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

짧은 글 짧은 여운 2018. 8. 27. 18:54

문병


엄밀하게 말해서 사람들은 모두 환자다.
가벼운 감기부터 고혈압, 당뇨, 비만,
스트레스...하다못해 어린 마음을 할퀴고
지나가는 상사병까지.

그 환자들 중에서 조금 더 아픈 사람들은
병원에 가거나 입원을 하고 덜한 사람들은
그냥 참고 견디며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우리들은 모두 난치병 환자거나
또는 약간의 정신병자다. 

그러니 오늘 당장 친구에게 문병을 가라.

입원한 친구는 병원으로 찾아가고
그냥 아픈 친구는 술집으로 찻집으로 
불러내서 따뜻하게 위로하라. 

우린 모두 서로에게 문병할 의무가 있다. 
그게 사는 거다. 



(*10년 전에 썼던 글을 우연히 발견해서 괜히 만년필로 옮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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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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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배명훈이라는 작가를 폐간된 잡지 [판타스틱]에서 처음 발견했습니다. 그 잡지엔 별별 기괴한 상상력을 지닌 SF작가들이 많이도 등장했는데 SF를 잘 모르는 제게는 역설적으로 듀나나 김보영 같은 인기작가들보다는 배명훈이나 정세랑 같은 '약간 삐딱한' 작가들이 더 눈에 띄었습니다. 약간 삐딱하다는 것은 우주나 물리학을 다루거나 하는 본격 SF라기보다는 개인들의 사소한 관심사들이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새로운 이야기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배명훈은 어디에선가 인터뷰에서 '일반 소설에다가 과학적 지식을 첨가해서 쓴 다음 SF라고 우기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스마트 D>라는 데뷔작을 준비했다는 얘기를 읽은 기억도 있었구요. 아무튼 그래서 오래 저부터 제가 좋아했던 [안녕, 인공존재]라는 작품집을 '독하다 토요일'의 다섯 번째 작품으로 선정을 했습니다. 

꽤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크레인 크레인>, <누군가를 만났어>, <안녕, 인공존재!>, <변신합체 리바이어던>만 다시 읽고 대학로 책책으로 갔습니다. 손영연 씨는 SF인지 모르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데 일단 글이 신기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표제작에 나오는 쓸 데 없는 물건, 즉 '무용지물'에 대해 호감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느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반면 윤혜자 씨는 시종일관 불편한 책이었다고 했습니다. 일단 '너희들은 이렇게 못 쓰지?'라고 뻐기는 듯한 작가의 잘난 척이 싫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책 뒷쪽에 붙어있는 '출간사유서'를 읽고 더 심해졌다고 했습니다. 존재성에 대해서 나는 이 정도 쓸 수 있어,라고 말하는 듯한 작가의 태도가 몹시 거슬린다는 것이었죠.  윤혜자 씨는 언제나 그랬듯이 남편이 가진 책 말고 이번에 새로 똑같은 책을 구입했는데 2010년 초판인쇄를 시작한 책이 아직도 초판인 것은 그런 태도에 기인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내놓았습니다. 작가의 태도에 대해서는 저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다만 저는 배명훈의 작품엔 적어도 '인간'이 들어 있는 것 같다고 소심한 항변을 했습니다. 

서동현 씨는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읽는 것처럼 새로웠다고 말했습니다. 자기는 아이작 아시모프를 좋아하는데 이 작품은 그 기발함이 정통 SF와는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과학이나 기술을 소재로 샤먼이나 초월까지 자유롭게 다루는데 이는 마치 예전 [퇴마록] 시리즈를 썼던 이우혁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얘기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기발함에 대한 칭찬이 이어졌는데 <안녕, 인공존재!>에 등장하는 발명품들은 만약 실제로 존재하기만 한다면 당장 구입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고 했고 특히 <얼굴이 커졌어>를 읽고 많이 웃었다고 했습니다. 

김성희 씨는 다른 사람처럼 별다른 의심이나 고민 없이 그냥 읽었는데 <변신합체 리바이어던>이 제일 재미 없었고 기중기의 신이 등장하는 <크레인 크레인>의 상상력이 돋보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리오의 침대>는 동화 같았다고 소감을 피력했습니다. 그러면서 '안녕, 인공존재?'의 안녕이라는 말이 만나서 하는 인사일까 아니면 헤어질 때 하는 인사일까도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존재는 아름답다'라는 것에 대한 얘기가 아닐까 하는 의견도 내놓았습니다. 

