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미국 작가가 쓴 것 같은 프랑스 소설을 한 권 읽었다. 레일라 슬리마니의 두 번째 장편 소설 [달콤한 노래]다. 물론 이 작품은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콩쿠르상을 받은 작품인 만큼 당연히 정통 프랑스 소설이 틀림 없지만 '아기가 죽었다. 단 몇 초 만에. 고통은 없었다고 의사가 분명하게 말했다...'로 시작하는 첫 문장부터 소설이 끝나는 장면의 "얘들아, 이리 와. 목욕할 거야."라는 대사에 이르기까지 이전에 똑 같은 상을 탔던 선배 작가 에밀 아자르나 파트릭 모디아노의 몽환적인 글들에 비하면 한결 선명하고 단호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음악 비즈니스에서 일하는 폴과 법조계에서 새롭게 두각을 나타내고 싶어하던 미리암이 등 두 젊은 중산층 부부가 아이들을 돌봐줄 보모를 구하는 에피소드로 시작해서 너무나 일 잘 하고 나무랄 데 없었던 보모 루이즈가 어느날 갑자기 돌변해 두 아이를 살해한 뒤 자신도 자살을 기도한 사건을 다룬 짧은 소설이다. 레일라 슬리마니는 뉴욕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건을 파리로 가져와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었다고 한다. 내가 이렇게 소설의 내용을 거침없이 밝힐 수 있는 이유는 그 이야기가 첫 챕터에 모두 나오기 때문이다. 살인이 벌어지긴 하지만 함정이나 서스펜스가 없는 이야기.  

그렇다면 이건 무슨 소설일까. 소설가에겐 어떤 스토리를 던지고 그 시퀀스들을 흥미진진하게 이끌어 가는 것도 주요하지만 등장인물들에게 왜 그런 스토리가 생겨나게 되었을까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것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리고 문학성이 높거나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일수록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나 전후 설명이 더 밀도 높고 입체적으로 이루어진다. 아기가 죽었다는 사실만 밝히고 제대로 된 살해 방법조차 언급되지 않는 첫 챕터를 단숨에 읽은 후 나는 레일라 슬리마니의 소설 [달콤한 노래]는 명백하게 후자에 해당하는 작품임을 직감했다.

누가 죽였느냐,가 초반에 이렇게 밝혀진다면 이제 남은 건 왜 죽였느냐 뿐이다. 그런데 이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서도 왜 루이즈가 아이들을 죽이게 되었는지 직접적인 동기는 쉽사리 알 수가 없다. 다만 이 집으로 들어와 처음에는 요정이라는 찬사까지 받던 루이즈라는 여자가 어느 순간부터 폴과 미리엄의 경계를 받는 처지가 되고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일련의 에피소드들을 하나 하나  읽어나가다보면 마지막엔 그녀의 심리상태가 가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이르렀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이런 팩트들은 레일라 슬리마니라는 뛰어난 작가에 의해 마치 가장 잘 아는 사람에게 그 사람 얘기를 시시콜콜 듣는 것처럼 내밀한 부분까지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이는 루이즈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노동계층인 루이즈에게 공정하게 대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는, 선량한 부부이면서 동시에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교양 있는 직장인인 폴과 미리암을 묘사한 대목을 잠깐 읽어보자.

삶은 이런전런 책무와 완수해야 할 계약, 잊으면 안 될 약속의 연속이 되었다. 미리암과 폴은 일로 정신이 없다. 그들은 그렇게 일에 치인다는 것이 곧 성공을 알리는 징표이기라도 한 듯, 끊임없이 정신이 없다는 말을 한다. 그들의 삶은 용량을 초과해서, 남은 자리는 겨우 잠을 자기 위한 것일 뿐, 무언가를 응시할 자리는 전혀 없다.

살고 있는 도시만 다를 뿐 성공을 바라보며 일에 치여 허덕이는 것은 우리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아이들이 생기기 전 폴이 언젠가 미리엄에게 했다는 "우리 여행도 많이 하고, 아이는 팔 밑에 끼고 다니자. 당신은 대단한 변호사가 될 거고, 나는 잘나가는 아티스트들을 프로듀싱할 거야. 아무것도 달라질 건 없어"라는 말은 오래 전 읽은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마스터 키튼]의 한 에피소드 중 "난 서른다섯 살에 중역, 마흔엔 사장이 될 거야. 그럼 은퇴를 하고 세계 여행을 떠나자. 당신은 사교계에 데뷔를 하고 난 그레이엄 그린 같은 소설가가 될 거야...당신이 청혼하면서 내게 한 말이야." 라는 어느 주인공 여자의 대사로 겹쳐진다. 어느 것 하나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이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기댈 언덕이 있었던 폴이나 미리암과 달리 루이즈에겐 아무 것도 없었다. 난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 폴 가족이 근교에 있는 친구 농장에 놀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시내에서 루이즈를 목격했을 때다. 루이즈는 그들을 보지 못하고 쇼윈도 사이를 허정허정 걸어다니고 있었는데 이는 미리암이 자기 집에 있지 않은 상태의 루이즈를 처음 보는 것이었다. 미리암이 차 안에서 루이즈를 멍하니 쳐다보며 '이야기를 착각하고 낯선 세상에 와 있는, 영원히 떠돌아야 할 운명을 선고받은 인물 같아 보인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어린 아들이 "루이즈 아줌마 어디 가는 거야?"라고 묻고 미리암은 "집에 가는 거지. 자기 집으로." 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루이즈는 그때 이미 세든 집에서도 쫓겨날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가슴이 미어지는 씬이다. 

