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를 읽고 그 새로운 스타일에 가슴 설레던 스무 살 청춘이 2017년에도 여전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지금이 1990년대라면 도시적 감수성을 흡수하고 싶어서, 라고 간단히 대답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썼던 하루키도 소설을 써온지 40년이 되어간다. 언제까지나 청춘의 아이콘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변함없는 인기는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양 사나이나 [1Q84]에 나오는 두 개의 달처럼 온갖 이상한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하루키 월드'의 힘 때문일까. 꼭 그런 것 같지만도 않다. 그렇다면 지금도 여전히 신작이 나오기만 하면 출판사들끼리 선인세를 줘가며 하루키라는 작가를 확보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상실'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원초적 감성 때문 아닐까. 상실은 근대 이후 모든 지구인에게 통하는 보편적 정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처음 하루키 바람을 몰고 온 소설 [노르웨이의 숲]은'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출판사나 역자가 임의로 바꾼 것이겠지만 결과적으로 'Norwegian Wood'이라는 비틀즈의 노래 제목보다 훨신 무라카미 하루키를 잘 드러내는 키워드가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문장을 대하는 그의 태도다. 그렇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일단 문장의 마술사다.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조용한 서재에 앉아 방금 떠오른 아이디어를 이리저리 공굴리며 어떻게 하면 깔끔한 문장으로 써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다시 쓰고 정돈하는 작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루키는 특히 전문직을 묘사하는 데 능숙하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소설엔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이 자주 나온다. '프로페셔널'이라는 단어에 어떤 모럴을 추가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이번엔 화가다. 초상화를 그리는 데 남다른 실력과 통찰을 지닌 화가.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꼬이는 바람에 눈코뜰 새 없이 바쁘던 지난 며칠 간었지만, 그래도 회사와 집을 오가는 전철 안에서, 또 휴일 아침 등을 이용해 [기사단장 죽이기]를 다 읽었다. 이번 주인공은 화가인데 자기가 그리고 싶은 그림은 따로 있지만 결혼을 한 뒤부터는 생계를 위해 꿈을 접어두고 초상화를 '주문 제작'하는 서른다섯 살의 남자다(하루키의 소설에선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얘기는 대부분 생략되어 있다. 일단 주인공들은 부자는 아니지만 하나 같이 마음만 먹으면 밥 벌어 먹고 살기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을 정도의 능력자들이다).

어느날 아내 유즈가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고 있음을 알리며 헤어지자는 일방적인 통보를 한다. 그 동안 얘기도 안 하고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한 건 무척 미안하게 생각한다면서. 여기서 하루키의 녹슬지 않은 문장이 빛난다.

그녀의 통보를 듣고 내가 제일 먼저 한 행동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 비가 얼마나 오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조용하고 잔잔한 바다였다. 그러면서도 몸에 은근하게 스며드는 냉기를 몰고 오는 비였다. 그 냉기는 봄이 아직 멀리 있음을 알려주었다. 빗줄기 너머 흐릿하게 오렌지색 도쿄타워가 보였다. 하늘에는 새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다들 어느 지붕 밑에서 얌전히 비를 피하고 있으니라.
"이유는 묻지 말아줄래?" 그녀가 말했다.

고향에 있는 애인에게서 헤어지자는 편지를 받고 연필을 몇 자루 깎은 뒤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가서 '여, 많이 밝아졌네?!'라는 소리를 들었던 <오후의 마지막 잔디밭> 주인공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느닷없긴 하지만 하루키 소설에서 이미 익숙한 코드다. 누군가가 갑자기 사라지거나 죽거나 하는 상황. 그러면 주인공은 주변을 정리하고 먼 여행을 떠난다. 이번에도 주인공은 자신의 집을 나와서 '북쪽'으로 기약없는 여행을 떠난다. 이유는 그저 북쪽으로 가야할 것만 같은 느낌 때문이다. 그리고 돌아와 자신만의 아지트를 마련한다. 요양원에 가 있는 아마다 도모히코 - 대학 친구의 아버지이자 원로 화가 - 의 작업실 겸 별장이다.

