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자를 너무나 사랑하던 한 남자가 그녀의 이름만으로 쓴 '노부코'라는 시를 좋아한다. 김세은 교수의 이 칼럼도 그렇다. 반복의 힘은 놀랍다. 한 번은 애틋함으로, 한 번은 단호함으로 두 사람 다 내 마음을 움직인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


mode=LSD&mid=sec&oid=028&aid=0002373739&sid1=001&lfrom=kak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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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svHlkaDlPlg

http://v.media.daum.net/v/20170726105035519


지난 6월 중순에 제가 '헐크 아저씨'라고 촬영현장에서 와이셔츠가 찢어진 채 앉아있던 버스 기사 아저씨 사진을 올린 적이 있는데요, 사실은 그 때가 2018 평창동계올림픽 프로모션을 위한 바이럴을 촬영하던 날이었습니다. 세계 마술대회에서 1위를 했던  마술사 유호진이 스노우보드를 신은 채 버스 옆에 매달려 가는 장면이었는데, 그때 버스를 운전하던 아저씨 의상이 작아서 옷이 찢어진 것이었거든요. 다행히 촬영이 무사히 끝났고 바이럴 네 편도 잘 만들어져 어제부터 유투브 등에 릴리즈가 됐는데 벌써 100만 뷰를 육박한 모양입니다. 이 정도면 성공적인 바이럴인 것 같습니다. 유호진은 젊은 사람인데 얼굴도 잘 생기고 매너도 정말 좋더군요.

(*주관부서인 해외문화홍보원에서 비밀 유지를 부탁해서 아직 말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https://youtu.be/boX-nASh1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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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남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인 50대의 출판사 사장에게도 새로운 연애가 찾아올 수 있을까. 아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나이나 상황과는 상관 없이 불쑥 찾아오기도 하는 거니까. 연애감정이라는 것은 누가 심지 않아도 이끼처럼 적당한 응달만 있어도 어느새 자라나기도 하니까. 그래,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그 다음엔? 뒤늦게 진정한 사랑을 발견한 주인공이 결혼생활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새로 생긴 젊은 여자랑 멋진 사랑을 이어갈까? 그럴 리가 없다. 적어도 이게 홍상수의 영화라면.  

홍상수의 스물한 번째 장편 영화 [그 후]는 문학평론가이자 작은 출판사 사장인 봉완(권해효)이 여직원 창숙(김새벽)과 사랑하는 사이였다가 헤어진 후 새로운 여직원 아름(김민희)을 맞이하는 얘기다. 조금 더 얘기하자면 봉완은 창숙을 사랑했지만 헤어졌고, 뒤늦게 아내 해주(조윤희)는 이 사실을 알고 격분했으며 아무 것도 모르던 아름은 그 사이에  채 엉뚱한 봉변을 당한다. 얘기만 들으면 상투적인 치정멜로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가 매번 비슷비슷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자꾸 보는 이유는 섹스나 불륜을 잘 다루어서가 아니라 그런 소재를 다루면서도 상투적인 대사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새로움 때문이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소하고 한심한 인물이나 사건들을 통해 인간의 심연을 깊이 들여다 보게 하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도 역시 그의 영화답게 술을 마시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중국집에서 술을 마시던 창숙은 나이 많은 봉완에게 치사하다고 화를 내며 엉엉 운다. 간절하지만 사랑은 늘 이렇게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나중에 입사한 아름을 하루만에 쫓아낼 정도로 굳건해 보인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창숙의 존재는 묘연하기만 하다. 그 뜨겁던 다짐이나 맹세는 다 어디로 간 걸까.

중국집에서 술을 마시던 아름은 봉완에게 믿음에 대해 이야기 한다. 사람은 믿는 게 중요하다고. 아름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다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무시하는 요즘 풍조 때문에 하나님이란 말을 쏙 빼고 그 얘기를 하려니 믿음에 대한 토론이 본질을 벗어나 자꾸 겉도는 느낌이다(이 와중에도 교인인 아름은 '하나님'이라고 하고 교인이 아닌 봉완은 '하느님'이라고 한다.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중요한 차이다). 나중에 출판사에서 쫓겨나면서 열몇 권의 책을 챙겨나오던 아름은 택시 안에서 갑자기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비로소 하나님의 은총을 실감한다. 그러나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다.

약간의 시간이 흘러 아름이 봉완의 출판사에 다시 찾아간다. 이번에 무슨 상을 받게 된 봉완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라지만 사실은 아내의 눈을 피하면서 연애를 이어가기 위해 자신을 내쫓았던 창숙의 뒷얘기가 궁금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봉완은 아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한참 얘기를 나누던 중에 "아, 우리 전에 만났었죠? 아, 같이 술도 마셨죠."라고 한심한 기억력을 드러낸다. 남아 있어야 할 창숙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다른 여직원이 들어오면서 배고픈데 뭘 시켜먹자고 봉완에게 말한다. 봉완은 중국음식을 시키자며 아름에게도 권한다. 허무하다. 당시에는 간절했던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린다. 


