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먼저 이 영화 [일일시호일]을본 아내는 '영화가 슬프지는 않지만 눈물이 날 수 있으니 주의하라'면서 손수건을 챙겨가라고 했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보는 내겐 눈물보다는 씁쓸한 미소와 엷은 한숨이 더 자주 나왔다. 아내가 어느 지점에서 눈물을 흘렸는지 거의 다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는 스무 살의 노리코는 무엇 하나 특별하지도 않고 잘 풀리는 인생도 아니다. 사실 그 나이 때는 대부분이 다 그렇지만 노리코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같이 다도 수업을 듣는 사촌동생 미치코만 해도 취업이든 결혼이든 뭔가 적극적이고 매번 자기보다 앞서 나가는 것만 같은데 그녀는 맨날 제자리 걸음 같다. 그렇다고 매주 가는 다도에 엄청난 애착이나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학창 시절은 쏜살 같이 지나가 버리고 인생은 무엇 하나 깔끔하게 떨어지는 게 없다. 글을 쓰며 살고 싶지만 출판사 취직 시험에 떨어져 프리랜스 작가가 되어야 했고 결혼을 앞둔 남자가 배신한 것을 두 달 전에 알아 파혼을 해야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다도 수업은 꼬박꼬박 참석하는 노리코. 다도를 가르쳐주는 다케다 선생은 계절마다 바뀌는 거실 족자의 글씨들을 읽어주며 그런 노리코의 마음을 조용히 다독여준다. '매일매일이 좋은 날'이라는 뜻의 '日是好日'이 무슨 뜻일까 생각하며 다도를 시작했던 노리코는 여러가지 사건들을 겪으며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봤던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이라는 영화가 왜 좋은 작품인지 비로소 알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지만 그때는 이미 고마운 아빠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후였다. 

다도는 내용보다 형식이 먼저라는데 난  과연 인생의 내용과 형식 중 어느 것을 선택하려고 이러는 것일까. 어느덧 다도를 시작한지 20년이 넘은 노리코는 생각한다. 옛날 사람들이 가장 추운 때를 입춘으로 정한 건 이제 멀지 않아 봄이 온다는 마음을 가지고 싶기 때문 아닐까. 누구는 좀 일찍 도착하고 누구는 조금 늦게 갈 수도 있는 게 인생 아닐까. 다케다 선생도 말한다. 같이 차를 마셔도 다시 이렇게 똑같이 마실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임해주세요. 

그렇다. 자책할 것도 없고 조급해할 것도 없다. 지금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비 오는 날에는 빗소리를 듣고 눈 오는 날엔 내리는 눈을 바라본다. 여름에는 찌는 듯한 삼복더위를, 겨울에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다도는 그런 삶의 방식을 어려운 이론 없이 '몸으로 익힐 때까지 반복해서' 가르쳐 준다. 그래서 매일매일이 힘든 날이지만 동시에 매일매일이 좋은 날이기도 한 것이다. 비록 느리고 고단해도 지금처럼 날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고마워하고 또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만 있다면 인생은 그럭저럭 살 만하지 않겠는가. 

키키 키린 할머니는 [걸어도 걸어도]나 [만비키 가족] 같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에서부터 워낙 좋아했지만 유작인 이번 영화에서 늘 다도 교실 안에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은 한 장면 한 장면이 욕심 없는 할머니의 유언을 듣는 것만 같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스님의 법문이나 랍비 또는 신부님의 고언을 듣는 것처럼 매번 지혜롭고 다정했다. 

