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i.co.kr/arti/culture/entertainment/873589.html


'개판 오 분 전'이라는 말 아시죠? 그런데 어원이 개와는 전혀 상관 없다는 것도 아시나요? 개판(開鈑), 즉 판을 연다는 뜻인데, 한국전쟁 당시 무료급식소에서 피난민에게 끓여주던 꿀꿀이죽 때문에 생긴 표현입니다. 미군부대에서 나온 식재료로 끓여낸 죽을 퍼주기 전에 "개판 오 분 전이오~!"라고 외치면 배고픈 사람들이 구름 같이 몰려들어 줄을 섰다는 것이지요. 1950년대에 '깡패'라는 말도 처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영어 'GANG'과 우리 말 '패거리'가 합쳐져 깡패가 된 것입니다. 

저는 이런 것들을 모두 EBS의 다큐 드라마 [명동백작]에서 배웠습니다. 탤런트 정보석이 해설자로 나오던 특집 프로그램이었는데 연출자가 다름아닌 고석만이었습니다. 정치드라마 '제1공화국' 시리즈나 경제드라마 '공주갑부 김갑순' 같은 걸 만들던 그 왕년의 PD. 그리고 극본이 정하연이었죠. 젊었을 땐 무라카미 류나 쓸 법한 소설 '흔들릴 때마다 한 잔'으로 유명했지만 표절 시비에 휘말린 뒤 낙향했다가 나중에 사극 드라마의 거물로 우뚝 선 작가였습니다. 

최불암 어머니가 운영하던 명동의 술집 '은성'에서 다른 예술가들과 술을 마시던 박인환이 즉석에서 쓴 시 '세월이 가면'을 전혜린인가 황금심인가가 노래로 부르던 장면이 기억납니다. 생계를 위해 양계장 일을 하며 괴로워하던 시인 김수영이나 힘이 빠져 돌아다니던 화가 이중섭도 생각 나고요. 이중섭은 박호산이 출연했던 뮤지컬 [명동 로망스]가 더 강렬했습니다만. 아무튼 오늘 신문에서 [명동백작]에 대한 기사를 우연히 발견하고 반가워서 주절주절 몇 마디 써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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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감방 같은 데 들어가서 책만 읽었으면 하는 얘기를 하는 분들이 있죠. 호텔에 가서 밤새도록 책만 읽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실천에 옮긴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책 읽는 펜션이 생겼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아무튼 우리나라에도 이런 생각이 유행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책 읽는 사람도 많아지고 책도 많이 팔리겠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8071546011&code=970100




[김진우의 도쿄 리포트]24시 책 아파트·책 호텔…일본, 이색 독서 공간 ‘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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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서강대 김대건홀에서 열리는  '김아라 배우 아카데미'에 아내를 따라가 이명세 감독의 특강을 들었다. 이명세 감독은 오래 전부터 한 번 만나뵙고 싶었는데 드디어 오늘 강의를 통해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여러 예술 장르 중에서도 '영화는 정말 ET와 같은 존재다'라는 명제로 말문을 연 이명세 감독은 1895년 '열차의 도착'이라는 최초의 영화부터 시작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연기론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펼쳤다. 특히 연극 워크샵에 참여하는 배우들에게 영화 연기와 연극 연기의 차이에 대해 얘기하는 형식으로 진행된 강의는 이명세 감독이 가지고 있는 영화에 대한 풍부한 식견과 함께 실제 제작 현장에서 일어났던 많은 일화들을 들을 수 있는 소중한 자리였다. 