마침 시내 문화센터에서 그림 지도 아르바이트를 맡아 그럭저럭 생활은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평소에 하고 싶었던 추상화 작업에 몰두하면 된다. 그러나 소설 주인공의 일상이 이리 평화롭게 흘러갈 리가 있나. 어느날 머리가 하얗게 센 멘시키라는 묘한 남자가 찾아와 거액의 작품료를 제안하며 자신의 초상화를 의뢰한다. 거절하려던 주인공은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와 닮은 멘시키라는 남자에게 묘한 흥미를 느껴 그 일을 수락한다. 새로운 사건의 시작이다.

보통 모델을 세워놓고 그림을 그리는 일반 화가와 달리 그는 모델과 긴 면담을 하고 스냅 사진을 몇 장 찍은 뒤 혼자서 작업을 한다. 책에는 그 과정과 이유가 놀랍도록 논리적으로 그려져 있다. [댄스 댄스 댄스]에서 주인공이 글 쓰는 것을 '눈 치우기'에 비유했듯이 하루키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마샬아츠 하는 걸 운전이나 레고 쌓기처럼 단계적으로 그려내는 걸 좋아한다. 또한 초상화 그리기의 디테일한 묘사는 하루키의 글쓰기 과정을 묘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특히 그가 '방울소리' 때문에 뒷뜰에서 이상한 구덩이를 발견한 후 그 것을 그리고 싶어하는 장면은 이 소설가가 어떤 이야기를 쓸까 결정하는 계기나 과정도 이렇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그럴 듯하다.

왜 갑자기 그런 그림을 그릴 생각이 들었는지 의미나 목적을 밝혀내기는 불기능했다. 다만 어느 순간, 어떻게든 이 <잡목림 속의 구덩이>를 그리고 싶어졌다. 달리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무언가-어떤 풍경, 물체, 인물-가 지극히 순수하게, 매우 심플하게 마음을 사로잡고, 나는 붓을 들어 그것을 캔버스에 그려나간다. 이렇다 할 의마가 없을뿐더러 목적도 없다. 단순한 변덕 같은 것이다.
아니, 그렇지 않다고 나는 생각했다. '단순한 변덕'이 아니다. 무언가가 내게 그림을 그리라고 요구했다. 매우 강렬하게, 그 요구가 나를 움직여 그림을 시작하게 하고, 내 등을 떠밀어 단기간에 작품을 완성시켰다. 어쩌면 그 구덩이 자체가 의지를 지니고 나를 움직여 제 모습을 그리게 했는지도 모른다-어떤 의도를 품고서, 마치 멘시키가 (아마도) 어떤 의도를 품고 내게 자기 초상을 그리게 한 것처럼.


소설에는 사건이 존재하지만 사건만큼이나 중요한 게 배경이요 맥락이다. 하루키는 이 배경과 맥락 구축에 매우 성실하다. 그의 소설이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인데, 화가인 주인공의 직업을 상세하게 묘사하거나 아마다 도모히코의 빈 유학시절, 난징대학살 등을 다루는 건 다 '견고한 건축물' 같은 소설을 만들어 내고싶은 창작자로서의 욕망일 것이다. 다만 일본에서는 하루키가 난징대학살을 다룬 것 가지고 호들갑을 떨었다는데, 그렇다고 갑자기 그가 '현실참여작가'가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루키의 소설은 기본적으로 '장치 소설'이기도 하다. 독립적이고 쿨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뻗어가는 길목마다 무수한 장치들이 숨어있는데, 이번에도 '이데아'나 '메타포' 같은 실제로는 말도 안 되는 개념들이 시침 뚝 따고 등장해서 중요한 화두들을 던진다. 그런데도 이 소설에 빨려들어가는 것은 하루키가 구축하는 세속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문화적 코드들 때문이다. 실제로 이 소설에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가 계속 턴테이블 위에서 돌아가고, 돈 지오반니나 일본화에 대한 얘기들이 끊임없이 언급된다. 심지어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에 대해 퀴즈를 내기도 한다. 시퀀스에만 몰두하는 게 아니라 이런 코드들을 이야기 전반에 잘 섞어내는 것이 그를 일류 작가로 만들었으리라. 물론 아직도 잔뜩 미스테리들을 벌려 놓고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라고 의뭉을 떨거나 상상만으로 헤어진 아내를 임신시켰다고 우기기도 하지만.