루이즈가 원래는 착한 여자였는지 악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인간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나라에 왔던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는 "나는 살인에 대해 설명하기보다는 모욕의 순간들을 자세히 묘사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나 모욕이 있고 모순과 소외가 존재한다. 그리고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이 프랑스의 젊은 소설가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사건을 수사하던 경감의 현장검증을 앞두고 끝나는 이 소설은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이건 단지 보모의 살인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커다란 질문부터 시작해 관계의 문제, 내가 속한 세상에서 밀려나는 것에 대한 공포,영원히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실존적 절망...그래서 이 이야기는 파리에 사는 루이즈나 미리암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뉴욕에서 실제로 아이들을 살해했던 보모의 범행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어쩌면 작가도 몰랐을 것이다. 사실에 대한 단서가 적을수록 '돌아갈 곳 없는 외로운 사람의 절망적 선택'이라는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은 더 큰 힘을 얻는다. 분명한 것 한 가지는 뛰어난 소설가들은 아주 작은 기사 한 줄만 읽고도 훌륭한 소설을 써낸다는 사실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신문 귀퉁이 1단 기사에서 전당포 노파 살해사건을 접하고 구원과 심판에 대한 걸작 [죄와 벌]을 썼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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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사다 먹고싶기도 하고 새 책을 사서 읽고 싶기도 한 토요일 오후. 밖에 나가 간식과 책을 사올까 하려다 전에 사놓고 시간 없어서 못 읽고 있던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꺼내 읽으라는 아내의 충고를 받아들이기 하고 [갱부]를 꺼내 읽기 시작. 

읽기 전 책 뒤에 붙어있는 장정일의 해설에 따르면 이 소설은 소세키 소설의 일반적 특징인 비교 문명론자의 시각이나 문제의식이 돌출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본문을 펼쳐보면 처음부터 마음이 만들어내는 세상의 변화나 뭐라고 딱 규정하기 힘든 인간이라는 존재의 복잡성에 대한 묘사 등 지식인적인 묘사와 고찰들로 가득하다. 열아홉 살짜리 가출소년인 주인공이 길에서 만난 허름한 사내와 만주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에선 소세키 특유의 유머도 등장한다. 

다시 소세키와의 만남이다. 반가운 마음에 계속 읽고 싶지만 토요일 저녁에 계속 책만 읽고 있기도 그렇고. 옆집 총각에게 간단히 한 잔 하자고 했더니 냉큼 좋다는 콜이 왔다. 얏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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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지갑

독서일기 2018. 2. 9. 14:29


일을 하다가 막히면 책꽂이에서 아무 책이나 꺼내 아무 페이지나 펼쳐보는 습관이 있다. 

오늘은 [이 정도는 알아야 하는 최소한의 인문학]이라는 책이다. 이 책의 네 번째 챕터엔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들이 쓰여 있다.  '사람은 서로 신뢰하고 존중할 때 행복하다'는 글에 이끌려 본문을 펼쳐보다가 예전에 어디선가 흥미롭게 읽었던 실험 이야기가 다시 언급되어 있길래 읽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길거리에서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 되찾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라는 질문을 가지고 실험을 했다. 50 달러가량의 돈을 지갑에 넣고 이름을 표시한 1,100개의 지갑을 전 세계 도시 곳곳에 떨어뜨려 놓았다. 지갑이 가장 많이 돌아온 도시는 어디였을까? 

놀랍게도 인구 13만 명이 사는 덴마크 올보르에서는 지갑 100%가 회수되었고 지갑 속 돈도 그대로였다고 한다. 이로써 덴마크는 세계에서 신뢰도가 가장 높은 나라임이 증명된 것이다. 멕시코나 중국, 이탈리아, 러시아에서는 지갑이 돌아오는 확률이 굉장이 낮았다고 한다. 

사회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악에 바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는 나라일수록 행복감도 클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실험을 하면 과연 몇 개의 지갑이 되돌아올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지갑을 자주 흘리는 나로서는 여러 번 해 본 실험이다(비록 원해서는 아니었지만). 한숨이 나온다. 슬프다. 일이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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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수의 [뜨거운 피]를 읽고 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작가 김언수가 '구암'이라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희수라는 건달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는데, 우선 놀라운 것은 쫀득쫀득한 대화들이 장난 아니게 재미 있다는 것이다. 원래 건달들이 주먹보다는 입으로 먹고 산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얘기이긴 하지만 여기 나오는 희수나 만리장 호텔 사장 손영감 등 주요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대사는 반말과 존대를 자연스럽게 오가는 부산 사투리의 유연함에 힘입어 한 마디 한 마디가 퐁당퐁당 튀어다니는 느낌이다. 장르가 느와르 소설이기에 범죄 얘기가 영화차럼 흥미롭게 펼쳐지고 기기묘묘한 불법과 사기, 도박 시퀀스들이 흘러넘친다. 나이 마흔이 되어 집 한 칸 없이 호텔방을 전전하는 희수의 처지에선 짙은 우수도 흐른다. 

