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열한시 반쯤 퇴근해서 오늘 아침 출근하기 직전까지 자는 시간 빼놓고는 계속 아내에게 야단을 맞는 대기록을 세웠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냐고 물으시겠지만, 그게 가능하다.

발단은 퇴근 직후 나의 행태였다. 언덕길을 올라오느라 숨이 차고 더웠던 나는 들어오자마자 창문을 앞뒤로 열고 옷을 활활 벗어 아무 데나 집어던졌는데 그러느라 현관문을 미처 닫지 못한 관계로 이른 여름모기들이 방충망이 없는 현관문으로 대거 난입했고, 그 중 몇 마리가 날아다니다 아내의 몸을 물고 달아났던 것이다. 아내는 빨리 현관문을 닫으라고 소리를 질렀고 모기약을 들고 와 자신에게 바르라고 명령했다. 모기약을 발라준 뒤 샤워를 하고 돌아와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나에게 등이나 긁으라고 핀잔을 주던 아내는 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갔다가 내가 욕실을 물바다로 만들어 놓았다고 또 화를 냈다. 그러면서 아내는 내가 한 번 입은 옷을 빨래통이 아닌 옷장에 다시 처넣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아내의 말을 듣고 세탁실 앞을 보니 내가 한 번씩 입었던 티셔츠와 바지, 반바지, 잠자리 옷 등이 작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 밖에도 뭔가 사소한 야단을 몇 가지 맞았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내가 왜 이렇게 왜 이렇게 하루 종일 야단을 맞아야 하나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런대로 성실하고 듬직한 남편이다. 담배도 피우지 않고(끊은지 10년이 되어간다) 술도 많이 마시지 않고(자주 마시긴 한다) 도박도 하지 않으며 바람도 피우지 않고 일도 열심히 한다(잘 한다는 애긴 아니다). 더구나 아내를 사랑한다. 그런데 왜 이러는 걸까.

출근 준비를 다 한 뒤 마당을 쓸고 있는 아내에게 인사를 하러 갔더니 "당신은 왜 물건을 제자리에 못 둬?"라고 묻는다. 나는 그런 일 없다고 항변을 하고 있는 사이 아내는 내가 사용하고 재활용 쓰레기박스 옆에 세워놓은 큰 빗자루를 옥상 계단 밑으로 옮기는 것을 보았다. 생각해 보니 그 빗자루는 늘 계단 밑에 있었다.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세무서에 왔는데 종소세가 너무 많이 나와 슬프다는 것이다. 오늘은 5월 31일. 종합소득세. 그렇다. 남편은 잘못이 없었다. 문제는 늘 그놈의 돈, 또는 나라, 시스템에 있었던 것이다. 좋은 나라에서 살면 좋은 남편은 저절로 되는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부터 하루에 한 번씩 나라에 책임을 전가하자. 새 정부에게는 좀 미안한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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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북악산 등산길에 오르면서 측근과 경호원들에게 조선의 도읍을 정하기까지 태조 이성계와 무학도사에게 있었던 일화를 해설사처럼 설명해주는 장면은 드라마 [웨스트윙]에서 걸핏하면 미국의 국립공원에 대해 강의하는 걸 즐기던 대통령 마틴 쉰를 떠올리게 한다. 아론 소킨이 각본을 쓴 이 드라마의 대통령도 노무현처럼 민주당 출신이있다. 차이가 있다면 노무현이 마틴 쉰은 경제학자 출신이지만 노무현은 인권변호사였다는 점 정도일까. 그보다 더 중요한 차별 포인트는 아무래도 노무현이 우리나라 최초의 고졸 대통령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노무현을 싫어하는 사람들 중엔  아직도 그의 학력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경우가 있지만 정작 그는 그 사실을 부끄러워 하기는커녕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편이었다. 학력은 고졸이었지만 그는 뛰어난 변호사였고 영어도 뛰어나게 잘했으며 그 누구보다도 아는 것이 많은 지식인이라는 프라이드가 강했으니까.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이런 유서를 남기고 불현듯 세상을 버린 전직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총리가 읽을 추도사를 써야하는 연설기획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건 아마 본인이 아니면 아무도 영원히 알 수 없으리라. 그래서였을까. “다시는 정치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다시는 바보 노무현으로 살지 마십시오”라는 눈물 나는추도사를 썼던 '노무현의 筆士’ 윤태영이 노 전 대통령과의 이십 년 인연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 

소설 [오래된 생각]을 읽으면서 연설 잘 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각이 많이 났다. 그의 시원하면서도 조리 있고 품격 넘치는 연설을 다시 듣고 싶어졌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유투브로 노무현의 연설을 찾아 들으면 눈물이 찔끔 날 때가 많다. 그래서 아내는 친구 양희 작가가 각본을 쓴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어떻게 봐야하나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눈물이 날까봐. 그저 대통령을 좋아했던 사람들이 이 지경이니 거의 24시간을 곁에서 붙어지내던 사람의 심정은 어떠할까.