흔히들 알랑 드롱이 잘 생기긴 했지만 그를 명배우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뭔가 열연을 하지 않고도 잘 생긴 얼굴 덕분에 날로 먹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야말로 가만히 세둬 두기만 해도 그림이 된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굉장한 미덕이라고 이명세 감독은 말한다. 말하자면 이런 정도 분위기의 남자배우와 여자배우는 금새 사랑에 빠질 수 있지만 만약 송강호 같은 배우였다면 수 많은 작업과 과정이 있어야만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걸 관객들이 납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라는 매체의 특징은 바로 이런 것에서 시작된다. 연극과 달리 배우의 얼굴과 아우라를 밀착해 잡아내는 카메라와 촬영 이후에 벌어지는 '편집의 마술'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배우들에게 연기력이 필요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훨씬 더 정교하고 깊은 연기력이 필요하다. 다만 스타니스랍스키가 설파한 '메소드 연기'에만 너무 의존하다 보면 '오버'라는 페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연극과 달라 20 정도만 연기해도 200의 효과가 나올 수 있는 장르라고 한다. 그 예로 이 감독은 [겨울 나그네]라는 영화에서 이혜영이나 안성기보다 연기를 더 잘 한 배우는 다름 아닌 강석우였음을 상기시켰다. 그는 불필요한 오버를 하지 않음으로써 영화 속에서 말 그대로'민우'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명세 감독은 만나는 배우들마다 마이클 케인의 강연집인 [명배우의 연기수업]이라는 책을 추천한 얘기를 하며 그 책 안에 자신이 썼다는 추천사 얘기도 해줬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오명(Notorious)] 때의 일화다. 키스씬을 찍을 때 어떻게 하면 두 남녀의 사랑을 더 강렬하게 보일 수 있을까 궁리하던 히치콕 감독은 캐리 그랜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의 하체를 강제로 묶어놓고 촬영을 했다는 것이다.얼핏 생각하면 미친 짓처럼 느껴지지만 결과적으로 이 장면은 영화 사상 가장 애절한 키스신으로 남았다고 한다. 영화란 궁극적으로 '화면 속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다'라는 이명세 감독의 주장을 정확하게 뒷받침해주는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강의가 끝나고 함께 밖으로 나왔다가 자전거를 타고 온 이명세 감독과 함께 커피숍에 들러 잠깐 커피를 마셨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아내와 감독님이 지난 얘기를 나누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두 사람이 서로 알고 지내게 된 계기가 무슨 인터뷰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아내가 예전에 기자 생활을 했었으니까) 사실은 당시 아내가 '이명세 감독 후원회'를 사칭했던 사람에게 돈을 뜯길 위기에 처했다가 그걸 해결하는 과정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정말 어이 없는 계기로 친분을 텄던 두 사람은 뒤늦게 그걸 기억해 내고는 깔깔깔 웃었다. 

그날 들은 강의 얘기를 했고 우리가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는 배우들 얘기도 좀 했다. 연극은 물론 박정범 감독의 영화 [산다], 문소리 감독의 [여배우는 오늘도]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배우 이승연 얘기를 시작으로 뒤늦게 결혼한 뒤 성북동으로 이사해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박호산이나 김혜나 얘기도 하게 되었다. 한 동네 선후배라는 친분 덕분에 얼마 전 온에어 된 '화재안전' 공익광고에 박호산이 출연한 얘기를 했더니 그 광고를 당신이 만들었냐며 감독님이 반가워 하셨다. 이명세 감독은 무릎에 물이 차는 등 건강이 안 좋아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는데 덕분에 무릎도 낫고 담배도 끊었다고 했다. 요즘은 자전거로 돌아다니다가 예쁜 커피숍에서 커피 마시고 책 읽으며 다니는 게 새로운 낙이라고 했다. 새로운 작품은 거의 다 구상이 끝났는데 투자자가 잡히는대로 제작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M]이나 [형사:듀얼리스트] 등 우리가 좋아했던 감독님의 작품들을 거론하며 어서 새 작품이 극장에 걸렸으면 하는 마음을 전했다. 아내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감독님과 나는 뜨거운 아메리카노였고 나만 샷을 하나 추가해서 마셨는데 커피 맛이 좋았다. 다음에 또 만나자는 얘기를 하고 가볍게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자전거를 끌고 걸어가는 감독님의 뒷모습이 청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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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중석 작가가 예전에 전시하고 모아 놓았던 사진들을 스튜디오에서 다시 전시 판매한다고 해서 일요일 낮에 아내와 함께 구경을 갔다. 스튜디오 아래층에서 하우스웨딩 때문에 분주하길래 혹시 전시장을 잘못 찾은 건 아닌가 걱정을 하고 2층 문을 빼꼼히 열었더니 개그맨 이휘재 씨가 혼자 서 있다가 "전시회 여기서 하는 거 맞아요. 저도 방금 와서..."라고 얘기를 해주는 것이었다. 곧 오중석 작가가 와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사진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전에 스튜디오에 왔을 때 구경했던 사진들을 다시 보니 반가웠다. 오 작가가 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해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진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오 작가는 1940~50년대 누군가가 찍은 코닥 필름을 통째로 사서 모으는 게 취미인데 누가 언제 찍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깜깜이' 필름이라고 한다. 운이 좋으면 좋은 사진이 걸리고 아니면 꽝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윤태호 작가의 만화 [인천상륙작전]에도 비슷한 얘기가 있는데 거기선 해방 직후 일본 사람들이 남겨놓고 간 가방들을 '근 수로 달아' 사고 파는 사람들이 나온다. 똑같이 생긴 가방이라 값도 똑같고 속에 금덩이가 들어 있을지 옷가지가 들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채 오로지 운에 맡기는 것이었다. 오 작가도 그렇게 낡은 슬라이드 필름들을 무작위로 꺼내 한 장 한 장 인화해보는 과정에서 만나는 뜻밖의 수작들의 즐거움 때문에 이 필름들을 구입한 것이리라. 말하자면 일종의 '세렌디피티'인 것이다. 