외교학과를 나온 작가의 이력 때문에 '요즘은 뭐 할까?'라며 혹시 외교관으로 일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궁금함도 등장했습니다. 솔직히 글만 써서 먹고 살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했고 글 쓰는 스타일로 봐서 다작을 하거나 전업작가로 생활 할 것 같지는 않아서 나온 궁금증이었겠죠. 윤혜자 씨는 자기 혼자는 절대로 읽지 않을 작가인데 이런 모임 덕분에 억지로라고 읽에 되어 좋다고 하며 웃었습니다. 정아름 씨는 세 번이나 이 책을 읽었다는 말로 소감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이해가 안 돼서 되풀이 읽기 시작했다는데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도 받았다고 했습니다. <얼굴이 커졌다>는 너무 웃겼는데 좀 유치하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매뉴얼>은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연대기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1500년 전 얘기가 갑자기 나와버려서 어리둥정 했다는 것이었는데 저는 그 작품 내용이 생각나지 않아 더 의견을 보탤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정아름 씨는 <누군가를 만났어>에 나오는 '고고심령학자'라는 직업이 실제로 있는지 알았다며 웃었는데 얼마 전 같은 제목으로 장편소설이 또 나온 걸 보면 배명훈은 이 가상의 직업에 대한 애착이 매우 큰 것 같습니다. 진주 씨는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계속 참석을 못하다가 이날 처음 책책에 와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안녕, 인공존재!>에 나오는 신우정 박사의 유서의 내용과 비슷하게 최근에 4년 전 남자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펼쳐주었습니다. 소설에 나온 존재론적 이야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쿨하게 엮어 얘기하는 모습이 멋져보였습니다. 

임기홍 씨는 이 소설집을 읽고 자신이 고리타분한 사람이 아닌가 의심하게 되었다는데, 예를 들면 건축에 있어서도 자신은 벽의 마감은 물론 조명 벽지색깔까지 모두 맞아야 집이 완성되었다고 보는 입장인 반면 이 소설들은 어딘가 미완성 같다고(마치 당인리에 있는 커피숍 '엔트러싸이트'처럼 벽마감이 안 되어 있고) 느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게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과학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 작가의 경우는 여러가지 매력에도 불구하고 과학을 자기 필요한 대로 써먹는 느낌이라 그게 못마땅하다고도 했습니다. 마치 착한 친구를 자신의 목적에 맞게 이용해먹는 느낌이라는 것이죠. 독특한 견해였습니다. 

윤혜자 씨는 최근에 읽은 두 권의 책, 즉 김탁환의 [이토록 고고한 연예]와 배명훈의 [안녕, 인공존재!]를 비교해본 느낌을 전했는데 [이토록 고고한 연예]가 물흐르듯 이어지는 스토리텔링의 전형을 보여준다면 [안녕, 인공존재!]는 SF이면서도 문학의 완결성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게 오히려 '문청'이 쓴 소설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누군가 조금 더 자유로워도 되지 않을까, 하는 얘기를 했더니 이 책이 나온 곳이 '북하우스 퍼블리셔스'라는 곳이라 어느 정도는 전형성을 갖추게 되었을 것이라는 얘기도 했습니다. 공식적 루트로 등단한 작가들이게는 뭔가 '공식'이 있다는 것이죠. 물론 이건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습니다. 그동안 우린 모여서 등단한 작가의 작품만 읽었는데 만약 그렇지 않은(이를테면 웹작가라든지)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다면 고른 문장력이나 작품성을 보증받기 힘들다는 점도 있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서동현 씨의 지적대로 정통 SF도 아닌 소설에 제목도 SF 팬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 아니라 잘 안 팔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솔직히 배명훈은 장편보다는 단편이 좋다고 하며 특히 감동스러웠던 작품 중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를 인터넷 이용자들이 집단으로 구해내는 이야기가 있다고 했더니 누군가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 <타클라마칸 배달사고>라고 제꺼덕 알려주었습니다. 그밖에도 배명훈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은경'이라는 이름에 얽힌 이야기, 예전에 인기 높았다가 이제는 존재감이 없어진 웹작가 '귀여니'에 대한 이야기, 우리나라에만 남아 있다는 신춘문예 이야기 등등이 중구난방으로 이어지다가 다음엔 정세랑의 연작소설집 [피프티 피플]을 읽자고 합의하며 2차를 가기로 했습니다. 원래 윤혜자 씨와 손영연 씨는 광화문 월향에서 이여영 대표가 번개를 쳤던 '브라쟈 풀고 마십시다' 라는 여성들만의 행사에 참여하기로 했었으나  시간이 애매해서 포기하고 같이 2차에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대학로에 있는 삼겹살집에서 이어진 이차에서 매우 많은 양의 고기와 술을 먹고 마셨고 3차로 대학로 '나무요일'에 가서 또 맥주를 마시다 헤어졌습니다. 사실은 위에 쓴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는데 제가 회사 일이 바빠서 - 사실은 다음날 즉시 써야하는데 숙취와 게으름 때문에 - 후기를 너무 늦게 쓰는 바람에 빼먹은 내용들이 많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 모임은 더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제가 쓴 세 줄 평과 함께 이번에 참석하지 못했던 김하늬 씨가 카톡으로 보내온 작품평을 첨부합니다. 

