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18년 12월 말일을 향해 달려가고 있네요. '독하다 토요일' 2기 첫 번째 모임은 서울파이낸스센터 지하 1층에 있는 이스트빌리지에서 열렸습니다. 메르스 사태를 다룬 김탁환의 [살아야겠다]를 읽고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실제 있었던 비극적이고 어처구니 없는 사건을 다룬 사회파 소설이라 많은 회원들이 분노 때문에 책을 읽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는 소감을 털어놓을 정도였습니다. 책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제가 게으름을 피우느라, 또 개인사가 너무 버러이어티하다 보니 후기를 쓸 시간을 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어짜할 바를 모르고 앉아있다 보니 시간은 흘러흘러 두 번째 모임이 다가오더군요. 결국 첫 번째 모임 후기는 쓰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어쨌든 [살아야겠다]는 영화화가 결정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고 있으니 다행이지요. 

2018년 12월 8일 오후 2시에 '독하다 토요일' 2기 두 번째 모임이 열렸습니다. 이번엔 서소문에 있는 '청춘여가연구소'에서 일곱 명이 모여 이승우의 [가시나무 그늘]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희 동네에 '파란대문집'이라는 공간이 생겨서 우연히 들렀는데 거기서 그날 만난 사람들 중 한 분이 청춘여가연구소 소장인 정은빈 대표였던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서소문 피어선 빌딩에 있는 이 공간을 독하다 토요일의 새 아지트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건축을 전공한 서동현 씨의 설명에 의하면 이 건물은 1971년 미국인 선교사가 지은 아파트였다고 합니다. 당시 최고급 건물이었고 차가 건물을 통과해 현관 앞까지 들어와서 입주민이 비를 맞지 않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독특한 구조라 입구를 찾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정말 건물로 들어가는 메인 출입구는 필로피를 통과해야 그 모습을 드러내더군요. 예전엔 아파트였지만 지금은 개인 사무실이나 NGO들의 메카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11층에 있는 '청춘여가연구소'에 들어서니 널찍한 공간과 커다란 창문이 눈에 띄는 훌륭한 공간이었는데 특히 창밖으로 돈의문 박물관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풍광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들은 커피 머신이 제공하는 따뜻한 커피를 한 잔씩 들고 넓다란 공간 아무 데나 마음에 드는 곳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읽은 책 [가시나무 그늘]은 제겐 [생의 이면], [식물들의 사생활], [사랑의 생애]에 이어 이승우 작가 작품으로는 네 번째 소설이었고 나중에 생각해보니 예전에 여행 가면서 헌책으로 사서 한 번 읽었던(읽다가 그치긴 했지만) 소설이기도 했습니다. 성북동으로 이사를 오면서 처리한 책 속에 들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그만큼 다시 읽기는 힘든 책이라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읽자고 추천한 사람이 또 저란 걸 생각하면 저는 참 일관성 없는 인사인 것 같습니다. 

제가 헌책을 사서 읽었듯이 이 책은 절판이 되어 청소년판 아니고는 책을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덕분에 회원들이 삽화가 들어 있는 청소년판을 저마다 들고 나타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습니다. 한 분은 책을 구할 수가 없어 남산도서관에서 빌려왔다고 했습니다. 김하늬 씨는 작가의 심각한 문체 때문에 다자이 오사무의 [금각사]나 [인간실격] 같은 작품들이 떠올랐던 것 같습니다. 다만 일본 작가들이 인간 본연의 부조리에 천착한다면 이승우는 시대상이 배경으로 깔린다는 게 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조지 오웰의 [1984]나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도 연상되었다고 했습니다. [가시나무 그늘]이 훨씬 뒤에 나왔으니 아마도 작가가 이 책들을 다 읽어보지 않았을까 하는 개연성 있는 추측도 전해주습니다. 작가가 신학대학을 나와 사유가 깊을 것이라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서른두 살에 이런 작품을 썼다는 것은 놀랍다는 평도 내놓았습니다. 진행이 세련되었고 짜임새도 좋아서 지금 읽어도 전혀 올드하지 않다는 의견에 저도 찬성을 표했습니다. 

개, 가시나무, 몰록으로 이어지는 요소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것들에 대해 때로는 친절하게 때로는 불친절하게 자세를 취하는 작가의 설명도 적절해 읽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김하늬 씨가 다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롯데의 편지를 인용한 것 등은 존 '중2병'스럽게 느껴진다고도 했고 저는 작품 전체의 분위기만 생각하면 코난 도일의 [바스커빌의 개]도 떠오른다는 엉뚱한 소리를 했습니다. 

윤혜자 씨는 청소년판으로 책을 대하니 뭔가 정답을 찾아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생기더라고 하며 웃었습니다. 청소년, 하면 뭔가 시험이 떠오르는데 이 책을 가지고 시험 문제를 내면 내는 것 자체가 무척 힘들 것 같다는 김하늬 씨의 농담에 오히려 정답이 없어야 할 것이라며 자기는 청소년이라는 단어 때문에 책 읽는 새로운 방법을 소환한 느낌이라며 지금까지 독하다 토요일에서 다룬 책 중 가장 흥미로운 독서였다는 말도 했습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힘, 권력, 집단과 그에 비해 도드라지는 개인의 나약함 등을 생각하면 마음이 굉장히 아프고 씁쓸했고 마지막 희규의 아버지를 암시하는 썬글라스의 사내 대목에서는 이 소설이 격동의 시대를 얘기하고 있지만 결국은 지금의 이야기로 확장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ㅇ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이런 저런 사건과 현상들에 대해 얘기하다가 '윤창호법'에 대한 얘기까지 주제가 뻗어나가기도 했습니다. 

죽기 전에 진실과 정의에 대한 믿음을 지켜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주인공이 마지막에 거대한 사건에 그냥 엮여버리는 것을 보면서 하이어라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 본연의 슬픔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고등학교 때 이 작품을 읽었다면 과연 이런 걸 다 이해할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을 던지자 고등학교 선생님인 임기홍 씨는 그 나이엔 어떤 문제든 이해하는 애들과 못하는 애들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며 웃었고 김하늬 씨가 아마 [어린 왕자]처럼 연령대별로 다 다른 느낌일 것이라는 얘기도 했습니다. 윤혜자 씨는 사람들이 명화라고 하는 그림들을 책이나 다른 매체로 보았을 때 그게 뭐가 좋은데? 라고 생각했다가 막상 루브르 박물관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진품과 마주쳤을 때 느꼈던 경이로움을 이 소설 읽으면서도 비슷하게 느꼈다는 다소 의외의 고백을 했습니다. 이승우가 좋은 소설가라고 불리는 이유를 이번 책에서 깊게 느꼈다는 것이죠. 

