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삶은 '평범하게 사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평범함 속에는 어떤 조건들이 숨어 있는 걸까? 대충 이런 것들 아닐까. 엄청난 연봉은 아니더라도 남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직장에 다니고,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아무 때나 이주일 정도 해외여행을 떠나고, 돈과는 상관 없는 나만의 취미생활을 영위하며,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하나 하나 열거하다 보니 헛웃음이 나온다. 이건 평범보다는 차라리 특별한 삶쪽에 가까운 게 아닌가. 적어도 신자유주의 시대의 폭풍을 온몸으로 맞은 뒤 한반도 남한에서 허덕허덕 살아가고 있는 이삼십 대의 젊은이들에게는. 

영화 [버닝]은 무라키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1990년대에 이 작품을 읽은 나는 아침에 조깅을 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큰 피해는 주지 않고 오로지 헛간만 조심스럽게 골라 태우는 등장 인물의 무용한 행위가 영화에서 어떤 의미로 작용했을지 몹시 궁금했다(후에 전쟁영화의 레퍼런스급으로 등극한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기 전 읽은 시놉도 '2차대전 중 참전용사로 네 명의 아들을 잃은 집의 마지막 아들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한 군인들의 노력'이 전부였는데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영화의 분위기를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감독이 이창동이라는 말에 꽤 독한 영화가 나오겠구나, 예상을 했고 그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유통회사에서 '알바'를 뛰고 있는 소설가 지망생 종수는 일을 하다 행사장에서 춤을 추고 있던 어렸을 적 동네 친구이자 동창인 해미를 만나 가까워진다. 그녀는 취미로 팬터마임을 하기도 하고 고양이 '보일'이를 기르기도 하는데 어느날 종수에게 고양이를 맡기고 아프리카 여행을 훌쩍 떠났다가 벤이라는 돈 많은 남자와 함께 돌아온다. 벤은 특별히 열심히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스포츠카를 몰고 방배동의 고급 빌라에서 살고 있는 잘 생긴 싱글이다. 종수는 벤이 마치 피츠제럴드의 소설 속 주인공 개츠비 같다는 생각을 하고 벤은 그런 종수와 대마초를 나눠 피우며 자기는 가끔 들판에 널려 있는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습성이 있다고 고백한다. 불이 나도 대부분 아쉬워하지도 않고 큰 범죄가 되지도 않는 비닐하우스 태우기. 종수는 혹시 자기가 비닐하우스 같은 하찮은 존재는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본능적으로 몸을 떤다. 이들은 모두 저녁 노을보다는 아침 햇살이 더 어울리는 나이지만 그들이 모이는 곳엔 늘 석양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는 '리틀 헝거'와 '그레이트 헝거'일 것이다. 해미가 아프라카에 가서 들었다는 얘기. 그냥 배가 고픈 사람은 리틀 헝거이고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사람은 그레이트 헝거라는 그럴듯한 메타포. 그레이트 헝거는커녕 리틀 헝거라도 한 번 폼나게 해보고 싶지만 매 순간 가진 것 없이 뜨겁기만 한 젊은 육체를 버거워 해야하는 해미는 아프리카에서 시시각각 색깔이 변해 가는 노을을 바라보면서 "죽을 용기는 없고 그냥 저것들처럼 훌쩍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며 술집에서 운다. 

평생 아쉽거나 슬픈 일이라고는 당해본 적이 없어서 눈물을 흘려보지도 못한 벤은 그런 청승을 떠는 종수와 해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모든 일에 심드렁하다. 여자든 돈이든 원하기만 하면 바로 생기는 데다가 종수처럼 분노조절이 안 돼서 폭력혐의로 재판을 받는 아버지가 있거나 해미처럼 카드빚 다 갚기 전에 집에 들어올 생각 말라 야멸차게 내치는 가족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비닐하우스를 태우는데, 아다시피 그것도 그리 큰 재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그는 '재밌네'라는 말을 남발한다.  파주에 사는 종수 집으로 갔을 때 마을에 울려퍼지는 소음이 대남방송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그는 무심코"재밌네요"라고 말한다. 사실은 뭐든 게 재미 없어서 자신의 여자들이 파티장 친구들 앞에서 신나게 떠들 때도 하품을 하다가 매번 종수에게 들키면서도. 