편성준의 세줄평 : SF이면서도 서사가 능숙한 소설을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안녕, 인공존재!]는 반짝이는 아이디어 뒤에 존재론적 성찰까지 깔려 있어서 읽는 맛이 남다른 단편들이었다. [팔란티어] 이후 종적이 묘연한 김영민과 달리 배명훈은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활동을 계속 해줄 것으로 묻는다. 


김하늬 씨가 카톡으로 보내 온 평들 : 헉... 보낸다는게 시간을 못봤습니다ㅠㅜ 뒤풀이중이실거 같지만 첨부합니다.

안녕, 인공존재! / 배명훈

■ 총평
데우스엑스마키나를 사랑하나보다. 뭘 말하려는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구성이 흔들리지 않아서 제목만 봐도 내용이 기억난다. 재미있다! 각 단편 별로 화자에 따라 분위기가 다르다. 인물의 특성을 잘 살린 것 같다. 그간 읽은 단편작가들(김애란, 레이먼드 카버 등)은 그들의 특징이 글에 많이 묻어났다. 배명훈의 소설 연결고리는 발랄함과 SF라는 점 정도만 있고 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 본받을 점이 보이는 소설집.

■ 크레인 크레인
크레인을 신적 존재로 보는 것 까지 참신하고 좋았는데 신이 등장하며 참신함을 부셔버렸다.

■ 누군가를 만났어
세 국가를 모은 이유는 외교상황을 빗대고 비꼬려고 하는 것이었을까? 역시 데우스엑스마키나...

■ 안녕, 인공존재!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 교류를 해야 존재를 증명하는 사람과, 스스로를 증명해 폭발함으로써 존재를 증명한 자갈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글의 전개 내용도 안정적이다.

■ 매뉴얼
참신하다. 매뉴얼을 마로하, 신적 존재와 연결한게 인상적이지만, 끝이 너무 허무하고 끝나지 않은 느낌이 아쉽다.

■ 얼굴이 커졌다
알레고리 소설이었다. 얼굴이 커짐을 프로로 의미했으나 가정, 즉 행복을 찾은 나는 얼굴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행복을 얼굴의 크기로 비유한 것 같다. 가장 좋다.

■ 엄마의 설명력
아이의 세계는 부모라고들 하는데, 그런 걸 보면 주인공은 30대가 되어서도 부모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건 현 세대를 풍자한게 아닐까.

■ 변신합체 리바이어던
홉스의 사회계약론에서 영감받은듯. 로봇의 합체로 국회를 비꼰 것도 참신. 신을 죽이는 행위로 현대 예술을 일컫는 것 같다. 두번째로 좋다.