책을 읽은 사람들은 모두 희규가 불쌍하다고 아우성을 쳤는데, 그 와중에 서동현 씨는 주문한 책을 어제 택배로 받는 바람에 결국 책을 읽지 못하고 왔다며 아쉬워 했습니다. 그는 독하다 토요일에서 읽은 책 중 제일 재미 있었던 건 [뜨거운 피]였다고 했습니다. 그 책에 '진실은 구리로 된 훈장'이라는 대목이 인상 깊었는데 그건 어떤 가치든 무의미하다는 부정적인 인식이며 그래서 사람들은 안전해지고 싶은 욕구 때문에 교회를 다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시했습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분리불안'은 종교 뿐 아니라 유행하는 롱패딩, 유명한 맛집, 유행어, 실시간 검색어 등등 우리 삶 전반에 걸쳐 존재함으로써 그것 때문에 사는 것 자체가 점점 더 피곤해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김성희 씨는 책의 서문이 매우 좋았다고 했습니다. 작가가 인용한 에리히 프롬의 글도 인상 깊었구요. 책을 읽다보면 우리는 모두 지배당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음을 깨닫게 되어 슬프고 그런 인물의 대표격으로 등장하는 희규가 애처로우면서도 또 한긋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소설에 등장하는 개에 의한 죽음이라는 장치- 명회가 이상해지자 죄책감을 느낀 희규도 그를 모방해 똑같은 방법으로 몸을 던지는 - 가 '길들여진다'는 것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젊은 나이에 남자들끼리 주고받는 이런 기이한 우정의 구조를 혜진이가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소감도 밝혔습니다. 

임재섭 씨는 단체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다룬 이 소설을 읽으면서 군대 시절을 많이 떠올리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내가 군대니까 이렇게 구는 거지 밖에서 만났으면 나도 좋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식으로 말하는 것인데 결국 그런 말이나 표현들이 집단의 억업된 구조가 만들어내는 부조리가 아닌가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임재섭 씨가 군대 얘기를 하니까 갑자기 불행했던 우리의 현대사가 필름처럼 휘리릭 지나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혜진은 희규의 수첩을 들고 다녔을까, 하는 김하늬 씨의 질문부터 시작해 희규는 왜 찌질하게 혜진에게 '사랑합니까?'라고 두 번이나 물어봤는지에 대한 해답들이 중구난방으로 쏟아졌습니다. 남자는 안 변 하는 것 같다,  젊은 베르테르 때부터 그랬다, 라고 말하는 김하늬 씨. 그냥 내 옆에 있는 여자를 좋아하는 게 남자의 속성인 것 같다, 라고 말하는 임기홍 씨. 후진 소설 같았으면 둘이 여관에서 가서 잤을 텐데 안 그래서 다행이었다, 라고 말하는 윤혜자 씨. 임기홍 씨가 모든 남자의 실존은 '이 여자가 나를 좋아하나?'라는 주제에서 떠나지 못한다고 말해 다들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그 밖에도 희규를 괴롭히던 40대 사장을 여성으로 선정한 이유에 대한 토론도 있었고 주인공의 캐릭터 변화 때문에 청소년 문학으로 선정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삽화에 대한 소감들이었는데 모든 삽화에 등장 인물들의 표정이 없이 텅 비어 있는 게 책의 주제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라 좋았다는 중평이었습니다. 깨달을 만하면 끝나는 마지막에 대해서는 좋았다, 아쉬웠다,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고 전체적으로 좀 긴 단편소설 같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올해의 책'으로 꼽을 만하다는 긍정적인 결론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관념적인 면이 많으면서도 작가가 잘 짜여진 블록처럼 소설적 장치들을 많이 마련해 놔서 읽기에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뜨거운 피] 얘기로 다시 돌아가서 만약 이 소설을 영화할 경우 주인공 희수 역으로 누가 가장 잘 어울리냐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영화배우 박신양, 이병헌, 박휘순 등이 물망에 올랐다가 아이고, 다 부질없다, 라는 누군가의 일갈에 모임을 끝내고 이차 장소인  광화문 '안성또순이'집에 가서 먹고 마시고 놀다가 헤어졌습니다. 다음 모임인 2019년 1월 12일엔 구병모의  [네 이웃의 식탁]을 읽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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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한낮, 전철 안에서 어제 산 김민정 시인의 시집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를 읽으며 웃었다. 

첫 페이지 '시인의 말'부터 펴서 읽는데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서른 네 해째 나라는 콩깍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부모님아, 사랑도 다정도 병이라니깐요.'라는 메모에서 앞으로 펼쳐직 유쾌당혹발랄한 시어들이 벌써부터 예상되기 때문이다. 시집으로 본격 돌입하기 전에 제목들이  나열되어 있는 차례를 열어보니 첫 시 제목이 김정미도 아닌데 '시방' 이건 너무 하잖아요,다. 오규원 시인의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라는 시 제목이 광고 카피를 패러디한 것이라 화제가 되었다면 김민정의 시 제목들은 가요, 영화, 욕설, 섹스, 찌질함 등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또는 은밀하게 마주치는 그 모든 현상들이 소재요 주제로 종횡무진이다. '젖이라는 이름의 좆'은 워낙 유명하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뛰는 여자 위에 나는 詩'라든가 '陰毛라는 이름의 陰謨'나 '페니스라는 이름의 페이스', '선우일란, 빵의 비밀' 등등 너무 알록달록해서 마치 어렸을 때 동네 사탕가게에 처음 들어온 느낌을 준다. 

그렇다고 김민정의 시가 이런저런 자극적이고 유머러스한 표현으로 웃기기만 하냐하면 그렇지는 않다. 원래 시인이란 인생을 얘기해야 하는데 시냇물을 얘기한다든지 사랑을 얘기하는데 달이나 애기똥풀을 거론한다든지 하는 엉뚱하게 에둘러 말하기의 명수들 아닌가. 김민정도 그렇다. 웃으며 얘기하는 것 같지만 그 유머와 위악 속엔 날카로운 면도칼이나 사금파리가 곳곳에 숨어 있다. 그래서 '고비하는 이름의 고비'라는 시를 읽으며 언어유희가 재밌네 하고 마냥 웃을 수만 없고  '정현종 탁구교실'이라는 시를 읽으면서도 시인이 인터넷으로 검색해 본 너저분한 이름들 앞에서 느닷없이 삶의 비애를 느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인생을 너무 무겁게 대하면 살기 힘들어지는 것처럼 시도 너무 고귀하고 심각하게 대하면 쓰기 어려워진다. 그러나 내 이야기를, 내 주변 사람들의 취미와 버릇과 역사를 가지고 무심하게 만들어 던지는 시는 쉽게 읽힌다. 여기서 쉽게 읽힌다,에 방점을 찍기 바란다. 쉽게 읽힌다고 쉽게 쓰여지지는 않으니까. 자고로 쉽게 읽히는 글일수록 쓰기 어렵고 짧은 글일수록 쓰는 데 더 오래 걸린다. 김민정의 시가 그 적절한 예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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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쪽을 닮아 길쭉길쭉한 몸매와 금발의 잘 생긴 얼굴을 물려 받은 사내로 태어나 학교는 물론 뉴어크 전 지역을 대표하는 스포츠 스타였다가 해병대 제대 후엔 장갑 비즈니스계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또 미스 뉴저지 출신 미녀의 남편으로 모범적인 삶을 살아 온 유태계 미국인 스위드 레보브. 거의 완벽에 가까운 스위드의 스펙을 보면서 우리는 '저런 놈에게 무슨 걱정거리가 있겠나'라고 투덜대고 싶어진다. 하지만 하나뿐인 외동딸 메리가 월남전에 반대한다면서 엉뚱하게 마을 우체국이 딸린 작은 점방에 사제폭탄을 설치해 사람을 죽임으로써 도망자 신세가 된 사건을 시작으로 그의 인생도 함께 작살이 난다. 예쁘고 영특하지만 말을 심하게 더듬는 게 유일한 걱정거리였던 십대 소녀가 어쩌다가 그런 괴물이 되어 버렸을까. 