한여름 푹푹 찌는 더위를 뚫고 극장으로 들어가 겨울에 찍은 영화를 보는 맛이 각별했다. 더구나 흑백영화다. 이런 작은 영화는 차분한 흑백이 어울린다. 관객이 인물들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늘 그렇듯이 홍상수 영화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권해효부터 김민희까지 최상의 연기를 보여준다. 이는 감독이 배우들을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누고 그들의 습성이나 표정, 버릇을 영화 속에 녹여내기 때문일 것이다. 감독이 촬영 당일 아침에 장비를 세팅하는 스태프들 사이에 앉아 비로소 디테일한 대사를 쓰는 것도 배우들의 실제 삶을 영화 속에 끝까지 반영하려는 노력 때문이 아닐까. 더구나 권해효와 조윤희는 실제 부부다. 크게 관계는 없지만 그런 걸 알고 보는 것도 영화의 즐거움을 더 크게 늘리는 요인 중 하나가 된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가치는 결과에 있을까 아니면 과정에 있을까? 아무래도 홍상수는 후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그 과정이, 순간순간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언제나 현재가 제일이다. [그 후]라는 제목은 촬영장으로 쓰인 출판사에 있던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에서 즉흥적으로 따온 것이지만 이 모든 사건이 지나간 후에 과연 뭐가 남았는지를 반추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아름이 출판사를 나설 때 새 여직원이 시킨 중국집 철가방과 입구에서 깐 마주친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무릎을 쳤다. 그건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이 중국음식 배달 오토바이와 비교해 봐도 그리 큰 일이 아니라는 뜻이니까. 홍상수의 영화를 무조건 지겨워하거나 키득거리면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그가 펼쳐놓는 이야기들이 우리의 인생과 이토록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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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과 분노]라는 소설을 두 번 샀다. 두 번 읽은 게 아니라 두번 구입. 출퇴근길에 전철 안에서 짬짬이 읽다가 100페이지쯤 읽었을 때 어디선가 잃어버렸는데 책이 눈앞에 아른거려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책값이 16,500원이니까 나는 결국 33,000원짜리 이야기를 읽은 셈이다. 그래서 어땠냐구? 다시 사서 읽길 잘 한 것 같다. 아마도 올해가 다 가도록 나에겐 이보다 더 ‘올해의 책’은 없을 것 같으니까. 

로런 그로프는 무시무시한 작가다. 안 그렇게 생겼는데 글은 독하고 능숙하고 교활하다. 섹스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마음에 딱 든다. 그리고 필력이 엄청나다. 글을 잘 쓴다는 건 시나리오 작가처럼 사건을 잘 짠다는 것과는 좀 다른 얘기다. 사건보다 중요한 건 그 모티브를 어떤 태도와 문체로 다루느냐인데, 뛰어난 작가일수록 가장 고귀해질 수도 가장 저속해질 수도 있다. 셰익스피어가 그랬던 것처럼. 로런 그로프가 그렇다.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긴데 이 책엔 셰익스피어의 대사들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그리스 비극 얘기도 여기저기 끊임없이 인용된다. 남자 주인공 로토가 셰익스피어 연극을 주로 하는 배우였고 나중엔 잘 나가는 희곡작가가 되기 때문이다. 스물두 살에 결혼하는 그의 아내 마틸드를 만난 것도 그가 햄릿 역을 했던 날의 일이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호의와 사랑을 받았고 원하기만 하면 모든 여자와 잘 수 있었던 로토는 아무와도 말을 섞지 않던 신비한 여신 같은 마틸드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 청혼하고 순식간에 결혼을 한다. 소위 ‘킹카’들의 갑작스러운 결합에 어이 없어하던 친구들은(여자라면 대부분 로토와 섹스를 했던-쓰리섬을 했던 여자들도 있다)신혼파티에 와서 그들의 결혼이 곧 깨질 것을 예상하며 "뭐, 첫 번째 결혼이니까”라고 배배꼬인 속내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런 바람과는 달리 두 사람은 로토가 죽기까지 무려 23년간 다른 사람을 넘보는 일 없이 결혼생활을 영위한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일찍 결혼한 남녀가 헤어지지도 않고 이십 년 넘게 함께 사는 얘기가 어떻게 흥미로운 소설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로런 그로프라는 작가의 힘이 빛난다. 이 소설은 로토와 마틸드의 격하고 찬란한 사랑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그 뒤엔 콜리와 에이리얼이 라는 음습한 인물들이 숨어 있는 교활하고 잔인한 드라마다.  이 책이 심리소설이었다면 왜 제목이 ‘운명과 분노’인지, 에이리얼과 마틜드의 비밀 거래는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원인과 결과가 딱딱 들어맞는 이야기를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이 책이 추리소설이었다면 마틸드가 왜 스물여섯 살에 낙태를 하고 스물여덟 살엔 불임수술을 하는 배신을 저질렀는지 밝혀내려 애쓸 것이다. 아니, 그보다 어렸을 때 정말 마틸드가 남동생을 계단에서 밀어 죽음에 이르게 한 게 사실인지부터 밝혀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문학책이다. 그것도 강력한 서사를 지닌 입체적인 문학 작품. 마침 이 책을 쓸 때 작가가 셰익스피어와 그리스 비극을 탐닉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현대적인 결혼생활을 소재로 삼았음에도 신화적인 구성과 고전적인 비극미를 함께 갖추게 되었다.