■ 마리오의 침대
사랑은 돌고 도는 것? 배우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점도 재미있고 문제를 몰래 해결하는 것도 사랑스럽다. 세번째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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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그녀는 그들의 정원에서 키운 당근 하나를 들어 보인다. 이상하게 생긴 돌연변이로, 두 개의 인간 몸이 서로 얽혀 성교 중인 모습과 닮았다. 이걸 해나에게 보여줘. 그녀가 말한다. 우리의 카마수트라 당근이야. 특별할 때 쓰려고 따로 두었던 거란다. 차에서 다시 혼자가 된 비트는 그 외설적인 것을 손에 들자 두 여인의 즐거움이 귓가에 울리는 듯해 기쁘다.




죽어가는 엄마 해나를 간호하던 주인공 비트가 마을 자연식품가게에 들러 당근을 선물로 받던 이 장면을 아침에 전철에서 읽으며 슬며시 웃었다. 로런 그로프의 <아프카디아>를 조금씩 읽고 있다. [운명과 분노]만큼 재밌지는 않지만 이런 대목들은 정말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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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얼마 전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고싶다는 얘기를 한 게 기억나서 광복절 낮에 명동CGV 씨네라이브러리에 예약을 하고(내가 하려고 했는데 아내가 포인트가 많다고 자신이 한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가서 그 영화를 봤다. 나는 2008년도에 무슨 국가대표전 축구경기가 있던 날 저녁에 청담CGV에 가서 혼자 이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단발머리 연쇄 살인마 안톤 쉬거. 거의 십 년만에 극장에서 다시 만나는 작품이라 가슴이 설레었다.  

주인이 안톤 쉬거에게 어디서 왔냐고 무심코 물었다가 졸지에 목숨을 걸고 동전 던지기를 하게 되는 수퍼마켓 장면은 대사, 연기, 호흡까지 지금 봐도 역시 끝내준다. 이건 코맥 맥카시의 원작소설이 있지만(소설도 사서 읽었다) 역시 이건 코엔 형제표 영화라고 말하는 게 어울린다. 이백만 달러가 든 돈가방과 연쇄살인마를 먼지바람 횡횡 부는 텍사스로 불러내 인간사 전체를 차갑게 비틀며 조롱하는 이야기를 이 형제만큼 잘 할 사람이 또 있을까. 원래 조엘 코엔은 형 에단 코엔이 쓴 시나리오를 타이핑 해주다가 자기도 얼떨결에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고 겸손을 떨지만 사실은 비트켄슈타인에 대한 논문을 쓴 적이 있을 정도로 철학과 인문학에 조예가 깊다고 한다. 

영화 시작한지 120분쯤 지나면 안톤 쉬거는 교통사고를 당해 기진맥진한 상태로 어디론가 사라지고, 돈가방도 사라지고 화면이 바뀌어 늙은 보안관 토미 리 존스가 아내에게 지난 밤 꿈 얘기를 하다가 영화는 갑자기 맥없이 끝이 난다. 팽팽하던 122분의 러닝타임이 다 지나고 불이 켜졌다. 아, 어려워. 아내가 말했다. 그러게. 나도 어려워. 내가 말했다. 왜 나한테 이 영화 보자고 했어? 하하. 그러게. 근데 되게 재밌지 않아? 도대체 감독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야? 글쎄...인생은 절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아니면 인생은 누구든 잘 안 풀리게 되어 있으니 희망을 버려라...? 나, 참. 

적어도 두 가지는 분명한데, 첫 번째는 다시 봐도 무척 재미 있고 동시에 어렵다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매력이 철철 넘치는 작품이라는 것. 하비에르 바르뎀처럼 센 캐릭터가 나와 진지하고 섬뜩하게 굴면서도 가끔 뻔뻔하게 웃기는 것까지 잊지 않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얼마 전 [시카리오2]에서 무시무시한 카리스마를 뿜어냈던 조슈 브롤린은 또 어떤가. 번번히 살인마를 놓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보안관 토미 리 존스는 또 어떤가. 처음 이 영화를 기획할 때 코엔 형제가 쓴 시나리오를 먼저 읽은 토미 리 존스는 어디서 단발머리를 한 기괴한 사내의 사진을 가져왔다고 한다. 안톤 쉬거의 헤어스타일로는 이게 딱이라고. 사진을 본 하비에르 바르뎀은 '아, 씨발...'이라고 뇌까린 뒤 조용히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고. 그렇게 해서 희대의 살인마 캐릭터인 안톤 쉬거가 탄생했다. 

