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아내가 길을 걷다가 모텔 간판만 나타나면 내게 던지는 농담이다. 우리는 둘 다 혼자 살던 시절에 만났으므로 처음부터 다른 연인들처럼 모텔이나 호텔에 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다. 결혼 전에도 항상 서로의 집으로 가서 자면 되었고 나중엔 아예 살림을 합쳐 살다가 결혼식을 올렸으니까. 아내는 그게 좀 아쉽다면서 툭하면 모텔에 가자는 농담을 한다. 그런 우리에게도 모텔의 추억이 꼭 세 번 있다. 


첫 번째는 결혼한 다음 해 내 생일 때였다. 그땐 어떤 마음에서였는지 이번 생일엔 친구들을 죄다 불러 모아 밤새 술을 마셔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신사동의 한 술집을 예약했고 저녁 7시부터 술자리가 시작되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모이게 된 것이었다. 수십 명이 목소리를 모아 한꺼번에 건배를 외쳤고 그때마다 나는 친구들에게 고루 사랑받는 호스트로서의 뿌듯함을 감추지 않으며 술잔을 높이 들었다. 친구들도 다음날이 휴일이라서 그런지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마음껏 술을 마시고 취했다. 술값이 좀 많이 나오겠지만 이미 취한 상태라 '뭐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는 거지'라는 대범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친 듯이 술을 마시다 문득 눈을 떠보니 모텔 안이었다. 친구 영학이가 너무 취한 나를 보고 신사동의 모텔 하나를 예약한 뒤 키를 선물이라며 주고 간 것이었다. 생일선물로 모텔 키를 받아본 건 아마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아내는 내 옆에 누워 간밤에 얼마나 대단한 일들이 있었는지 얘기해 주었다. 내 친구 중 어떤 여자분들은 술을 마시다 취해서 테이블 앞에서 울고불고했고 어떤 남자분들은 서로 이유도 없이 주차장에 나가 싸우더니 또 곧 화해를 하고... 나는 모텔에 누워 하하하 웃었다. 술이 안 깨서 둘 다 너무 힘이 들었다. 우리는 모텔에서 나와 기념으로 모텔 간판 사진을 찍은 뒤 집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는 옥천에 사는 아내의 고등학교 때 친구 정미 씨에게 놀러 갔을 때였다. 정미 씨는 우리 결혼식에서 주례를 서 준 네 명 중 유일한 아내의 친구였는데 옥천에서 남편, 두 아들 들과 섬유미술 작업을 하며 살고 있었다. 정미 씨와 희관 씨, 그리고 우리 부부까지 네 명은 폐교를 개조한 정미 씨의 작업실에서 밤늦게까지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술잔을 높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정미 씨 부부는 피아노 앞의 의자에 무릎을 베고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아내는 이불속에서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테이블 위엔 소주는 물론 새로 딴 양주 한 병까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공기가 좋아서 여기 오면 누구나 술을 많이 마시게 돼요,라고 희관 씨가 말했다. 나도 한참을 누워있다가 나와 어찌어찌 밥을 먹고 태관 씨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옥천역까지 갔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역으로 들어가려는데 둘 다 너무 힘이 들고 멀미까지 나서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아내가 우리 그러지 말고 모텔에 들어가서 두 시간만 자고 나오자고 했다. 역 앞에는 모텔들이 많았다. 그중 좀 깨끗해 보이는 모텔을 골라 들어가 '숏타임'을 끊었다.  방에 들어간 우리들은 샤워도 하지 않고 그대로 쓰러져 두 시간을 달게 잤다. 겨우 기운을 차린 우리들은 "모텔에 와서 또 잠만 자다 가네..."라고 쓴웃음을 지으며 옥천역으로 들어가 KTX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세 번째는 지난 1월 24일 성대 앞 도어스에서 술을 마시던 날이었다. 그날은 친구 문송과 술 약속이 되어 있어서 논현동에서 둘이 막 술자리를 시작하는 참이었는데 악당이반의 김영일 대표에게서 호출이 온 것이었다. 김영일 선생이 부르면 무조건 가야 한다. 우리는 당장 술자리를 걷고 광화문에 있는 전집으로 달려갔다. 김영일 선생 말고도 또 한 분의 일행이 있었다. 우리는 맛있는 생선전에 막걸리를 마시다 성대 앞 도어스로 갔다. 여기는 김영일 선생의 단골이기도 하다. 아내도 뉘 늦게 술자리에 합류해서 맥주와 양주를 마셨다. 아내 빼고는 다들 전작도 있고 해서 빠른 속도로 취해갔다. 

