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하다 토요일' 모임이 있는 토요일은 아침부터 가슴이 설렙니다. 그저 주말 오후에 같은 장소에 모여서 똑같은 소설책을 묵독한 뒤 잠깐 얘기를 나누는 것뿐인데 뭐,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막상 해보니 그 재미가 기대 이상이었던 거죠. 이번에도 그런 느낌은 여전했습니다. 

지난 달과 마찬가지로 토요일 오후 2시에 대학로 '책책'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몸이 안 좋은 분도 있고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참석을 못하게 된 분들이 있어서 결국 김인혜, 손연영, 진주 씨가 참석을 못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다음 달엔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뵐 수 있었으면 합니다. 대신 제 뚜라미 동기인 임재섭 씨가 참석을 했습니다. 

이번 주 '독하다 토요일'에서 같이 읽을 책은 한강의 [흰]이었습니다. 한강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죠. 저는 한강의 작품 중 [소년이 온다]가 특히 좋았는데 [흰]이 또다시 맨부커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우리가 읽을 책 리스트에 이 작품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흰]은 다른 책보다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일단 '소설'이라고는 하는데 구성이나 문체가 시집처럼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책 앞 쪽에 한강이 '흰것들'에 대해 쓰기로 마음을 먹고 목록을 만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만약 제가 그처럼 목록을 작성하고 하나씩 단어를 선택해서 글을 썼다면 어떤 글을 썼을까를 상상하면서 읽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읽으니 한강의 흰색은 그저 깨끗하고 맑은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 흰색은 죽음을 품고 있고 인생의 비애와 부조리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어둠과 검은 것들이 모이고 섞이면 결국 이처럼 흰색이 되지 않을까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봤습니다. 

윤혜자 씨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일단 서술방식이 시 같고 뚜렷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책 뒤에 있는 '작가의 말'을 읽고 나니까 비로소 태어난지 두 시간 만에 죽은 작가의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모티브로 펼쳐지는 어떤 이야기겠구나, 어렴풋이 짐작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윤혜자 씨는 무엇보다 서정적인 문체에 많이 놀랐다고 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당대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책은 존 버거의 작품(특히 [A가 X에게])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는 소감도 피력했습니다. 

정아름 씨는 '체세포 하나하나가 잠에서 깨어나는 찰나를 슬로우모션으로 보는 듯한' 이라는 멋진 소감을 전하며 입을 열었습니다. 작가가 본 것을 나도 봤을 텐데. 나는 왜 못 느꼈을까, 하는 경이가 있었고 작가의 말대로 '언니가 살아 있었으면 나는 없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끝에 '힘들지만 앞으로 나아가려는 존재들에 대한 연민'들이 느껴진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왜 흰색일까를 잠깐 생각해 보았는데 그 흰색에는 외로움이 밑바닥까지 차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며 화자가 삼촌과 멸치잡이 배에 탔던 장면 묘사가 특히 아름다웠다고 회상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작가의 전작인 <소년이 온다>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김하늬 씨 역시 '소설과 시의 장점만을 모으면 한강의 [흰]이 되지 않을까'라는 탄탄한 소감으로 입을 열었는데 시를 쓰는 자기 친구 얘기를 하며 사진이나 시나 모두 한 장면으로 사람의 발걸음을 사로잡아야 하는데 한강의 이 책은 그런 것을 담담하게 성취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했으며, 미묘하게 건조한 문장들이 다시 읽어도 좋고 급기야는 읽으면서 페이지가 줄어드는 게 아까운 느낌이 들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세 줄 평으로 표현하자면 '무섭도록 하얘서 시와 소설 사이에 서 있는 느낌' 이라 했으며 하얗게 보이려면 주위가 어두워져야 해서 그런지 자기는 수 많은 소제목들 중에서도 '어둠'이 가장 좋았다고 했습니다. 흔히 시를 쓰는 사람은 소설을 쓰지 못한다고 토로를 하고 소설가들은 시를 쓰는 사람을 대단하게 여기는데 한강은 둘 다를 가진 무시무시한 공력의 작가라는 얘기도 했습니다.  

모임에 처음 참석한 임재섭 씨는 우연히 어디서 읽은 인터뷰에서 한강 작가가 스스로 밝힌 십여 년 전과 달라진 점이 '수식어가 많이 없어졌다'라고 하던데 자기는 공대를 나와서 그런지 '수식어가 적은' 한강의 소설들이 다른 작가들의 작품보다 유난히 더 어렵게 느껴졌었다고 했습니다. [흰]을 읽으면서는 이게 왜 소설일까, 라는 의문에 시달렸고 그래서 자꾸 길을 잃다가 [채식주의자]를 사서 읽었는데 중편 세 개가 모여 장편을 이루는 모양새가 세상의 모든 것을 한 꺼풀 벗겨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독서 모임에서도 [채식주의자]를 읽었는데 작품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전했습니다. 