종수 역을 맡은 유아인은 영민하지만 '세상이 거대한 수수께기 같아서' 소설을 쓰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청년 역할을 너무나 잘 소화해 내고 있다. 판토마임으로 없는 귤을 까먹고 노을 앞에서 옷을 훌훌 벗은 채 반나로 춤을 추는 전종서도 해미 역에 딱이다. 그러나 이 영화 최고의 캐스팅은 모든 것을 다 가졌으나 권태롭고 그러면서도 끝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은 벤을 연기한 스티브 연 아니었을까. 이창동 감독의 연출력은 어느 하나 뛰어나지 않은 점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벤을 악역으로 설정하지 않은 점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분명 종수에게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인데 정작 본인은 늘 침착하다못해 천진하기끼지 하다. 도대체 싸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적보다 더 무서운 적은 아마 이처럼 무심한 존재일 것이다. 마지막에 종수가 벤을 칼로 찔렀을 때도 그는 아마 "재밌네"라고 중얼거리며 죽어갔을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를 보고 그래도 희망은 있다, 거나 어떻게든 살아야 하지 않겠니? 같은 가짜 위로의 말은 당분간 삼가해 주시기 바란다. 비극의 주인공을 꾸며내려고 해도 '과잉 설정'이라는 소릴 듣게 되는 상황이 바로 하루에 햇빛이 딱 한 번 드는(그것도 남산 타워에 반사된) 해미의 방일 것인데 어쩌면 그 또래들에게 이 영화의 배경은 2018년 대한민국 전체로 확장되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예전에 에스컬레이터에서 에티켓을 무시하고 걷거나 뛰어다니는 승객들 대부분이 젊은이들이라는 어른들의 질책에 '나도 언젠가 에스컬레이터에서 뛰지 않고 그냥 서서 가는 입장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대학생 알바생의 가슴 시린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에서 바로 그 젊은이의 분노를 담아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시나리오 작가 오정미 각본가에 의하면 이 영화는 시나리오 작업 단계에서 지금의 제목 대신 '분노 프로젝트'라고 불렸다고 한다. 



Posted by 망망디
,



존 포드와 존 웨인이 만들어 놓은 '옛날 옛적 서부에서'의 신화적 구라들을 1960년대에 세르지오 레오네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귀엽게 비틀었다면 2016년 데이빗 맥킨지와 크리스 파인은 서부라는 세트에 현대의 쓸쓸한 비극을 세련되게 옮겨 놓을 줄 아는 사람들이다. 금요일 밤인데 남편의 속이 고장나는 바람에 술도 마시지 못해 심기가 불편해진 아내의 눈치를 보다가 IP-TV에서 이 영화를 찾아냈다. 

황량한 텍사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소하고 영리한 은행강도 행각과 침착하게 그들을 쫓는 늙은 보안관 콤비. 각본도 연출도 좋고 배우들의 연기도 모두 끝내준다.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무심코 던지는데 대사 타이밍들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걸 보고 있자니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마지막 농장 신에서 크리스 파인과 제프 브리지스가 주고 받는 어른스러운 대사와 표정들은 특히 멋지다. 1,500원밖에 안 하길래 안심하고 아내의 허락을 구하고 틀었는데 우연히 좋은 영화를 보았다.      





Posted by 망망디
,

웃음소리

공처가의 캘리 2018. 5. 15. 16:11


​저희집은 이렇게 된지 좀 됐습니다. ^^

'공처가의 캘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도 그래  (0) 2018.11.22
오랜만에 공처가의 캘리   (0) 2018.09.19
일요일  (0) 2018.05.14
안 떨려  (0) 2018.05.09
뭐라도 됐으니 됐어요.  (0) 2018.05.09
Posted by 망망디
,

일요일

공처가의 캘리 2018. 5. 14. 09:05

쓰레기 분리수거를 열심히 수행하고 난 후 녹차를 마시는 공처가의 일요일 오후 정신상태. 


'공처가의 캘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랜만에 공처가의 캘리   (0) 2018.09.19
웃음소리  (0) 2018.05.15
안 떨려  (0) 2018.05.09
뭐라도 됐으니 됐어요.  (0) 2018.05.09
일요일 아침 문득  (0) 2018.05.09
Posted by 망망디
,


한 달에 한 번, 두 번째 토요일 오후 두 시에 열리는 '독하다 토요일'의 두 번째 모임이 어제 대학로 카페 겸 서점 '책책'에서 있었습니다. 이번에 같이 읽은 책은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이라는 단편집이었습니다. 두 시 이전에 모인 몇몇 분들과 함께 먼저 각자 가져온 책을 묵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개인적 미팅 때문에 김인혜 씨가 오지 못하게 되었고 정아름 씨도 출장 후유증으로 몸이 안 좋아 참석을 못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할 수 없으니 다음 달을 기약하자 했습니다. 옆집 총각 서동현 씨는 목요일에 촉발된 숙취에 괴로워하면서도 참석해 묵묵히 책을 읽었습니다.