눈을 떠보니 또 허름한 모텔방 안이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내가 어느 순간 맛이 가더니 잘 걷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술집을 나올 때 다들 취해 있었는데 나는 특히 그 정도가 심해서 무릎이 계속 꺾인 모양이었다. 아내는 도저히 나를 데리고 집까지 갈 자신이 없어서 눈에  띄는 3만 원짜리 모텔로 들어왔다고 한다. 방은 몹시 좁았고 새하얀 침대와 베개는 지나치게 푹신해서 몸이 꺼지는 기분이었다. 안 좋은 자세로 잤더니 여기저기 얻어맞은 것처럼 몸이 아팠다. 아내가 "여보, 우리 신발은 어딨지?"라고 묻길래 방문을 열어보니 옹색한 현관에 아내와 내 신발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욕실을 열어보았으나 타일이나 욕조의 상태가 너무 정 떨어져서 도저히 샤워를 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우리는 일회용 칫솔로 양지만 하고 서둘러 모텔을 나왔다. 1층에 있는 객실에서 나와 현관 옆에 있는 카운터에서 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려고 했는데 아무도 없길래 그냥 나왔다. 우리가 성대 앞 싸구려 모텔에서 자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하며 헤어졌다. 나는 곧장 회사로 가고 아내는 필라테스 선생을 만나러 간 것이었다. 


예전에도 물론 이성과 함께 모텔에 간 적이 있었다. 그러니 그건 아내와 만나기 전의 일이니까 숨기거나 비난을 받을 일도 아니다. 그러나 아내와 모텔에 갈 때마다 번번이 건전하게 잠만 자고 나오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 다음엔 멀쩡한 정신에 모텔에 가서 반드시 아내와 뜨거운 밤을 보내고야 말겠다고 불끈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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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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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를 만들다보면 신기하게도 똑같은 아이디어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어제도 외국 자료들을 살펴보다가 그런 TV-CM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는 미켈럽이라는 맥주 브랜드이고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의 아마로 몬테네그로라는 위스키 브랜드인 것 같습니다. 

두 광고 다 A.I가 등장합니다. 운동이든 게임이든 심지어 악기 연주까지 인간들보다 월등한 능력을 선보이죠. 하지만 일을 끝내고 저녁에 한 잔 하는 즐거움까지 인간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는 통찰을 술 브랜드와 절묘하게 엮었습니다. 

문제는 그 전개가 너무 똑같다는 것입니다. 만듦새나 스케일을 봐서는 누가 누구 것을 베낀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연의 일치로 그런 것이겠죠. 저도 오래 전에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SK텔레콤 광고를 할 때였는데 저희가 만든 광고에 나온 로봇과 비슷한 로봇이 일본 CM에도 나온 것이었습니다. 시기도 비슷했구요. 그래서 아주 곤욕을 치뤘습니다. 이 광고도 그런 경우라 여겨집니다. 지금쯤 두 회사는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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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갑자기 시간이 애매하게 비어서 혼자 일을 더 할까 하다가 압구정에 있는 극장으로 달려가서 거의 제목만 알고 있던 영화 [가버나움]을 보았다. 사무실에서 예매를 하고 급하게 극장 앞까지 가서 폰을 켜보니 예약이 안 되어 있었다. 휴대폰 결제를 하는 과정에서 승인번호를 넣아야 하는데 깜빡 잊고(다 했다고 생각하고) 그냥 달려온 것이었다. 자동 취소된 예매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니 상영 시작 5분 전이라 이번엔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경고문이 떴다. 취소할 생각이 없으므로 그대로 예매를 진행했다. 사용할 수 있었던 오천 원 할인권도 포기하고 급하게 만이천 원에 예약을 했다.