그런 작품 중 관람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오 작가가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풀장 사진이란다. 1950년대 미국인지 영국인지 알 수 없는 지역에서 찍힌 사진인데 오 작가가 다시 컬러 작업을 한 것이다. 아무래도 인스타그램으로 한 번 보았던 사진이라 전시장에 온 사람들이 가장 반가워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나와 아내는 어딘가 사막을 향해 걸어가는 한 무리의 사람들 사진을 좋아한다. 역시 1950년대 정도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관광객들인지 아니면 어디 잠시 들렀다가 사막에 온 사람들인지 알 수 없는 사진이다. 모두 수평선처럼 펼쳐진 모래 언덕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유독 안경을 쓴 대머리 아저씨 혼자만 뒤를 돌아보는 게 인상적이다. 오 작가는 자신도 이 사진의 정보를 전혀 알 수 없는데 사진을 찍은 시점을 미루어 보건데 키가 크 사람이 찍었을 수도 있고 버스 위에서 찍은 것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어쩌면 두바이나 사우디 어디처럼 카메라 뒤쪽에 커다란 호텔이 서 있는 모습을 상상 보기도 한다고 했다. 

재미 있었다. 남자들은 모두 양복 바지와 셔츠 차림이고 여자들은 원피스를 예쁘게 차려 입었고 꼬마 여자애만 빨간 바지다. 뭔가 부유해 보이는 사람들인데 뿌연 사막을 배경으로 걸아가는 모습이 [환상특급]이나 [블랙 미러]의 한 장면처럼 낯설어 보이기도 한다. 내가 그 얘기를 했더니 오 작가도 가끔 저승 가는 사람들 사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며 웃었다. 오 작가는 모텔 간판이 있는 사진을 특히 좋아한다고 하는데 우연히 사막 사진과 구도가 비슷하다는 걸 발견하고 두 필름을 겹쳐 보았더니 아주 새로운 그림이 되었다고 하며 우리에게 직접 두 필름을 겹쳐서 보여주었다. 순간 사막에 있던 사람들이 모텔이 있는 거리로 들어오는 신기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아, 이런 재미와 열정 때문에 때로는 새벽까지도 혼자 컬러 작업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세렌디피티 말고도 오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들도 많았다. 자신은 상업 사진을 많이 찍기 때문에 전시를 할 때는 오히려 그렇지 않은 사진들만 올린다고도 했다. 아무래도 일을 위해 찍은 사진과 그런 목적 없이 그냥 찍은 사진은 작가에게도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명함이 있길래 꺼내보았더니 옆으로 펼쳐지게 되어 있었고 다 펼치자 뒷면에 작가가 찾은 또다른 풀장 사진이 들어 있었다. 우리집이 너무 작아서 걸어둘 수 있는 사진은 없고 오늘은 그냥 명함만 가져가서 벽에 붙여 놓겠다고 했더니 오 작가도 웃으며 그러라고 했다.