여러 번 우려낸 찻물처럼 따뜻하고 정갈한 영화를 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철 안에서 돌아가신 키키 할머니가 내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힘들지요? 괜찮아요. 스님들이 좋은 일에나 나쁜 일에나 '나무관세음보살'을 외우는 것처럼 여러분도 이제 '매일매일이 좋은 날'이라고 외워보세요. 그럼 좀 나아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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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회사를 다니는 내가 작년에 '2018평창동계올림픽' 홍보영상을 만들 때만 해도 영상의 마지막엔 '세계인이여, 평창으로 오라. 대한민국은 안전한 곳이다'라는 식의 메시지를 넣어야 했다. 당시엔 북한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말폭탄을 쏘아올릴 때였고 미국도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심'이 바닥난 듯 보이던 일촉즉발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실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도 낙관하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롤러코스터를 타듯 변화를 거듭하던 한반도 문제는 작년 한 해만도 전격적인 남북영수회담과 북미영수회담이 줄지어 열리는 등 '상전벽해'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일단 부시와 오바마를 거쳐 북한에 가장 적대적이었던 트럼프 대통령이 복핵 문제 해결의 주역으로 떠오른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 보수지의 사주를 지냈던 홍석현이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기 위한 고민으로 책 [한반도 평화 오디세이]를 낸 것도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보니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면서부터 남북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보수지의 회장을 지낸 저자가 가지고 있는 진보적인 대북관이다. 그는 지금 한반도에는 통일보다 평화가 더 필요하다고 역설하면서 우리가 할 일은 북한의 개혁개방과 경제발전을 돕는 일이라고 한다. (심지어 통일부 명칭도 '남북교류부'로 바꿔보면 어떨까 하는 얘기까지 한다). 지난 보수정권 때였다면 '종북발언'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내용들이다.

책이 쉽게 술술 읽힌다. 홍석현 이사장이 가지고 있는 한반도에 대한 지식과 견해를 스무 고개 넘듯 하나하나 펼쳐나가기 때문이다. 하루 만에 휘리릭 다 읽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급변하는 한반도 상황에 대입해봐도 큰 무리가 없다. 이는 그가 언론사를 경영하고 다년 간 국제활동을 해서 국제정세 파악에 능한 점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현상이 아니라 본질을 짚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꺼림직하다면 홍석현이라는 이름을 가리고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중대 현안을 인터넷 기사로 읽는 것과 책으로 읽는 것은 그 느낌이 다르다. 더구나 대표적 보수주의자가 내놓은 진보적 주장을 읽는 짜릿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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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에 명동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영화 [그린북]을 관람했다. 1960년대 초 피아노 천재 연주자인 '닥터 돈 셜리'가 허풍 세고 주막 센 이탈리아계 백인 '떠벌이' 토니를 운전기사 겸 로드 매니저로 고용해 미국 남부를 돌아다니며 연주 여행을 하면서 티격태격하는 버디 무비다. 지적이고 자존심 강한 흑인과 하층민 백인이라는 듀오는 기존 흑백 관계의 클리셰를 역전시킨다는 점에서 작품의 큰 차별점이지만 그렇다고 메시지 자체가 전복적이거나 문제 의식을 던지는 수준이 그리 높진 않다. 돈 셜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는 데 비해 점점 셜리에게 교화되는 토니의 모습은 '정치적 올바름'에 따라 시나리오를 정교하게 짜맞춘 혐의조차 느껴진다(실제로 영화 개봉 후 돈 셜리의 가족들이 '거짓말로 가득 찬 영화'라고 비난했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읽었다). 탁월하고 유머러스한 연출과 시나리오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흑백 갈등의 역사와 그 해결책을 '선의'라는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찾는 건 너무 순진무구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과도 겹친다.  

다만 북미만 돌아도 충분히 존경받을 수 있는 실력과 명성을 갖춘 일급 흑인 연주자 셜리가 굳이 그린북(당시 남부를 여행하는 흑인들이 갈등없이 모텔이나 식당을 이용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정보를 편찬해 놓은 가이드북)을 들고 남부 구석구석을 고집스럽게 다니며 연주 여행을 감행하는 모습은 국회의원, 시장 선거 등에서 번번히 떨어지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던  '바보 노무현'을 떠올리게 했다. 가끔 이렇게 엉뚱한 지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곤 한다. 오늘밤엔 문득 그가 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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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

혜자 2019. 1. 19. 18:41


아내와 나는 TV를 보는 스타일과 시간대가 다르다. 아내는 아무 때나 TV를 켜도 처음 보는 드라마나 쇼의 내용을 금방 파악하고 적응하는 편이라면 나는 무슨 프로그램이든 처음부터 보지 않으면 잘 이해를 못하거나 흥미를 잘 느끼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불시에 TV를 켜고도 프로그램에 금방 빠져드는 아내가 신기했다. 결혼 전에 성수동에서 동거를 시작할 때는 거실 TV를 없애고 안방에서만 보았기 때문에 TV 시청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방안에서 아내가 TV를 보더라도 나는 밖에서 책을 읽거나 일을 하는 등 다른 짓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성북동으로 이사를 오면서 집 크기가 작아지자 집안에서 TV를 틀면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이 함께 봐야 했다. 