누구든 돈가방을 보고 그냥 지나갈 순 없다. 르웰린도 마찬가지였다. 황량한 텍사스 사막 한복판에서 마약상들이 자기들끼리 총질을 하다가 죄다 죽어버린 현장을 발견했다. 다 죽었고 언덕에 있는 시체 옆에 놓인 가방엔 이백만 달러가 들어 있다. 안 가질 이유가 없지 않은가. 르웰린은 생각한다. 어떡하든 이 돈을 가져야겠어. 그러나 안 그러는 게 좋았다. 이 돈가방을 추척하는 사람이 다름아닌 안톤 쉬거니까. 아, 그냥 잘 걸. 괜히 죽어가는 놈 물을 떠다 준다고 거길 간 게 잘못이었어. 아니면 우디 해럴슨의 제안처럼 적당히 나눠 가질걸. 그러나 이 또한 소용 없다. 어떤 선택을 했더라도 결과는 별로 달라지진 않았을 테니까. 코엔 형제가 바라보는 세상은 그러하다. 

커다란 산소통을 들고 다니다가 사람 머리에 공기 구멍을 내서 죽이는 안톤 쉬거. 그도 돈가방을 쫓긴 하지만 돈을 원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죽이기로 정한 사람을 꼭 죽이는 게 더 중요하다. 왜?  어차피 죽거나 죽이는 것 말고는 확실한 게 없으니까. 그런데 돈가방은 어디로 간 걸까.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그런 생각이 들 만도 한데, 이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그 느리고 무시무시한 편집감에 취해 아무 생각도 못하게 된다. 

재미 있는 이야기 하나 더. 폴 토머스 앤더슨이 [데어 윌 비 블러드]를 찍으러 텍사스에 갔다가 아침에 여관에서 나오는데 마침 코엔 형제가 지나가고 있었다고 한다. 여긴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를 찍는 중이라고 했다나. 그 넓은 텍사스에서 그런 대가들끼리 그렇게 우연히 만나다니 참 신기한 일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보다 더 신기한 일은 그 해에 [데어 윌 비 블러드], [주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같은 걸작들이 다 개봉을 했다는 사실이다. 우리 같은 관객들에게 그건 우연을 넘어 행운에 가까운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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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 전쯤인가, 저녁 시간에 집에서 만난 아내가 요즘 무슨 특별한 일은 없었느냐고 인사치레로 묻길래 별 일 없었다고 하다가 마침 그날 낮 수영장에서 있었던 '조금 특별한 일'이 생각나서 잠깐 그 얘기를 해주었다.

그날 몸이 찌뿌듯해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수영장에 잠깐 갔었는데 탈의실에서 옷을 다 벗고 샤워실로 들어갔더니 파우치 안에 수영복이 없는 것이었다. 이럴 수가. 수영모자나 안경은 전에도 잃어버린 적이 있지만 수영복을 잃어버린 건 처음이었다. 할 수 없이 옷을 다 입고 밖으로 나와 카운터에서 가서 여직원에게 혹시 습득 신고가 들어온 수영복이 있는지 물었더니 없단다. 맞은편에 있는 매점으로 가서 주인 아줌마에게 새 수영복을 달라고 했다. 처음 갔을 때 내게 수영복을 무척 비싸게 팔았던 아줌마였다. 수영복을 분실했다고 했더니 아줌마가 수영복 잃어버린 게 무척 잘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환하게 웃으며 새 수영복을 내주었다. 이번에도 비싸게 팔면 뭔가 항의를 하려고 했는데 어느새 눈치를 챘는지 좀 저렴한 제품을 권했다. 새 수영복을 받아들고 다시 탈의실로 가서 옷을 벗고 샤워를 했다.

