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에 벚꽃 구경을  가자고 약속을 했놨었는데 생각해보니까  제가 그만 중요한 술약속을 깜빡했더라구요. 그래서 그날 약속을 못지킨 미안한 마음에 오늘이라도 벚꽃 구경을 가자 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일단 남산에 가기 전에 버스를 타고 도산대로에서 열리는 소피 칼의 전시회에 들렀습니다. 

 

 

 

소피 칼은 자기 일상을 가지고 예술로 만드는 멋진 아티스트였습니다. 이번 전시회 [잘 지내길 바래요]도 자기가 사귀던 남자가 느닷없이 이별 통보로 보낸 이메일의 맨 마지막 문장을 자기가 아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해석하게 하고 그 결과물로 전시회까지 만든 거였죠. 한 마디로 '구라'가 센 여자입니다. 예술의 절반은 구라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재미있는 전시회였습니다.

 

 

아침을 늦게 먹었는데도 또 배가 고프다고 제가 칭얼대서 신사동 강남시장 골목에 있는 칼국수집 [가로수길 생칼국수]에 가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여긴 바지락칼국수와 들깨수제비가 맛있습니다). 제가 얼굴에 계속 카메라를 들이대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야, 또 시커멓게 나왔네!"라는 말만 반복하니까 여친도 짜증이 나는 모양입니다. 하긴 증 날 만도 하지요. 사진 배우는 속도가 이렇게 느려서야 어디. ㅎㅎㅎ 

 

 

그러나 기어코 예쁜 사진을 찍는 데 성공했습니다.

 

 

남산 산책로를 올라가며 벚꽃 구경을 싫컷 했습니다. 이미 활짝 피고 져버린 애들도 많지만 이렇게 천천히 피라면 정말 천천히 피는 순한 애들도 있습니다.

 

 

전기버스 충전하는 게 신기해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지나가던 어떤 엄마가 아이에게 "버스도 맘마를 먹어야 힘을 내겠지? 그래서 지금 맘마 먹는 거야."라고 예쁘게 설명해 주시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아이는 정말 열심히 듣고. 따사로운 장면이었습니다. ^^

 

 

우리 어머니 세대처럼 올드패션 모드로 한 번 찍어보자고 했더니 고맙게도 혜자 양이 창피함을 무릅쓰고 70년대 포즈를 취해주었습니다.

 

 

꽃보다 더 활짝 웃는 그녀. 그녀가 웃으면 세상이 따라 웃습니다.

 

 

남산도서관쪽엔 아직도 벚꽃 기세가 대단하더군요.

 

 

접사도 시도해 봤죠. 그런데'이름모를 꽃'이라고 하면 안 된다지요? 그래서 이름을 적어놓은 표지판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놨습니다. 이 꽃은 '오스테오스 펄멈'이랍니다. 어렵습니다.ㅜㅠ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오늘 남산엔 사람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야외무대에선 로이킴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더군요)

 

 

 

 내려오는 길에 회현시범아파트를 보았습니다. 문득 저기선 누가 살고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너무 낡은 아파트라서요.

 

 

시범아파트가 생길 때 같이 생긴 가게들이겠죠? 맞은편에 '시범부동산'도 있더군요.^^ 

 

 

명동길을 내려오다가 정말 머리털이 인형같은 뒷모습의 여자애들을 발견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아빠가 앞에 안은 아이까지 셋이더군요. 모두 다 딸이었습니다. 사진 좀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괜찮다고 해서 찍었습니다.

 

 

명동신세계 스타벅스에서 잠시 쉬며 책도 읽고(전시회장에서 소피 칼과 폴 오스터가 함께 작업한 책 [뉴욕 이야기]와 소피 칼이 쓴 책 [진실된 이야기]를 샀습니다) 노닥거리며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니, 집으로 돌아오기 전 혜자 양이 밥하기 귀찮다고 해서 동네 설렁탕집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많이 걸어서 그런지 둘 다 생각보다 밥도 많이 먹고 소주도 한 병 나눠마시고 했더니 그만 또 배가 불러서 다시 한강변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결국 열시 반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이젠 자야죠. 정말 꽉차게 보낸 일요일이었네요.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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