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운영을 하지 않는 네이버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예전에 대행사 그만둔 후 썼던 백수일기 한 토막을 발견했습니다. 강남역 근처 혼자 살 때였는데 날짜를 보니 무려 2003년 4월이네요. [간장선생]이란 영화 참 좋아했는데.





2003.4.24 PM 3:00

낮잠에서 깨어나 늦은 점심을 먹기 전 케이블TV 채널을 이리 저리 돌리며 지난주 놓친 연속극들을 섭렵하다가 충동적으로 시티문고로 달려가 허겁지겁 책을 몇 권 구입함. 


≪타임머신≫, ≪투명인간≫ 등을 썼던 H.G 웰스의 ≪세계문화사≫, 

다큐멘터리 영화 <보울링 포 컬럼바인>의 감독이 쓴 <<멍청한 백인들≫, 

그리고 일본의 드라마 작가이자 소설가 카마타 토시오의 ≪29세의 크리스마스≫ 1, 2권. 



2003.4.24 PM 5:00

느닷없이 '이게 몇 년만이냐'며 해도 지기 전 동네로 찾아온 후배 이종혁과 순대집에서 소주를 마심. 전날의 음주행각과 늦은 점심식사 등의 영향으로 인해 소주 두 병을 겨우 비우고 일어섬. 카운터 앞에서 미적미적하고 있는데 이종혁이 마침 잔돈이 없다고 선수를 치며 오천 원을 내밈. 두 지갑의 돈을 합쳐봐도 이천 원이 모자람. 짧게 절망하고 카드를 꺼낸 뒤 이종혁에게 차비조로 삼천 원을 돌려줌. 백수의 카드를 쓰게 하다니... 얄미운 놈.



2003.4.24 PM 8:00

저녁뉴스를 보다가 인터넷에 들어가 평소처럼 약간의 포르노를 다운받음. 태풍권의 영향으로 전국에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끝나고 <위풍당당하지 못한 그녀>를 건성으로 보다가 TV를 끈뒤 ≪29세의 크리스마스≫를 집어듬.


비가 오기 시작함. 소설은 생각보다 재밌고 몹시 맥주가 땡김. 옆 건물의 편의점으로 달려가 카스 500cc를 두 캔 사고 냉동만두를 레인지에 데운 뒤 맥주를 홀짝거리며 소설을 탐독함. 1권을 다 읽고 맥주 두 캔을 다 마시니 어느덧 새벽 3시. 2권은 내일 마저 읽기로 하고 침대로 올라감.



2003.4.25 AM 9:00

계획보다 일찍 깨어난 자신을 원망하며 조간신문을 집으러 나가다가 이사를 가는 옆집 아줌마와 마주침. 조만간 첼로를 하는 처녀가 혼자 이사올 거라는 아줌마의 귀뜸에 환호작약함. 화장실에서 신문을 대충 훓어보고 간단한 아침을 끓여먹은 후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가면서 미소지음. '어서 침대로 들어가라고,다시 자도 된다고'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따뜻하게 속삭여 주는 듯한 착각속에 평화롭게 잠이 듬. 



2003.4.25 PM 12:00

이틀전에 약속한 전 회사 동료 김욱현 부장과의 점심식사. 탕수육에 빼갈을 네 잔 정도 마심.

회사로 잠깐 올라가 마주치는 동료들마다 '잘 지내고 있다'고 과장되게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킬킬대다 귀가함.



2003.4.25 PM 5:00

어제 인터넷으로 대여신청한 DVD <간장선생>이 도착함. 영화를 보기 전 백수일기를 토닥거리고 있는데 우체부 아저씨가 초인종을 누름. 주간지 [Film2.0] 2년 정기구독 사은품으로 고른 공짜 DVD 16장이 등기우편으로 도착함.



내일을 향해 쏴라(SE)

타이타닉

에이리언1(SE)

에이리언2(SE)

사운드 오브 뮤직

가위손

다이하드1(SE)

다이하드2(SE) 

로마의 휴일(SE)

THE BEATLES "A HARD DAY'S NIGHT"

바닐라 스카이

가게무사

판타스틱 소녀백서

더 도어즈(SE)

터미네이터2(UE) - 2장으로 침




갑자기 쏟아진 DVD의 세례에 잠시 어이없어 함. 일단 내일 반납해야 하는 <간장선생>을 보기로 결정함. 내일은 전주영화제에 가서 밤새도록 네 편의 영화를 봐야 하므로 컨디션 조절이 절실함. 오늘은 일체의 저녁약속을 삼가기로 다짐함. 


백수, 바쁨.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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