아내는 TV를 그리 좋아하는 편도 아니다. 다만 예전에 혼자 살 때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 너무 쓸쓸해서 들어오자마자 그냥 TV를 켜놓는 게 버릇이 되었다고 했다. 이른바 '백색소음'이 필요했던 것이다. 문제는 내가 그런 성향이 못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무심코 틀어놓은 TV에도 신경이 쓰여 다른 일을 하거나 잠을 자지 못했다. 하루는 늦게까지 일을 하다 들어왔는데 아내가 TV를 켜놓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다음날 일찍 일어나 회사에 나가야 해서 먼저 자겠다고 했고 아내는 TV를 좀 더 봐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러라고 대답했다. 

문제는 TV 내용이었다. 12시가 넘어 케이블TV에서 틀어주는 무슨 단막극 재방송이었는데 거기 출연한 남자 연기자 새끼가 처음부터 끝까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었다. 나는 방문이 없는 침실에 누워 어쩔 수 없이 그 드라마 내용을 고스란히 다 들어야 했다. 소개팅을 하러 나온 남녀가 카페에서 처음 인사를 나누는 상황이었다.  

남) 안녕하세요~~!! (엄청 소리를 지르며) 
여) 네, 안녕하세요.(다소곳하게) 

남) 반갑습니다~!!! 
여) 왜 이렇게 소리를 지르세요? 

남) 제가 방송국 조연출인데요~~! 
여) 그런데요? 
남) 오늘 녹화장에서 실수로 폭발이 일어났어요! 
여) ....
남) 그때 고막을 다쳤는지, 소리가 잘 안 들려서요!!!
여) 어머...그러세요?!!

이젠 여자까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미칠 노릇이었다. 드라마 내용 전개 상 소리를 지르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게 이 드라마의 웃음 포인트였으니까. 나는 한참을 참다가, 어이 없어 하다가, 헛웃음을 짓다가, 화를 내다가 결국 아내에게 어렵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여보, TV 좀 끄면 안 될까? 저 새끼 너무 소리를 지르네." 그러자 거실에서 뭔가 다른 것을 하던 아내가 고개를 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어, 끌게."  

알고보니 아내는 이미 그 드라마를 보지 않고 있었던 것이았다. 괜히 나만 혼자서 바보처럼 끙끙 앓았다. 입만 열면 커뮤케이션을 외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나지만 막상 이런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서로 솔직하게 말한는 게 중요하다. 아무리 부부 사이라도 사랑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다소 뻔한 교훈을 얻은 사건이었다. 나는 그날 밤 아내가 흔쾌히 TV를 꺼주는 바람에 숙면을 취할 수 있었고 다음날부터 열심히 일을 해서 지금처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음, 이건 아니구나. 비약이 너무 심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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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처음 열리는 '독하다 토요일' 모임이지만(시즌2로는 세 번째) 감기나 독감, 과중한 업무 등으로 인해 멤버들의 결석이 많은 날이었습니다. 윤혜자 씨는 간밤의 격한 음주와 그에 따른 숙취로 인해 도저히 모임에 참석하지 못할 컨디션이었고 서동현 씨도 독감이 심해서 집에 누워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정아름 씨는 요즘 회사의 과중한 업무 때문에 토요일 오전 내내 기절하듯이 자고 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손영연 씨도 집안에 어려운 사정이 있어서 계속 참석을 못하는 형편이었구요. 아무튼 저조한 출석율을 예상하며 제가 1시 40분쯤 '청춘여가여연구소'에 도착했을 때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정은빈 대표는 물론 다른 회원 아무도 도착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설상가상 저는 간밤에 금호동 '오남매곱창'이라는 술집에 스마트폰을 두고 왔는데 그 가게는 저녁에나 문을 열어서 아무런 커뮤니케이션 도구 없이 문 앞에 서 있어야 했던 상황이었구요.  노트북으로 카톡을 확인하고 싶어도 안으로 들어가 와이파이 번호를 알아내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스마트폰이라는 도구에 매여 사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1층에 있는 커피숍으로 가서 사정을 하고 전화기를 빌려 윤혜자 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습니다. 다시 10층으로 올라가 출입문에 메모되어 있는 정은빈 대표의 전번을 노트에 메모하고 1층 커피숍에 와서 또 전화기를 빌려 정 대표와 통화를 하고 나서야 출입문 비밀번호가 이미 카톡 메시지로 공유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스마트폰을 잃어버려서 카톡창을 볼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하고 비밀번호를 받아서 10층으로 올라오다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진주 씨를 만났습니다. 