유럽 어디에선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죄목으로 부모를 고발한 아이가 실제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영화는 그 이야기에서 착상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레바논 베이루트 빈민가에서 사는 소년의 이야기인데 누군가(소년의 말에 의하면 '개새끼')를 찌른 사건 때문에 열린 재판정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부모들이 지나친 생활고에 시달리느라 아이들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친 노동과 장사 등에 시달리는 소년. 길거리 캐스팅이었다는 소년의 연기가 너무나 뛰어나고 빈민과 불법체류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이 거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으로 가슴 미어지게 펼쳐진다.

살인미수 소년범이 되어 수용시설에 있던 소년이 TV생방송에 전화를 해서 자신을 낳은 부모와 세상을 저주하는 장면은 짜릿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소년이 새로 증명서를 얻는 과정에서 짓는 미소나 체포되었던 불법체류자 여성이(그동안 소년이 돌봐주었던) 자신의 아이를 다시 만나는 장면 등은 그동안 켜켜히 쌓아놓은 비극을 너무 가볍게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영화를 다 보고나와 '가버나움'의 뜻에 대해 검색해보니 구약성서에 언급되었던 어떤 도시를 말하는 것 같았으나 현재는 '지옥 같은 곳'이란 의미로도 쓰이고 있었다. 마지막에 이 영화를 계기로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된 소년을 돕는 '가버나움 재단'도 생겼다는 자막이 떴다. 영화가 현실을 바꾸어 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쩌면 이런 건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누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린 나이에 어른보다 더 뛰어난 연기를 한 소년 배우에 대한 감탄과 아랍지역의 여성 감독이 일구어 낸 묵직한 주제의식이 칸에서 15분간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관객수 십만이 넘었다고 하니 일단 흥행 성공이라 다행이다. 다른 건 몰라도 소년의 리얼한 연기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충분하니까.

어린 나이에 어른보다 더 뛰어난 연기를 한 소년 배우에 대한 감탄과 아랍지역의 여성 감독이 일구어 낸 묵직한 주제의식이 칸에서 15분간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관객수 십만이 넘었다고 하니 일단 흥행 성공이라 다행이다. 다른 건 몰라도 소년의 리얼한 연기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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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떠난 많은 사람들이 길 끝에 이르면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거라 기대한다. 대단한 감동이 있든지 아니면 대단한 허무라도 있든지. 영화 <황해>로 남우주연상을 이 년 연속 타게 된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무심코 내뱉었던 다짐 때문에 졸지에 577킬로미터  국토 대장정을 하게 된 배우 하정우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장정을 마치고 나서 그의 생각이 좀 바뀌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길 끝에서 느낀 거대한 허무가 아니라 길 위의 나를 곱씹어보게 되었다. 다시 오지 않을 그 소중한 시간에 나는 왜 사람들과 더 웃고 떠들고 농담하며 신나게 즐기지 못했을까. 어처피 끝에 가서는 결국 아무것도 없을 텐데." 

우리는 마음이 심란하고 소란할 때 그 마음을 어떻게 하기보다는 몸을 어떻게 해보는 경우가 더 많다. '나'라는 작은 우주 안에서의 '성동격서'라고나 할까. 몸을 괴롭히다 보면 뜻밖에 마음이 맑아지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 몸의 움직임 중 가장 쉬운 것은 걷기, 즉 산책이다. 걸으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가라앉는 경험을 많이 해서 나도 매일 오후 산책을 즐기는 편이다. 그런데 하정우의 경우는 그 산책의 강도가 남다르다. <아가씨> 촬영 때는 출근길 편도 1만6천보를 매일 걸어놓고는 '이 정도면 상쾌하다'라고 할 정도이니.  