어려서부터 밝고 곧은 길만 걸어왔던 스위드 레보브의 참모습은 고등학교 졸업 50주년 기념파티에서 만난 후배이자 작가인 네이선 주커먼에 의해 서서히 그 모습이 포착되기 시작한다. 딸 때문에 흔들렸던 그의 정체성은 아버지와 옛 친구들, 그리고 이웃에 사는 오컷 부부까지 함께 모인 올드림록 홈파티 날 저녁에 아내와 건축가 오컷이 자기집 부엌에서 남몰래 섹스를 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결정타를 맞는다.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며 '이제 스위드도 갈 데까지 갔군'이라 생각하고 그가 오컷이나 아내인 돈이나 둘 중 하나를  총으로 쏴 죽이며 소설이 끝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작가는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이 '시모어 스위드 레보브'라는 멋진 사내의 비극을 강조한다. 이후 계속된 만찬 자리에서는 당시 미국 사회를 흔들었던 린다 러브레이스 주연의 '목구멍 깊숙히(Deep throat)'라는 포르노 영화에 대한 지루한 세대 토론이 있을 뿐이고, 결국 스위드 대신 술주정뱅이이자 오컷의 부인인 제시가 칼로 스위드의 아버지를 죽일 뻔한 에피소드로 허무하게 끝을 맺는다. 

[미국의 목가]는 가장 완벽할 뻔했던 사내가 가장 불행한 남자로 전락하는 비극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그가 불행한 이유는 유태인으로 태어나서도 아니고 미국인이어서도 아니다. 원래 인간이란 다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이 작품의 확장성은 시대와 국경의 경계를 가볍게 지워버린다. 필립 로스는 이 도저한 비관주의를 수다스럽고 신랄하고 야멸차고 유머러스한 문체로 두 권의 책 속에 마음껏 풀어놓는다. 힘과 품격이 대단한 작품이다. 더불어 퓰리처상을 탄 주류 문학작품 속에서 씹, 좆, 보지 같은 비속어를 심심치 않게 접하는 것은 당혹스러우면서 즐거운 일이다. 그건 역설적으로 그 어떤 비속어를 쓰더라도 그 쓰임새가 정확하기만 하면 얼마나 멋진 효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통쾌한 증거가 되니까.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진 뉴어크 올드림록이 배경이지만 내용은 전혀 목가적이라 할 수 없는데도 굳이 제목을 '미국의 목가'라 붙인 이유는 뭘까. 아마도 페데리코 펠리니가 슬프고 비참한 인생 이야기에 '달콤한 인생'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이나 김지운이 그걸 따라한 것이나 아니면 로베르토 베니니가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슬픈 영화를 만든 것처럼 필립 로스도 제목의 패러독스를 통해 독자들에게 잔인한 쾌감을 선사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그리고 이 작품은 제목만 멋진 게 아니다. 소설 곳곳에 격렬하면서도 참신하게 멋진 문장들이 산재해 있다.  

2부 첫머리에 말썽쟁이 딸 메리 때문에 장갑 공장을 찾아온 비키라는 여자에게 스위드가 장갑 생산 공정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특히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무두질하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가죽 무역 이야기, 그리고 장갑 사업의 역사를 거쳐 재단•재봉 작업에 대한 아주 세세한 공정과 일화까지 장장 18페이지에 걸쳐 숨가쁘게 펼쳐지는 이 스펙터클한 묘사는 소설가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한 하나의 표본이나 다름없다. 필립 로스는 이 한 장면을 쓰기 위해 가죽과 장갑 생산에 대한 지식을 얼마나 많이 섭렵했을까? 제시가 알콜중독자가 되는 과정을 짧게 묘사한 문장이나 오컷이 전시한 어설픈 추상화를 비평하는 스위드와 그의 아버지 루 레보브의 신랄한 대사들을 읽어보라. 이런 단락 하나만으로 시작해도 당장 훌륭한 단편소설이 하나씩 후딱 튀어나올 것 같다고 당신이 느낀다,에 나는 거액을 걸 용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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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책방 '디어 마이 블루'에서 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자서전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을 읽다가 갑자기 느낀 점을 쓰고 싶어서 포스트잇을 꺼냈다. 이건 독후감이 아니라 독중메모라고 해야 하나? 암튼 우발적인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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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서울대병원 영안실에 간다고 했다. 5월 말에 <남자요리교실>에서 나에게 '데리야끼 스테이크 요리' 특별강의를 해주셨던 김승용 선생이 너무도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나를 만나셨던 게 마지막 수업이었다고 하니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비극적인 부음이었다. 정정하던 분이 그렇게 갑자기 가시다니. 나도 함께 가서 조문을 하고 싶었지만 회사에 급한 프로젝트가 있어서 꼼짝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2015년 당시 우리나라는 메르스가 창궐하는 중이었고 믿었던 삼성병원과 서울대병원이 그 전염병의 주요 확산지라는 게 뒤늦게 밝혀지면서 모두들 분노하고 있을 때였다. 아내 혼자 그런 곳에 보내는 게 썩 내키지는 않았으나 성격상 말린다고 안 갈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갈 때 가더라도 마스크라도 단단히 하라고 당부를 할 뿐이었다. 