새로운 멤버가 한 명 있었습니다. 제 후배인 광고인 김휘중 씨였습니다. 제가 몇 주 전 술자리에서 이 모임에 대해 얘기했더니 눈을 반짝이며 자신도 참석하고 싶다고 너무 간절하게 부탁을 해서 초대했습니다. 타고난 길치라 모임 장소를 찾는 데 좀 고생을 했지만 뒤늦게 도착해 책을 읽고 작품에 대한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늦게 도착한 사람도 있고 해서 3시 반까지 책을 읽기로 했고 그 후 십오 분 정도 각자의 독후감과 세줄평 등을 정리하고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윤혜자 씨는 <노찬성과 에반>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습니다. 에반이라는 존재는 개를 넘어서 우리가 의지하거나 붙들고 싶어하는 어떤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옆집총각 서동현 씨는 <건너편>이 너무 슬프고 리얼했다고 했습니다. 적나라했고 정말 있을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라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수산시장 장면에서는 마치 '사람들이 줄돔 같다'는 생각도 했다고 했구요. <풍경의 쓸모>에서는 무리하게 연결을 원하는 아버지와 노회한 박 교수가 교차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작가의 묘사가 일상을 마구 긁어대는 느낌이고 등장하는 사건 사고들이 '느슨한 시침질처럼 꿰어져' 오히려 거대한 풍경을 이룬 게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창단 멤버였지만 지난 달 참석을 못해 이번이 첫 모임이 된 진주 씨는 <노찬성과 에반>을 읽고 자기에게도 에반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했습니다. 다들 <노찬성과 에반>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같습니다. 김휘중 씨는 자기는 평소 장르소설을 좋아하는데 김애란의 소설을 읽고 홍상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적나라하고 리얼한 느낌을 받았다 했습니다. 그는 <입동>과 <건너편>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건너편>에서 연인에게 차이는 이수의 입장이 잘 이해되어 마음 아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입동> 등의 작품들이 현실을 너무 잘 반영해서 '바깥은 여름'이라는 작품집의 제목이 뜻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었다 했습니다. 아무리 괴로워도 다른 사람들은 그 사정을 모르는 게 세상 일이고 결국 산다는 다 고독하다는 게 핵심이라는 것이죠. 

 영어선생님인 임기홍 씨는 모임에 와서 또 영어책을 읽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했는데 무슨 작품이 좋았냐고 물었더니 <침묵의 미래>가 흥미로웠다고 털어왔습니다.  다른 소설과 달리 화자가 '언어'라는 게 재밌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노찬성과 에반>에서 왜 찬성이 할머니한테 '목사님이 할머니 싫어한대'라고 얘기했는지 의문을 제기해서 잠시 토론이 있었습니다. 결국은 '목사님이 할머니한테 더 이상 바랄 게 없자 그런 식으로 나온 게 아닐까?'하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목사님이 나쁘다는 것이죠. 저는 읽은지 좀 돼서 기억이 가물가물 했었는데 누군가 의문을 제기하는 바람에 확 걸렸던 대목이었습니다. 

김성희 씨는 <입동>이 좋았는데 '바깥은 여름'이라는 인식 자체가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 김애란의 에센스 같은 느낌이었고 그래서 이 작가의 작품은 다 영화화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눈먼자들의 국가]에서도 이 작가가 상실을 겪은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미리 느낄 수 있었다고 하며 지난 번 우리 모임의 작가였던 권여선보다 더 대중성이 있는 것 같다는 소회를 밝혔습니다. 이번 소설도 세월호 사건 때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얘기했는데 다들 그 의견에 공감해서 찾아보니 그때 이 작품을 쓴 게 맞는 것 같았습니다.