연예인이나정치인이 쓴 책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대부분 남들이 써준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하정우의 책은 읽어보고 싶었다. '어차피 길 끝에 가면 아무 것도 없을 텐데, 왜 걷는 동안 나는 웃고 떠들며 즐길 수 없었을까?' 같은 통찰은 걷는 자가 아니면 얻을 수 없는 것이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매일매일 꾸준히 걸어다는 사람이라면 알록달록하고 재치있는 글을 여기저기 깔아놓기 보다는 인생의 본질을 바라보는 지긋한 시선이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집으로 오는 길에 이 책을 샀다. 이제 50페이지쯤 읽었다. 매일매일 '걷는 마음으로' 천천히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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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몇 년 간 죽어라 땅굴을 파서 겨우 탈옥을 하게 된 죄수들이 알고 보니 얼마 후 있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게 되어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다시 반대편으로 땅굴을 파서 감옥으로 돌아가야 한다. 탈옥이 아니라 '귀옥'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아이러니가 시작되는 것이다. 거의 이십 년 전 김상진 감독이 설경구 차승원 등과 함께 만든 작품 [광복절 특사]가 바로 그런 얘기였다. 이렇게 설정이 독특하거나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스토리 라인이 선명한 영화를 '하이 컨셉 영화'라고 부른다.  이병헌 감독의 흥행작 [극한직업]은 잠복근무를 위해 마약반 형사들이 치킨집을 인수했는데 예상 밖으로 치킨 장사가 너무 잘 되는 바람에  곤란에 빠지는 상황을 컨셉으로 한 작품이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상황이 자연스러운 웃음의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군더더기 없이 찰진 속사포 대사들이 류승룡이나 이하늬, 진선규처럼 요즘 펄펄 나는 배우들의 입을 통해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한다. 특히 류승룡은 [내 아내의 모든 것]이나 [7급 공무원]에서 보여줬던 기가 막힌 대사 타이밍 감각을 다시 한 번 유감없이 보여줬고 [범죄도시] 이후 명품 조연으로 떠오른 진선규의 연기는 이제 명불허전이 되었다. 물론 중간에 '수원왕갈비통닭' 프랜차이즈를 둘러 싼 씬에서 등장하는 익숙하면서도 무리한 설정들은 갑지기 영화를 지루하게 만들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너무 긴 러닝타임 때문에 감독의 뚝심 부족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어쨌든 끝까지 딴 욕심 부리지 않고 코미디로 끌고 간 점만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마지막 류승룡 신하균의 보트 결투씬에서 치킨집 사장이 왜 범죄현장에서 설치냐는 악당의 힐난에 "니가 소상공인들을 몰라서 그러나 본데, 우린 다 목숨 걸고 해!" 같은 류승룡의 대사는 이 영화 시나리오 작가인 문충일의 내공이 엄청나다는 걸 다시금 보여준다. 내 취향의 영화는 아니지만 어쨌든 당대에 흥행하는 영화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몇 겹의 흥행요소를 다 가지고 있는 셈이다.  

아내와 나는 이 영화를 종로3가 피카디리극장에서 보았는데 극장은 넓고 쾌적했으나 날이 추운 관계로 평소 파고다공원 등에 계실 법한 노인분들이 거의 다 로비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좀 안쓰러웠고 특히 우리 옆자리에 앉은 초로의 불륜커플(대화내용이 전혀 부부의 그것이 아니었음)은 오십대 후반의 여자분이 영화를 보면서 어찌나 크게 떠드시는지 거의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결국은 우리 부부가 비어있는 앞자리로 옮겼는데도 여자분의 감탄사와 코멘터리가 러닝타임 내내 끊임없이 들려왔다. 여자분은 영화 장면장면마다 감탄사를 넣고 깜짝 놀라고 하는 걸로 남자분에게 어필하려는 것 같았고 남자분의 리액션도 그에 못지 않았다. 만장하신 전국의 불륜남녀 여러분, 그런 거 하시려거든 다음부터는 제발 극장으로 오시지 말고 가까운 비디오방이나 모텔방에 가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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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알리타 : 배틀엔젤]을 개봉일에 보았다. 제임스 카메론과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제작과 감독을 맡았고 일본 작가 기시로 유키토의 만화 ‘총몽’이 원작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극장에 들어갔는데, 결론적으로 이 영화 죽인다.   

