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벽에 희한한 일이 있었다. 난데없이 해외 결제로 100만 원이 넘게 빠져나가게 되었다는 문자메시지가 뜬 것이었다.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당시에는 너무나 황당한 사건이라 아침에 출근해서 페이스북 담벼락에 사연을 남겨놨었다. - 기록 차원으로 여기에도 다시 한 번 남긴다. 왜? 그냥. (또는 저 이렇게 멍청해요, 라는 자조적인 자랑) 


아내는 일이 있어서 신새벽에 나가고 나 혼자 좀 더 자다가 여섯 시에 깨보니 그새 문자메시지가 세 개나 떠 있었다. 내가 해외에서 물품을 구입했는데 금액이 무려 백십만 원이란다. 어엇. 기가 막혔다. 해외라고는 여름에 일본에 잠깐 다녀온 게 전부인데 거기서 내가 뭘 얼마나 샀단 말인가. 더구나 날짜가 오늘 새벽 한 시 삼십육분이었다. 내가 무슨 수로 새벽에 해외로 날아가 물건을 산 뒤 곧바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채 다시 돌아와 자고 있단 말인가. 몸은 이렇게 말짱한데.


잠이 확 깼다. 아, 왜 나한텐 맨날 이런 일만 일어나는거야. 통장에서 백만 원이 빠져나가면 이번 달엔 진짜 심각한데... 누군가 해외에서 장난질을 친 모양이었다. 범인은 아이튠즈를 통해 내 돈을 빼내간 것이 확실했다. 내 마음을 읽기라고 한 것처럼 결제금액 표시 바로 밑엔 '해외원화결제시 가맹점이 추가수수료를 가산할 수 있어 현지통화 거래가 유리합니다.'라는 안내문까지 적혀 있었다.


그렇지. 이런 건 당장 전화를 해야 해. 아침 6시 15분에 우리카드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다. 안내방송에 따라 휴대폰 번호와 주민번호 앞자리를 누르고 상담원과 연결이 되었다.


상담 : 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성준 : 카드사용내역을 보고 놀라서 전화 드렸는데요.


상담 : 네.

성준 : 엉뚱한 게 해외결제가 됐다고 나와서...


상담 : 잠깐 사용내역을 살펴보겠습니다

(Pause)


상담 : 아이튠즈 사용하셨네요

성준 : 네. 그런데 결제금액이요...


상담 : 혹시 아이클라우드 사용하시나요?

성준 : 네. 그런데 결제금액이 어떻게 백만 원이 넘게...


상담 : 천백 원인데요, 고객님?

성준 : 네?


상담 : 천백 원이요.

아, 지난 달부터 원화로 표시되고 있습니다.

성준 : 아...


자세히 보니 KRW라는 알파벳이 선명했고 '1,100'이라는 글자 뒤에 있는 건 콤마가 아니라 점이었다. 그러니까 1,100.00 원이었던 것이었다. 어쨌든 카드회사가 나쁘다. 이 자식들이 사람 헷갈리게 뒤에다 .00은 왜 붙이는 거야?


상담 : 고객님, 더 도와 드릴 건 없으십니까?

성준 : 네. 죄송합니다. 아, 고맙습니다.


상담 : 아, 아닙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성준 : 네. 감사합니다.

(Pause)


상담 : 고객님, 전화를 먼저 끊어주셔야 합니다.

성준 : 아, 네.


전화를 끊었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정말 화가 난다. 새벽에 일어나 바로 스마트폰을 보면 점이나 뒤에 붙은 '00' 같은 숫자는 잘 안 보인다. 그렇지 않은가.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든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아침부터 이런 시련을 주는가 말이다.



 

'짤막한 비망록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영복  (0) 2019.03.28
공원의 불륜 커플  (0) 2018.10.09
특별한 일  (0) 2018.08.10
처음 개봉관에 갔던 날, 영화 [킹콩]을 보았다  (0) 2014.04.26
Posted by 망망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