간밤에 파티를 열어서 조금 지저분하거나 음식 냄새가 날 수 있다고 했지만 올라와 보니 얘기 들은 것보다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곧 정 대표의 친구라는 분이 올라오시더니 주섬주섬 청소를 해주셨습니다. 진주 씨와 저는 이십 분 정도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 뒤 테이블 위에 있던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습니다. 김하늬 씨와 김성희 씨, 임기홍 씨가 속속 도착해서 세 시 정도에는  다섯 명의 인원으로 조촐한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읽을 책은 구병모 작가의 [네 이웃의 식탁]이라는 장편이었습니다. 저는 작가의 전작인 [파과]를 재미있게 읽었고 또 세간의 평도 좋은 것 같아서 이 책을 추천했지만 결과적으로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윤혜자 씨도 같은 느낌이었는지 시즌1과 달리 책을 미리 읽어보지도 않고 도서목록에 올린 것은 주최자로서의 직무유기라며 저를 맹비난했습니다. 독하다 토요일 멤버들의 수준을 존중하라는 경고이기도 하죠. 

'꿈미래실험공동주택'이라는 곳에 입주해 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인 장편소설 [당신의 식탁]에 대해 제가 '공동생활과 공동육아의 어려움을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는 성공했지만 그 의도가 성공하는 바람에 오히려 더 안 좋은 소설이 된 케이스'라고 했더니 김하늬 씨도 '용두사미 같은 소설'이라는 말을 꺼냈습니다. 시작은 매우 흥미로운데 서로의 성격이 부딪히고 사건이 생기는 과정에서 남은 것은 육아와 불륜에 대한 앙상한 이야기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부의 주도 하에 공동주택에 들어가게 된다는 점에서는 어쩌면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와 비슷한데 노벨상을 받은 그 작품과 달리 이 소설은 그저 현상과 반동만을 다룬 피상적인 이야기로 끝나버렸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야기가 공동주택 담 밖으로 나가지 못한 것 같다'라고 아쉬워하면서 식탁이 들어가는 제목도 참 잘 지었는데 작품은 그렇제 못한 것 같다고 했고 김하늬 씨도 동의하면서 특히 마지막에 수미쌍관 식으로 보여준 에피소드는 작가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멋부림이 아닐까, 하는 제 대답에 편혜영의 [저녁의 구애]도 비슷한 플롯이 있는데 훨씬 세련되게 구현이 되었다며 역시 아쉬워했습니다. 

캐릭터들의 역할이 너무 정확하게 정해져 있어서 공감하기 힘들었다는 불만도 나왔습니다. 진주 씨는 시간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처럼 세세한 분석까지 해가며 읽진 못했는데 아무튼 다 읽고나니 뭔가 허무하고 답답한 느낌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구병모 작가가 어디선가 공동체 생활을 경험하고 쓴  책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제가 '그렇다면 공동주택생활이라는 게 육아든 삶이든 인간에게 좋은 대안이 되지 못한다, 라는 통찰이라도 나와야 하는데 이건 그게 아니라 '내가 어쩌다보니 재수 없는 애들을 떼로 만났어' 식의 개인적 경험담을 들려주는 수준으로 주저앉는 느낌이었다는 얘기를 했더니 임기홍 씨가 '똥통에 빠졌다고 한거죠'라고 거들어서 모두들 웃었습니다. 