한편,열세 살 짜리 여자애가 주인공에게 자기 가슴이 작다고 하는 장면은 매우 하루키적이면서도 역설적으로 하루키가 나이 든 사람임을 보여준다. 먼저 '작은 가슴'에 대한 부분. 소녀는 자신의 가슴이 작다며 "남자들은 가슴 큰 여자들을 좋아하잖아요."라고 말한다. 자신의 가슴인데도 남자들부터 생각한다. 다분히 남성중심적이다. 한겨레 기자들이 모여 이 책에 대한 독후감을 얘기하는 기사를 읽었는데, 하루키가 작은 가슴을 좋아한다고 거듭 밝히거나 성기 사이즈 얘기를 하는 것 등은 매우 자신이 없어보인다는 얘기가 나왔다. 뭐, 별로 그런 생각까지는 들지 않는다. 다만 그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는 것 자체가 매우 하루키스럽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러나 소설이 끝나갈 때까지 소녀의 가슴 얘기를 하는 건 좀 지겨웠다.

그래도 하루키는 하루키다.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은 '오직 나만을 위해 온전히 개인적인 시간을 쓴다'라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그리고 아직도 신선함을 읽지 않은 유머감각이 사랑스럽기도 하다. 멘시키가 오믈렛을 만드는 장면 묘사의 눈부심도 탁월하지만 그의 거실에 비싼 꽃병이나 귀한 골동품들이 여기저기 많이 놓여있는 걸 보고 주인공이 '큰 지진이 오지 않아야 할 텐데' 라고 생각하게 하는 그를 어찌 미워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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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자발적 노동착취의 현장 - 은곡도마 체험교실>

우리집에 있는 도마 이름이 은곡도마다. 박달나무로 만든 고가의 제품. 아내가 은곡도마와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어쨌든 나도 매일 그 도마 위에서 만들어진 음식을 먹고 살고 있으니 아주 무관하다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도마는 은곡 이규석 선생의 작품이라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인데, 목공예 예술작품만 만들고 지내던 분이 '도마 메이커'가 된 것은 순전히 그의 딸 소영 씨 덕분이었다. 열 살때부터 소리를 배워 해외 무대까지 발을 넓혀 공연을 다니던 소리꾼 소영 씨는 우연히 은곡도마 아이디어를 낸 이후로 아버지의 일을 도와 이 제품의 제작, 배급은 물론 홍보, 마케팅 등 온갖 궃은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아내가 몇 주 전부터 '은곡도마 체험교실' 날짜를 잡고 멤버들을 모았다. 은곡 선생이 오래 전부터 한 번 꼭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신혜숙과 그의 남편 표문송, 윤혜자와 그의 남편 편성준, 옆집 총각 서동현까지 갑자기 몽골 여행을 떠난 한 친구만 빼고 원래 같이 가려던 친구들이 모두 모였다. 서울에서 소영 씨 부부와 네 살짜리 아들 희수도 비슷한 시간에 출발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목적지는 인제군 필레에 있는 은곡 선생의 작업장. 전날 동현은 반차를 내고 송명섭막걸리 등 술을 준비하는 성의를 보였다. 말이 도마 체험장이지 사실은 캠핑인 것이다. 우리는 작업장으로 가기 전 인제의 하나로마트와 그 앞 정육점에 가서 고기와 술을 더 샀다. 도마 작업은 우리가 가는 캠핑의 일부분일 뿐, 대부분의 일정은 마시고 노는 것으로 채워져 있었다.