김언수는 어렸을 때부터 한국전쟁 때 내려온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판자촌에서 자랐는데, 거기 섞여 살던 건달, 창녀, 사기꾼, 살인자 들의 모습이 그대로 소설 속 구암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책 뒤에 붙어있는 '작가의 말' 중 일부를 읽어보자(난 소설을 읽기 전에 작가의 말부터 읽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비밀은 없고, 마음은 안타깝고, 피는 뜨겁다. 그래서 그 동네 술자리에선 싸움이 벌어지고 술판이 엎어지는 일이 흔했다. 죄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백수에, 건달에, 루저 주제에 서로에게 훈장질을 어찌나 해대는지, 사실 술자리가 엎어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한 남자가 점잖게 충고를 한다. "니가 일을 그딴 식으로 처리하니 망조가 드는 거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니 내 말 들어라." 그러면 앞의 남자가 발끈한다. "너나 잘해라. 이 새끼야. 마누라한테 처맞고 다니는 주제에 어따 대고 훈장질이고." 그러면 어김없이 술판이 뒤집어지고 소주병이 날아다니고 주먹질이 이어진다. 하지만 하루만 지나면 다시 또 술을 마시며 "어제는 미안했다." "미안은 무슨. 우리가 뭐 남이가." 이 난리를 치는 동네 말이다.  

출퇴근 시간에만 조금씩 아껴서 읽고 있는데 마침 김동식의 [회색인간]을 비롯한 소설집 세 권도 도착해서 걱정이다. 뭐부터 읽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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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씨에게 

유창선 씨, 안녕하십니까? 유창선 씨가 쓴 책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를 읽고 문득 편지글로 독후감을 써보고 싶어졌습니다. 당장 저자와 만날 수는 없지만 편지글이라면 함께 앉아서 얘기하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해서요. 그런데 우리나라 말이나 글은 종적인 인간관계 덕분인지 호칭이 꽤나 까다롭습니다. 처음 말을 거는 경우엔 더 조심스럽지요. 약간 고민을 해보다가 그래도 요즘 많이 쓰는 '님'보다는 '씨'가 더 꾸밈이 없고 무심한 것 같아서 그냥 '유창선 씨'라고 부르기로, 제멋대로 정해 버렸습니다. 괜찮으시죠? 


세상은 그대로인데 변덕스러운 것은 나의 마음이다. 지난 밤 그렇게 절망스러웠던 세상의 색깔이 다음 날 아침이면 환해 보이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다.

유창선 씨가 사는 게 힘들고 외로울 때 읽었다는 니체에 대한 글 중 출근길 지하철에서 읽다가 팍 꽂힌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세상은 잔인하지도 따뜻하지도 않고 그저 늘 냉정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라는 평소의 생각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고 앞으로 사는 게 힘들 때마다 나도 이 구절을 다시 한 번 떠올려야겠다 생각하게 된 것인데, 이는 시사평론가로 활동하다가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방송 일이 다 끊기자 정권에 줄을 서거나 반대편에 서는 대신 동네 독서실에 틀어박혀서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던 유창선 씨의 이야기가 너무 마음에 와닿았기 때문이었겠죠. 

근대의 탄생과 함께 신으로부터 개인을 되찾아왔다는 우리들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현대인들은 일과 일상에 매몰되어 또다시 '나'를 잃어버린 삶을 살고 있습니다. 혼자 있을 시간, 즉 가만히 앉아 자신을 물끄러미 들여다 볼 시간을 좀처럼 가질 수 없게 된 것이죠. 그래서 늘 버릇처럼 '정신이 없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TV 광고 만드는 일을 이십 년 넘게 하고 있 는 저도 그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허구헌날 남의  상품이나 브랜드를 어떻게 하면 빛나게 할 수 있을까 궁리하느라 정작 자신의 인생은 챙기지 못하는 악순환을 반복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카피라이터는 배우 이나영의 입을 빌어 '내 생각이라는 녀석은 잘 지내고 있는지 커피를 마시며 생각해 봅니다'라는 카피를 쓰기도 한 것이겠죠. 

광고 일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광고주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물건이 많이 팔리거나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광고를 만들어 줄 것을 원하지만 그게 어떤 각도로, 어떤 포인트로 제작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는 광고뿐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 생각됩니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어떻게 해야 자신이 행복해지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어느 순간 일상을 멈추고 자신을 들여다 볼 계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유창선 씨가 동네 독서실로 들어가면서 비로소 진짜 내가 하고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처럼 말이죠.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한 번밖에 살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의 결단에 따라서는 여러 번의 삶을 살 수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삶이 나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새로운 삶을 위한 결단을 내린다면 우리는 또 한 번의 삶을 살 수 있다. 

이 책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행위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근무하던 곳에 사표를 내고 나오며 '돌아갈 다리를 내 손으로 끊어버린 셈'이라 생각했던 유창선 씨. 저도 사표를 여러 번 써보았기 때문에 그게 어떤 심정이었을지 약간은 이해가 됩니다만 다른 건 몰라도 당시의 결심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했을 것이라는 것만은 확신합니다. 마음이 온전히 내 것이고 나를 채우는 전부라면 정신은 그저 테크니컬하게 사용하는 무형의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마음이 시킨는 대로 사는 것, 결코 쉽지 않습니다.

진보적인 정치평론가였던 유창선 씨는 양심이 시키는 대로 세상을 버리고 책을 통해 더 넓은 세상으로 깊이 들어가는 길을 택했죠. 그리고 그 결심은 '나의 고민은 이천몇백 년 전 소크라테스의 고민과 다를 바가 없다'는 깨달음을 얻으면서 추진력을 얻은 것 같습니다.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그대로 당시 유창선의 처지를 설명하는 우화이기도 했고 유창선을 대신해 선배 철학자가 목숨 걸고 먼저 써 놓은 '양심선언'이이기도 했으니까요.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을 읽으며 '나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고  카프카가 쓴 소설 [변신] 속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보면서 현대인의 태생적인 불안을 실감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백이 숙제의 신화를 해체했던 루쉰의 글은 또 어떤가요. 정치를 비롯한 인간의 삶은 그것 자체가 욕망의 덩어리일진대, 지고지선한 얼굴을 한 영웅의 모습은 존재할 수 없다는 그의 통찰은 빅토르 위고가 쓴 [파리의 노트르담]에서 보여준 절대악도 절대선도 없다는 깨달음과 상통하는 이야기일 겁니다. 