김성희 씨는 새로운 부서로 발령이 나고 개인적으로도 부산한 일들이 많아서 책을 읽지 못하고 왔는데 오면서 앞부분을 조금 들춰보았다고 하면서 제목만으로는 우리가 비판하는 내요을 상상하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그만큼 제목을 잘 지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진주 씨가 결론이 너무 허무하다고 얘기하자 김하늬 씨는 작가들은 문제 제기만 잘 해도 그 의미가 있는데 이 작품은 문제 제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결책을 주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임기홍 씨는 이게 과연 소설인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어다고도 했습니다. [82년생 김지영]처럼 아예 르뽀 형식을 깆춘 작품도 아니면서 작가는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민낯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은데 읽다보면 소설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겠고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지경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주도한 공동주택사업이라는 게 처음엔 거창한 의도로 시작했는데 잘 안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벌려놓은 사업이므로 꾸역꾸역 그것을 지속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거기서 갈등이 나와 사건이 만들어진다든지 하는 게 올바른 작법인 것 같은데 이 소설은 그런 인과관계를 파고들지 않고 그냥 그 내부에서 각각의 캐릭터들이 개인적 사연만 밀고 나가는 느낌이라는 것이죠. 

좋은 소재를 놓고 이 정도밖에 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큰 작품이었습니다. 김하늬 씨는 김탁환 작가에게 들었던 '소설 특강'을 회상하며 사건이 일어나면 끝을 봐야지 도망가지 마라, 라는 얘기에 매우 공감을 했는데 이 소설은 그런 사건들을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후일담 식으로 처리한 것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중요한 지적이었습니다. 김성희 씨는 시간이 없어서 앞부분에 나오는 효내 얘기만 좀 읽었는데 예전에 읽은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 같은 경우도 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사는 이야기였지만 굉장히 인간미 있었는데 여기 모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너무 어렵다는 얘기도 했는데 저도 동감이었습니다. 재강, 단희, 여산, 교원, 상낙, 효내, 은오, 요진 등의 이름이 하나같이 세련되어서 누가 누군지 구분이 안 갈 지경이었으니까요. 

아무튼 너무 비난 일색이라서 지금쯤 작가의 귀가 꽤 간지럽겠다, 라는 얘기까지 하면서도 캐릭터에 대한 불만이 또 터져나왔습니다. 그러다가 작가가 너무 착해서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색다른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뭔가 일을 제대로 해내려면 좀 독하고 못된 구석이 있어야 하고 특히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는 얘기를 제가 꺼냈더니 그게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서  이병헌, 홍상수, 잭 니콜슨 등 자기 분야에서는 눈부신 업적을 이뤘지만 개인생활에서는 '악동'으로 소문난 캐릭터들에 대한 얘기가 가십처럼 흘러나와 한참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제목은 참 좋은데 참 아쉬워, 라고 말하는 김하늬 씨와 차라리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처럼 한 사람 한 사람 연작소설로 썼으면 더 나았을 것을, 이라 말하는 김성희 씨의 대안 제시가 이어졌고 제가 작가는 좀 못된 구석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의 연장선으로 예전에 광고대행사 다닐 때 술자리에서 늘 동료들과 늘 하던 얘기인 '같이 일하고 싶은 놈은 바보와 개새끼 중 누구를 고르겠냐?' 를 가지고 또 한참 수다를 떨었습니다. 배가 산으로 가서 급기야 제가 예전에 조폭 출신의 건설회사 대표와 회의 끝내고 점심 먹으러 갔다가 그 대표가 "아무거나 자유롭게 시켜요. 여긴 짬뽕을 잘 하지만. 난 짱뽕..."이라고 말씀하셔서 졸지에 여덟 명이 짬뽕 여덟 그릇 먹고 나온 이야기까지 하다가 허둥지둥 모임을 끝냈습니다. 

