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정책기획관의 "국민의 99%는 개나 돼지와 같다”라는 발언 덕분에 인간의 가치가 그리 높게 느껴지지 않을 때 마침 <곰의 아내>라는 연극을 보았다. 왜 '곰의 아내'냐 하면 주인공인 소녀가 어느날 산에서 발을 다쳐 길을 잃었다가 곰을 만나 그의 새끼까지 낳고 살게 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자살을 하려던 한 남자를 구해주게 되는데 그에게 자신이 곰의 아내였으며 자신의 새끼를 사냥꾼이 죽여버린 이야기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사라진 곰 대신 그 남자와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새롭게 아이를 낳고 살게 된다. 다분히 신화적인 이야기이다. 일단 곰이 나오니 우리의 단군신화나 웅녀 생각부터 떠오른다. 


남산예술센터는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에 이어 두 번째로 온 곳인데 원형강의실처럼 구성되어 있어 무대에 대한 집중도가 높고 최소한의 효과만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심플한 시스템이라 올때마다 기분 좋은 극장이었다. 객석도 입식좌석을 고정시켜 놓은 형태라 공간 낭비가 적고 편안하다. 물론 내가 연극 공연 도중 무심코 발을 좀 길게 뻗었다가 앞에 앉은 여자 관객의 옆구리를 건드리는 실수를 저지르긴 했지만 말이다. 


영화 <화장>과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열연했던 배우 김호정의 호연이 돋보이는 무대였다. 다만 팜플릿의 인삿말에서부터 작가와 연출의 변이 서로 부딪히는 것을 읽게 된다는 건 안쓰러운 일이었다. 작가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수많은 곰아내들이 있습니다"라고 쓰며 이는 곧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동굴 속으로 들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자신도 수 많은 곰아내 중의 하나였다가 연극을 하고 글을 쓰며 무사히 걸어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원래 쓴 희곡 <처의 감각>이 아니라 각색된 대본 <곰의 아내>로 공연을 하게 된 점이 대해 송구한 마음이라고 썼다.


작가가 '곰의 아내'라는 것을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로 읽은 것에 비해  연출가 고선웅은 함께 살기 시작한 남자가 생활의 짓눌려 다시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하고 여자도 결국 이전에 같이 살던 곰에게 다시 돌아가는 것에 촛점을 맞춘듯 하다. 이는 세계관에 대한 충돌이다. 작가는 신화적 해석을 하는 반면 연출가는 이 모든 과정을 '샐러리맨의 딜레마' 정도의 메타포로 좁히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극은 후반으로 갈수록 지루하고 공허하게 흘러간다. 작가의 의도대로 공연이 되었으면 훨씬 더 단단한 장면들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아내도 <처의 감각>이라는 작품으로 다시 한 번 이 연극을 보고 싶다고 말한다. 


작가나 연출 둘 다 쟁쟁한 경력을 가진 인물들이다. 그래서 어느 사람이 옳다고 말할 순  없다. 더구나 예술은 '타협'의 세계가 아니다. 다만 극단 '마방진'의 특징이라고 하는 과장된 톤과 문어체 형식의 대사를 조금 더 살려서 가슴 뜨거운 장면들을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마지막에 진짜 곰이 잠깐 출현하는 키치함 대신에 말이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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