회사 회의실에서 메르스 관련 뉴스를 보다가 서울대병원이 스쳐 지나가길래 "어, 아내도 지금 저기 문상 가 있는데..."라고 했더니 같이 일하던 고재영 실장님이 "진짜요? 지금 당장 나오라고 하세요. 큰일 나요! 당장이요!"라고 외치는 게 아닌가. 늘 천하태평이던 고 실장님이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소리를 지르는 건 처음 보았다. 뒤늦게 정신이 번쩍 든 나는 얼른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얼른 거기서 나와. 응, 글쎄 빨리 나오라니까!" 

나하고는 상관 없다고 생각했던 중동호흡기증후군, 즉 메르스가 구체적으로 내 삶에 개입을 시도한 날이었다. 남자든 여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든 착한 사람이거나 나쁜 사람이거나 가리지 않고 아무에게나 덤비는 무서운 전염병 메르스. 마스크도 하지 않고 병원을 활보하던 아내는 다행히 무사히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곧 메르스를 잊었다. 정부 당국에서 이제 다 완치 되었다고 했으니까. 우리나라는  메르스 안전국가라고 했으니까. 그러다가 2018년 가을 김탁환의 소설 [살아야겠다]를 통해 메르스와 다시 만났다. 이번엔 메르스가 아니라 '메르스의 진실'과 만났다. 

"2015년 여름, 한반도를 휩쓸었던 메르스는 186명의 확진 환자와 38명의 사망자를 냈다" 

이런 간단한 기사문이나 뉴스 한 꼭지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숫자로만 표시된 환자와 피해자들에게선 아무런 고통이나 애환이 느껴지지 않는다. 메르스라는 전염병도 관념으로만 존재할 뿐 실제 그게 어떤 형태로 다가오는지 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고통을 주었는지 알 길이 없다. 일단 질병이란 게 그렇다. 걸렸거나 안 걸렸거나 딱 두 가지 뿐이다. 걸린 사람은 왜 하필 나한테 이런 불행이 온 걸꺼 억울해 하고 안 걸린 사람은 어휴, 다행이다 하고는 곧장 외면하는 비정한 세계. 그 중간에 서서 피해자는 물론 피해자가 아닌 사람들에게까지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공감과 의심을 불러 일으켜주는 존재가 바로 소설가다. 글을 쓰는 사람은 그래서 필요한 것이고 그게 바로 작가의 효용 중 하나라고 김탁환은 믿고있는 듯하다. 

[살아야겠다]는 관념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2년 동안 메르스 완치자와 유가족을 인터뷰하고 당시 벌어진 일을 촘촘하게 취재한 뒤 에두르지 않고 메르스가 창궐하고 있는 병원과 병실 한가운데로 돌진한다. 그리고 김석주와 길동화, 이첫꽃송이처럼 피와 살을 가진, 방금 전까지 펄펄 살아있던 사람들의 얘기 속으로 들어간다. '번호'가 아닌 '사람'을 찾고자 했던 작가 김탁환이 르포 형식을 포기하고 '피해자들의 서사'가 있는 소설로 구성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첫꽃송이의 직장 상사인 선우 기자의 입을 통해 이렇게 밝힌다. 

"전쟁이든 참사든 전염병이든, 생사를 넘나드는 사건의 기록일수록 어떤 그룹의 서사인지가 명확해야 해. 이대로 간다면 메르스 피해자들은 인간이 아니라 숫자로만 남을 거야. 통계 자료로만 호출될 거고. 피해자 각자가 어떤  개성을 지녔고 어떤 꿈을 꾸었고 어떤 상처를 입었고 어떤 고민을 했는지 그 사람 됨됨이를 기록해야 해. 그리고 피해자들의 서사는 지구 전체로 확산해야 해."  

선우 기자의 말대로 그들은 어떤 개성을 지녔고 어떤 꿈을 꾸던 사람들이었나. 치과의사였던 김석주는 인간의 고통을 줄이거나 없애고 싶어서 뒤늦게 의사가 되었지만 어느날 림프종 환자가 되었고 결국 그걸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왔다가 메르스에 감염되었다. 출판사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베테랑 직원 길동화는 책을 좋아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중년 여성인데 여동생의 치료를 위해 병원에 왔다가 메르스  환자가 되었다. 방송국 수습기자인 이첫꽃송이는 병원에 와서 죽음에 이른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다가 메르스의 마수에 걸려들었다. 유난히 우애가 깊었던 그녀의 친척들도 그 장례식에 조문을 오는 바람에 단체로 메르스에 걸려 목숨을 읽거나 큰 봉변을 당했다. 세 사람 모두 같은 시간대에 같은 장소에 머물렀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공통점이 없었다. 그런데 왜 하필 이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첫 번째는 운이 없어서다. 전염병은 사람을 가리지 않으니까. 그리고 두 번째는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거나 작동되지 않아서다. 사실 우리는 두 번째에 더 분노해야 한다. 평소엔 놀다가도 위기가 오면 우리를 보호하라고 나라에 세금도 내고 국민의 의무를 다하는 거니까. 그런데 어이없게도 사람들은 두 번째보다 첫 번째에 더 쉽게 기댄다. 그래, 운이 안 좋았던 거지. 다행히 나나 우리 가족은 괜찮았지만. 안타까워... 사람이 운에 인생을 맡기고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인데. 적어도 문명화나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하는 사회에서는. 그런데 정부나 관계 당국에선 메르스를 어떻게 대처했던가. 초동 대처도 늦었고 제대로 된 콘트롤타워도 없었다. 감염된 사람은 이름 대신 번호로 호칭되었고 사람이라기보다는 '병균덩어리'로 취급되었다. 그리고 감염자가 다른 사람에게 병을 전염시킨다는 것 때문에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인식이 생겨나기에 이르렀다. 새로운 환자들은 이미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로부터 감염되니까 언뜻 들으면 옳은 소리처럼 들리지만 이건 정말 비인간적인 의견이다. 이런 생각들이 많은 메르스 환자들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만든 것이다. 

정부나 기관이 피해자를 돕기는커녕 오히려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는 이 기가 막힌 상황에 대해 이첫꽃송이는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말은 잘못된 인식이며 '몇 명을 감염시켰든 메르스 환자는 모두 피해자'라고 울부짖는다. 바로 그런 잘못된 인식 때문에 김석주는 격리변동에서 림프종 환자가 아니라 마지막 남은 메르스 발병자로 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전염성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도 보호장구로 중무장을 하고 집으로 찾아온 병원 직원을 보고 누구냐 묻는 다섯 살 우람이의 질문에 "아빠 친구 중에 안드로메다 우주인이 있는데..."라고 거짓말을 하는 남영아의 모습은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살아야겠다'라는 김석주의 간절한 희망과 '살려내겠다'라는 남영아의 처절한 저항이 우주복보다 더 두텁고 단단한 이 사회의 무관심과 두려움에 의해 사그러지고 마는 장면이다. 그래서 이 책의 표지에 우주복을 입은 사람이 등장하게 된 것이라고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는 말한다. 