김성희 씨는 첫 페이지에 나오는 '문' 얘기에 벌써 숨이 턱 막혔다고 했습니다. 작가의 공력에 압도된 것이죠. 그래서 이거 안 되겠구나, 하고 맨 뒤로 가서 작가의 말을 먼저 읽었다고 했습니다. 전작인 [소년이 온다]도 두 번을 읽었는데 그때마다 눈물을 흘렸고 이런 역사적인 소재를 이렇게 쓸 수 있는 작가가 있다는 게 놀랍다고 했습니다. 김성희 씨는 이 책 덕분에 황석영이나 임철우 등 광주항쟁을 다룬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찾아 읽었다고 했습니다. 굉장히 열정적인 독서를 하는 분입니다.  작가가 언니의 죽음과 허구를  섞은 구성에서 생명의 고비를 넘어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경지를 느꼈는데 특히 <흰나비>라는 소제목의 글에서는 삶이란 직선으로 뻗어가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것은 물론 폴란드에서 살해된 소년의 이야기와 겹치면서 확장성을 가지는 것 같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결국 한강은 이런 다층적 의미를 선사하는 좋은 소설가라는 결론이었습니다. 

서동현 씨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시도 소설도 아닌 '그녀'라는 화자가 쓴 일기장을 하얀 부분만 훔쳐 읽는 기분이었는데 하얗다는 것은 시작과 끝, 삶과 죽음 등을 상징하는 게 아니었을까 하면서 제목이 '하얀'이 아니라 '흰'이었던 것도 좋았다고 했습니다. '흰'이라는 표현에서 의미가 더 광범위해지고 특히 <문>에서 흰 페인트를 칠하는 장면에서 촉발된 '바스락' '빳빳' '창백' 등의 의성/의태어적 감정은 이 소설이 삶에서 쓸 수 있는 지우개를 찾는 과정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서동현 씨의 말을 들으며 예전에 Procol Harum이라는 그룹이 발표한 'A Whiter Shade Of Pale'이라는 곡이 떠오른다고 했더니 정아름 씨도 마지막에 옷을 태우는 장면에서 비슷한 걸 느꼈다고 했습니다. 임재섭 씨가 신기하게도 함께 모여서 책 얘기를 해보면 그 작품이 더 좋아진다는 소회를 박혔고 이어 윤혜자 씨가 예전에 채민서가 주연한 한강 소설 원작의 영화 [채식주의자]의 헐렁한 만듦새에 대해 일이 분 간 규탄을 했습니다. 

모임 장소에 영어책을 가져와 읽어 위화감을 조성했던 임기홍 씨가 뒤늦게 작품이 너무 어려워서 읽기 힘들었다, 라고 얘기하자 여기저기서 반가운 '미투'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러나 곧장 '안 되겠다 싶어서 [채식주의자]를 구해 읽었더니 정말 좋더라. 이 작품은 정말 쉽고 친절하더라. 세상에 이렇게 친절할 수가.' 라는 의견을 밝히는 바람에 사람들은 또다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임기홍 씨는 '특히 <몽고반점>은 이것이 바로 소설이구나, 라고 느꼈다'라는 소회를 술술 털어놓았습니다. 

임기홍 씨의 소감에 덧대어 [채식주의자]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들도 한참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흰]으로 돌아와서 한강이 아니면 이런 소설은 씌어지지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만약 신인 소설가가 이런 글을 써서 신춘문예 같은 곳에 보냈다면 일단 '조건 미달'로 떨어졌을 거란 얘기였죠. 그런 얘기가 공감을 얻는 것은 이 소설 뒤에 김민정이라는 뛰어난 편집자가 숨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윤혜자 씨는 이 작품을 '난다'판과 '문학동네'판으로 번갈아 읽은 경험을 거론하며 편집자인 김민정 씨에게서 들은 얘기도 전해주었습니다. 짧게 얘기하면 나중에 나온 문학동네 판은 작가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어 시집처럼 꾸며졌고 난다 판은 상대적으로 산문집처럼 구성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판본에 쓰인 사진들도 다르다는 얘기를 듣고 사람들이 새삼 번갈아가면서 책을 펼쳐 보기도 했습니다. 

김하늬 씨가 질문이 있는데 해도 되냐고 물었습니다(늘 질문을 많이 하는 분입니다). 일단 소제목에 나온 '당의정'이 어떤 의미일까, 라는 질문을 했고 두 번째는 본문 중간중간에 나오는 이탤릭체는 왜 썼을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윤혜자 씨가 인생의 내면은 누구나 쓰고 힘드니 그것을 잘 삼키기 위해 '당의정'이라는 개념이 등장하지 않았을까라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냈습니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소제목이 '각설탕'이라는 얘기를 곁들이면서. 그리고 이탤릭체에 대해서는 편집자이자 시인인 김민정 씨에게 나중에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이번 모임엔 편집자인 김민정 씨도 참석해 달라 저희가 부탁을 해서 정말 올 예정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아버님의 생신과 겹치는 바람에 참석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두 시간 정도가 훌쩍 지나갔고 우리는 모두 전보다 한강의 [흰]이라는 작품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여덟 권의 [흰]을 보니 뭔가 마음이 뿌듯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뿌듯함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대학로의 중국집으로 몰려가 이것저것 요리를 시키고 이과두주보다 훨씬 비싼 공부가주를 큰 것 두 병, 작은 것 한 병 마셨습니다. 모든 것은 N분의 1이라 많이 먹고 마시는 사람이 유리한 술자리였습니다. 2차를 마치고 몇몇은 성북동 꼭대기에 있는 저희 부부의 집 '성북동소행성'으로 가서 일본 소주와 와인을 더 마셨습니다. 

다음에 읽을 책은 김언수의 [뜨거운 피]입니다. 이 책은 싸구려 삼류소설처럼 읽는 재미가 있는데 도중에 의표를 찌르는 문학적 표현들도 난무하는 작품이라 했더니 많은 분들이 좋아했습니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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