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킬링 디어]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시작은 이랬다. 점심시간에 서점에 가서 벼르고 있던 신형철의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다시 내려놓고 나왔다. 그날 산 다른 책들과 신형철의 책을 번갈아가면서 읽고싶지 않아서이기도 했고 신형철의 책을 읽으면서 다른 책들을 같이 읽을 자신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그만큼 신형철의 문장들은 밀도가 높고 생각의 깊이가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책의 목차를 펼쳤을 때 1부의 첫 번째 단락이 '당신의 지겨운 슬픔 - <킬링 디어>가 비극인 이유'였기 때문이었다. 좋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나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놓쳤던 것이다. 어떻게 맨 처음 나오는 글부터 텍스트의 내용을 몰라 공감대가 전혀 없이 책을 읽을 수가 있겠는가, 라는 고지식한 이유에서 나는 당장의 독서를 포기했다. 

어제 영화 [킬링 디어](요르고스 란티모스, 2017)를 내려받아 노트북으로 보았다. 굉장한 영화였다.  아르테미스와 아가멤논에 얽힌 고대 그리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놓은 차갑고 상징적이며 현대적인 이 영화는 겉으로는 복수극을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은 '딜레마'에 대한 내용이었다. 외과의사인 스티븐 곁으로 마틴이라는 소년이 맴돈다. 처음엔 그 둘이 무슨 사이인지 관객은 알 수가 없는데 차차 대화가 이어지면서 스티븐이 예전에 수술을 하다가 실수로(아마도 술을 마신 채 수슬을 하다가) 마틴의 아버지를 죽였음이 밝혀진다.  스티븐은 죄의식과 측은지심으로 마틴에게 매우 친절하고 다감하게 대해주지만 마틴은 그 정도로는 곤란하다고 말하며 더 큰 것을 요구한다. 니가 내 가족을 죽였으니 나도 니 가족을 죽여야겠다는 것이다. 

마틴에게는 저주의 능력이 있다. 스티븐의 아들 밥에게 하체 마비가 오더니 딸인 킴까지 똑같은 증세가 나타난다. 이제 그들은 피눈물을 흘리다 죽게 된다고 말하는 마틴. 방법은 마틴이 자신의 가족 중 한 명을 직접 죽여야 하는 것뿐이란다. 그렇지 않으면 세 명이 모두 죽는다. 망설이는 것은 더 큰 비극을 부르는 옵션일 뿐이다. 이제 중요해진 것은 마틴이 가진 초능력이 아니라 그로 인해 아무 잘못도 없이 죽어야 하는 마틴 가족의 입장이 되어버렸다. 가장 고전적인 복수란 무엇인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아니던가. 그러나 타인의 슬픔을 내 아픔처럼 똑같이 이해하고 공감해서 기꺼이 상대의 복수극에 생명을 내어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형철은 선택의 기로에 선 스티븐을 보며 '여기에는 고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고역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스티븐은 어떻게 해야 할까.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음을 알게 된 가족들은 목숨을 건지기 위해 스티븐에게 비굴하게 사정한다. 어차피 한 사람이 죽어야 하는데 그게 꼭 나일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이 책의 제목이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고 붙은 것은 아내 신샛별 평론가의 조언 덕분이었다고 한다. 신형철이 슬픔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 것은 2014년 4월 16일 때문이기도 하고 2017년 1월 23일 때문이기도 한데, 아다시피 전자는 세월호가 침몰한 날짜이고 후자는 아내가 수슬을 받았던 날짜였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슬퍼해야 할 일이 일어난다면 그 일이 다른 한 사람을 피해가는 행운을 전혀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다. 같이 겪지 않고는 서로의 슬픔을 이해할 수 없는데, 그 상황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세월호를 추모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지겨우니 그만 해라'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킬링 디어]에서도 마찬가지다. 마틴의 원한과 억울함을 다른 등장인물들은 이해할 수 없다. 야멸찬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인간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신형철은 이 영화가 그 명제를 확인시켜주는 훌륭한 영화이므로 슬픈 작품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영화가 '슬픔을 이해하는 슬픔'이라는 책의 맨 처음 이야기로 등장하게 된 된 것이다. 

이 글을 영화일기에 올려야 할지 독서일기에 올려야 할지 잠깐 망설였는데 결국은 독서일기에 올리기로 했다. 신형철의 책이 [킬링 디어]라는 영화로 나를 이끌었으니까. 그리고 얼마 읽지 않은 채 독서일기까지 써놓았으니 이제 할 일하고는 앞으로 이 책을 천천히 한 장씩 한 장씩 곱씹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뿐이니까.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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