드넓은 비닐하우스 안에는 도마 말고도 은곡 선생이 만든 작품들이 즐비했다. 달마대사가 있는가 하면 새가 있고 섹시한 여인의 모습이 있도 의자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도 있었다. 짓궃은 성기 모양도 있었다. 하나 같이 그 전에는 그냥 나무일 뿐이었는데 예술가의 눈에 띄는 바람에 생명이 불어넣어지는 경험을 한 피조물들이었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소영 씨에게 작업 지시를 받았다. 평평하게 도마 모양으로 절단된 나무토막을 사포질을 해서 매끄럽게 만든 후 작업용 기름을 칠하고 잽싸게 천으로 기름을 닦아내는 과정을 세 번 정도 반복해야 한다. 그것도 한 번에 하는 게 아니라 몇 시간 정도 텀을 두고 해야하는 제법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다섯 명의 용병들이 검은색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서울에서 각자 가져 온 앞치마를 하고 작업대 앞에 서서 조를 나눠 작업에 임했다. 누구는 도마를 날라오고 누구는 기름칠을 하고, 옆에서 그걸 받아서 기름을 얼른 닦아내고 도마가 잘 마르도록 건조대에 수납하는 일을 정성껏 했다. 신선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하면서 구슬땀을 흘리는 건 다들 오랜만의 경험이었다. 소영 씨가 우리 옆에 와서 이렇게 고급 인력들이 내려와 일을 해줘서 고맙다며 격려를 해줬다. 비닐하우스 바깥에서는 동네 사는 인부들이 모터로 그라인딩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은곡 선생이 작업용 나무들 중 안 쓰는 것들을 모아 숯불을 만들어 주셔서 고기를 구웠다. 먼저 소고기를 구웠다. 문송이 구웠는데 음식에 엄격한 동현이 육즙이 마를까봐 굉장히 긴장하는 얼굴로 고기를 지켜보다가 고기가 채 익기 전에 얼른 들고 상으로 와서 사람들에게 먹어보라고 권했다. 숯불에 구워서 그런지 더 맛이 좋았다. 돼지고기도 구웠다. 좋은 고기를 산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다. 넉넉하게 사온 고기 사이로 오징어도 구워 '오삼불고기'를 만들어 먹었다. 송명섭막걸리를 비롯한 각종 막걸리와 처음처럼이 번개처럼 비워졌다. 아내가 작업장으로 배달을 부탁한 문어도 도착했다. 안주와 술이 넘친다.

소영 씨가 어느 정도 먹었으면 이제 저녁작업에 들어가자고 말했다. 다들 비닐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하고 작업대 앞으로 가서 도마에 기름을 칠하고 천으로 기름을 닦아내고 건조대에 조심스럽게 수납을 했다. 다리가 아팠다. 팔도 아팠다 소영 씨 말에 의하면 내일 아침에 손가락 끝이 굉장히 아플 것이란다. 처음 하는 사람들은 떨어뜨릴까봐긴장하느라 손끝에 힘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작업자들이 너무 열심히 하는 바람에 도대체 쉴 틈이 없었다. 도마 하나를 건조대에 수납하고 나면 기름을 닦아내야 할 도마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술을 마셔서 화장실에도 가고 싶은데 갈 수가 없었다. 아, 어쩌다 이런 덫에 빠져버린 것일까.

카피라이터 출신 광고인이 둘, 기획팀장 출신 광고인이 하나, 출판기획을 하고 있는 기획자 하나, 화장품 회사의 인테리어 팀장 하나. 이런 단순 작업을 하기엔 우리들위 학력이나 지위가 너무 높다는 자조적인 농담이 오고 간다. 그러면서도 칠 똑바로 해라, 기름 잘 닦아내라, 떨어뜨리지 마라 등등 서로를 감시하고 독려하는 데엔 게으름이 없다.

작업은 명목일 뿐, 사실은 놀러 가는 거라는 윤혜자 여사의 꼬임에 빠져 순진하게 따라 온 나머지 네 명은 원망하는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지만 윤 여사는 '나도 피해자다' 라는 표정을 지을 뿐이다. 우리가 작업하는 동안 은곡 선생의 이웃인 동네 어른들이 놀러와서 술을 마시고 소영 씨에게 소리를 시키고 한다. 소영 씨가 어른 접대차 하는 소리 '사철가'를 들으며 우리들은 열심히 사포질을 했다.