회고록일수도 있었던 글이 소설로 탄생한 것은 열린정부 시절을 보다 입체적으로 그리고 싶었던 작가의 야심 때문이었으리라. 작가 윤태영은 운동권 경력 때문에 취직이 요원해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시절부터 시작한 글쓰기가 평생 직업이 된 '프로페셔널 라이터'다. 노무현 캠프 일을 맡으면서 방송원고와 홍보물들을 주로 썼고 노무현의 자서전 [여보, 나 좀 도와줘]의 집필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당선 후에는 그의 연설기획 비서관이 되어 가장 지근거리에서 대통령이 하는 모든 말을 기록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당연히 노무현 정권의 속사정에 대해 그 누구보다 밝을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노무현 정부가 몰락의 길을 걷던 2006년부터 시작된다. 김대중에 이어 민주정부의 길을 이어갔던 참여정부는 한미FTA와 부동산 가격 폭등, 북한 핵실험에 대한 반응, 작전통제권 환수문제, 대연정 제의 등등으로 인해 계속 하락세의 길을 걸어야 했다. 어느 정권이나 레임덕은 있었지만 노무현 정부는 처음의 그 기대만큼이나 실망감도 커서 그 댓가도 더 가혹했던 것이다. 게다가 노무현은 스스로 권력을 독점하지 않으려 제도적 노력을 기울인 최초의 집권자였다. 집권 초기 벌였던 ‘평검사들과의 대화’는 지금 보면 답답할 정도로 순진한 시도였고 결국 그는 검찰에 의해 자신의 모든 것을 잃는 신세가 된다. 

소설이 사실을 바탕으로 한 팩션이라고 하더라도 수기나 백서와 다른 것은 가상의 인물들을 설정해 사건을 보다 감성적이고 입체적으로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은 물론 글쓴 이 윤태영도 진익훈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의 여릴 적 친구이자 훗날 야당 대변인으로 대립각을 세우게 되는 인수, 그리고 그의 첫사람이었으나 결국 인수와 결혼하게 되는 희연 등이 등장해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권력이란 손잡이가 없는 칼과도 같은 것이었다. 쥐고 휘두를 수는 있지만 그러는 동안 자기 손에서도 피가 흐를 것을 감당해야 했다. 어설프게 사용했다가 자신만 다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조심해야 하는 것이 권력이었다. 

윤태영이 소설 속에서 진익훈의 입을 빌어 권력의 양면을 묘사한 문장이다. 일단 이 소설은 그의 안정되고 의미 있는 문장들을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소설가로서 또 문장가로서 그가 보여줄 수 많은 가능성에 대해 헤아려 본다. 노무현과 가장 가까웠던 필사 윤태영은 문재인 대통령의 수락연설 중 백미로 꼽히는 이런 문장을 쓴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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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이 복잡하고 집중이 안 될 때는 책장에서 아무 책이나 꺼내 펼쳐보는 습관이 있다. 세스 고딘의 [보랏빛 소가 온다2]를 펼쳤다. 전에 줄 쳐놓은 페이지들이 눈에 띈다. 그러나 내가 밑줄 친 곳엔 별 게 없다. 다른 페이지를 뒤적인다. 그러다가 230페이지에서 멈췄다. 

완전히 기대의 반대로 하기 

텍사스의 한 은행가로부터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자기네 은행이 경쟁사보다 더 많은 ATM 기계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선전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내 아이디어? ATM기의 20달러 지폐 칸에 100달러짜리 지폐를 몇 장 넣어두라고 했다. 많이는 말고, 아주 조금만. 
틀림없이 소문이 퍼질 것이다! 사람들의 기대를 깨고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을 함으로써(아아, 그러나 내 아이디어를 닮은 그 사람은 '챔피언 되기'에 관해 아는 것이 없었던 관계로 이 방법은 실현되지 못했다). 


왜 이 아이디어는 실현되지 못했을까? 터무니 없는 조언이라고 생각했겠지. 아이디어 실현 여부보다 더 아픈 건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세스 고딘처럼 재빨리 빛나는 아이디어를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보기에는 굉장히 위험하지만 사실은 절대적으로 안전한 유아용 장난감을 만들 수도 있다. 교회에 록밴드를 소개시키는 것은 어떨까? 시끄러운 물건을 소리 안 나게 내놓는다든가, 뚱뚱한 물건을 날씬한 물건으로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청구서를 보낼 때 막대사탕 하나를 같이 넣어 보내는 것도 괜찮겠지. 




