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밤에 우연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옛 단편이 읽고 싶어져서 책꽂이에서 [오후의 마지막 잔디밭]을 꺼내들었다. 김춘미 교수가 번역한 책으로, 내가 맨 처음 하루키를 접한 책이다. 맨 앞에 있는 <중국행 슬로보트>를 펼치면서 이전에 이 단편의 인상이 상당히 모호했던 게 기억났다.


그러다가 유유정 교수가 번역한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 걸작선]에도 이 작품이 실려 있었다는 걸 기억해냈다. 거기 실린 작품의 제목은 <중국행 화물선>이었다. 제목은 좀 다르지만 똑같은 작품이겠지, 하면서도 번역의 미묘한 차이를 느끼고 싶어서 두 작품을 대조해가며 읽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이 두 작품이 같은 원작을 보고 번역한 작품이 맞단 말인가. 번역은 유유정의 버전이 좀 더 촘촘하다. 그런데 주인공이 초등학교 때 중국인 학교 교실에 시험을 치르러 가서 생애 최초로 중국인을 만난 경험 뒤로 이어지는 고3때의 여자친구와의 데이트 장면이 몽창 빠져 있다.


대학교 2학년 때 두 번째로 만난 알바 동료 중국인 여학생과 디스코테크로 놀러갔던 얘기는 김춘미 교수 버전은 거의 '다이제스트'처럼 세부 묘사들이 뭉텅뭉텅 빠져 있다. 중요한 장면이고 필요한 심리 묘사인데도 그렇다. 그렇다고 유유정의 번역이 딱히 좋은 것도 아니다.


외국어가 익숙치 않아 번역본을 읽어야만 하는 처지가 바로 이런 것인가. 아니면 두 사람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발표한 글의 다른 버전을 차례대로 번역한 것일까. 하나는 1991년, 또 하나는 1992년 초판 번역이다.


내가 그동안 읽은 책들은 작가들의 의도나 문장과 몇 퍼센트나 만난 것일까. 이젠 정말 번역된 책을 읽는 것이 두려워질 지경이다. 그나저나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런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아니, 문학사상사나 모음사는 예전에 이걸 알기나 했을까. 몰랐다면 직무유기요 알고도 이랬다면 정말 나쁜 사람들이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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