오독일 수도 있겠지만 책의 목차를 다시 더듬으며 유창선 씨가 책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누었던 대화들을 제 마음대로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왜 제목이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였는지 다시 생각해 봅니다. 사랑하는 삶을 살려면 부단히 싸워야 한다는 유창선 씨의 말에 공감하기에 일단 책에서 언급되었던 책들을 찾아 꼼꼼히 읽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독서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이 예쁜 여자에 대한 동경만 채우는 일이라면 그 텍스트를 찾아 읽는 일은 직접 그녀를 만나 손을 잡고 살결을 만지고 입김을 불어넣어 결국 내 애인으로 만드는 일이니까요. 

자신의 결단에 따라 누구나 여러 번을 살 수 있다는 유창선 씨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제 생각에 당신은 두 번째 인생을 멋지게 살고 계신 것 같습니다. 요즘은 문화계도 허지웅처럼 얄쌍하거나 김어준처럼 지랄스럽거나 아무튼 좀 튀어야 하는데 유창선 씨는 너무 고지식한 아저씨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좀 걱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깊게 읽고 넓게 생각함으로써 얻은 정신의 수려함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책의 부제가 '존엄하게 살기 위한 인문학 강독회'인 것처럼 존엄하게 살고 싶은 눈 밝은 독자들이라면 유창선 씨의 숨은 가치를 단박에 알아볼 테니까요. 너무 일이 바빠 사 놓고도 읽지 않을 게 뻔해 전작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를 아직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음 주쯤엔 사서 읽도록 하겠습니다.


요 며칠 날씨가 미친듯이 춥고 미세먼지도 많았습니다. 건강 유의하시고 더 좋은 글 많이 써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총총.

독자 편성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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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역시 너무나 바쁜 한 해였습니다. 개인적으로 회사 일도 바빴고 정치 사회적으로도 엄청 바빠서 한가하게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청와대 국정농단 사태 때문에 모든 영화와 연극 공연들이 망했습니다. 제가 그 기간에 봤던 한국 영화 [불한당: 나쁜놈들의 세상]이나 [스플릿]도 도 대중적 흡인력이 뛰어난 영화들이었는데 흥행에는 실패했습니다. 오죽하면 박근혜와 최순실 때문에 평범한 직장인들이 난생 처음 치킨과 맥주를 시켜놓고 저녁 뉴스를 기다렸다고 할까요. 그러나 이런 모든 핑계에도 불구하고 '낭중지추'처럼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책들이 있습니다. 일단 우리나라 소설들이 더 많이 읽혔으면 하는 마음에서 '2017년의 국내 소설 Best5'를 마음대로 뽑아 보았습니다. 물론 제가 읽은 책 중에서만 뽑은 거니까 한 번 읽어보고 무시하셔도 좋습니다(순전히 제가 아직 못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김영하, 김애란 같은 일급 소설가들의 작품이 빠졌습니다). 

[82년생 김지영] 

방송작가 출신인 조남주가 쓴 이 소설을 올해의 베스트로 올리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1982년도에 서울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렵게 대학 가고 연애하고 직장 잡고 결혼하고 애 낳았던 김지영 씨에 대한 이야기. 마침 레베카 솔닛 등의 저작으로 불붙기 시작했던 페미니즘 논쟁은 이 담담하면서도 탄탄한 소설에 이르러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여성'에 대한 폭력적인 관습과 사고가 반성의 시간을 시간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의의는 충분합니다. 쉬운 문장과 탄탄한 구성이 어우러져 흡사 르포타쥬를 읽는 듯한 사실감까지 선사합니다. 대통령 당선 이후 노회찬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을 처음 만나러 가는 자리에 선물해서 화제가 된 책이기도 하죠.



[거짓말이다]

우리 윗세대들에게 '한국전쟁'이나 '광주항쟁'이 큰 상흔을 남긴 사건이라면 우리 세대는 '세월호'라는 커다란 트라우마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습니다. 소설가 김탁환은 단순히 세월호 유족의 슬픔을 다루는 데서 벗어나 세월호 잠수사의 눈으로 사건을 바라봅니다. 소설가의 임무는 당사자들과 같이 슬퍼하는 것보다 그 사건의 내면으로 들어가 원인과 과정을 체험하게 하는 데 있으니까요. 그래서 만나 사람이 바로 김관홍이라는 잠수사였습니다. 배가 물에 잠긴 뒤 희생자들이 다 숨진 후에 김관홍 잠수사가 진도 앞바다로 달려간 이유는 무엇일까,부터 시작한 이 소설은  냉정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인터뷰와 분명한 사건 재구성 등으로 읽는 이의 눈물샘을 자극해 기어이 몇 번의 눈물을 쏟아내게 합니다. 자신이 주인공인 소설의 진행과정을 지켜보며 기뻐하다가 결국 목숨을 버린 김관홍의 이야기는 이 소설의 작업 일지처럼 쓰인 [그래서 그는 바다로 갔다]에서도 자세히 만날 수 있습니다. 두 권 다 추천합니다. 뒤늦게라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쓴 [거짓말이다] 리뷰를 첨부합니다. http://mangmangdy.tistory.com/346?category=470827  


[사랑의 생애] 