수영복을 착용하고 수영장 안으로 들어가며 물안경을 썼더니 이번엔 물안경 끈이 툭 끊어지는 것이었다. 이럴 수가. 물안경 없이 수영을 하면 눈이 몹시 아프고 충혈도 되는데. 할 수 없이 다시 나와 옷을 입고 매점으로 갔다. 아줌마가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다며 반가워했다. 내가 물안경 줄이 끊어질 줄 어찌 알고 기다렸냐고 물으려고 하는데 아줌마가 내 카드를 디밀었다. 수영복을 사고 신용카드를 안 가져 가셨다는 것이었다. 나는 굳은 얼굴로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물안경도 하나 달라고 했다. 아줌마가 또 몹시 기뻐하는 환한 얼굴로 물안경을 권했다. 비싼지 아닌지 따져 볼 겨를도 없이 물안경을 들고 다시 탈의실로 가서 옷을 벗고 샤워를 한 뒤 수영복과 물안경을 착용하고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너무 흘러서 레인을 몇 번 왔다갔다 하지도 못하고 뛰쳐나와서 늦은 점심을 먹어야 했다...

내 얘기를 다 들은 아내가 한숨을 내쉬며 측은한 눈길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남편이 남들보다 어려운 인생을 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정도인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그래도 이런 얘기를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아내가 곁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도 없이 달밤에 대나무숲에 가서 혼자 이런 얘길 두런두런 주절이고 있으면 그 인생이 얼마나 서글프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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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감방 같은 데 들어가서 책만 읽었으면 하는 얘기를 하는 분들이 있죠. 호텔에 가서 밤새도록 책만 읽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실천에 옮긴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책 읽는 펜션이 생겼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아무튼 우리나라에도 이런 생각이 유행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책 읽는 사람도 많아지고 책도 많이 팔리겠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8071546011&code=970100




[김진우의 도쿄 리포트]24시 책 아파트·책 호텔…일본, 이색 독서 공간 ‘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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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누군가 생을 달리 하셨을 때 우리가 위로를 전하며 흔히 하는 표현입니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은 후 가는 곳을  명부(冥府)라고 하므로 명복(冥福)을 빈다는 말은 고인이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으로부터 심판을 잘 받고 복을 누리기를 바란다는 뜻이라 합니다. 참으로 상투적인 말이지요. 그러나 막상 이 표현 말고 다른 말로 같은 뜻을 전하기도 참 힘든 게 사실입니다. 얼마 전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이라는 책을 낸 김민정 시인이 오늘 올린 황현산 선생님의 부음 포스팅에 저도 명복을 빈다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전의 책 [밤이 선생이다]부터 황 선생을 곁에서 모시고 흠모했던 김 시인의 슬픔이 그 누구보다 클 것이라 짐작해 봅니다. 

[사소한 부탁] 중 <날카로운 근하신년>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근하신년이라는 네 글자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나 '해피 뉴 이어'에 밀려 이제는 거의 쓰이지 않는 것 같다는 구절로 시작하는 이 칼럼은 이런 상투적인 말도 처음에는 굉장히 날카로운 뜻을 가지고 있었으며 때로 누군가에게는 지대한 영향을 끼치던 언어였음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실제로  젊은시절 불운했던 어느 친구의 얘기를 들려줍니다.  고향에 노모를 두고 서울로 올라가던 그 친구는 고속버스 안에서 안내원이 해주는 "손님 여러분의 행운과 가정의 평화를 빈다"는 인삿말을 그날따라 유심히 들었다고 합니다. 의례적인 인사가 문득 가슴을 파고 든 것이지요. 그리고 그 길로 월부 책 장사를 시작해 지금은 조그만 건물을 소유할 정도로 성공을 했다고 합니다. 그 친구는 그때 고속버스 안내원의 말을 귀담아 들은 덕분에 자신에게 행운이 찾아온 것이라고 믿고 있답니다. 