손님들이 돌아간 뒤 겨우 겨우 도마들을 정리하고 다시 모여 술을 마셨다. 은곡 선생이 특별히 춘향가 한 대목을 들려 주셨는데 소영 씨가 북을 치고 은곡 선생이 소리를 하는 아주 멋진 무대였다. 소영 씨가 소리를 배울 때 아버지도 함께 소리를 배웠다는데 정말 솜씨가 대단했다. 타고난 예술가 집안이 아닐 수 없다. 가져간 텐트를 하우스 안 빈 공간에 쳤다. 몇 년만에 쳐보는 텐트를 어둠 속에서 치려니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자 텐트 여자 텐트로 나누어서 잤는데 밤새도록 빗소리가 들려왔다.

일요일 아침에 소변을 보려고 일어났다가 다들 주섬주섬 작업대에 모여 사포질을 시작했다. 웃음이 나왔다. 어느덧 작업에 중독이 된 모양이었다. 우리가 열심히 할수록 고품질의 도마가 만들어진다는 데 묘한 쾌감과 자부심이 따라왔다. 은곡선생이 오시더니 이번 자원자들은 작업 수준이 매우 높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우리는 머리가 좋은 사람일수록 작업도 잘 한다는 소영 씨의 뻔한 거짓말에 싱글벙글하며 또 열심히 사포질을 하고 기름칠을 하고 닦아냈다.

아침은 김치찌개와 쏘세지 볶음이었는데 은곡 선생이 한 냄비밥이 너무 맛있어서 다들 배가 튿어질 지경으로 먹고 비명을 질렀다.

오전 작업을 마무리하고 바로 옆에 있는 필레온천에 갔다. 규모는 작지만 프랑스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발견된 게르마늄 온천이란다. 물의 느낌이 굉장히 좋았고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즐기는 야외 온천탕의 느낌은 정말 좋았다.

온천에서 돌아와 소영 씨 남편 동현 씨가 부쳐주는 부침개에 막걸리를 또 마셨다. 쉬엄쉬엄하라는 소영 씨의 말이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달려가서 남은 도마들에 기름칠을 하고 바닥을 천으로 문질러 닦았다. 이젠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노예들이 된 느낌이었다.

스마트폰으로 교통정보를 검색해 보니 길이 막힌다 하니 저녁을 먹고 천천히 출발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어차피 길에서 시간을 버리느니 그렇게 하자고 모두들 찬성했다. 소영 씨는 모든 작업이 끝날 때쯤 한 가구 당 마음에 드는 도마를 한 개씩 주겠다며 고르라고 했다. 신이 난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에 담아두었던 도마를 하나씩 골라 선물로 받았다.

토요일 새벽 여섯 시에 모여 일요일 저녁까지 꽉찬 시간을 보냈다. 다음에 또 한 번 놀러오기로 하고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다. 남편이 의사인 소영 씨는 서울에 살기 때문에 우리와 같이 서울로 올라간다. 다 떠나고 나면 이 넓은 하우스엔 은곡 선생 한 사람만 남는 것이다. 그러나 은곡 선생도 딸 내외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비는 그치지 않고 끈질기게 내린다. 서울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어서 집에 가서 눕고싶운 생각 뿐이다.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뜨겠지. 뭐, 날이 흐려서 해가 뜰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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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후두둑


살아가는데
뭐 그리 대단한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건만

날마다 노심초사 하느라
하루를 다 쓴다

방금 카톡으로 받은
오늘의 따끈한 근심거리

네, 알겠습니다
내일 연락드리겠습니다

오늘도 일용할
사소한 거짓말을 담아내고 있는데
창밖에서 문득
비가 후두둑 떨어진다

후두둑 후두득
이 소리좀 들으라고

살아가는데
뭐 그리 대단한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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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

혜자 2017. 8. 16. 18:05



< 커피 한 잔>

오래 전 이병주의 [행복어사전]을 읽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주인공들이 점심 먹고 회사에 들어가기 전 다방에 가서 커피를 한 잔 하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 지금처럼 스타벅스 따위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야밀로 옛날식' 70년대 다방이다.