일단 발전된 CG기술에 입이 쩍 벌어진다. 커다란 눈과 뾰족한 턱을 가진 알리타의 얼굴은 애니인지 사람인지 모호한데 반해 너무나 사실적인 바디가 이상한 불균형을 선사하며 관객을 새로운 시각적 경험으로 초대한다. 사춘기 인간의 뇌를 가진 사이보그 전사 알리타. 제임스 카메론은 이 세계관에 매료되어 영화의 판권을 이십 년 전에 사놓았지만 당시 기술로는 그것을 만족스럽게 재현할 수 없어서 지금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기다린 보람이 있었고 사이버 펑크 매니아인 로버트 로드리게즈에게 감독을 맡긴 것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영화에서 가장 쾌감이 높은 순간은 주인공이 자신의 능력을 처음으로 깨닫는 순간이다. 이 영화에서도 알리타가 처음으로 길거리 모터볼 시합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때가 가장 멋있고 신난다. 물론 그 이후에 나오는 수많은 액션신도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지만. 

뛰어난 점만 먼저 얘기하느라 그렇지 이 영화는 CG나 액션만 훌륭한 게 아니다. 전체적인 구성도 쉽고 재미있으며 개연성도 충분하다. 알리타 역을 맡은 로사 살라자르는 물론 크리스토프 월츠, 마허샬라 알리 등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반드시 극장에 가서 보시기 바란다. 이런 영화를 극장에서 안 보면 도대체 무슨 영화를 극장에서 본단 말인가. 이번엔 2D로 봤으니 다음엔 아이맥스로 한 번 더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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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이 책을 또 읽었다. 10여 년 전에 사서 밑줄을 쳐가며 열심히 읽었고 교보문고에 갔을 때 순간 착각을 해서 비슷한 시기에 또 한 권을 샀었다. 그래서 헌 책은 우리집에 놀러왔던 친구 부인이자 후배인, 지금은 제일기획에서 CD를 하고 있는 카피라이터에게 선물로 주고 새 책은 그냥 가지고 있다가 이번에 새삼 읽게 된 것이었다.

내 평생 같은 책은 세 번이나 산 경험이 있나 헤아려 보니 처음인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은 나랑 보통 인연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 뒷장에 붙은 가격표를 보니 7,500원이다.

소설에 대한 본격적인 독후감은 '독하다 토요일'에서 이 책을 함께 읽은 후에 해볼 생각이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무기의 그늘]과 더불어 황석영 소설의 엑기스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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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이 나가고 회의실엔 정적이 감돌았다. 십 년째 국내 점유율 1,2위를 다투는 등산복 브랜드 '에이픽스'의 새로운 광고대행사를 선정하기 위한 경쟁PT가 이주일 반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직 기획 컨셉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3차 회의가 열렸으니 다들 이게 뭐하자는 짓인가 하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사장이었다. 무슨 프로젝트가 시작되든 킥오프 하는 날부터 무조건 이틀에 한 번씩 회의를 하지 않으면 발작 상태가 되어버리는 이 대행사의 사장 현민섭 말이다. 사장이 회의실에 들어오는 이유가 회의를 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회의 시간에 화를 내기 위해서인지 모르겠다는 사원들의 반응은 그래서 오늘도 유효하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일차적인 잘못이 AE들에게 있다 하지만 찜찜한 건 고재영CD팀도 마찬가지였다.  고재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장 이 새끼는 변하질 않지. 드디어 대행사를 그만 두어야 하나. 오늘따라 고재영은 자신의 뚱뚱하고 둔한 몸이 더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오늘 나온 얘기 가지고 뭐라도 아이디어를 좀 만들어서 내일 오후에 다시 만나시죠." 

이렇게 말하면서 고재영은 카피라이터 실장 편성준을 바라보았다. 아이구, 저 마음만 여린 병신 같으니라구. 내가 어쩌다가 저런 놈이랑 한 배를 타가지고 이 고생이냐. 역시 지난 달 사장과 싸웠을 때 미련 없이 사표를 쓰는 거였는데. 내가 너무 착했어. 너무 약해졌어. 고재영은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얼음이 다 녹은 아이스커피 텀블러의 빨대를 쭉 빨아들였다. 고 실장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편성준은 고 실장님, 오랜만에 우리 냉면이나 드시러 가실래요? 하고 속편한 소리를 하며 다가왔다. 