백만장자의 아들로 태어나 반대하는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어머니에게서 단 한 푼의 돈도 물려받지 못했지만 매력적인 외모와 비상한 두뇌를 소유했던 한 사내와 어릴 적 불운했던 과거를 분노라는 동력으로 맞서려 했던 속을 알 수 없는 여자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 존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이 연상되는, 마치 세상 일을 모두 알고있는 듯한 로런 그로프의 우아하고 오만한 문체와 폭발적인 서사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인생사와 인간의 단면을 활자의 힘만으로 능숙하고 위엄있게 그려낸다.   

그동안 누가 흥미진진하면서도 문학성까지 갖춘 소설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가네시로 가즈키의 [영화처럼], 아사다 지로의 [칼에 지다],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또는 [인생],  조너선 샤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주노 디아스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조지수의 [나스타샤]등을 추천했는데 이제 한 권을 더 추천해야겠다. 바로 로런 그로프의 [운명과 분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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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렸을 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는 이광조의 명곡이 발표되었죠(그 앨범에 있는 노래들은 하나같이 명곡입니다. 저는 '추억 속의 비'를 특히 좋아했습니다만, 각설하고). 오늘은 그 노래 제목과 꼭 닮은 자동차 광고를 하나 소개하려 합니다. 독일 폭스바겐 광고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370MpxHzUQ









남자의 집인가 봅니다. 청순한 금발머리 여자가 남자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냅니다. 달콤한 음악이 흐르고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 위로 이런 자막이 흐릅니다. 

자막) 그녀는 예쁩니다
          그녀는 재미 있습니다 
          그녀는 똑똑합니다
 
그때, 땡,땡.땡~ 하고 자동차 거리 측정 효과음이 들려옵니다. 사과를 꺼내 입에 무는 그녀. 

SE) 땡땡땡~

자막) 그녀는...제 형의 여자친구입니다 



자막) Automatic Distance Control 

       Volkswagen


알고보니 그녀와 더 이상 가까워지면 큰일나는 운명이었던 거죠. 가슴이 아픕니다. 앞차와의 거리를 자동으로 유지해주는 첨단 장치를 광고한다면서 가까이 하면 안 될 존재에 대해 이보다 더  안타깝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얄미운 광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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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병>

뒷담화의 향연 2017. 7. 6. 16:16


어제 부친상을 당한 후배 상모 신애 부부를 보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갔다가 오랜만에 뚜라미 선후배들을 단체로 만났다. 남천이는 머리카락이 점점 많아진다는 소릴 들었고 동호는 뒤늦게 애인이 생겨 프로포즈를 한다고 자랑을 하기도 했다. 상화는 자신이 다니는 주얼리 회사의 홍보 방안에 대해 나와 잠깐 얘기를 나누다가 아이가 아파 먼저 일어선다고 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현경이가 부친상 공고를 뚜라미 페이지에 올렸는데 그걸 잘못 읽은 명지가 그 밤에 장지인 파주 성당으로 가서 전화를 하는 일이 발생했다. 나도 분당 서울대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일원동 삼성병원 영안실로 간 적이 있기 때문에 명지가 지금 느끼고 있을 황당함과 자괴감이 얼마나 클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머리카락이 예술가처럼 멋지게 센 권일이는 요즘 강경화 장관 덕분에 백발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농담을 날리며 웃었다. 나는 아침부터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 아홉 시쯤 집에 가려고 일어섰으나 복도에서 인엽이 형과 딱 마주치는 바람에 다시 돌아와 상 앞에 주저앉았다. 그래도 열 시까지는 있다 가는 게 문상객의 도리 아니겠느냐는 선배의 충고를 차마 저버릴 수 없어서였다.