이날은 뒷풀이 모임조차 참여가 저조해서 다른 분들은 가고 김성희 씨, 진주 씨,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이서 정동길 따라가다 있는 '장수회관'에 가서 국수전골에 소맥, 볶음밥까지 맛있게 먹고 마신 뒤 헤어졌습니다. 아마 읽은 책에 대해 비판적으로 얘기한 첫 번째 모임이 아니었나 합니다. 이런 날도 있는 거겠죠 뭐. 다음달에 읽을 책은 황석영이 [손님]입니다. 개인적으로 [무기의 그늘]과 함께 황석영의 역작이라고 생각하는 장편소설입니다. 다음엔 또 어떤 독후감들이 등장할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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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는 왕이 가장 사랑하는 큰아들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애지중지했고 그가 원하는 것은 뭐든 다 해주었으며, 그를 위해 성대한 잔치와 만찬을 베풀곤 했다. 어느날 만찬에서 왕자는 아버지 곁에 선 검은 수염에 얼굴이 어두운 남자를 보았고, 그가 저승사자라는 것을 곧 알아보았다. 둘은 눈이 마주쳤고 서로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왕자는 만찬이 끝난 뒤 아버지에게 초대객들 중에 저승사자가 있었다고 말하며 그의 눈길로 보아 자신의 목숨을 가져갈 작정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깜짝 놀라 말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곧장 이란의 타브리즈 궁전으로 가서 숨어 있거라. 타브리즈 왕은 나와 철친한 사이이니 아무에게도 너를 넘겨주지 않을 게다." 그리고는 아들을 곧장 이란으로 보냈다. 

왕은 다시 만찬을 준비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또다시 얼굴이 어두운 그 저승사자를 초대했다. 저승사자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전하, 오늘 저녁엔 아드님이 안 보이네요." 왕이 말했다. "내 아들은 새파랗게 젊은 아이요. 그 애는 아주 오래 살아야 하오. 그런데 왜 내 아들 얘기를 묻는 거요?" 그러자 저승사자가 말했다. "사흘 전 신께서 제게 명하시기를, 이란의 타브리즈 궁전으로 들어가 왕자의 목숨을 앗아오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제 아드님이 이스탄불인 이곳에 있길래 놀라긴 했지만 한편으론 무척 기뻤습니다. 아드님도 내가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는 것을 보았답니다." 저승사자는 이렇게 말한 후 곧장 궁전을 떠났다.  

터키에서 우물을 파러 다니는 사람 마하무트 우스타는 이 소설 [빨강머리 여인]의 주인공인 '나'에게 전날 들었던'오이디프스 이야기'를 듣고 자기도 비슷한 얘기를 알고 있다며 위와 같은 사연을 들려준다. 불행한 운명을 타고 났다는 예언 때문에  강가에 버려졌다가 결국 예언대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한 뒤 두 눈을 찌르고 광야를 헤메다 죽은 오이디프스. 그리고 위험에 빠진 아들을 살리려고 친구의 궁으로 보냈다가 오히려 그 일로 인해 아들을 죽게 만든 비운의 왕.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고야 만다. 다만 인간들은 그 일이 벌어진 뒤에야 그걸 깨닫는 거고. 나는 늘 내 운명의 한복판에 서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른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오늘은 금요일이니 내가 좋아하는 말을 하나 소개하기로 한다.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 먹고 마시고 조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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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두 번 가는 아침 수영 클래스를 마치고 나와 간단하게 요기를 하려고 늘 가던 김밥천국을 향해 걷고 있었다. 날씨는 여전히 추웠고 길은 황량했다. 광림교회 앞쯤에서 어떤 오십 대 아주머니가 지나가던 여자에게 뭔가를 묻다가 거절을 당한 뒤 웃으며 인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아주머니는 곧장 내게로 다가와서 간절한 눈빛으로 휴대폰을 내밀었다. 혹시 특뿔식당이라고 아시나요? 휴대폰을 내려다 보니 문자메시지를 찍은 사진이 보였고 그 안엔 '압구정역5번출구 나와 직진 우리은행 끼고 돌아 계속 직진 투뿔등심'이라는 내용이 잔뜩 틀린 맞춤법으로 적혀 있었다. 특뿔식당이 아니라 투뿔등심이네요, 아주머니. 내가 그렇게 정정하자 "맞아요. 투뿔등심!"이라고 하는 아주머니의 얼굴이 초초함으로 가득차 있었다. 흔히 '조선족'이라 불리던 재중동포인 것 같았다. 