**

고재영은 천사다. 흔히 마음씨 착한 사람을 표현할 때 쓰는 메타포로서의 천사가 아니라 말 그대로 진짜 천사다. 영어로는 Angel. 그가 태양계 중 지구라는 별로 파견 근무를 온 건 이만 년이 좀 넘는다. 당연히 지구 위에 인간들이 생겨나는 것을 지켜 보았고 수 많은 종교와 철학, 전쟁 들이 발발하고 유지되고 사라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인간 세상에 어울려 살면서 그들을 연민하지도 억압하지도 않고 지켜보다가 위기의 순간이 오면 일종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천사 고재영에게 부여된 주된 임무였고 그는 대체로 이 어려운 임무를 이만 년이 넘도록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물론 뼈아픈 실수도 있었다. 예수가 태어나기 직전에 한 번, 그리고 십자군 전쟁 때 한 번 잠시 방심했던 고재영이 인간들에게 겉모습을 들켜버린 것이었다. 덕분에 지금까지 인간들이 생각하는 천사는 모두 흰 천으로 된 옷을 입고 하얀 날개가 달린 금발의 꼽슬머라 뚱보라는 천편일률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하긴 그때 내가 좀 많이 먹긴 했지. 고재영은 그때를 생각하며 잠깐 웃었다. 20세기에 물리학자 아이슈타인이라는 작자가  '4차원'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을 땐 천국 여기저기서 그야말로 난리가 났었다. 당장 신과 인간계 사이의 비밀을 누설한 자가 누구인지 밝히는 대대적인 색출작업에 들어갔으나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고 아인슈타인은 은하계를 통틀어 가장 이례적인 스타가 되어버렸다. 결국 천국에서 열린 긴급회의에서는 아이슈타인이 거절하지 못할 정도의 빅딜을 제시하기로 했고 그는 인간의 시간으로 장장 십오 년을 고민한 끝에 그것을 받아들였다. 우주를 통틀어 사람이  천사가 된 케이스는 아직도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유일무이한데, 그는 원자폭탄과 인간들이 존재하는 지구가 싫다며 지금은 아주 먼 은하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제가  어제 승찬이, 박수하고 한 잔 하면서 얘기를 해봤는데요. 에이픽스는 절대로 어렵고 복잡한 컨셉으로 가면 안 돼요. 더구나 창업주가 대구에 있는 재래시장에서 등산복 도매로 시작한 사람이잖아요. 밑바닥에서 시작해 메이저가 된 입지적인 인물이라구요. 신문 기사에서 읽었는데 자기 얘기를 소설로 쓰면 열 권도 넘을 거라고 큰소리를 치던데요. 고집이나 카리스마도 장난이 아닐 거구요. 아직도 회의 시간에 커피잔이 날아다닌다던데...이런 사람한테는 정말 직관적인 걸로 그냥 한 방 던지고 빠져야 돼요." 

편성준은 애주가다. 늘 어제 누구랑 몇 차까지 갔었고 술자리에서 어떤 실수가 있었는지 궁금하지도 않은 무용담을 늘어놓는 걸 즐긴다. 인간들은 왜 끊임없이 술을 마시는 걸까. 어젯밤 자신이 한 고민의 총량이나 반성의 질량을 주량과 병치시키길 좋아하는 인간들의 습벽을 마주하면 고재영은 쓴웃음부터 나온다. 자신이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얼마나 술고래에 골초였는지 알면 얘네들이 놀라 자빠질 텐데.  술이나 담배, 마약, 도박, 하다못해 섹스까지, 인간들이 즐기는 기호품이나 습성들 중에서 중독성이 유난히 강한 품목들은 모두 천사들에게서 온 것이었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천사들은 아무리 음주와 흡연을 일삼아도 죽지 않지만 인간들은 그럼으로써 원래 얼마 되지도 않는 수명을 더욱 단축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덕분에 고재영은 수천 년 전부터 지구의 인구 수를 조절하는 데 술과 담배, 설탕을 요긴하게 사용했다. 어쨌든 그는 이만 년 전부터 태양계 안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천사니까. 