현경이 말에 의하면 요즘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도마에 오르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예전과 달리 여름 휴가도 오지 않고 각종 모임에도 불참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삼사 년 내리 여름 '대기리 휴가'를 가지 못했는데, 사실은 그때마다 절박한 사정이 있어서였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예전에 비해 내가 너무 여유없이 살아서이기도 하다. 어쨌든 고마운 일이다. 이번 대기리 휴가는 주말 일박이일이라도 참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인엽이 형도 도대체 요즘은 영화를 한 편 보거나 책 한 권 읽지 못하며 살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형과 예전에 같이 본 영화와 책들 얘기를 신나게 나누다가 내가 술병이 나서 입원했던 얘기까지 하게 되었다.

부모님 집에 얹혀 살고 있던 나는 당시 직장을 잠깐 쉬고 있었는데, 남아도는 시간과 불안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매일밤 사람들을 만나 술을 퍼마시고 들어오다가 어느날 덜컥 병이 나고 말았던 것이다. 밤부터 슬슬 열이 나고 편도선이 붓기 시작하더니 결국 두통까지 찾아와서 밤새 한잠도 잘 수가 없었다. 병원은 아홉 시에 진료를 시작하는데 열이 펄펄 나고 머리는 깨질 듯 아파 도저히 그때까지 참고 기다릴 수가 없었다. 여섯 시에 택시를 잡아타고 청구성심병원 응급실로 갔다. 

침대 위에 누워서 덜덜 떨고 있었는지 아니면 씩씩거리고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아무튼 한참 후에 당직 의사가 나를 진찰실로 안내해 이곳저곳을 만지고 쑤시고 들춰보고 하더니 거의 탈진 상태인 나에게 다가와 '다 알고 있다'는 표정과 목소리로 속삭였다.


닥터 : 지금 아무 생각이 없으시죠? 
성준 : 네... 

닥터 : 가족들한테는 감기몸살이 심한 걸로 해줄 테니까   
          며칠만 입원해서 쉬세요. 술병 났습니다. 
성준 : 아, 네...고맙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대로 6인병실로 올라가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입원을 했다. 가족들은 워낙 신경이 예민한 내가 심신이 미약해진 나머지 병이 난 것 같다고 진심으로 걱정을 해줘 나를 더욱 미안하게 만들었다. 첫날은 죽이 나왔는데 정말 한 숟가락도 먹지 못하고 그대로 물리고 말았다. 입이 깔깔하고 얼굴을 숙이면 쏟아질 것 같아서 먹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날은 그렇게 링거 수액을 맞고 주사와 약 처방을 받은 뒤 한숨 푹 자고 났더니 몸이 한결 개운해지는 것 같았다.

이튿날부터는 죽을 먹기 시작했다.입맛이 돌고 점점 기운을 차리게 되니 병원에 누워있는 일이 심심하게 느껴졌고 새삼 세상이 궁금해졌다. 의사에게 이제 괜찮아진 것 같다고 했더니 그래도 이틀 정도는 더 입원을 해야한다고 야단을 쳤다.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워 TV를 보는데 드라마에 출연하는 탤런트들이 술집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얘기를 하고 있었다(당시엔 TV에서도 담배 피우는 장면이 나오던 시절이었다). 와, 쟤네들은 좋겠다. 마음대로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실 수 있어서. 송충이가 솔잎을 먹듯이 나는 술을 마셔야 하나 보다 생각했다. 

내가 입원을 했다고 했더니 악당 같은 친구 남길 씨와 내성이 형이 문병을 오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이들한테는 친구가 술병이 걸려 입원을 한 사실 자체가 무척 재미있고 신나는 이벤트인 것 같았다. 남길 씨는 나를 살살 꼬셔 병원 근처 호프집으로 끌고 갔다. 처음엔 질색을 했지만 막상 생맥주 한 잔을 마시니 세상 살 것 같았다. 웃음이 나왔다. 아,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이렇게 나쁜 친구들이 있나. 근데 맥주집에서 환자복은 너무 튀는구나...


예전 추억에 젖어 있다가 문득 차리니 벌써 열한 시 반이었다. 이젠 정말 일어서야지 하고 있는데 뒤늦게 재섭이와 한우가 도착했다. 한우는 운영하는 닭갈비집 영업을 마치고 오느라 늦은 것이고 재섭이는 집에 가서 저녁까지 먹고 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자리에 앉아 수다를 떨다가 결국 한 시가 다 되어 일어났다. 한 번 만나면 쉽게 헤어지지 못하는 게 뚜라미들의 오랜 습성이라는 사실을 잠깐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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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유투브에서 역대 공익광고 뽑아 놓은 걸 봤는데요, 맨 처음 나온 '기쁨도 고통도 우리의 몫입니다'라는 IMF 극복 광고와 맨 마지막에 이세돌이 나와 '지금 우리는 지나친 경쟁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라 말하는 경쟁위주사회문화 광고가 제가 만든 것이더군요. 내가 이렇게 공익적인 인간이었나,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잠깐 해보는 월요일입니다. 하하. 



https://www.youtube.com/watch?v=ghKhZZ3CM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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