세스 고딘은 끊임없이 생각한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이런 건 너무 정직하니 거꾸로 한 번 생각을 해볼까...? 지름길은 없다. 자꾸 새로운 생각을 해보는 사람만이 새로운 길을 찾는 법이다. 세스 고딘의 얘기에서 절망을 느낄 것인가, 희망을 느낄 것인가. 선택은 오로지 당신의 몫이다. 

(*위 글 중 '뚱뚱한 물건을 날씬한 물건으로'는 다이어트 코크 자판기 아이디어에서 이미 실현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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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혜자 2017. 5. 13. 14:56




왕가위의 영화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은 장만옥에게 아무 것도 묻지 말고 그냥 일 분만 같이 시계 초침을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일 분이 흐르자 그윽한 눈빛을 하고는 이렇게 여자의 마음을 흔드는 멘트를 날린다.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 우리는 일 분 동안 함께 했어. 난 잊지 않을 거야. 우리 둘만의 소중한 일 분을."

생각해보면 아비는 요즘 우리가 얘기하는 '나쁜 남자'의 전형이었다. 참 유치하지만 난 이 대사가 너무나 절묘해서 오래 전부터 날짜에서 시간까지 죄다 외우고 있었다. 

갑자기 비가 후두득 떨어져 안으로 들어온 토요일 오후의 성북동 소행성. 신디 로퍼의 ‘At last’앨범을 틀어놓고 각자 책을 읽던 아내와 나는 빗소리에 마음이 움직였다. 창 밖을 바라보던 아내는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와, 좋은데.” 

그래서 나는 우리 둘만의 일 분을 남겨보기로 했다. 컴컴한 하늘에선 사나운 비가 내리고 오디오에선 신디 로퍼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내는 [음식의 언어]라는 책을, 나는 [오래된 생각]이라는 소설을 읽고 있다. 그녀는 내가 이런 동영상을 찍은 걸 아직 모른다. 방금 또 천둥이 쳤다. 뭔가 깊은 산장에 둘만 갇혀 있는 느낌이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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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한의원에 들러 침을 맞고 회사 가기 전에 강남교보에 들러 책을 한 권 샀다. 윤태영의 장편소설 [오래된 생각]이다. 참여정부 청와대 대변인과 제1부속실장을 지내며  '노무현의 필사(筆士)'라 불릴 정도록 가까이에서 노 전 대통령의 생각을 읽고 이를 글과 말로 옮겼던 이가 쓴 소설이다. 주인공은 대통령연설기획관인 진익훈이고 대통령은 임진혁이지만 상황이나 말투, 태도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빼다박은 걸 보면 이건 일종의 팩션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요즘 베스트셀러가 된 강원국의 [대통령의 글쓰기]를 살까 하다가 문재인 정부 출범을 맞아 노무현 시절을 좀 입체적으로 느껴보고 싶어져서 이 책으로 골랐다. 제목은 노무현의 유서에 쓰여 있던 바로 그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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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동쪽 어딘가에 있다는 행복의 나라를 상상해 본다. 그 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정치에 관심이 없다.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민주적인 생각의 틀이 전통으로 잘 이어져 내려오고 있고 중앙정부는 때때로 민의를 물어 법률을 개정하거나 곧바로 현실에 적용하기 때문에 따로 국회의원들이 발의를 미끼로 유세를 떨거나 협박을 할 수 없다. 그나마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들은 언론과 비정부기구들이 힘을 합쳐 퇴출하기 쉬운 구조를 만들어 놓아 함부로 까불지도 못한다.막말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그날로 정치 인생이 끝나기 십상이다. 


그 나라엔 과로사가 거의 없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하루 4시간 정도만 일한다. 그래서 어떤 직장은 4교대까지 가능한 곳도 많다. 생산직이나 공무원들만 그런 게 아니다. 물론 작가나 프로그래머, 기획자 같은 사람들 중에서는 하루 10시간 이상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개인의 선택에 의해서다. 그리고 그렇게 일하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큰 사회적 존경과 보상을 받는다. 

초등학생들은 숙제가 없다. 그날 배운 걸 그날 학교에서 다 소화하고 나머지 시간엔 놀면 된다. 아이들은 하고 싶은 공부를 선택해서 배울 수 있고 일년에 한 달은 자율학습을 할 수 있어서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 선행학습은 전면 금지되어 있다. 