"오늘 처음 일하러 가시는 거예요?" 
"네." 
"근데 우리은행 끼고 직진하면 여긴데, 투뿔등심이 안 보이네요." 
"아이고, 어떡하나. 열 시까지 가기로 했는데... 죄송해요, 바쁘신데. " 
"아니에요. 벌써 열 시 오 분이네요. 빨리 식당을 찾아야죠." 

내 휴대폰 지도서비스로 투뿔등심을 검색해 보니 제일 가까운 게 가로수길점이고 그 다음이 논현2호점이다. 둘 다 이 근처는 아니다. 아주머니 휴대폰을 다시 보여달라고 했더니 설상가상 배터리가 다 돼서 꺼졌단다. 보조배터리를 연결했는데 전원이 들어오려면 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게 추우면 더 잘 안 들어와요." 

아주머니는 애꿎은 휴대폰을 손바닥으로 탁탁 치면서 말했다. 검은색 휴대폰엔 애플 마크가 붙어 있었지만 왠지 가짜처럼 보였다. 나는 아주머니와 함께 근처 부동산으로 향했다. 마침 부동산 아저씨는 창에 달린 블라인드를 떼어 재설치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나는 바쁘신데 미안하다고 사정 얘기를 하고 근처에 투뿔등심이 있느냐고 물었다. 옆에서 아저씨를 돕던 아주머니가 이 근처에는 투뿔등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때 재중동포 아주머니의 휴대폰 전원이 다시 들어왔다. 문자메시지 안에 있는 010으로 시작하는 전화번호가 보였다. 내가 이 번호로 전화를 해서 물어보라고 했더니 자기 전화로는 통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까 본 휴대폰 메시지도 사진으로 찍어 놓은 걸 보면 이건 뭔가 아주머니 소유가 아닌 일종의 대포폰인 것 같은데, 아무튼 안쓰럽고 답답한 상황이었다. 나는 아주머니의 사진을 다시 켜서 그 번호를 찍은 뒤 통화를 시도했다. 

"여보세요, 거기가 투뿔등심인가요?" 
"네." 
"제가 지금 거기 찾아가시는 어떤 아주머니를 길에서 만났는데요." 
"그러세요?" 
"문자메시지엔 압구정역5번출구로 나와서 우리은행 돌아 직진하면 투뿔등심이 나온다고 돼 있는데..."
"거기 아닌데." 
"네. 뭔가 잘못된 것 같긴 해요." 

그때 복덕방 아주머니가 뛰어나오셨다. 자기가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투뿔등심은 가로수길에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알아서 가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고 다시 복덕방 안으로 들어갔다. 유리가 덮인 테이블 위엔 설치하려다가 만 블라인드가 심란하게 놓여 있었다. 얼른 재중동포 아주머니에게 약도를 그려주자며 내가 종이를 찾았더니 아주머니가 빈 로또복권 용지를 들고 왔다. 거기에 그리긴 힘들 것 같아서 내 가방 안에 있는 다이어리를 꺼내 속지 한 장을 북 찢어냈다. 아주머니가 가로수길로 가는 길을 설명하며 종이 위에 도형을 그리기 시작하자 옆에 있던 아저씨가 언제 한가하게 그걸 그리고 앉아있느냐면서 테이블 위의 블라인드를 한켠으로 치우더니 유리 밑에 깔린 커다란 지역지도를 가리켰다. 그걸 카메라로 찍어서 찾아가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맞아요, 맞아. 다들 박수를 치며 그게 좋겠다고 말했다. 

