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진중권 특집 기사 ‘陳의 전쟁’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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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혹시 누군가가 “진중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는다면 “아니 왜 골치 아프게 그런 걸…”이라고 하거나 “진중권이 똑똑한 건 나도 알겠는데, 너무 독선적이고 또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늘어져서 싫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난 지금 진중권이 싫으냐 좋으냐, 또는 옳으냐 그르냐보다 더 중요한 게 우리 사회가 진중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애티튜드’에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진중권이라 존재는 국회의원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말도 안 되는 수준 낮은 얘기들을 끝도 없이 지껄여대는 강용석이나, 진중하고도 해맑은 얼굴로 입만 열면 거짓말을 일삼으시는 ‘이명박근혜’ 들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겨레21 898호는 진중권 특집으로 무려 14페이지를 할애했다. 큰 제목은 ‘陳의 전쟁’. 그 동안 진보진영의 논객으로 또 한겨레21의 필진으로 오랫동안 활약해 온 진중권이기에 그들의 심회는 남다를 것이다. 팝아트로 처리한 표지 사진만 보더라도 그들이 갖고 있는 진중권에 대한 애증의 정도를 능히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겨레21이 마냥 진중권에 대해 ‘제 식구 감싸기’ 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사 머릿글을 여는 이세형 기자의 글은 “진중권은 전사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면서 조선일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물론 자신과 견해가 다르거나 잘못 됐다고 판단하면 그게 ‘황빠’든’심빠’든 ‘나꼼수’든 가리지 않았던 그의 전력을 꼼꼼히 살피며 진중권의 운명적 고독에 대해 조명한다. 혹시 진중권은 근대소설의 주인공들처럼 ‘타락한 사회에서 타락한 방법으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문제적 인간, 즉 진정한 ‘반영웅(Anti-hero)’일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또한 같은 편으로 분류되던 강준만 김규항 등과의 불화를 통해 진중권의 싸움 코드를 살핀 고나무 기자는 1998년 진중권을 세상에 알린 책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비롯해 김규항과의 논쟁에 이르기까지 그의 무기가 상대방의 글을 그대로 풍자한 어법과 감정적이기를 주저하지 않는 비꼼에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 비꼼으로 인한 ‘싸가지 죄’다. 싸가지 하면 얼른 떠오르는 동지가 하나 있다. 바로 “저렇게 옳은 말을 저렇게 싸가지 없게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라는 말을 들었던 유시민 대표다. 그러나 유시민은 정치인이다. 일단 정치인의 맷집은 일반인과는 매우 다르거니와 유시민은 이제 예전처럼 논쟁의 중심에 서지도 않는다. ‘싸가지 법 빼고 보자’라는 코너에서는 이 시대의 논객들인 이진경 이택광 심영섭 한윤영의 인터뷰를 통해 진중권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한다. 나는 그 중에서도 진중권이 사용하는 단어들 때문에 그를 엘리트주의로 몰아붙이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는 이택광 교수의 말에 공감한다.

 

일각에서는 그에게 엘리트주의자의 혐의를 두지만, 동의 못한다. 트위터에서 종일 범부들과 치고받는 사람이 무슨 엘리트인가. 진중권을 엘리트주의자라 비난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반지성주의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지식인을 혐오하고 토론하지 않으려는 것, 논쟁의 장 자체를 회피하려는 것. 이 자체가 권위주의다.

 

 

또한 같은 잡지에서 오랫동안 ‘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라는 코너를 연재해 옴으로써 ‘실생활에서의 개인적인 진중권’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는 정재승 교수가 “우리는 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라고 고백하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화적 이슈가 터졌을 때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 ‘심사숙고를 통한 복기’를 하는 학자들과는 달리) ‘곧바로’, 이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제안하는 논객의 업무에 늘 열심이다. 또 자신이 판단하기에 옳지 않거나 미학적으로 촌스러우면, 그걸 굳이 ‘틀렸다, 촌스럽다’ 대놓고 말해야 속이 시원한 ‘모난 성격의 소유자’다. 영화평론가들을 대신해 [디 워]의 지지자들과 싸워주었듯, 황우석의 지지자들과 대신 싸워주었다는 점에서 과학자들은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

 

 

김남일 기자는 조선시대 숙종 때의 정치가 김춘택을 필두로 김기진 박영희 염상섭 이광수 양주동 등 192년대의 문인들과 1950년대의 황산덕 정비석의 ‘자유부인 논쟁’, 1070년대 이어령, 김수영의 순수∙참여 논쟁 등 ‘백과전사파 논객’들의 계보를 꿰보며 그 맨 끝자리에 진중권을 조심스럽게 자리매김 해본다. 사실 진중권이라고 왜 나꼼수나 김규항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겠는가. 다만 인터넷과 스마트폰과 트위터가 없던 시절에 쓴 김수영의 시와 짧은 산문들이 그 시대에 날리는 트윗이었다면, 반대로 언제나 싸움닭처럼 발톱을 세우고 전방위로 달려들어 좌충우돌 하는 진중권이야말로 경제 논리에 함몰되고 생각하기 싫어 집단지성에 판단을 맡겨버리려 드는 대한민국 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용감한 존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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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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