김탁환은 이 소설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몇 번이나 포기할 뻔 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큰 시각이 존재하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정부는 정부대로 우왕좌왕, 뒤늦게 형식적인 백서나 내놓을 게 뻔했고 감염자나 그가족들도 매우 개별적이고 비전문가적인 입장에서 이 재난의 사회적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채 속수무책으로 당하기에 바빴던 것이다. 다행히 의사이자 피해자였던 김석주와 간호사 출신의 보호자 남영아 부부가 나타나 그들의 기록과 일기를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함으로써 소설의 중심을 잡을 수 있었던 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소설을 잘 써서라기보다는 소설 속에 나열된 팩트들이 너무 답답하고 슬프고 화가 나서 나오는 눈물이었다(라고 하긴 하지만 이건 결국 소설가가 소설을 잘 써서,라는 도돌이표가 된다). 김석주는 억울하게 죽었고 길동화는 잘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나 반쪽난 폐를 움켜쥔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다. 이첫꽃송이 같은 경우에만 겨우 정상적인 기자 생활을 하고 있다. 메르스 환자였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이차 피해를 두려워하며 신분을 숨긴채 살아가고 있는데 국가는 아직까지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작가는 책 뒷쪽에 실린 '감사의 글'에서 메르스 관련 재판이 아직도 진행중이라고 썼다. 그 재판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이것 한 가지는 분명하다. 우리가 메르스에 걸리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그 배에 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안주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한 앞으로도 달라지는 건 없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해결책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메르스에 대한 소설을 넘어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묻는 질의서나 다름없다. 사람들로 하여금 메르스가 내 문제이기도 했음을 인식하게 하고 뭔가 변화를 원하게 만드는 것, '나는 메르스에 걸리지 않았으니까'라는 허망한 안심이 얼마나 부질 없는것인지를 일깨우는 것, 그걸 소설만큼 잘 할 수 있는 장르가 또 있을까? 그제 전철 안에서 이 소설을 다 읽고 눈물을 삼키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여기 탄 사람들 모두 메르스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냥 한 때 있었던 전염병이고 이미 다 끝난 거라고만 생각하겠지. 나도 [살아야겠다]를 읽기 전엔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필요한 거다. 김탁환 작가는 그래서 고마운 사람이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김탁환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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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기쁨 - 필립 로스의 [미국의 목가]

요즘 출퇴근길에 필립 로스의 [미국의 목가]라는 반어법적인 제목의 소설을 읽고 있는데 2부 첫머리에 말썽쟁이 딸 메리 때문에 장갑 공장을 찾아온 비키라는 여자에게 스위드가 장갑 생산 공정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무두질 하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가죽 무역 이야기, 그리고 장갑 사업의 역사를 거쳐 재단 재봉작업에 대한 아주 세세한 공정과 일화까지 장장 18페이지에 걸쳐 숨가쁘게 펼쳐지는 이 스펙터클한 묘사는소설가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한 하나의 교본이나 다름없다.  

필립 로스는 이 한 장면을 쓰기 위해 가죽과 장갑 생산에 대한 지식을 얼마나 많이 섭렵했을까. 책을 읽다가 너무 좋아서 전철 안에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무릇 소설을 읽는 쾌감은 이런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카메라로 보여주고 스토리라인으로 알려주는 것만으로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서술의 세계. 필립 로스의 전작을 다 구해서 읽고싶다.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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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에 있는 연희문학창작촌은 참 좋은 곳이더군요. 우리나라 현역 작가들이 들어와서 일정 기간 작품을 쓰고 가는 일종의 레지던스였는데, 우선 조용한 동네에 자리 잡고 있는 벽돌 건물이라 고전적인 느낌이 났고 녹음이 우거진 건물들 사이로 난 산책로는 걷는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곳이었습니다. 2018년 10월 13일 토요일 오후, 연희문학창작촌 안에 있는 <책다방 연희>라는 곳에서 '독하다 토요일'의 일곱 번째 모임이 있었습니다. 지난 여섯 번은 한 달에 한 번씩 회원들끼리 대학로 카페 겸 서점인 '책책'에 모여서 한국 소설들을 읽었는데요(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 -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 - 한강의 [흰] - 김언수의 [뜨거운 피] - 배명훈의 [안녕, 인공존재!] -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이번엔 번외편이자 오픈 모임으로 김탁환 선생을 모시고 그의 소설 [이토록 고고한 연예]를 읽기로 했던 것입니다. 

저와 윤혜자 씨가 페이스북을 통해 공지를 했고 소설가 김탁환 선생도 따로 공지를 해서 많은 분들이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2시부터 모여서 한 시간 동안 묵독을 하고 3시부터 행사를 시작하기로 했었지만 장소가 바뀌어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지각을 했습니다. 김하늬 씨 같은 경우는 뒷문 쪽으로 오는 바람에 책다방 연희로 들어오질 못해서 고생을 했구요. 2시 40분 경에 김탁환 선생이 와서 같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조금 더 사람들을 기다리다가 3시 10분경에 제가 인사를 하며 행사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독하다 토요일'은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한 시간 정도 미리 정해진 책을 각자 가져와 묵독하고 그 이후에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인데 모임의 모토가 '너무 열심히 하지 말자'라는 얘기를 인사말 삼아 했습니다. 우리가 문학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뭔가 이루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너무 심각한 토론을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 저의 처음 생각이었고 아직은 그런 생각이 모임에서 통용되는 것 같아서 좋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모임이 끝나면 얼른 같이 술을 마시러 술집으로 몰려간다고 했더니 다들 웃으셨습니다.  

'우리는 왜 소설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김탁환 선생이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이토록 고고한 연예]에서 감명 깊었던 구절을 낭독해보는 코너가 있었습니다. 정아름 씨가 나와서 87페이지 부근에 있는 달문이 인삼 장사하는 대목을 읽었고 572페이지 부분도 좀 긴 내용이지만 읽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제가 203페이지쯤 달문이 선배 재인들을 만나 산대놀이로 번 돈을 몽땅 나눠주고 나서 모독과 나누는 대화를 읽었습니다. 

김탁환 선생은 자신이 쓴 문장을 남이 읽는 걸 들을 때마다 묘한 감정이 든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독자는 인상 깊은 부분이라며 낭독을 하는데 막상 작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힘을 주었던 대목을 찾아 읽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죠. 작가와 독자의 입장이 그만큼 다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소설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얘기는 다른 데서는 해본 적이 없다고 하면서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김탁환 선생에겐 [이토록 고고한 연예]라는 작품이 어떤 분기점이 된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작품임을 넘어서 이제 '달문의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까지 가지게 되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앞으로 10년 정도는 계속 달문의 마음으로 '사회파 소설'을 계속 써내려갈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달문이 예술에 임하던 자세로, 달문이 사람들을 만나던 자세로, 그리고 나아가 달문이 인생을 살아가던 그 눈부신 자태로. 