우리나라에서 관념적인 지식인 소설을 가장 완성도 있게 쓰던 이는 아마도 [광장], [회색인]의 작가 최인훈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그 대를 잇는 작가로 저는 이승우를 꼽고 싶습니다. [생의 이면]이나 [식물들의 사생할] 등에서 보여준 그 사유의 힘은 정말 눈부신 것이었죠. 그런 그가 '사랑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다룬 소설을 냈습니다. 책의 제목은 '사랑의 생애'. 사랑이라는 관념을 유기체로 여기는 순간 인간의 몸 또는 마음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사멸하는 과정이 생겨닙니다. 이승우는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라는 냉정한 문장을 시작으로 사랑의 본질을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합니다. 그의 문장은 관념적이지만 논리의 고리가 탄탄해 지루하지 않고 같은 계보라 할 수 있는 최수철이나 이인성, 한유주 등에 비해 지나치게 난해하지 않아 호감이 갑니다. 마침 며칠 전 쓴 리뷰가 있으니 그것도 첨부를 할까 합니다. http://mangmangdy.tistory.com/431?category=470827 


[채식주의자] 


조용하지만 자기 색깔이 분명하고 형식은 엄격하지만 내용은 늘 파격적인 소설을 쓰는 젊은 소설가,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한강입니다. 그의 연작소설집 [채식주의자]는 이미 오래 전에 출간되었지만 작년에 이 작품이 번역자에게 주어지는 맨부커상을 수상함으로써 다시 한 번 화제가 되었죠. 저는 수록되어 있는 세 작품 중 두 번째인 <몽고반점>의 끝부분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로 치면 이안 감독의 [아이스 스톰]을 볼 때의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올해의 책은 아니었지만 수상 이후 계속해서 팔려 '스테디 셀러'의 반열에 오른 작품입니다. 광주항쟁을 다룬 [소년이 온다]를 혹시 안 읽으셨다면 나중에라도 꼭 읽으시길 권합니다. 단지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넘어 '내가 이렇게 잘 쓴 소설을 이제야 읽게 되다니!'라는 감탄을 하실 거라 장담합니다. 



[아무도 아닌] 


그런 소설이 있습니다. 뭔가 개인적인 경함담을 읽은 것 같은 현실감을 느끼다가 다 읽고 책 밖으로 나와보면 비로소 한 편의 우화로 느껴지는 이야기. 황정은이 쓴 소설들이 그렇습니다. 저는 맨 처음 그의 소설 <백의 그림자>를 읽고 너무 좋아서 며칠간 몸살을 앓았습니다. 진지하게 하는 농담을 듣다가 홀딱 빨려 들어간 느낌이랄까요. 이번 소설집에 있는 <명실>이나 <상류엔 맹금류>를 읽고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정은은 착하고 선량한 사람도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다, 는 걸 보여주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작가와 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입니다만, 괜히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상하죠?  제가 예전에 썼던 [백의 그림자] 리뷰를 첨부합니다. http://mangmangdy.tistory.com/197



[피프티 피플] 

'베스트5'라고 시작은 했지만 섭섭해서 한 작품 더 붙이렵니다. 바로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입니다. 한두 명이 주인공이 아니라 등장하는 50명이 모두 주인공인 소설을 쓸 순 없을까, 생각하면서 창비 블로그에 연재했던 소설. 그러나 62.5매를 쓰고는 힘에 부처 그만 쓰겠다고 말했을 때 편집자의 격려에 힘입어 마저 쓸 수 있었던 소설. 정세랑은 정말 이야기를 잘 만드는 작가입니다. [보건교사 안은영] 같은 본격 엔터테인먼트 소설도 잘 쓰고 [이만큼 가까이] 처럼 아련한 청춘소설도 씁니다. 그리고 이번 소설처럼 병원이 무대인 경우엔 '56번 찔린 남자'를 다루거나 '케이크 자르는 칼로 270도로 목이 잘린 여자'를 등장시키기도 합니다. 물론 비극적인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닙니다. 무슨 곤란한 일도 하하하하하, 라는 웃음소리와 함께 긍정적인 일도 돌려버리는 중년 여자가 등장하고 그녀가 자르면 수술부위에 피가 나지 않는다고 소문이 날 정도로 수술을 잘 해서 '천재소녀'라 불리는 외과 여의사를 짝사랑하던 마취과 의사가 결국 그녀와 데이트를 하게 되는 귀여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소프트하지만 섹스나 불륜 얘기도 아무렇지 않게 잘 다루는 작가입니다. 제가 요즘 제일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해서 마지막에 붙였습니다만, 특히 이 소설집은 인물과 인물들이 희미한 끈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 같은,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영화 [숏컷]이 생각나는 소설입니다. 올해가 아니라면 내년 초라도 일독을 권합니다(작가가 재목을 '피프티 피플'이라고 쓰고사실은 51명을 등장시켰다고 작가의 말에 썼던데, 저도 'Best 5'라고 쓰고 6 작품을 등장시켰네요. 뭐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한 권이라도 더 소개할 수 있으면 좋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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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다 가기 전에 이승우의 [사랑의 생애]에 대해 몇 자 기록해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2017년 1월부터 지금까지 읽은 책이 몇 권이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 중 딱 한 권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한국 소설 쪽에서는 이 작품을 꼽고 싶으니까(외국 작품은 로런 그로프의 [운명과 분노]).


