 그래도 이 단편을 각색해서 그때처럼 드라마로 만들고 배한성이 더빙을 하면 그 느낌이 얼마나 애잔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노란 석양을 배경으로 버스가 흙먼지를 날리며 떠난 뒤 힘없이 현관문을 들어서는 소년의 뒷모습이 꽤나 쓸쓸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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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모르겠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명동 엘칸토 예술극장에서 피터 한트케의 언어유희극 <카스파>를 본 적이 있다. 아무런 사정 정보 없이 보게 되었는데 당시로는 매우 파격적인 일인극이라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나는 연극 도중에 목이 칼칼해서 계속 '음,음...'하고 헛기침을 했는데 배우가 갑자기 연극을 멈추고 나를 똑바로 노려 보며 "거, 연극을 볼 때는 그 목으로 음,음...소리 좀 내지 말아요!"라고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지금 생각해 보면 그 배우도 좀 너무 했던 것 같다). 고등학생인 나는 너무 놀라고 무안해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었다. 그러니 어찌 그 연극을 잊을 수가 있으랴.  


내게 명동은 구두와 연극의 거리였다. 엘칸토 예술극장이라는 이름도 금강제화라는 구두회사의 후원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을 것이다. 추송웅의 [빨간 피터의 고백]을 본 것도 명동 삼일로 창고극장에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창고극장은 사라졌고, 엘카토예술극장도 없어졌다. 그런데 언제인가 명동예술극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 

동네에 사는 김진경 연출가가 이 연극을 우리에게 추천했고 아내가 김광덕 배우에게 예약을 부탁했는데 마침 예약 취소된 자리가 있다고 해서 운 좋게 빨리 그 연극을 보게 되었다. 어제 저녁 연극을 보고 나와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휴대폰으로 급하게 관람후기를 써서 페이스북에 올렸었다. 오늘 정신을 가다듬고 독서일기를 하나 올린 뒤 오자 수정을 해서 여기에도 다시 한 번 올려 본다. 


아아. 내가 이렇게 문화 생활을 자주 해도 되는 걸까. 성북동으로 이사 온 뒤로 영화는 좀 줄었는데 오히려 연극 나들이가 부쩍 늘었다. 배우들이 이웃에 살아서 그런가 보다. 오늘은 명동예술극장에서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을 로버트 알폴디가 새로 해석한 연극 [메디아]를 관람했다. 성북동에 사는 여배우 김광덕 씨가 코러스로 출연하는 작품인데 오랜만에 보는 배우 이혜영 주연 작품이라 더욱 기대가 되는 연극이었다.

난 어렸을 때 엉터리로 읽은 기억이 조금 나긴 하는데(그리스 비극이 다 그렇듯이)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과 배신, 분노, 복수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일단 나는 이혜영의 목소리와 억양을 매우 좋아하는데 이번 연극의 타이틀 롤인 메디아 역으로는 이혜영 이외의 배우를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딱 적역이었다(단 8분 간 출연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남명렬 배우 - 요즘 아로나민 골드 CM에 나와 '드신 날과 안 드신 날의 차이을 경험해 보십시오' 라고 말하는 분 - 도 좋았다) 같이 출연한 김광덕 씨는 이혜영 선배와 출연하며 그 카리스마를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는 소감을 남겼다.

믿었던 남자 이아손에게 배신을 당한 메디아의 마지막 선택은 무엇일까. 배신자에게 가장 큰 아픔을 남기는 방법을 고안해낸다. 그건 바로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을 죽이는 것이다. 최고의 복수는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스스로 용서 받을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단히 극단적인 방법이지만 비극의 장치로서 이보다 더 센 선택은 없을 듯하다. 감독은 신들의 이야기였던 원작에서 신의 영역을 모두 삭제하고 철저하게 인간의 '러브 스토리'로 개작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혜영 배우에게 들은 얘기지만 '분노는 큰 사랑에서 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

앞뒤로 움직이는 기다란 의자를 이용한 심플한 무대도 멋졌고 그리스 비극이지만 모두 현대 의상을 입고 나오는 점도 좋았다. 다만 유머가 거의 없는 정극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 때문에 좀 힘들었다. 그리고 해설을 대신해 가끔 나오는 직설적인 대사는 너무 친절해서 짜증이 났다.

