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모스트 페이머스(Almost Famous)’라는 캐머런 크로우의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저로서는 이 연극도 ‘거의 메인이 될 뻔한’ 이라는 뜻인 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오로라가 보이는 메인 주 북쪽에 있는 가상의 마을 ‘올모스트’에서 일어나는 아홉 커플의 이야기더군요. 연극은 벤치에 앉은 어린 남녀의 짧은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느닷없이 사랑한다고 고백하던 두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라는 자신들이 정한 명제와 지구의 둘레 길이를 재는 데서 이견이 생겨 어처구니 없이 헤어집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는 올모스트 마을로 오로라를 보러 온 여자가 그 동네 사는 남자 집 마당에 다짜고짜 텐트를 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입니다. 여자는 관광 가이드에 나온대로 이 동네 사람들은 오로라 관광객들에게 매우 호의적이라 자기는 이 집 마당에다 텐트를 쳐도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하고 남자는 그러는 여자에게 갑자기 사랑을 느껴 키스를 합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자신의 부서진 심장을 봉지에 넣어 들고 다닌다고 말하고 사실은 죽은 남편의 명복을 빌어주기 위해 오로라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일종의 부조리극처럼 느껴지는 이 시퀀스는 번역투의 문장들과 과장된 제스추어들로 인해 역설적인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번역극의 묘미는 관객들이 우리나라 사람인 줄 뻔히 아는데도 배우들이 외국인 이름을 달고 외국인 연기를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전에 다 서로 속고 속아주기로 짜고 보는 셈이지요. 그러다보니 너무 자연스러운 대사 처리나 몸짓보다는 서양 사람들처럼 약간 과장된 제스추어들이 더 대본의 의미를 잘 전달해 줍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특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여배우의 대사 처리가 뛰어나 더 좋았습니다. 

그밖에도 세탁실에서 만난 커플, 결혼기념일에 스케이트장에서 싸우는 커플, 누가 더 불행한 지(사실은 누가 더 한심한지) 내기를 하다가 동성끼리의 사랑을 깨닫고 당황하는 남-남 커플, 그리고 천둥벌거숭이 불알친구처럼 지내다가 남녀관계로 돌입하는 커플들의 이야기까지,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도 모아놓았구나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하는 짱짱한 구성입니다. 

집에 와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 연극은 2002년에 뉴욕에서 초연된 이후로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흥행작이라고 하네요.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작품의 대본을 쓴 사람이 미국 TV시리즈 ‘로 앤 오더’로 유명한 배우 존 카리아니(John Cariani)라는 사실이죠. 배우 출신 천재 극작가가 애런 소킨 말고도 또 있다니, 참 살 수가 없습니다. 연극을 보기 전에 잠깐 얘기를 나눈 유정민 배우는 이 작품은 대단히 쉽게 쓰여진 즐거운 작품처럼 보이지만 두 번 이 상 보면 현대인의 슬픈 단면을 잘 잡아낸 연극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귀뜸해 주셨습니다. 연극을 보고 난 뒤 그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됩니다. 기회가 있으면 한 번 더 보고 싶은 연극입니다. 겨울에 보면 더 좋은 연극이라는 말에도 동의합니다. 아주 따뜻하고 웃기고 슬픈 연극이라 사랑하는 사람과 보기 참 좋은 연극이니까요.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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