형이상학적 소설을 쓰기로 유명한 '심각 보이' 이승우가 이번에 잡은 주제는 '사랑'이다. 그런데 소재도 '사랑'이다. 주제가 사랑이라는 건 따지고 보면 거의 모든 소설에 적용되는 것이니 그렇다 친다 해도 소재조차 사랑이라는 건 일단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주인공도 사람이 아니라 사랑이다. 첫 문장을 보자.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

영화 [에이리언] 시리즈에서 우주괴물들이 인간의 몸을 인큐베이터처럼 이용한 것처럼 이번엔 형체도 체취도 없는 사랑이라는 개념이 우리 몸을 빌려 세상에 나오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주장이다. 언뜻 관념의 장난이나 궤변처럼 느껴지는 이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작가는 형배와 선희라는 구체적인  인물들을 데려온다. 소설 초반에 "나는 사랑할 자격이 없어."라는 말로 이별을 통보하는 형배. 그 말을 듣고는 기가 막혀서 " 지금, 사랑할 자격이 없다는 말을 흡사 독립선언문 낭독하듯 하고 있는 거 알아?" 라고 묻는 선희. 두 남녀는 그렇게 헤어지고 그들이 헤어지는 과정에서 사랑이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인가, 형배가 자학에 가까운 선언을 함으로써 얻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에 있어서 진정한 약자와 강자는 누구인가 등에 대한 작가의 상념들이 유려하면서도 집요한 문장으로 쫀쫀하게 이어진다. 

그리고 몇 년 후 두 사람은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그때 형배는 그녀의 귀가 하트 모양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고 뒤늦게 혼자 사랑에 빠진다. 쉽게 말해 사랑의 포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왜 대개의 사랑은 이렇게 타이밍이 잘 맞지 않는 것일까.

자기가 찍은 거의 모든 여자와 자는 바람둥이 준호는 그런 형배를 '진실한 사랑은 평생 한 번 뿐'이라는 그릇된 신화에 사로잡혀 그런 것이라고 비판한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작가는 평생 세 번 약혼하고 세 번 파혼한 프란츠 카프카의 예를 들며 준호의 입장을 옹호한다. 카프카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중 '감옥에 갇힌 죄수'의 욕망과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죄수는 탈옥을 해서 감옥 밖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감옥을 잘 개조해서 그 안에 살고 싶은 욕망도 가지고 있다. 누구나 갑자기 나타난 해결점 앞에서 망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흡사 영화 [빠삐용]에서 드가가 그랬던 것처럼. 

이 소설은 작가가 카프카의 약혼 이야기를 몰스킨에 메모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몰스킨에 적힌 단상이 스마트폰의 메모장으로 옮겨 갔고 그 후에 생각날 때마다 메모한 문장들이 그대로 소설의 소제목들이 되었다. 그리고 형배, 선희와 그녀의 새로운 사랑 영석, 그리고 친구 준호와 민영, 그리고 형배의 어머니까지 소환해 사랑이라는 이 복잡미묘한 감정이 인간을 어떻게 이용하고 지배하는지를 세밀하게 관찰한다.

책을 읽으면서 그의 집요한 문장에 매번 감탄했다. 처음엔 형이상학적인 것 같아 저항이 일었지만 곧 저항을 포기하고 리드미컬하게 그 문장에 몸을 실으면 어느 순간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쾌감이 몰려왔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사랑에 대처하는 어이 없는 상황마다 카프카는 물론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등 고전들이 등장해 인간 심연에 숨어있는 보편적인 심리를 새삼 일깨워주기도 해서 더 흥미로웠다. 

이승우는 프랑스에서 특히 인기가 높은 소설가다. 그만큼 관념적으로 뛰어난 직조를 선보인다는 뜻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황석영이나 고은 선생이 노벨문학상을 못 타고 작고한다면 나중에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상은 아마 이 작가에게 돌아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점쳐보기도 한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아주 어렸을 때 나는 어른들이 부르는 이 노래를 듣고 자랐다. 아마 그때도 사랑은 중요했고 그 본질이 무엇이지에 대해서도 다들 궁금해했던 것 같다. 그러나 사랑이 무엇이냐 묻는 것만큼 어리석을 일이 또 있으랴. 물어봤자 답이 없는 것이 사랑일 텐데. 다행히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라로 소설책 한 권을 채운 이승우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신은 일한다. 일하는 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신의 존재 근거나 방식에는 관심 없다. 사랑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 사랑하느라 바쁜사람은 사랑이 무엇인지, 그것의 근거나 방식이 어떠한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살지 않는 자가 삶이 무엇인지 묻는다. 참으로 사랑하지 않는 자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삶을 하고' 사랑을 하는 것이다. 정의 내리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니 걸핏하면 '도대체 자기는 나를 사랑하긴 하는 거야?'고 묻는 여자친구가 았다면 이 책을 선물하라.  그리고 사랑은 하는 것이지 묻는 게 아니라고 점잖게 말하라. 이때 모텔 간판을 가리키며 말하면 빰을 맞을 것이요, 꽃이나 목도리를 내밀고 말하면 미소와 키스를 받을 것이다(자매품으로 조중걸의 [러브 온톨로지]라는 에세이도 있다. 사랑에 대한 철학적 탐구와 아포리즘으로 가득한 책이다. 내 아내 윤혜자가 기획한 책이라 그런 건 물론,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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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계획, 전략, 우린 그딴 거 없다. 목표도 없다.”
 “우리 기업은 3년 혹은 5년이면 망할 것이다.”