부자들은 세금을 많이 내고 가난한 사람은 세금 혜택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부자들 중엔 집을 사지 않고 전세나 월세로 사는 사람이 많고 서민들은 집을 사는 경우가 많다. 서민일수록 대출 받기가 쉽기 때문이다. 

상을 받는 경우 애든 어른이든 거의 대부분 부상으로 여행의 기회가 주어진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경험은 여행이라는 사회적 합의 때문이다. 상품은 배낭여행부터 크루즈까지 다양한데 예를 들어 용감한 시민상을 받은 경우엔 몇 달씩 크루즈 세계여행을 시켜 주기도 한다.

벌을 받는 경우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교도소는 수만 권의 책이 꽂혀있는 대형도서관이다. 재소자들은 휴대폰이나 컴퓨터 등 전자기기를 몰수 당한 후 도서관에 갇혀 책을 읽어야 한다. 읽어야 할 책의 할당량이 주어진 것은 아니나 책을 읽은 뒤 독후감을 쓰는 경우엔 글의 질과 양에 따라 복역기간이 줄어들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 수감생활에 만족하는 편이기 때문에 독후감에 목숨을 거는 사람은 드물다. 일시적인 전자기기 사용 금지로 금단증상을 겪는 경우가 있으나 대부분 쉽게 아날로그적인 상황에 적응한다. 교도소에 다녀 온 사람일수록 삶이 여유롭고 윤택해졌다고 고백하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 선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만약 교도소가 도서관이라면 어떨까?'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던 게 떠올라서 아무렇게나 써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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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읽을 책이 얼마나 많은데 한 번 읽은 책을 또 읽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책은 언제나 다시 읽어도 새롭다. 아니, 책은 다시 읽을 때 비로소 내 것이 된다. 프랑소와 트뤼포가 씨네필이 되는 세 단계 중 첫 번째를 ‘영화를 두 번 이상 보는 것’이라 했는데 이는 책에도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세 가지만 들어 보자. 

첫째, 기억력 때문이다. 분명히 한 번 읽은 책이라 하더라도 전부를 기억할 수는 없다. 그게 당연한 거다. 혹시라도 읽은 내용을 모두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저주받은 인생을 사는 거다. 인간은 망각해야 살 수 있는 존재니까. 둘째, 그때 그때 다르기 때문이다. 처음 읽었을 땐 몰랐는데 다시 읽으니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다르고 감정이나 취향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에 이런 일은 매번 일어난다. 분명 나하고 똑같은 책을 읽었는데 누구는 그걸 읽고 작가가 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지 않은가. 이처럼 책은 상황이나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그 가치가 달라지는 요술을 부린다. 셋째는 약속 때문이다. 책을 읽다가 밑줄을 긋거나 페이지 귀퉁이를 접어 놓는다는 것은 언젠가 그 부분을 다시 읽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다. 그리고 어느날 책꽂이에 꽂혀 있는 그 책을 다시 펼 때 비로소 약속은 지켜지는 것이다. 

어제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무심코 책꽂이에서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집어들었다. 분명 다 읽은 책이고 우리집 책꽂이에도 있는 책인데 다시 펼치니 새로운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읽어보니 뻔한 내용이다. 그러나 뻔한 이야기라도 다시 읽으며 마음에 새길 만 한 글이다. 페이지 윗쪽을 접은 흔적이 없고 밑줄 치는 방식이 다른 걸 보니 내 책은 아니다. 이번엔 내 방 책꽂이에 있는 책 중 강신주의 [감정수업]을 다시 꺼내 무라카미 하루키와 프란츠 카프카 부분을 읽었다. 전에 내가 쳐놓은 밑줄이 있어서다. 내가 그은 밑줄인데도 다시 읽어보니 ‘아, 이런 얘기가 여기 있었어?’하고 놀라게 된다. 내가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어도 좋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다.

결국 퇴근하면서 유시민의 책을 들고 나왔다. 전철에서 한 챕터만 더 읽고싶어서였다. 출판된 지 얼만 안 되는 유시민의 실용서를 읽으며 이런 얘기를 하는 것보다는 이태준의 [문장강화]나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정도는 읽으면서 이런 글을 써야 폼나지 않겠느냐 타박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멀리 있는 고전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실용서가 인생에 도움이 될 때가 더 많다. 그리고 요즘은 점점 쉽게 쓰인 글에 더 끌린다. 유시민이나 강신주는 어려운 내용을 쉽게 전달할 줄 아는 특급 저술가들이다. 그것만큼은 믿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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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오전의 여유

혜자 2017. 5. 5. 10:22

어린이날 오전에 일찍 아침밥을 차려먹고 小幸星 마당에서 독서 중인 윤혜자 여사. 지금 읽고 계신 책은 김금희의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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