연극이 끝나고 나서 내 앞에서 일어서던 여자 관객은 옆 친구에게 "야, 내 기가 다 빨린 느낌이다." 라며 웃었다. 두 시간 내내 계속된 열연과 긴장감에 약간 탈진을 한 것이다. 물론 연출가도 배우도 관객도 쉬운 길을 마다하고 일부러 선택한, 고되지만 뿌듯한 탈진감이었다.

끝으로 이혜영 얘기 하나만 더. 연극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두 아이를 죽인 뒤라 옷과 손에 피를 묻힌 상태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특히 이혜영이 개인적인 얘기를 언급하는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그동안 계속 작품 활동을 하긴 했지만 지난 이십 년간 엄마와 아내로서 아이들 키우는 데만 집중하다가 작년에 연극 [갈매기]를 기점으로 '숨어있던 욕망'을 다시 발견했음을 깨닫고 작품이 끝난 뒤 집에서 일주일을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심정을 추동력 삼아 이번에 다시 [메디아]라는 작품에 임하게 되었다고 한다. 4월 2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상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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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과 문체의 향연’에 있어서 우리 글이 도달할 수 있는 빼어남의 정점에 서 있다고 생각되는 에세이 [자전거 여행] 어딘가에서 김훈은 시장에서 파는 해산물들을 바라보며 ‘인간은 기본적으로 개불과 다를 바 없다. 입과 항문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 나머지는 다 부속물이다’라는 생각을 토로한 적이 있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매우 인색한 평가지만 평소 거대담론이나 인간의 신념따위를 도무지 믿지 못하는 그의 솔직한 심정이 서려있는 글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비록 역사소설이라 하더라도 권력이나 영웅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먼 ‘개인’으로 귀결된다. <칼의 노래>가 임진왜란 당시의 전지적 시점이 아닌 이순신 개인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된 것이나 <흑산>도 천주교 박해 당시 나라 안팎의 역사정치적 상황을 파고드는 대신 황사용이나 정약전이라는 개인의 선택에 집중했던 게 그 까닭이다. 

그런 김훈이 일제시대부터 8.15해방, 6.25와 월남전을 지나 10.26과 1980년대를 아우르는 소설을 쓴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그 해답이 바로 6년 만에 새로 나온 소설 [공터에서]다. 소설은 마동수라는 한 사내의 초라하고 쓸쓸한 죽음으로 시작된다. 독립문 근처 빈민들이 모여 사는 쪽방촌에서 쓸쓸하게 죽어가는 그의 생애는 일제시대 서대문형무소에 끌려가서 매 맞던 모습에서부터 만주를 떠돌아 아나키스트 운동을 하다가 실패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도 영원히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던 인물의 약전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1979년에 독재자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찾아온 그의 죽음이 다른 소설에서처럼 한 세대를 마감시키고 새로운 탄생을 축복하는 도식도 아니다. 그는 북에서 젖먹이를 잃고 내려온 아낙을 만나 그 사이에서 두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첫 아이는 장세, 둘째는 차세라 이름 지었다. 