좋은 작가들은 일단 자신의 작업을 매우 좋아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중석 작가도 코닥 필름 얘기를 할 때 얼마나 눈이 반짝이는지 자신은 모를 것이다. 이러니 힘들어도 늘 재미 있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아닐까. 돈이 많거나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면 잘난 척만 들입다 하느라 별 재미가 없다. 진짜 즐거운 건 이런 사람을 만날 때인 것이다. 다음 전시회 때 또 만나자고 얘기하고 웃으며 스튜디오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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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778350.html 


생은 하나의 문을 닫으면 다른 문이 열린다. 매일 머리 아프게 걱정하며 사는 것보다는 정리하고 다시 시작하는 게 낫다. 자신이 싫어하는 상황에 본인을 둘 필요가 없다. 인생의 한 부분이 끝나버렸다고 해서 (전체가) 다 끝난 건 아니다. 나는 영화 몇 편이 될 정도의 재밌는 삶을 살았다. 그런 삶이 ‘좋은 인생’이다. 늘 재밌는 일이 생겨 인생이 불안하지 않다.


일 년 전 오늘 아내가 소개해줘 읽고 공유했던 요리사 스스무 요나구니의 인터뷰. 머리가 복잡했던 당시에 많은 용기와 위로를 받았는데 다시 읽어봐도 여전히 좋다. 좋은 위스키처럼 킵해 놓고 가끔 꺼내 음미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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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자를 너무나 사랑하던 한 남자가 그녀의 이름만으로 쓴 '노부코'라는 시를 좋아한다. 김세은 교수의 이 칼럼도 그렇다. 반복의 힘은 놀랍다. 한 번은 애틋함으로, 한 번은 단호함으로 두 사람 다 내 마음을 움직인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


mode=LSD&mid=sec&oid=028&aid=0002373739&sid1=001&lfrom=kak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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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이 복잡하고 집중이 안 될 때는 책장에서 아무 책이나 꺼내 펼쳐보는 습관이 있다. 세스 고딘의 [보랏빛 소가 온다2]를 펼쳤다. 전에 줄 쳐놓은 페이지들이 눈에 띈다. 그러나 내가 밑줄 친 곳엔 별 게 없다. 다른 페이지를 뒤적인다. 그러다가 230페이지에서 멈췄다. 

완전히 기대의 반대로 하기 

텍사스의 한 은행가로부터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자기네 은행이 경쟁사보다 더 많은 ATM 기계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선전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내 아이디어? ATM기의 20달러 지폐 칸에 100달러짜리 지폐를 몇 장 넣어두라고 했다. 많이는 말고, 아주 조금만. 
틀림없이 소문이 퍼질 것이다! 사람들의 기대를 깨고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을 함으로써(아아, 그러나 내 아이디어를 닮은 그 사람은 '챔피언 되기'에 관해 아는 것이 없었던 관계로 이 방법은 실현되지 못했다). 


왜 이 아이디어는 실현되지 못했을까? 터무니 없는 조언이라고 생각했겠지. 아이디어 실현 여부보다 더 아픈 건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세스 고딘처럼 재빨리 빛나는 아이디어를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보기에는 굉장히 위험하지만 사실은 절대적으로 안전한 유아용 장난감을 만들 수도 있다. 교회에 록밴드를 소개시키는 것은 어떨까? 시끄러운 물건을 소리 안 나게 내놓는다든가, 뚱뚱한 물건을 날씬한 물건으로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청구서를 보낼 때 막대사탕 하나를 같이 넣어 보내는 것도 괜찮겠지. 




세스 고딘은 끊임없이 생각한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이런 건 너무 정직하니 거꾸로 한 번 생각을 해볼까...? 지름길은 없다. 자꾸 새로운 생각을 해보는 사람만이 새로운 길을 찾는 법이다. 세스 고딘의 얘기에서 절망을 느낄 것인가, 희망을 느낄 것인가. 선택은 오로지 당신의 몫이다. 

(*위 글 중 '뚱뚱한 물건을 날씬한 물건으로'는 다이어트 코크 자판기 아이디어에서 이미 실현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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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61243.html



김훈이 쓰면 '추석 에세이'도 이렇게 다르다. 뭐 꼭 이 글이 다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 글엔 기자들의 의무감과 클리쉐가 만들어내는 한가위의 풍성함이나 가족애에 대한 기대따위는 없다. 서울이 고향인 김훈은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라는 향수 대신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경복궁으로 생각의 물꼬를 튼다. 임금이 도망가자 격분하여 경복궁을 불태웠던 백성들, 그리고 돌아와서 전소된 성터를 끼고 앉아 그냥 살았던 당시 지도층과 지식인들.