손영연 씨는 <건너편>이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마치 누가 글을 양동이로 쏟아붓는 느낌이라 했습니다. 그만큼 강렬했던 것이겠죠. 그리고 <풍경의 쓸모>에서 사진을 찍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다고 했습니다. 시간을 박제해 놓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게 결국은 '전형적으로' 살게 되는 것' 이란 느낌을 받았다 했습니다. 아버지를 돕지도 못하고 결국 교수 임용에 떨어지는 주인공의 삶도 전형적인 것의 대표격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김휘중 씨는 그게 바로 살아가면서 나이 먹어간다는 것을 사진을 통해 잘 짚어낸 것이라 말하며 김애란이 글을 너무 잘 써서 좋기도 하지만 막상 그 글을 읽어내는 게 자신과 마주하는 것 같아서 힘들고 기분 나쁘다는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김하늬 씨는 동료 작가와 이 작품집을  올 1월에 이미 읽었는데 그때는 어떻게 쓸 것인지를 얘기를 하느라 조금 다르게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입동>이라는 작품이 별로다,라는 생각이었다는 것이데, 그 이유가 너무 전형적으로 잘 쓴 작품이라 그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독하다 모임에 와 보니 일반 독자들이 이 작품에 대해 반응이 뜨거운 것을 보고 약간 놀랐다는 것이죠.
그녀는 [침묵의 미래]가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들의 문제를 다룬 [가리는 손]이 인상 깊었다고 했습니다. 아는 언니와 나눈 '세월호와 액체괴물' 얘기도 했습니다. 다 얘기하려면 길지만 짧게 말하면 잘 몰라서, 순수해서 오히려 잔인해질 수 있는 아이들에 대한 생각들이었습니다. 그러자 김휘중 씨가 [가리는 손]이 정유정의 [종의 기원]이 생각나는 소설이라 인상 깊었다며 열변을 토했습니다. 
 
정유정에 대한 소설 얘기를 중구난방으로 나누다가 결국 김애란은 잘 쓰는 소설가이며, 너무 잘 쓰다 보니 오히려 역설적으로짜증이 나기도 하다는 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렇지만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이나 단편 <입동> 모두 압도적인 소설이라는 상찬을 나누다 모임이 끝이 났습니다.

뒷풀이는 원하는 멤버만 간다는 원칙 하에 광장시장의 '박가네 빈대떡'에 갔었는데 약속이 있다는 김하늬 씨와 손영연 씨만 빼고 모두 달려가 '빈대떡 삼합' 안주에 막걸리와 소주를 마셨습니다. 어쩌다 제가 똥에 얽힌 얘기를 꺼내는 바람에 똥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김휘중 씨한테 옮겨가면서 또다른 똥얘기로 번져 오랫동안 각종 똥얘기로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끝을 맺게 되었습니다. 다은 달에 한강 작가의 [흰]을 읽기로 하고 다들 무사히 헤어졌습니다. 


다들 세줄평을 발표하지 않아서 제가 쓴 세줄평만 괜히 공유해 봅니다. 

견고한 슬픔들 -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 

김애란의 소설은 사라진 것들이나 도달하지 못한 곳에 대한 애잔한 반추들이 있어 슬프다. 그러면서도 성실한 취재가 소설의 견고함에 힘을 보탠다. 진작에 끝나버린 연인들의 이야기 <건너편>에 등장하는 '하늘을 친구처럼, 국민을 하늘처럼' 같은 기상청의 캐치프레이즈가 그런 대목이다. 남편을 잃고 영국에 다녀온 주인공이 휴대폰 서비스 시리와 대화를 시도하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도 서글프다. 다른 단편집 [비행운]에 들어있는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를 추천한다. 그 소설을 읽고나면 김태용 감독의 영화 [만추]에서 탕웨이가 하던 대사가 떠오를 것이다. 













Posted by 망망디
,

안 떨려

공처가의 캘리 2018. 5. 9. 17:41

공처가들은 혹시 이런 연습을 하지 않을까 , 괜히 생각해 봤습니다. 

'공처가의 캘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웃음소리  (0) 2018.05.15
일요일  (0) 2018.05.14
뭐라도 됐으니 됐어요.  (0) 2018.05.09
일요일 아침 문득  (0) 2018.05.09
공처가  (0) 2018.05.09
Posted by 망망디
,

뭐라도 됐으니 됐어요. 

'공처가의 캘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웃음소리  (0) 2018.05.15
일요일  (0) 2018.05.14
안 떨려  (0) 2018.05.09
일요일 아침 문득  (0) 2018.05.09
공처가  (0) 2018.05.09
Posted by 망망디
,

일요일 아침 문득, 공처가로 살기로 했습니다.