그런 고재영이 당장 등산복 PT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우주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잠복근무는 천사들의 또다른 숙명이다. 인간세상에 섞여 살려면 어쩔 수 없이 가정과 직업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고재영에게도 가족이 있고 취미가 있다.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사신의 7일]에 나오는 '사신 치바'는 인간이 만든 모든 것 중에 음악을 가장 마음에 들어해 틈만 나면 음악을 듣는데, 고재영은 그런 면에서는 음악보다 영화가 더 좋았다. 1890년 초반 우연한 기회에 뤼미에르 형제에게 '영화'라는 영감을 주게 되어서만은 아니었다. 인간 세상에 또 하나의 예술 장르를 만들어 내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우게 된 고재영은 그 이후로 수 많은 영화들을 섭렵했는데 그 중에서도 에밀 쿠스트리차와 크지쉬토프 키에슬롭스키, 그리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들을 좋아했다. 그가 지금 광고 아트디렉터라는 직업을 택한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에서였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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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산복 시장은 급격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고등학생들의 유니폼이라 불리던 **페이스 같은 제품의 판매량이 반토막이 나기 시작하더니 덩달아 어른들의 외출복 노릇을 하던 등산복 바지나 점퍼 등도 판매량이 뚝뚝 떨어졌다. 일본이나 이탈리아에서 들어온 SPA 브랜드들이 시장을 잠식하면서 트렌드가 변한 것이다. 그래서 광고량도 급격하게 줄었는데 이번에 에이픽스의 회장이 '기업의 명운을 걸고' 제품부터 광고까지 전혀 새로운 캠페인을 만들겠다고 해서 광고계의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사람들은 궁금해 했다.  새로운 출구전략이 될 것인가, 아니면 언발에 오줌 누기로 그칠 것인가.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건 일단 경쟁 PT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등산복 광고가 아무리 달라진다 해도 산 나오고 등산복 나오는 거야 당연한 일이니 PT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광고전략이요 컨셉이었다. 그 중에서도 메인 카피는 정말 중요했다. 

"박수, 내일 회의 때 내놓을 카피 좀 써봤어?" 
"몇 개 써봤는데, 다 별로예요." 

박수가 경쾌하게 대답했다. 고재영은 박수가 천사가 아닐까 약간 의심하고 있다. 일단 밥을 너무 안 먹는다. 깡마른 체격이긴 하지만 그래도 저토록 밥을 안 먹는 인간은 참으로 드물다. 참고로 천사들은 아무 것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 고재영은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려 연기를 하다 보니 뚱뚱한 몸이 되었지만 갑자기 체형을 바꾸면 의심을 받을까봐 몇십년 째 지금 같은 섭식을 유지하고 있다. 박수가 천사라면 고재영은 긴장해야 한다. 가끔 천국에서는 기존 천사들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잠입 천사들을 내려보내기도 한다. 부정을 감시한다, 라기보다는 기존 천사가 너무 인간화되지는 않았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그러나 당장은 박수가 천사인지 아닌지 알 도리가 없다. 모든 천사는 점조직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고 어떤 잠입 천사라고 해도 고재영에게 문제가 생겼을 경우가 아니라면 신분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박수는 원래 이름 '박수연'에서 '박수'로 개명하기 훨씬 전부터 팔뚝에 '337'이라는 문신을 새기기도 했다. '337박수'라는 대한민국에만 있는 풍습으로 몸에 낙서를 한 것이었다. 이는 아무리 너그럽게 봐줘도 천사들이 할 만한 짓은 아니었다. 다만 일부러 그럴 수는 있다. 하긴 수만 년을 넘어 거의 영원히 사는 천사들의 속을 그 누가 알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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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하늘은 며칠째 쨍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었지만 고재영팀이 있는 논현동의 사무실엔 하루 종일 답답한 공기가 감돌았다. 편성준이 카피를 써왔다. 몇 개의 카피 중엔 다행히 에이픽스 회장이 마음에 들어할 만한 게 하나 있었다. 