그러기 위해서 일단 소설가로 살아가는 것 이외에 모든 것을 정리했다고 합니다. 작업실도 너무 커서 크기를 줄이고, 영화쪽 만나던 사람들도 대폭 정리했고(선생의 작품이 영화화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칼럼이나 에세이도 안 쓰는 걸 원칙으로 정했다고 했습니다. 강연도 도서관 강연 말고는 안 하기로 하고요. 쉽게 말하면 돈이 되는 건 거의 다 안 하기로 한 것인데 ‘이게 다 달문 때문’이라며 웃었습니다. 가히 마루야마 겐지가 산속으로 들어갈 때 세웠던 결기만큼 김탁환의 마음가짐도 (온화한 성품과는 달리) 매우 분연했습니다. 

오는 10월 22일에 나오는 새 소설 [살아야겠다] 얘기를 했습니다. 메르스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토록 고고한 연예]보다 20페이지 정도 더 두꺼운 책이라 했습니다. 추천사를 써준 심리 기획자 이명수 선생이 '해머 같은 소설'이라고 했다지요. 우선 두께 때문에 그랬겠지만 아마도 프란츠 카프카가 얘기한 그 '망치'까지 중의법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36살의 주인공은 실존인물이었는데 마침 오늘이 그의 생일이라고 했습니다. 김탁환 선생은 학생들을 지도할 때도 언제나 주인공의 나이와 생일 등을 꼭 물어본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인적사항들이 촘촘히 정해져야 비로소 소설의 등장인물은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걸 부여받은 캐릭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볼륨 자체부터 다르니까요. 예전에 허 샤오시엔 감독이 줄리엣 비노쉬와 <빨간 풍선>이라는 영화를 찍을 때 카메라 프레임 안으로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줄리엣 비노쉬의 남편 직업이 교수라는 것과 예전에 부부 사이에 있었던 자잘한 에피소드들까지 설명해주더라는 애기를 듣고 감탄했었는데, 또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역시 뛰어난 작가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나오기 이전부터 김탁환 선생은 ‘인간은 이야기하는 동물이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했습니다. 세상엔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 이야기 앞에서 무력해지지 않겠다는 태도가 소설을 읽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이야기 앞에서 무력해지는 경우는 예를 들면 ‘영화를 보는 순간’이라 했습니다. 독서와는 달리 관객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이 영화가 보여주고 들려주는 대로만 받아들여야 하니까).
그런데 단편 소설을 읽고 내 인생을 바꾸었다, 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합니다. 인생을 바꾸는 건 언제나 장편소설이라는 거죠. 왜 그럴까.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많은 곳을 가기도 하구요. 그런데 그 무엇 하나 나의 의도대로 되는 건 없습니다. 태어나보니 이미 내 부모가 있는 것이고 우연히 만난 사람과 하라고 하니까 그냥 결혼을 하기도 합니다. 활동하는 시대도 내가 정할 수 없죠. 그런데 소설가는 그런 걸 다 의지대로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장편소설에서는. 그래서 장편소설을 쓴다는 것은 주어진 대로 살지 않고 작가가 원하는 세상을 의지대로 그려나가는 행위라고 뜻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작가는 언제나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고 했습니다. [전쟁과 평화]도 [죄와 벌]도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물을 만듭니다. 김탁환은 왜 정도전을 골랐을까. 왜 하필 달문이었을까. 이유는 그 인물에 그의 질문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어느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읽어오라고 시켰더니 다 읽은 학생들이 ‘이 소설에 어떤 정보가 들어 있어서 읽으라고 한 건지 잘 모르겠다’라는 반응을 보여 충격 먹은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 질문을 한다는 건 학교 다니는 내내 모든 책은 시험에 나오는(또는 세상살이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읽는 것이지 이야기가 만들어낸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한다는 걸 배운 적이 없다는 뜻이었으니까요. 아무 감정을 싣지 않고 그냥 이야기만 하려는 사람이 있는데 김탁환 선생은 그게 가장 안 좋은 태도라고 했습니다. 논리적이기만 하면 내용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착각이라는 거죠. 인간은 감정이 전달되어야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허구인 소설을 읽어야 하는 것이구요. 

김탁환 선생은 소설은 적어도 세 번은 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는 그냥 읽고, 두 번째에는 작가의 입장에 서서 왜 하필 그 인물이고 그 시대였을까를 생각하면서 읽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읽으면서 확 끌리거나 유난히 싫은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하며 읽어보라 했습니다. 그런 게 눈에 띄는 이유는 작가가 그걸 쓰기 전에 ‘천 번 정도’는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소설은 태생부터 굉장히 ‘의도적’인데 그런 건 장편소설 말고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모여 장편 소설을 읽는 일은 매우 소중한 것이라는 얘기도 했습니다. 무엇인가를 함께 느껴보자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제가 ‘작가 김탁환이세 번씩 읽고 싶어질 정도로 짱짱하게 쓰는 외국 작가가 있으면 몇 명만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존 스타인백과 필립 로스, 그리고 가즈오 이시구로와 오르한 파묵을 들었습니다. [분노의 포도], [빨강머리의 여인], [순수 박물관] 등등의 작품을 거론하면서 말이죠. 

“베스트셀러 작가로 살지 않겠습니다. 진지한 독자 만 명과 살겠습니다. 달문처럼.” 

이제 달문처럼 살겠다고 한 김탁환 작가는 대학 때 우리나라에 18세기부터 있었던 대하소설들을 읽고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유씨삼대록]이나 [곽장양문록] 같은 소설을 읽은 거죠. 그것도 몇 번씩이나.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역사소설을 쓰게 되었고 역사 공부를 더 하게 되었으며 또 그러다 보니 이제는 자기만 쓸 수 있는 게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밖에 못 쓰는 글을 쓰자, 인간의 본질을 틀어쥐고 장편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자, 라고 결심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결론처럼 했을 땐 장내가 잠시 숙연해졌습니다. 

그러나 숙연함도 잠시. 강의가 끝나고 몰려간 백암순대국에서는 순대와 수육에 많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갔고 2차로 간 치킨집에서는 각자 치맥을 아낌없이 들이부었습니다. 그 날 처음 뵙는 분들도 많았는데 모두 금방 친해져서 너 나 할 것 없이 웃음꽃을 피웠고 평소엔 뒷풀이에서 맥주만 간단히 마시다가 먼저 사라지곤 하던 김탁환 선생도 그날은 아주 작정을 하고 나왔는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함께 술을 마셨습니다. 결국은 거의 모든 멤버가 3차인 중화요리 전문점 ‘문차이나’까지 가서 백주를 벌컥벌컥 마시며 밤을 불살랐습니다. 