'공처가의 캘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웃음소리  (0) 2018.05.15
일요일  (0) 2018.05.14
안 떨려  (0) 2018.05.09
뭐라도 됐으니 됐어요.  (0) 2018.05.09
공처가  (0) 2018.05.09
Posted by 망망디
,

공처가

공처가의 캘리 2018. 5. 9. 17:30

말하자면, 이건 대문사진이죠.

'공처가의 캘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웃음소리  (0) 2018.05.15
일요일  (0) 2018.05.14
안 떨려  (0) 2018.05.09
뭐라도 됐으니 됐어요.  (0) 2018.05.09
일요일 아침 문득  (0) 2018.05.09
Posted by 망망디
,

미리 만나 보는 나이 든 홍상수 - [클레어의 카메라] 


영화제 때문에 깐느에 왔던 영화감독 소가 술에 취해 영화사 직원인 만희와 하룻밤 자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런데 같이 온 영화사 사장이 그걸 알고 만희를 현지에서 전격 해고한다. 이유는 정직하지 않아서, 라고 하지만 사실은 질투심 때문이다(사장과 소 감독은 오랜 연인 사이다). 만희는 자기가 왜 잘렸는지도 명확하게 알지도 못한 채(비행기표가 워낙 싼 거라 일정 변경이 불가능해서) 깐느 해변을 배회하다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다니는 클레어라는 프랑스 여자를 알게된다. 그 여자는 우연히 소 감독도 만나게 된다. 소 감독과 영화사 사장이 있는 자리에 합석하게 된 클레어는 자신이 며칠 동안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들을 보여주다가 이 사람들이 만희와 아는 사이임을 알게 된다. 만희는 김민희이고 소 감독은 정진영, 영화사 사장은 장미희이다. 

이것은 홍상수 감독이 내놓은 69분짜리 짤막한 장편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다. 영화라기보다는 차라리 한 편의 단편소설 같다. 그것도 1,2,3 챕터로 구성된 단편소설 중에서 두 번째 챕터만 떼어내 영화로 만든 것처럼 보인다. 몇 명 나오지 않는 등장 인물로 봐도도 그렇고 백 분이 채 안 되는 길이로 봐도 그렇다. 제목에 등장하는 클레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거의 정보도 없고 인간적인 고뇌도 없어 보인다. 아마도 클레어 역을 맡은 이자벨 위페르에 대해 알고 싶으면 1이나 3챕터를 따로 찾와봐야 할 것이다. 

아다시피 홍상수는 몇 줄의 시놉으로 구성된 아주 사소한 얘기만으로도 뚝딱뚝딱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는 관객이 흥미를 불러 일으킬 만한 영화적 소재를 찾는 것엔 관심이 없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라고 오해받을 수 있는 소재나 배우를 쓰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그럼 내가 이런 얘기 말고 무슨 다른 얘기를 하란 말인가, 라고 매번 묻는 듯하다. 이번에도 프랑스라는 곳에서 벌어지는 몇날 며칠 간의 소소한 사건들이 앙상한 배경의 전부다. 그런 미시적인 세계 속에서 '정직, '판단', '변화' 같은 중요하지만 너무 빛이 바래 이젠 우스워진 단어들을 배우들의 입에 담게 한다. 그러다 보면 또 한 번 홍상수만 가능한 영화가 완성된다. 찌질한 연애나 삼각관계, 허영심에 휘둘리는 남자들 등 아주 시시한 세계 속에서 보편적 인간의 속성을 발견하는 것. 아마도 홍상수를 세계적인 영화감독으로 만든 것은 이런 통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도 홍상수는 변함이 없다. 일상의 미세한 반복을 포착하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유치찬란한 면을 천재적인 방법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던 술자리나 섹스 장면이 점점 적어진다. 그게 나쁜 건 아니라고 본다. 굳이 술이나 섹스 장면이 나오지 않아도 얘기가 충분히 전달된다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이번엔 그 생략의 빈도가 더 잦아지다 보니 러닝타임도 짧아지고 카타르시스도 적어졌다. 언젠가 홍상수는 영화를 찍을 수 없을 정도로 나이가 들면 그땐 아주 짧은 단편소설 같은 걸 쓰고 있지 않을까, 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어쩌면 이 영화는 그런 그의 예언을 미리 엿본 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이가 든다고 홍상수가 힘이 빠지거나 너그러워지지야 않겠지만, 적어도 덜 수다스럽고 덜 그악스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고 또 당연한 일일 테니. 


Posted by 망망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