인터뷰를 하면 회사나 개인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자폭 발언만 일삼아 '야노 어록'이란 것까지 떠돌았던 100엔숍 '다이소'의 창업자 야노 히로다케의 말들이다. 도대체 회장이 이런 정신상태를 가진 기업이 어떻게 지금까지 망하지 않고 성공했을까. 하지만 이런 기행을 통해 야노 회장은 다이소라는 브랜드를 소비자들 머릿속에 깊이 새기는 데 성공했다. 더구나 모든 상품을 100엔에 팔기로 한 이유가 젊었을 때 아내가 임신을 하자 장사하는 게 귀찮아져서 물건값을 100엔으로 통일했다는 재미 있는 스토리텔링까지 만들어냈다. 그래서 다이소는 망하기는커녕 전 세계로 사세가 점점 확장되고 있다.

브랜딩 얘기를 하면서 나는 왜 엉뚱하게 다이소의 얘기를 꺼냈을까. 그들의 이야기는 아주 극단적 사례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 보면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들은 결코 놓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이 자기다운 것이고,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그리고 나는 이 일을 통해 어떤 가치를 세상에 전달하려 하는가. 우리는 이런 질문과 대답을 통해 얻어지는 유무형의 자산을 '브랜딩'이란 부른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지금까지 수없이 검증된 방법론을 통해 꾸준히 브랜딩을 하는 게 최상의 방법이라 여기고 또 그렇게 한다. 그러나 시간과 돈이 부족한 스타트업들은 대기업과 같은 침착한 브랜딩을 할 수가 없다. 마음은 급하고 가진 자산은 없다. 그런 신생 기업들의 브랜딩을 도와주기 위해 나온 책이 바로 [창업가의 브랜딩 - 브랜드 전략이 곧 사업전략이다]이다. 

먼저 외국 기업과 국내 스타트업 등을 고루 거친 저자들(우승우, 차상우 두 명이다)은 'Why me?'라는 화두를 던진다. 사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브랜딩을 하기에 앞서 먼저 '나답다'라는 것은 무엇이며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소비자들은 왜 다른 브랜드가 아닌 나를 선택해야 하는가, 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명확하게 한 문장으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제대로 규명되어야만 '좋은 브랜드란 무엇인가?'라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배달의 민족, 29CM, 72초TV...지금 가장 확실하게 자기만의 브랜딩에 성공한 핫한 브랜드들이다. 그들은 무슨 방법을 썼길래 자금과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모두가 뛰어난 브랜딩을 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정해진 방법론은 그 누구도 말해줄 수 없다. 즉 브랜딩의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는 브랜드 수만큼 많은 것이다. 다만 변하지 않는 원칙은 몇 가지 존재한다. 저자들은 그 몇가지 기준을 중심으로 열 개의 챕터를 나누고 각 장마다 요즘 뜨고 있는 스타 창업가 10명과의 인터뷰를 실었다. 

원래 브랜드라는 말은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소의 엉덩이에 찍던 불도장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영어라서 그런지 몰라도 브랜딩, 하면 굉장히 어렵고 복잡할 것이라는 생각부터 든다. 책에도 나오는 내용인데 브랜딩에는 많은 선입견이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브랜드를 개발하려면 많은 리소스가 필요하고 반드시 전문가를 거쳐야 한다는 생각 등이다. 그런데 마포구 도화동에서 한국의 스페셜티 시장을 견인해 온 프릿츠커피 컴퍼니(사실은 'ㄷ'받침인데 자판이 말을 안들어 이렇게 썼다)의 김병기 대표는 '브랜드를 위해 특별히 한 것이 없다'라고 말한다. 오히려 "내부적으로 성실하게 일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고객들에게 잘 전달될 거라 생각한다. 커피 한 잔이라는 결과물을 훌륭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프릿츠가 존재하는 이유와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를 강조한다. 

진리는 늘 단순명쾌하다. 책을 자세히 읽어볼수록 단순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단순하게 본질에만 집중해야 브랜드가 산다. 내가 왜 이걸 만들어야 하는지, 소비자는 왜 우리를 선택해야 하는지, 내가 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세상에 하고 싶은 얘기는 무엇인지 정확하게 핵심을 꿰뚫어야 한다.  

'당신의 일이 세상에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책 표지에 제목과 함께 적혀 있는 문장이다. 브랜딩을 너무 특별하게 생각하면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된다고 한다. 쫄지 말고 거창하게 덤비지도 말고 본질에만 집중하면 된다. 브랜딩은 짧게 말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널리 알리고, 그래서 누군가의 행동을 바꾸고, 나아가 세상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일에 다름 아니니까. 그래서 저자들은 브랜드 전략이 곧 사업전략이고 결국은 브랜딩이 모든 것이라고 말한다. 본질이라든지 질문의 중요성 등은 얼마 전 읽었던 최상학의 [Change The Question]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 중 한 명이자 페이스북 친구인 우승우 대표가 우리 부부에게 각각 한 권씩 보내왔는데, 우리가 좋아하는 브랜드 '셰어하우스 우주'와 '로우로우' 대표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어서 더욱 즐거운 독서였다. 책의 마지막 부분 맺음말의 제목은 '이제 나만의 브랜드를 시작하자'이다. 아마도 편성준, 윤혜자라는 이름이 좋은 브랜드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두 권을 선물한 것이리라 생각한다. 고마운 마음으로 푹 빠져 읽었고 우선 급한대로 짧은 리뷰를 써본다. 물론 더 중요한 건 저자들의 바람대로 당장 '퍼스널 브랜딩'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렇다. 나는 결국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어떤 브랜드로 남고 싶은가. 덕분에 다시 한 번 내면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게 된다. 그래서 또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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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첫단추를 잘못 끼우면 단추를 다시 다 풀어야 하고 지휘관이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면 부대원들이 엉뚱한 곳으로 가서 몰살을 당하기도 한다. 광고도 마친가지다. 클라이언트는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거나 매출을 올려줄 답을 간절히 원하는데 정작 자신은 정답이 뭔지 모른다. 그건 광고회사나 컨설팅 회사가 할 일이고 그래서 클라이언트는 돈을 낸다. 그런데 광고회사가 떳떳하게 돈을 받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질문'을 바꾸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 책 [Change The Question]의 저자 최상학이다. 