모두 취해서 다행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가지와 핸드폰 속 사진들을 보니 대단했더군요. 그런데 기분이 매우 상쾌했습니다. 소설을 통해 만나서 그런지 모두 같은 마음처럼 느껴졌구요. ‘독하다 토요일’의 번외편 모임은 이렇게 끝을 맺고 다음 달엔 ‘독하다 토요일 2기’ 모임을 시작해야 합니다. 우선 앞으로 회원들이 함께 읽을 책들을 정해야 하는데, 이번엔 회원 여러분들의 추천을 받아 리스트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한국의 소설에 국한해서 읽어볼까 합니다. 어떤 책들이 좋을까요? 혹시 좋은 책 알고 계시면 추천 좀 해주세요. 꼭 새 책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우리가 아직 안 읽은 책은 다 새 책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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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쯤 '오빠, 뜬금없지만 최근에 읽은 책 중에 몇 권만 추천해 주실 수 있으세요?' 라는 문자가 왔다. 대학 졸업 후에는 별로 연락이 없다가 페북 친구가 된 써클 후배인데 미술 전공자 아닌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는지 궁금했다고 한다. 아마 내 페이스북 담벼락을 훑어보다가 생각난 김에 혹시나 하고 메시지를 보내온 것 같았다.

내가 대뜸 "어, 그럼 이런이런 책을 읽어봐" 라고 얘기할 만큼 지적 역량이 되지도 않고 순발력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좀 난감하긴 했지만 재미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마침 나 혼자 집에 있는 저녁이어서 잠시 책꽂이를 둘러볼 시간이 있었다. 예전에 읽거나 가지고 있던 책은 말고 지금 우리집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 중에 몇 권만 추천해 보기로 했다. 나 혼자 손에 집히는 대로 책을 몇 권 거내 거실 탁자에 놓고 책을 설명하는 메모를 짧게짧게 썼다.

내게 무해한 사람 - 최은영
최은영 신작 소설집인데 작품 전체가 다 좋아. 전작 <쇼코의 미소>도 좋고.

여름, 스피드 - 김봉곤
작가가 실제로 게이인데 실려 있는 모든 단편이 게이들의 사랑과 섹스 이야기. 자기 얘기를 용감하고 귀엽게 쓰는 작가. 읽는이에 따라 호오가 엄청 갈릴 것 같긴 하지만. 난 이 책에 실린 데뷔작이 제일 좋았어.

이토록 고고한 연예 - 김탁환
조선 후기 실제 인물인 거지이자 광대였던 달문의 이야기. 아라비안나이트처럼 얘기가 술술 흘러넘쳐. 소설가 김탁환이 자기가 만난 최고의 캐릭터라고 하더라.

일본적 마음 - 김응교
일본에서 오래 생활한 교수가 쓴 에세이인데 어떤 건 좋고 어떤 건 그저 그래.

염소의 축제1,2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노벨문학상을 이걸로 받았다고 하던데 정말 끝내주는 실화소설. 도미니카 독재자였던 투르히요 대통령 암살사건. 후반에 나오는 긴 고문장면들은 압권이야. 잔인한 거 혐오하면 못 읽을 듯. 암튼 재밌어.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 신철규
참 착한 시를 쓰는 시인. 시가 슬프고 깨끗해.

강원국의 글쓰기 - 강원국
내 책 원고 쓰는데 도움 받으려고 산 책. 다 알고 있는 내용 같아도 막상 읽어보면 새삼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충고와 사례들. 어쩌면 유시민의 글쓰기 책보더 낫다.

허수경 산문집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어디를 펼쳐도 기가 막히고 단정한 산문을 만날 수 있는 책. 시인의 산문이란 이런 거구나 하고 감탄하게 돼.

열두 발자국 - 정재승
요즘 인기 있는 책이라 샀는데 인간 심리와 통찰에 대한 얘기들을 강의식으로 쉽게 풀어놔서 잘 읽혀. 강의할 때 참고할 사례들도 많고.

편의점 인간 - 무라타 사야카
편의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 소설 주인공처럼 작가가 지금도 편의점에서 일을 한대. 아르바이트생으로. 허먼 멜빌의 <바틀비> 같은 느낌인데 작년 말에 읽은 책 중 가장 좋았어.

그녀는 추천 목록 중 읽은 책이 딱 한 권 있다고 했다. 그리고 땡기는 책이 딱 한 권 있다고도 했다.


#여기서퀴즈 #무슨책이었을까요 #맞춰도상금상품없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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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잖은 사람도 운전대만 잡으면 욕쟁이로 변하는 경우가 있다. 운전은 생명과 직결되는 행위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누구든 좀처럼 다른 운전자의 입장에 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기서 왜 깜빡이를 안 켜?
저 아저씨 왜 안 가고 저기서 뭉기적거리는데?

나도 그런 운전자 중 하나였다(이제 운전 안 한지 십 년도 넘었지만). 어느 늦은 밤 아내와 택시를 타고 집에 오다가 우리가 들어가야 할 진입로 입구를 막은 채 오도가도 못하는 차 한 대를 만났다. 아, 뭐하는 거야...? 라고 작게 중얼거리는 내게 택시운전사가 하신 말씀은 정말 뜻밖이었다.

"다 이유가 있어요."
"네?"
"서있는 차는 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

과연 그 차도 조금 있다가 뭔가 사소한 문제를 해결한 모양인지 위잉,하고 가려던 길로 가버렸다. 어안이 벙벙했다. 그렇구나. 우리는 "아저씨 말씀이 명언이네요!'라고 외치며 택시비에 팁 이천 원을 더 얹어 드렸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고, 누구나 아프다. 시인 이성복은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고 썼다. 사실은 아프지 않은 게 아니라 아픈데도 서로 이유를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유를 알고자 하는 대신 누군가의 마음에 '우울증'이라는 이름을 붙인 뒤 어서 정신과 의사를 만나보라고 충고한다. 나는 의사나 심리치료사가 아니니까, 미안하지만 다른 데 가서 잘 치료하고 오라고.

'정혜신의 정적심리학 [당신이 옳다]'는 마음이 아파서 숨이 넘어가는 사람은 큰 병원이나 전문가에게 보내지 말고 심폐소생술(CPR) 하듯 지금 당장 여기서 섬세한 시선과 지지를 통해 보살펴줘야 한다고 말하는 책이다. '적정기술'이란 무엇인가? 간단하지만 본질을 건드려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책에 나온 것처럼 아프리카 아이들이 힘겹게 이고 다니는 물동이 대신 큰 공 모양의 물통을 만들어 굴리고 다닐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언젠가 보았던, 오염된 물에 꽂고 빨아도 순식간에 정수 작용을 해 오지의 아이들도 맑은 물을 마실 수 있게 해주는 빨대 같은 것이다.  