마장세는 월남전에 나가 훈장까지 탔지만 그 이력을 자랑스러워 하지 않는다. 심지어 제대 후 고국으로 돌아오지도 않고 괌으로 가서 고철 사업을 하며 살아간다. 적진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아직 살아있던 동료를 죽였던 죄책감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하면 너무 뻔한 이야기가 될 터이고 정작 그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묘비 사이를 걸어가면서 마장세는 1972년 9월 25일 롱하이에서 덜 죽은 김정팔을 사살한 일은 잘한 일도 아니고 잘못한 일도 아니며, 거기에 잘잘못을 들이댈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가을빛에 반짝이는 말뚝들이 마장세의 마음 속에 그런 생각을 끌어당겨주었다. 그때 죽이지 않았더라면 김정팔은 밀림 속에서 혼자 죽거나, 적에게 끌려가서 심문받다가 죽었을 것이고, 실종으로 분류되어 무공훈장도 묘비도 없었을 것이지만 딱히 어느 쪽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때 김정팔을 쏘아 죽인 것은 일이 그렇게 되어질 수밖에 없는 대로 되어진 것이라고 마장세는 비석들 사이를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가? 무엇이 잘못되었단 마인가. 마장세는 스스로에게 되물어서 마음을 안정시켰다. 

김훈의 소설에서 인간은 똥을 싸고 토악질을 하거나 물비린내에 시달리며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존재들이다. 주인공이라고 해도 좀처럼 착한 사람이나 악한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닥친 상황과 세상을 겨우 또는 기진맥진 ‘살아내는’ 개인들이 존재할 뿐이다. 김훈의 이러한 비관은 역사소설에서는 비장함과 멋스러움으로 다가오는데 현대소설에서는 그대로 비참함이 된다. 그들은 역사의 중심에 설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변방을 떠돌며 고철이나 쓰레기 수거사업을 하고 광야를 달리는 대신 어중간한 ‘공터에서' 서성일 뿐이다. 동생 차세도 오랜 실직 상태에 시달리다 형과 친구의 일을 돕지만 다시 실직 상태가 된다. 모두 지금의 상태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달리 방법을 알지 못한다. 

김훈이 이렇게 여러 세대를 이야기한 적이 없다. 다섯 권짜리 대하소설이 될 수도 있었던 이 이야기는 역사와 사회로 곁가지를 치고 뻗어나가지 않고 개인 차원으로 수렴하는 작가의 특질 때문에 3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소설로 마감되었다. 그러면서도 근 60년을 살아온 한 집안의 내력과 그 주변인물들에 대한 쓸쓸한 소회가 마음을 서늘하게 적신다. 더구나 형용사와 부사를 배제하는 그의 글쓰기는 주어와 술어의 단조로운 반복이지만 화려하지 않아서 더 화려해지는 역설을 낳는다. 

그도 몬테크리스토 백작 같은 멋진 영웅담이나 복수극을 쓰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심장에 깊은 허무를 탑재하고 있는 김훈이라는 캐릭터는 결코 그런 글을 쓰지 못할 것이고 쓰지도 않을 것이다.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인 장석주는 [글쓰기는 스타일이다]에서 ‘허무를 말할 때 그의 문체는 가장 화사해진다’라고 했다. 나도 김훈이 쓴 벚꽃 지는 날에 대한 짧은 글을 기억한다. 미인은 화장을 하지 않은 맨얼굴일 때 그 아우라가 더욱 빛난다. 김훈의 글이 그렇다.   


*사족 : 내가 읽은 것은 초판5쇄인데, 188페이지 마동수의 묘지 얘기를 할 때 ‘마차세의 동지들이 거기 묻을 것을 요구했다’라는 문장은 ‘마동수의  동지들’을 잘못 쓴 게 아닐까 생각된다. 아무리 읽어보아도 마동수에 관한 이야기이고, 마차세에겐 이렇다 할 동지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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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소설 [공터에서] 독후감을 쓰려고 장석주의 [글쓰기는 스타일이다]에서 김훈 부분을 다시 들춰 본다. 난 독후감을 쓰기 전에 백지에 몇 개의 단어, 또는 몇 줄의 문장을 끄적이는 버릇이 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어떤 작가의 작품이든 몇 줄의 메모에서 글이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것을 상상하는 건 늘 즐겁고 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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