어쩌면 모든 상투적인 말이 다 비장한 말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늘 염원하면서도 내내 이루어지지 않았던 희망을 그 상투적인 말이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고 끌어안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말이 상투적인 말이 되도록 놓아둔 것은 늘 보던 것 외에 다른 것을 보려 하지 않는, 다른 것을 볼까봐 오히려 겁을 먹는 우리들의 나태함일 것이 분명하다. 말은 제 힘을 다해 우리를 응원하는데, 우리가 먼저 포기해버린 탓일 것이 분명하다. 상투적인 말들도 처음에는 그 날카로운 힘이 우리의 오장에 파고들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말이 나를 넘어뜨리고 내 안일을 뒤흔들 것이 두려워 우리가 철갑을 입을 때 말도 상투성의 철갑을 입기 시작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시인들이 말의 껍질을 두들겨 그 안에서 비장한 핵심을 뽑아내려고 사시사철 애쓰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상투적인 말들이 갖는 의미를 헤아리다가 '말의 껍질을 두들겨 그 안에서 비장한 핵심을 뽑아내려고 사시사철 애쓰고 있는' 시인들에게로까지 생각의 가지가 뻗어나가는 황현산 선생의 따뜻한 사유의 힘이 그립습니다. 그리하여 저도 할 수 없이 상투적인 말을 하나 더 보태겠습니다. 황현산 선생님, 부디 안녕히 가십시오. 오늘 저희는 또 하나의 반짝이는 별을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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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책은 '독하다 토요일'에 어울리지 않는 작품일 수도 있겠다, 는 생각을 약간 했습니다. 그러면서 또 한 편으로는 '독하다 토요일'이 시작된 이래로 가장 흥미진진한 장편소설을 선정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김언수의 [뜨거운 피]는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1990년대 노태우 정부 시절 부산 바닥에서 활동하던 건달 희수의 얘기. 대학로 책책에서 열린 '독하다 토요일' 네 번째 모임은 이 책을 읽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사실은 지난 모임 직후 바로 후기를 써서 올렸어야 했는데 제가 게으름을 피우는 바람에 계속 미루다가 이제라도 써야지 하고 수첩을 뒤적이고 있습니다)  

그날 모임엔 오랜만에 참석한 손영연 씨, 그리고 윤혜자 씨, 김하늬 씨, 임기홍 씨, 서동현 씨, 임재섭 씨 등이 왔습니다. 재미있긴 하지만 소설이 워낙 두껍다 보니 미처 다 읽지 못하고 온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두 시부터 세 시 넘어서까지 묵묵히 책을 마저 읽는 분위기였습니다. 느와르 영화 같은 소설이라 여자분들보다는 남성들이 더 열광하는 눈치였습니다.  임기홍 씨는 학교 선생님이라 정말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비참한 상황에서 사는 학생들을 대할  때가 많은데 막상 그 어떤 것도 해줄 수가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많이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세상이 참 지저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죠.  

제가 소설을 읽고 건진 교훈 중 하나가 '더러운 걸 참아야 싸움에서 이긴다'라고 했더니 윤혜자 씨가 자기는 평소에 그런 걸 잘 못해서 안 되는 모양이라고 하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임재섭 씨는 얼마 전 일을 지지부진하게 만들었던 실제 인물 얘기를 하며 그때 후배가 했던 말, '형, 비즈니스는 그게 **전자 안이라고 해도 다 개새끼에요!'를 기억했습니다. 신사적이고 점잖은 사람은 꿈속에서나 존재하는 법인가 봅니다.  

그러자 김하늬 씨가 얼마 전 직업여성이 쓴 책을 읽었는데 그게 소설에 나오는 인숙과 비슷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불행의 모습은 어딘가 비슷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다가 영화 [변산] 얘기가 나와 전라도 사투리 애기를 하다가 잠깐 각자 알고 있는 충청도 사투리에 대한 유머를 털기도 했습니다('너만 안 지치면 되어야~', '출튜?' 등등). 

저는 어쩌면 이 소설이 '이야기의 원형'에 충실한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부영화처럼 왕년에 잘 나갔지만 지금은 쇠락한 주인공이 등장한다든지 탁구 치듯 재기발랄한 대사들을 주고받는 건달들이 나온다든지 하는 모양새가 그랬습니다. 윤혜자 씨는 일단 자기 취향이 아닌 소설을 읽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하면서도 이런 기회가 아니었다면 언제 자기가 이런 소설을 읽어보겠냐며 '페이지 터너'스러운 이 소설의 흡입력에 감탄했고 만약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게 되면 희수 역을 누가 하면 좋을까를 상상해 보았다고도 했습니다(일단 희수 역은 황정민). 