한숨 돌리는 커피 한 잔.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는 그게 어른들의 세계인 것만 같아서 참 부러웠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고 나니 한숨 돌리러 커피숍에 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얘기를 하러, 누군가를 만나러, 아니면 테이크 아웃 커피를 사러 가긴 해도(아니면 혼자 아이데이션을 하러 가거나) 그냥 한숨 돌리러 커피숍에 가는 일은 좀처럼 없는 것이다.

이젠 적어도 그 정도의 사치는 좀 누리면서 살아도 되는 게 아닐까. 언제까지 우리는 이렇게 시간에 쫓기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아픈 아내가 몸 상태를 회복하면 동네 커피숍에 같이 가서 싫컷 노닥거려야겠다. 다행히 우리 동네엔 '성북동 콩집'이라는 아주 맛있는 커피를 파는 집이 하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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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항쟁은 오랫동안 ‘광주사태’라고 불렸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항쟁’이라는 명예를 회복했는데 아직도 '그건 불순세력의 폭동이었다'고 말하는 측이 있는가 하면 정치권에서는 518기념일에 광주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바로 얼마 전까지 논란이 있었다. 1980년 5월 광주항쟁은 그만큼 상흔이 짙은 역사적 사건이었고, 그 강도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참살극이었으며, 37년이 지난 지금 젊은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단 말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비현실적인 드라마이기도 했다.

나는 518계엄 당시 중학생이었는데 박정희가 믿었던 부하에게 암살당하고 '서울의 봄’ 소리가 흘러 나오는 것을 어깨 너머로 듣다가 몇 달 후 갑자기 MBC뉴스데스크에서 이득렬 앵커가 “지금 이 시각, 광화문에선 대학생들의 데모가 한창입니다”라는 오프닝 멘트를 들을 때도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는 철부지였다. 그래서 오히려 그 해에 존 레논이 암살당했고, 그래서 그의 유작 앨범 [Starting Over>를 라디오에서 매일 들었다든지 하는 건 잘 기억나도 당시의 정치상황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정말 창피한 일이지만 사실이다. 광주항쟁에 대해서는 워낙 쉬쉬하는 분위기라 나처럼 어린 놈은 그저 아무 것도 모르고 사는 게 당연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518의 참상을 사진이나 필름으로 목격하고 뒤늦게 치를 떨어야 했다.

대학 1학년 5월 축제기간에 학생회관에서 틀어준 광주 관련 기록물들은 대부분 독일 방송국에서 온 것들이라 해서 약간 의아해 했던 기억이 나는데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면서 그 의문이 풀린 셈이다. 이 영화는 518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어떻게 화자를 설정할 것인가를 고민한 점이 가장 큰 성공 포인트라고 생각하는데, 독일인 기자와 함께 택시운전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은 너무나도 적절한 선택이었다.

광주까지 태워다주면 십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에 얼떨결에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가게 된 택시기사 만섭. 평범한 속물이었던 그가 뜻하지 않게 독일 기자 피터와 동행하면서 점점 변화하는 모습은 송강호라는 괴물 연기자의 대사와 눈빛을 통해 관객의 마음 속으로 그대로 들어간다. 아니, 평범한 택시운전사의 마음과 목소리였기에 관객들을 그대로 1980년 광주 현장으로 데려갈 수 있었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다.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뒤덮었던 [군함도]의 흥행을 [택시운전사]가 꺾었다고 한다. 만약 거창한 역사의식이나 직업의식에 불타는 주인공이 열변을 토하는 영화였다면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러 가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계속 생각했다. 아, 송강호. 어쩌면 저렇게 연기를 잘 할 수가 있을까. 저 평범한 얼굴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나올까. 그러나 송강호의 위대함은 다른 곳에 있다. 사실 '연기만 잘 하는 기계'들은 많다. 케빈 코스트너처럼 자유롭고 진보적인 역할을 많이 했던 배우가 알고보면 굉장히 보수적인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면에서 송강호는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바를 선택하고 실천하는 몇 안 되는 셀럽이다. 비록 [변호인]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여러가지 불이익을 당했지만 그는 끝내 자신의 뜻을 꺾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는 민주 투사요’ 하는 오버도 없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통해 묵묵히 신념을 지켜내면서 예술적인 성과까지 이루어 내는 것. 이건 정말 어렵고 소중한 능력이다. 그래서 난 송강호라는 배우를 이 시대의 위대한 배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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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에 최인아 전 제일기획 부사장이나 방송인 노홍철은 왜 책방을 냈을까. 아내나 친구들이 술을 마시면서 가끔 서로에게 던져보는 질문이다. 그들은 정말 책의 미래를 믿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책을, 또는 책방을 이용해서 자신의 '퍼스널 브랜드'를 높이려는 것일까(물론 그러면서 책도 잘 팔리면 더 좋고).