최상학은 광고에 있어서 중요한 건 답이 아니라 질문이라 말한다. 맞는 말이다. 옳은 답을 찾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을 해야 한다.  저자는 책 초반에 소설가 이윤기의 자전적 소설 <하늘의 문>에서 할머니와 인민군의 대화를 예로 들며 질문이 어떻게 생각의 프레임을 바꾸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정치에서도 광고에서도 '진실'보다 중요한 건 진실인 것처럼 믿게 만드는 '프레임' 인 것이다. 

그래서 의심이 필요하다. 광고주가 지금 목말라하는 게 맞는 단계일까. 광고회사인 우리가 정한 광고 목표는 맞는 설정일까. 하지만 말이 쉽지 이게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를 생각해 보자. 하루 대여섯 개의 과목을 바꿔가며 계속 공부한다. 시험 시간엔 45분동안 풀어야 할 문제가 수십 개다. 하나하나 곰곰히 생각해보고 본질을 따져볼 시간 같은 건 전혀 없다. 정해진 시간 안에 누가 더 빠르게 문제를 풀고 실수를 안 하느냐가 우등생과 열등생을 만들고 당락을 결정한다. 그러니 시험지나 시험문제를 의심해 본 적이 있을 리가 없다. 문제(질문)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라고 생각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질문'은 당신이 가장 중요한 문제를 무엇이라고 규정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이 한 마디를 하기 위해 쓰여진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가 하고 싶은 얘기들은 앞부분에 모두 집중되어 있고 나머지는 부록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렇다고 뒤쪽에 있는 내용이 쓸 데 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앞부분에 있는 '질문'과 '본질'이 그만큼 중요하게 반복적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저자가 광고회사 AE 출신이라 그런지 이 책은 독서를 한다기보다 잘 만들어진 PPT 기획서로 프리젠테이션을 받는 느낌이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나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은 모르고 있는 소중한 덕목들을 이 책이 하나하나 다 일깨워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도 쉬운 언어로, 풍부한 경험과 메타포를 통해서. 

예전에 다른 회사에 있을 때 최상학 이사와 함께 일해본 경험이 있었는데 책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그는 매우 치밀하고 박식하며 무엇보다 '성의'가 있는 기획자였다. 당시에 그가 원하는 것에 비해 내 능력이 받쳐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고 미안해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아는 거 다 가르쳐 줘도 괜찮아. 왜냐고? 가르쳐 줘도 안 해. 다들 안 하더라." 

책이나 강의에서 당신이 아는 것들을 다 쏟아부으면 나중에 어떡하냐는 아내의 말에 그가 했다는 대답이다. 그렇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다 똑똑해지는 것도 아니고 당장 현업에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안 읽은 사람과는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난 앞으로 이 책을 책상에 놔두고 막연할 때마다 한 번씩 들춰볼 생각이다. [CTQ]는 당장 물고기를 주는 게 아니라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니까. 

최상학은 마지막에 로버트 드 니로를 예로 들면서 연기자에게 '메소드 연기'가 있다면 광고인에겐 '메소드 광고'라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광고인이 직접 소비자나 생산자 입장이 되어 몰입하는 광고 창출과정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론 삼아 이런 글로 그 챕터를 마감한다. 

"Method Advertising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8개의 키워드가 모두 필요합니다. '합목적적 상상력'이 있어야 하고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DOING'해야 합니다. 'YOU'의 입장에서 새롭고 진정성이 느껴져야 하고, 가고자 하는 그것이 브랜드, PT의 '본질'과 관련이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며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예측'을 통해 객관적으로 직시하고 수정, 보완해야 합니다. 아무도 안 했던 방식이라고 머뭇거리지 말고 과감하게 당당하게 해버리는 'MINOR'가 되면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항상 지금 갖고 있는 '질문'이 틀린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합니다. 결국 'Method Advertising '은 '진짜 질문을 통해 진짜 답을 찾는' 일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광고를 더 잘 하고 싶고 답을 더 잘 찾고 싶어서 쓴 아홉 가지 방법론들이지만 모든 좋은 책이 그렇듯 이 책 역시 크게 보면 인생을 잘 사는 방법과 흐름이 같다. 우수한 광고인의 생각법을 엿보기 위해 산 책에서 인생의 길까지 탐색할 수 있다면 이거야말로 남는 장사 아닌가. 당신이 광고인이든 아니든 상관 없다. 이 책을 사서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하고 싶은 얘기를 일목요연하게 펼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고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비로소 정말 알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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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그대로인데 변덕스러운 것은 나의 마음이다. 지난 밤 그렇게 절망스러웠던 세상의 색갈이 다음 날 아침이면 환해 보이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다." 

그제 산 유창선의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를 출근길에 읽다가 이 대목에서 팍 꽂혔다. 그렇다. 세상은 잔인하지도 따뜻하지도 않다. 그저 늘 냉정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사는 게 힘들 때마다 이 구절을 생각해야겠다. 유창선은 시사평론가로 활동했었는데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방송 일이 다 끊기자 정권에 줄을 서거나 반대편에 서는 대신 동네 독서실에 처박혀서 책을 읽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 독서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것이고 그 첫번 째가 니체를 읽던 때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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