"사람과 산 사이, 에이픽스가 있다" 

간결하면서도 등산복의 본질과 기능을 한꺼번에 꿰뚫은 펀치라인이었다. 고재영은 이번 PT는 이 슬로건 덕분에 이길 것임을 직감했다. 물론 고재영의 능력이라면 등산복 PT 정도야 얼마든지 이기게 할 수 있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다. 전쟁이나 자연 재해 등 커다란 이슈에는 가끔 개입을 해도 이렇게 자잘한 일상사는 개입하지 않는 게 고재영의 신조였으니까. 문제는 천국에서 받은 메시지였다.  갑작스럽게 고재영의 내근이 결정된 것이었다. 그동안의 임무를 대체로 무리없이 수행한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로 50년 간의 안식년을 보너스로 받으면서 천국 내 인사과로 새로이 발령이 난 것이었다. 남은 시간은 겨우 육 개월. 고재영은 잠깐 망설였다. 이대로 가면 편성준은 이번 PT를 비롯한 몇 건의 프로젝트에서 좋은 결과를 거두어 광고계에서 제법 인정을 받겠지만 술을 좋아한 댓가로  간암에 걸려 일찍 죽을 텐데. 떠나는 마당에 그에게 조금 더 성취감을 주고 수명도 더 연장을 해주는 건 어떨까. 

"고 실장님, 전근 축하해요. 헤헤." 

그 때 박수가 와서 속삭였다. 역시 짐작대로 그녀는 잠입 천사였던 것이다. 고재영은 약간 짜증이 나서 이십만 볼트짜리 벼락 한 가닥을 품에서 꺼내 박수에게 던졌지만 그녀는 그것을 가볍게 손바닥 안으로 흡수해 버리며 소리 없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러기냐, 진짜? 안 그래도 너 좀 수상했어." 
"하지 마세요. 그런 인간 어디가 이쁘다고 봐줄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설마 걔가 이뻐서 그러겠냐? 인간들 흥망성쇠가 게 하도 빤해서 장난 좀 쳐보려는 거지." 
"하지 마세요. 요즘은 제가 보고 안해도 천국에서 먼저 안다니까요." 

고재영은 이 순간 편성준을 살리려는 자신이 천사일까 악마일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인간들은 천사와 악마는 완전히 다른 존재이고 머무는 곳도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들은 언제라도 천사였다가 금방 악마가 될 수 있다. 인간의 선악 기준이라는 게 그만큼 편협할 뿐이다. 고재영은 편성준이 업계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은 취소하고 간암으로 사망하는 것만 막아주기로 했다. 술 좋아하면서 오래 살면 그것도 괜찮지 뭐. 딱 그정도가 적정선이라고 생각했다. 고재영은 자기가 전출되고 나면 다음에 어떤 천사가 올까 궁금해졌다. 기왕이면 자신처럼 악마보다는 천사쪽에 가까운 성격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노트북 앞에서 일하는 척하고 있는 박수를 다시 한 번 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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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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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선생은 본능적으로 작가였고 소설가였던 것 같다. 해방 후 몇 년 동안의 경험들을 돌아다 보면 인간 이하의 모욕을 받거나 밑바닥 생활을 한 적도 있는데 그럴 때조차 선생은 '언젠가는 당신 같은 사람을 한 번 그려보겠다'는 식의 문학적 복수를 꿈꾸었다고 하니까. 그런 마음이 불행감을 덜어줌으로써 아주 뼛속까지 불행해하지는 않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저런 인간을 소설로 한 번 써야지, 라고 생각하며 현재의 고통을 승화시키는 대가의 어릴적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이런 날것들의 증언이 있어서 인터뷰글을 좋아한다.

아울러 앞으로 내게 오는 나쁜 새끼들도 좀 귀하게 여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언젠가는 그놈들이 내 작품에 도움을 주는 캐릭터가 되어줄 수도 있으니까.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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