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대학교 다닐 때 우리 동네엔 특이한 담배 가게가 하나 있었다. 할아버지 한 분이 밤새도록 무릎 위에 담요를 덮고 앉아 조그만 유리창을 통해 담배를 팔던 곳이었다. 구파발 시장 입구에 있던 그 가게는 열두 시가 넘으면 불이 꺼지고 터미널 티켓 창구처럼 조그만 구멍이 뚫려 있는 유리창 앞엔 삐뚤삐뚤한 필체로 '절대 두드리지 마시오'라는 빨간색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한밤중에 갑자기 담배가 필요하거나 늦게 귀가하는데 담배가 떨어졌을 때면 유리창 앞에 가서 "할아버지" 또는 "저기요~"라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면 정확히 1초 뒤에 '똑'하고 작은 스탠드 불이 켜졌고 정확히 원하는 담배와 거스름돈을 받을 수 있었다. 만약 할아버지가 써놓은 안내문을 무시하고 아주 약하게라도 유리창을 두드리게 되면 불을 켠 할아버지에게 눈이 멀었냐는둥 온갖 욕을 먹어야했고 그 날 담배는 절대로 살 수 없었다. 나름 고집이 있는 할아버지였는데. 지금은 아마 돌아가셨을 것이다.  

'세븐일레븐'이라는 24시간 편의점이 처음 생겼을 때 내 친구 동생은 "오빠, 우리 이제 새벽에도 집에서 술 마실 수 있어!"라고 감격스러워 했다지만  내가 처음 그 곳에 들어가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밤중에도 대낮같이 밝은 형광등의 불빛이었다. 거기엔 '도대체 이 늦은 밤에 어떤 미친 새끼가 뭘 사러 온 거야?' 따위의 불평이나 신경질이 없었다. 새벽 두시에 가도 떳떳한 동네 가게.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모든 상품은 깔끔하게 진열되어 있고 한쪽 테이블에서는 간단하게 컵라면이나 커피 등을 먹을 수도 있었다. 어렸을 때 동네마다 있던 구멍가게와는 차원이 다른 삶이 펼쳐지는 순간이었고, 그 내용의 한 축은 한밤중이 되어도 자지 않고 일을 하거나 술을 마시는 게 당연한 디스토피아의 시작이기도 했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0.9% 오른 시간당 8,350원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요 며칠 사이 편의점주들의 반발이 거셌던 것이, 알바생들 시급을 만 원까지 올려주면 점주들은 남는 게 없으니 차라리 편의점 문을 닫겠다는 입장까지 나왔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편의점주들이 유난히 나쁜 사람들이라 이러는 건가. 아니다. 세상에 그냥 나쁜 사람은 없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나쁜 사람과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낼 뿐이다. 저녁 뉴스에서도 아침 시사프로그램에서도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정리해 보면 핵심은 '갑의 횡포'에 있다. 여기서 갑이란 프랜차이즈 본사와 건물주를 말한다. 편의점 사업을 하는 대기업들이 워낙 많은 돈을 가져가니 남은 돈으로 점주와 알바가 나눠가지려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다가 건물주들이 갑자기 월세를 올리기라도 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그런데 이들과 싸워서 이겼다는 사람을 아직 나는 보지 못했다. 오죽하면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고 했을까. 

"문제는 몇백 원 오른 알바 시급이 아니라 높은 임대료나 프랜차이즈 본사에 내는 비용이다. 이건 ‘갑’을 제쳐놓고 ‘을’이 ‘을’에게 화를 내는 식이다" 

을과 을의 싸움에 대해 어느 신문 인터뷰에서 읽은 기사 내용 일부다. 배가 부르지만 늘 배고프다고 하는 갑들은 팔짱 끼고 구경만 하는데 죄 없고 힘 없는 을들끼리 멱살 잡고 싸우는 모습이란 얼마나 비참하고도 슬픈가.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 오전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으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목표는 사실상 어려워졌다. 결과적으로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사과드린다”고 말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사과에서도 알 수 있듯 당장 1만 원으로 올릴 수는 없다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계속 알바생들만 조질 수도 없는 일이다. 보다 큰 호흡과 안목으로 정책을 정비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기업이나 건물주들은 일제시대에 친일파 말고도 지주나 돈 많은 부자들이 왜 그렇게 민중들의 미움을 받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아무리 유발 하라라가 [호모 루덴스]에서 얘기했듯이 "자본주의에서는 그만 하면 됐으니 멈추라고 하는 법이 없다"고 하지만 당신들 정말 너무 하는 거 아닌가. 당신 옆에서 어떤 사람들은 단 돈 몇 백, 몇 천만 원에도 자살을 하는데.  

오늘도 우리는 편의점에 간다. 밝고 반듯반듯한 진열대가 있고 누구나 선량한 시민들로서의 권리를 똑같이 누릴 수 있는 편의점.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작년에 무라타 사야카가 쓴 소설처럼 '편의점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그 옛날 구멍가게가 가지고 있던 촌스러움과 따뜻함을 포기한 대신 메마르고 익명성 넘치는 자유만 쓸 데 없이 만끽하게 된 슬픈 인간들 말이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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