그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를 생각하던 김훈은 어린 시절 더러운 하천이 흐르던 자신의 동네를 회상한다. 박완서의 <그남자네 집>이 있던 바로 그 동네였고 박수근의 <빨래터>라는 그림보다 더 비참하고 고단했던 고향의 모습이다. 뼛속까지 리얼리스트인 그는 "나는 정지용의 시 ‘향수’에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을 읽을 때마다 내 고향의 저 더러운 하천을 생각한다."라고 쓴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의 눈은 1592년의 경복궁 방화, 2008년의 남대문 방화, 2009년의 용산참사로까지 이어져 머문다.


한가위라고 갑자기 고향이 아름다워지는 건 아니다. 명절이라고 냉랭하던 가족관계가 갑자기 살가워지는 게 아니듯이. 이래저래 난 명절이 싫다. 일년에 큰 명절이 두 번 있고 내 나이 이제 빼도박도 못하는 50세니 평생 백 번 가까이 명절을 싫어하면서 살아왔구나. 올 명절도 술이나 마시며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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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의사 히포크라테스의 명언 "Ars Lunga Vita Brevis"를 한국인들은 대부분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로 번역한다. 그런데 원래 라틴어로 'Ars'는 그냥 '일'을 뜻하기 때문에 제대로 번역하면 "일 하나 똑바로 배우려면 평생 해도 모자란다"이다. 이론이 전부라면 이런 말이 나올 리 없을 것이다. 창의적인 인재가 되는 것이란 실패와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아주 느린 과정이라는 것을 고대 그리스의 한 의사가 이미 경험했던 것이다. 


- 조승연의 <비즈니스 인문학> 중에서 



사무실에서 무심코 예전에 샀던 책을 들춰보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히포크라테스가 왜 의술이 아닌 예술에 대해 얘기했을까, 그리고 의사가 내뱉은 예술 얘기가 왜 이렇게 오래도록 후손에게 전해졌을까 한 번 의심해볼 만도 했었는데. 예전엔 'Art'가 그냥 아트가 아니었군요.  


성경에 나오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라는 구절도 번역자가 단어를 잘못 해석해서 생긴 말이라고 들은 기억이 나는데요. 우리 삶에 이런 게 또 얼마나 많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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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작가가 꿈이었다. 어머니는 의사가 되기를 원했지만 성적이 좋지 않았다. 간호대학에 들어간 후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국문과 친구들의 강의를 대신 듣기도 하고, 과제를 대신 써주기도 했다. 그러다 최초로 나를 눈여겨봐준 선생님을 만났다. 원래는 전남대 교수님이었는데 5.18 때 해직을 당하는 바람에 우리 학교에 출강하게 됐고, 두 학기 동안 '교양 국어'를 가르치셨다. 아마 중간고사 때였을 것이다. 우리는 시험지 대신 백지를 받았고, 멍한 심정으로 교수님이 칠판에 '얼굴'이라고 쓰는 걸 쳐다봤다. 그게 시험문제였다. 글을 쓰든지, 그림을 그리든지, 너희들 맘대로 해보라. 50분 만에 백지 앞뒷면을 빽백하게 채웠다. 일주일 후, 교수님이 부르더니 대뜸 '습작노트 가져와봐' 하셨다. 그런 게 있는지 여부도 묻지 않는 걸 보면, 있다고 짐작하신 것 같다. 짐작대로, 그간 친구들을 대신해 쓴 과제물이며, 독후감, 산문 같은 걸 써둔 노트가 있어 가져다드렸다. 부끄럽긴 했지만, 내 글을 평가받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일주일 후에 다시 만났을 때, 교수님이 다짜고짜 물었다. 국문과롤 전과할 마음이 없느냐. 어머니가 반대한다고 말씀드리다가 하마터면 울 뻔했다. 생긴 건 이래도 눈물이 꽤 많은 편이라...
그때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기나긴 세월 동안 나 자신을 믿는 근거가 되었다. 문장을 잘 쓰는 학생들은 수없이 봤지만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아이는 처음 봤다고 했다. 포기하지 말고 아주 잠시만 꿈을 접어두라고 하셨다. 나중에 작가가 되면 나를 한 번 찾아오라고도...내가 작가가 되었을 땐 이미 작고하셨다. 

- Axt 2007년 8월호 인터뷰 중에서 


* 오늘 정유정의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이 대목에서 눈물이 찔끔했다. 자신을 알아봐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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