재중동포 아주머니의 휴대폰 중 유일하게(?) 사용 가능한 카메라로 투뿔등심 가로수길점까지 가는 약도를 촬영했다. 그리고 복덕방 아주머니가 밖으로 따라나와 손으로 길을 가리키며 저쪽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쭉 가서 두 블럭 지나 가로수길을 건너서...하며 목이 터져라 열심히 설명을 해줬다. 재중동포 아주머니는 연신 고맙다고 고개를 숙여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재중동포 아주머니는 가로수길을 향해 바쁜 걸음을 옮겼고 복덕방 아저씨 아주머니 커플은 다시 들어가 블라인드를 마저 설치하기 시작했으며 나는 김밥천국으로 달려가 이천 원짜리 원조김밥을 한 줄 사서 사무실로 왔다. 2019년 1월 두 번째 화요일 아침에 벌어졌던 '압구정동 오지라퍼 커넥션'의 결말은 이렇게 싱거웠다.  그나저나 아주머니는 그 식당 잘 찾아 가셨을까. 오늘이 첫 날이라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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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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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길위의 생각들 2019. 1. 6. 13:22


서양 사람들이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도 쉽게 미소를 짓고 악수를 나누는 것은 누구와 마주치더라도 내가 당신을 해칠 의도가 없고 내 손엔 아무런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공생욕구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지금은 이 인사법이 서양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상식임은 물론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밴드 등 가상의 세계에 들어가서 누군가의 게시물에 '좋아요'로 그 선의를 표시하고 산다. 페이스북을 처음 만들 때 주커버그가 '싫어요'도 같이 만들지 않는 바람에 우리는 좋아요 하나만 가지고 감정을 표해야 하는 약간 복잡한 상황에 직면했다. 그래서 오늘도 할 수 없이 '좋아요'를 누르고 다닌다. 이렇게 멋진 사진을 올렸는데 좋아요를 안 누르면 안 되지. 저렇게 좋은 글을 써서 올렸는데 좋아요를 안 누르면 섭섭해 할거야. 그렇게 얼굴이 예쁜데 좋아요를 안 누르면 질투해서 건너뛴다고 생각할거야....졸지에 좋아요를 안 누르면 그것은 곧 '싫어요'라는 표시로 둔갑한다. 괜히 좋아요 한 번 안 눌러서 내가 자기를 싫어한다는 오해를 받으면 손해니까 누르자. 뭐, 돈 드는 일도 아닌데.  

그러다 보니 오늘도 페이스북에 들어가서 내 게시물의 좋아요 숫자를 확인한 뒤 그 좋아요를 눌러 준 사람들의 담벼락에 들어가서 인사 삼아 그의 게시물에도 좋아요 몇 개를 누르고 나온다.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확인차 밴드에 들어갔다가 내가 전부터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놈의 게시물에조차 좋아요를 누르려다가 멈칫한 나는 순간 아연실색한다. 아, 이렇게 살아도 되는걸까. 늘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입에 발린 소리나 하면서 가면처럼 사는 인생이라니. 어제 대학 써클 모임에서 선배 형에게 내가 의외로 사회 생활을 잘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예전부터 나약하고 빈 구석이 많은 나를 잘 아는 형이 전혀 비꼬는 의미 없이 해준 칭찬이었지만 왠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내가 재미 없게 느껴졌다. 그리고 오늘 숙취에 시달리면서 과연 잘 산다는 건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 보았다. 물론 그런 엄청난 인문학적 질문에 쉽게 답이 나올 리가 없다. 다만 바라건대 올해는 예전보다 좋아요를 좀 덜 누르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할 땐 싫어요! 라고 소리도 지르며 살았으면 좋겠다. 어느새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취향이 아닌 권력의 문제가 되고 말았으니까. 성공한 대기업의 회장님이나 CEO들 중엔 성격이 급한 사람들이 유독 많은데 생각해 보면 그건 그가 급한 성격 그대로 살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위치에 있지 못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위치보다는 마음이 더 문제다. 내가 좋아요를 누른 횟수 만큼은 아니더라도 가끔은 싫어요를 말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살자 결심해 본다. 그러니 아내여, 친구들이여, 부디 새해부터 나와 함께 단체로 삐뚤어져 보지 않겠는가. 착하고 올바르게만 살면 재미 없으니까. 그리고 난 그대들이 그렇게 착해빠지거나 올바른 성향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으니까.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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