손영연 씨는 요즘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실화는 감정이입이 잘 안 되는 편인데 오히려 이 작품은 자신이 사는 세상과는 너무 다른 얘기이기도 하고 완전한 픽션이라 더 재미있게 읽혔다고 했습니다.  물론 앞부분의 길고 오밀조밀한 설정은 좀 버거웠다고 했습니다. 감하늬 씨도 앞부분을 너무 깔아놓는 게 지겹고 힘들었다며 그런 점이 이 소설의 '진입장벽'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요즘 소설들은 그런 설정 없이 막 치고 들어오는 느낌이라는 것이죠. 그러면서도 친구들과 글 쓰는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쓰는 도중에 심각해지고 그렇게 쓴 걸 나중에 읽다보면  '삶도 힘든데 이런 걸 왜 읽어야 해?'라는 자괴감에 빠진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같은 고전은 예전 작품인데도 오히려 처음부터 그냥 막 치고 들어오는 느낌이라 신기하다고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주인공 희수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김하늬 씨는 빨래공장 관련 에피소드에서 정배와 나누는 대사들과 그 처리 방법 등에 대해 얘기하면서, 사람들이 바라는 이미지 대로 살아가는 희수의 캐릭터가 다지이 오사무의 [인간실격]과 겹치기도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윤혜자 씨는 도대체 작가가 이 이야기들의 취재를 어떻게 했을까 궁금해 했습니다. 손연영 씨는 90년대 장현수 감독의 영화 [게임의 법칙]이 생각난다고 했습니다. 

서동현 씨도 건달들 얘기를 글로 설명하려다 보니 앞부분이 좀 길어진 것 같다고 하면서도 여러가지 한국 느와르 영화들이 생각나는 이야기라고 했습니다([비열한 거리], [해바라기], [넘버쓰리] 등등). 살면서는 결코 만나기 힘든 인물들이지만 영화나 소설에서는 매력적인 캐릭터들 말입니다. 매번 모임 때마다 질문을 하는 김하늬 씨가 이번에도 사건을 제안하는 친구 양동과 용강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했는데 너무 시간이 지나서 질문 내용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제가 메모를 띄엄띄엄 한 결과겠지요. 죄송합니다. 

저는 [형사 매드독]의 제임스 벨루시나 [분노의 주먹]의 로버트 드 니로 등 보스들이 나중에 나이가 들어 클럽에서 스탠딩 코미디를 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깡패의 미덕은 주먹만큼이나 '구라'에 있다고 말했더니 윤혜자 씨도 '칼로 죽이든 말로 죽이든 상대를 제압해야 하는 게 그 세계'라고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희수 역에 박호산을 쓰면 어떨까 애기를 하는 바람에 다시 장진영, 장신영, 전도연 등 일급 배우들이 인숙 역으로 다시 한 번 물망에 오르기도 했습니다(어차피 돈 안 드는 캐스팅이라 생사여부도 상관이 없는 게 특징). 

임재섭 씨는 '여기서 뒷부분 얘기 하면 안 되냐?'며 스포일러로서의 욕망을 토로했지만 아직 끝까 안 읽은 사람들이 많아서 뜻을 이루진 못했습니다. 이  소설은 뒷부분에 몇번이나 뒤집어지는 '반전'이 읽는 맛을 더해주는 바람에 한 번 잡으면 밤을 새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임기홍 씨는 이 소설조차도 성장소설로 읽혔다고 토로했습니다. 나이 서른에도 마흔에도 쉬흔에도 사람은 자란다는 것이죠. 희수의 인생역정을 보면 확실히 그런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그러면서 '소맥'에 대한 멋진 비유를 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역시 죄송합니다). 

책에 대한 수다를 마치고 모두 일어나 을지로에 있는 '영락골뱅이'에 가서 골뱅이를 안주로 맥주를 마시며 '아무말 대잔치'를 이어갔습니다. 이차는 '태성골뱅이'였는데 역시 즐거운 자리였습니다. 다음엔 SF소설을 쓰는 배명훈의 소설집 [안녕, 인공존재!]인데 역시 제가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벌써 8월 11일이 기다려집니다. 모두들 무더위에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사족으로 제가 쓴 세 줄 평을 첨가합니다 : 

인생의 진리는 고매한 지위나 인격을 가진 사람들 틈에서 나오지 않는다. 시궁창에서 딩굴며 악에 받친 인간들끼리 목숨 걸고 싸우거나 한편이 될 때 기름기 쏙 빠진 금언들이 하나씩 튀어나온다. [뜨거운 피]가 그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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