평범한 사람으로서 좀 더 잘 살거나 행복해지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거의 진리에 가깝다. 책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읽을 시간이 없다는 얘기를 한다. 우리는 먹고 사는 일에, 공부니 취직 준비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긴다. 그리고도 남는 시간이 생기면 TV에, 인터넷에, 모바일에 또 대부분의 시간을 빼앗긴다. 일이나 공부에 치여, 구직이나 스펙쌓기에 지쳐 널부러져 있다가 잠깐 정신이 나면 리모콘을 들어 '효리네 민박' 같은 프로그램을 틀어 건성으로 본다. 건성으로 보다가 효리가 요가를 하는 걸 보고 나도 요가나 배워볼까, 생각한다. 이상순이 다기에 뜨거운 차를 붓는 것을 보고는 나도 차를 시작해 볼까, 생각한다. 실제로 요가학원이 늘어나고 다기나 보이차가 잘 팔기도 한다. 그러나 거기 책이 끼어들 틈은 없다. 가끔 드라마나 <무한도전> 같은 인기 프로그램에 책이 한 권 노출되면 당장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투기 현장의 떳다방보다도 못한 '반짝 상품'일 뿐이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 나도 회사 일이 바빠서 지지난 주에 산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를 아직 다 읽지 못했다. 출퇴근 시간과 잠자기 직전에 조금씩 읽었는데도 아직 2권 중간이다. 물론 출퇴근 시간에도 기습적으로 울리는 업무전화나 카톡 때문에 온전히 소설에 집중하기는 어렵다. 남들보다 조금은 더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나도 이렇게 책을 읽기 힘든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한기호 소장의 칼럼 ' 대한민국에는 서점이 없다. 그러니 출판 경기가 최악일 수밖에 없다' 에서 보는 것처럼 작가들도 책을 팔아 생활할 수 없으니까 강연으로 돈을 번다. 사람들은 '세바시' 같은 강연엔 열광하며 박수를 치지만 그 강사가 얘기하는 책을 사서 읽진 않는다. 그러니 서점이 잘 될 리가 없다. 그리고 어쩌다가 서점에 가도 서점에서 제안하는 매대 위의 책을 사서 읽을 수밖에 없다. 


책의 유통 구조를 고쳐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지만, 책도 서점도 상품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살아 남을 수 있다는 말에도 동의하지만, 정말 그런 것이 본질적인 문제일까. 비꿔야 하는 것은 쓸 데 없이 분주하고 걱정만 하며 사는 우리의 삶이 아닐까. 정말 내가 옛날에 다니던 구파발 전철역 앞의 '진양서점'이나 맥 라이언이 책방 주인으로 나오던 <유브 갓 메일> 같은 정겹고 소소한 일상 속의 서점이란 불가능한 것일까. 이렇게 -까, 로 끝나는 의문문만 잔뜩 늘어놓고 끝내는 글을 쓰는 건 정말 싫지만 그렇다고 내가 뭐라고 뽀족한 수를 낼 수가 있을까. 아, 그런데 참. 그들은 왜 책방을 냈을까?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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