정혜신은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라고 묻는 것만으로 엄청난 비밀을 털어놓게 하거나 삶이 달라지게 하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고 한다. 사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다가가 그렇게 묻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질문 전후로 털어놓는 이야기의 질이 너무나 달라지는 걸 계속 경험했기 때문에 그렇게 묻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건성으로 묻지 않고 정말 호기심을 가지고 사소한 부분까지 마음으로 느끼면서 세세하게 물어야 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어떤 이유로 집을 뛰쳐나와 울다가 밤늦게 전화를 걸어온 친구에게 "야, 달밤에 체조하지 말고 빨리 집으로 들어가."라고 충고하는 건 당사자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정혜신은 바로 이 지점에서 한 사람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다고 단언한다. 자신의 자의적 판단과 논리에 입각해 '빨리 들어가라'고 다그치는 대신 "니가 이 시간에 집 밖을 배회하고 있다면 그건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섬세하게 공감해주는 순간 '천애고아' 같았던 마음이 순식간에 풀리고 가슴엔 따스한 체온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책을 읽어볼수록 심리적 CPR의 핵심은 '행동'이 아니라 '태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 많은 자원봉사자들은 진도에 내려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울면서도 무슨 일이든 했다고 한다. 같이 손 붙잡고 울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자는 것만으로도 유족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 일인지는 정작 그들도 몰랐던 것이다. 이는 심리적 CPR이 이해하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고, 논리의 영역이 아니라 감정의 영역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해주는 사례다. 그리고 그 기술의 핵심 키워드는 언제나 '사람'과 '공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달리 '한'이 많은 민족이다. 스트레스가 그만큼 많다. 그런데 그걸 어디 가서 털어놓을 곳이 없어 못된 시어머니가 되고 태극기 부대가 되고 가출 청소년이 되는 것이다. 그럴 때 나의 감정에 집중해주고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뒤늦게 결혼하고서 가장 좋았던 것은 우주 최강의 '내 편'이 하나 생겼다는 사실이었다. 언제나 내 이야기에 먼저 귀를 기울여주고 내 기분이 어떤지 제일 먼저 헤아려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눈보라 치고 성난 파도가 넘실대는 바깥에서의 삶을 견디게 해주는 철갑옷을 얻은 것과 같았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과 심리 기획자 이명수 부부. 그들은 책상머리가 아니라 국가폭력 피해자,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이 생과 사를 넘나드는 심리적 참전의 현장에서 그들이 개발한 '심리적 CPR'로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는 전사들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엄격한 잣대나 의학 지식이 아니라 공감이다. 묻고 또 물어 마침내 같은 입장에 서고 또 공감함으로써 벼랑끝에 선 사람들을 살린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온 수 많은 경험담과 사례는 한 번 읽고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늘 곁에 두고 도움이 필요한 타인을 만나는 경우마다 적용시켜야 할 보석 같은 이야기들이다. 

방탄소년단은 얼마 전 유엔에서 "오늘의 저는 과거의 실수들이 모여서 만들어졌습니다. 내일, 저는 지금보다 조금 더 현명할지도 모릅니다. 이 또한 저입니다. 그 실수들은 제가 누구인지를 얘기해주며, 제 인생의 우주를 가장 밝게 빛내는 별자리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누구였는지, 내가 누구이고 싶은지를 모두 포함해 나를 사랑하세요."라는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싶어도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옆에서 "미안해. 니가 그렇게 힘든지 몰랐어."라며 진심으로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나는 나를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다. 그리고 당신이 옳다, 라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공감의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살린다. 그게 정혜신이 이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전부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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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카톡으로 단편소설을 하나 보내왔다. '요즘 2030한테 젤 핫하대'라는 문자와 함께. 창비에서 상을 받은 단편소설인데 장류진이라는 신인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제목이었다. 

첨부된 창비 URL을 눌러서 바로 읽기 시작했다.  '요새 판교 노동자들에게 최고 인기...세 번 읽었다'라는 미다시(라는 말은 쓰면 안 되지만)가 왜 붙었나 했더니 이게 '판교 테크노밸리'의 스타트업 기업 얘기라 그런 모양이었다. 

"합시다, 스크럼." 이라는 첫 문장부터 '홍콩행 왕복 티켓을 결제했다. 조금 비싼가 싶었지만 오늘은 월급날이니까 괜찮아, 라고 생각했다.'라는 마지막 문장까지 단숨에 읽었다. 

읽으면서도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다 읽고 나서 뒷맛까지 상큼했다. 사장이 직원들 이름을 다 영어로 바꿔 부르게 한 이유가 '수평적 일처리' 때문이 아니라 박대식이라는 촌스러운 본명보다 데이빗이라는 영어 이름으로 불리고 싶어서가 아닐까 의심하는 장면부터 삐져나오는 자잘한 유머들이 작품 전반에 고르게 배어 있다. 그리고 '하이퍼 리얼리즘'이란 평을 들을 정도로 회사 생활이나 업무 처리에 대한 리얼한 묘사가 압권이다. 

중고물품을 판매하는 '우동마켓'이라는 앱 회사를 배경에 '월급을 카드 포인트로 받게 된 어떤 여자 얘기'가 기둥이긴 하지만 그것만 놓고 얘기하면 이 소설을 폄하하는 게 된다. 짧은 분량과 날아갈 듯 가벼운 문체 속에 현대인을 바라보는 냉소적인 시선이 제대로 살아 있으니까. 엔씨소프트 건물이 만든 네모난 하늘 안으로 용이 지나간다는 상상도 재미 있고 카드 포인트 여자가 기르는 거북이의 이름이 람보(람보르기니의 준말)라는 설정도 재미 있었다. 마지막에 어린 개발자에게 레고를 선물하는 장면과 그의 반응 묘사는 정말 좋았다. 

소설보다 먼저 수록된 인터뷰를 읽어보니 장류진은  7년 동안 회사원이었고 한겨레문화센터를 다니면서 처음 소설을 써보았다고 한다. 뭔가 미야베 미유키 아줌마의 데뷔 때와 비슷하지 않은가. 그리고 손보미 작가와 권여선 작가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런 인터뷰를 읽고 나서 그런지 몰라도 왠지 손보미의 발랄하고 미국스러운 문체와 권여선의 의뭉스러운 유머가 이 작가의 글에서 한꺼번에 버무려져 있는 느낌도 좀 들었다. 아무튼 아내 덕분에 느닷없이 읽은 단편이지만 꽤 재미 있었다는 얘기. 이른 저녁부터 술약속이 있으니 빨리 독후감 올리고 나가야겠다는 결론.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 읽으러 가기 --> http://bit.ly/2RrjePd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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