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쓰게 되었네요. 독하다 토요일에서 정한 책의 마지막권은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이었습니다. 지난 9월 8일 오후 2시 대학로 서점 '책책'에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날은 모임이 끝나고 저희집 '성북동 소행성'에 가기로 했었고 옥상에서 맥주도 한 잔씩 하기로 했었습니다. 그래서 미리 김하늬 씨에게 우쿠렐레 연주를 부탁하기도 했었구요. 약속대로 김하니 씨가 우쿠렐레를 가져와서 더 즐거웠던 토요일이었습니다. (아깝게도 김인혜 씨는 집안일 때문에, 손영연 씨는 회사일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정아름 씨도 집안 사정으로 참석을 못했고 김성희 씨는 결혼식장 갔다가 전철을 반대로 타는 바람에 고생고생하며 늦게 도착했습니다. 왜 그런 날 있잖아요. 평소에는 안 그러는데 그날만 이상하게 헷갈리는 날. 임기홍 씨는 여전히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원서를 들고 나타났구요. 독하다 토요일 때만 읽는 책이 틀림 없는데, 다 읽으면 자신이 정리한 영어단어장을 회원들에게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은 5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단편소설들이 모여 장편을 이룬 작품입니다. 좀 특이한 시도라고 할 수 있죠.  저는 이 작가 역시 '판타스틱'이라는 SF잡지에서 발견했는데요, 데뷔작이 <드림,드림,드림>이라는 단편이었습니다. 아쿠다가와라는 소설가를 알게 해주신 친할아버지에게 감사한다는 얘기를 어딘가 인터뷰에서 읽었는데 그런 언급 자체부터 좀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보건교사 안은영]이라는 소설을 읽고 혹딱 반했죠. 평범한 교사가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이사장의 손자인 한문선생과 손을 잡고 귀신을 퇴치하는 내용인데 매우 재미 있습니다. 

아무튼 저는 이렇게 좋아하는 작가지만 윤혜자 씨는 자기 취향이 아니라는 부정적인 태도로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어린 티가 팍팍 나는 글이라는 평가였죠. 그런데 김하늬 씨는 대체로 재미 있게 읽었다고 했습니다. 요즘 들어 온기를 품고 있는 글들이 좋아졌는데 이 작가의 글이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주인공 중 칼에 오십몇 번이나 찔려 죽는 사람도 나오지만. 그러면서 등장인물 중 양혜경과 윤창민 등을 거론했는데,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짧은 글들임에도 완결성이 느껴지고 연결도 잘 되어 있어 좋다는 소감도 얘기했습니다. 

임기홍 씨는 병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정말 큰 병원에서는 이런 일들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고 했습니다. 통속적인 남녀 역할이 바뀌어진 것들도 재미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외과수술을 잘 하는 천재소녀 얘기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면서 갑자기 '언어학 개론' 얘기를 꺼내며 'Me Tazan, You Jane' 얘기를 했고 퍼포먼스(실제 실행)와 컨피던스(내재적 능력)의 차이 등을 매우 심도 있게 설명해서 사람들의 기를 죽였습니다(자세한 내용은 물론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천재들은 감성적인 면에서 무딘 편인데 여기 나오는 천재는 너무 쿨하다고도 했습니다. 그는 소설 쓰는 사람들이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얘기를 쓸 수 있을까 늘 감탄한다는 것입니다. 이 소설은 중간 이후로 좀 루즈해졌다가 마지막에 화들짝 놀라게 하는 면이 있어서 좋았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김하늬 씨는 자기는 원래 '숲보다 나무를 보는 성향'인데 모든 인물이나 사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면에서 이 책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쓴 [올리브 키터리즈]와 매우 비슷한 책이라고 느꼈다고 했습니다. 모여서 하나의 책을 읽으면서 각자 예전에 읽었던 책을 떠올리는 것도 독서모임의 즐거움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정아름 씨는 한 번 통독을 하고 다시 읽었는데도 재미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두번째 읽을 때는 어디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살피면서 읽었는데 진선미 아줌마 부분을 가장 웃으면서 읽었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정세랑이 긍정적인 부분을 잘 다루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뭔가 세어보았다고 했는데( 열다섯 개라고 했는데) 뭔지는 생각이 안 납니다. 너무 늦게 정리를 하다 보니 이렇군요. 거듭 죄송합니다. 

김하늬 씨가 중간에 [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싶어] 얘기를 했는데 아마 제목 때문에 그런 얘기를 한 것 같습니다. 

윤혜자 씨는 작가가 '머리 좋은 편집자'로 느껴졌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이든 사람들은 잘 그리지 못했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20대 30대들에게는 각광을 받을 만큼 잘 썼다는 얘기를 했고, 그것만으로도 베스트셀러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출판기획자의 입장에서 얘기를 해보면 무슨 책이든 연령층에 따라 독자층이 확연히 구분되기 마련인데 자신이 처음 기획을 했던 [마흔의 심리학]이라는 책도 중년들에겐 공감을 얻었지만 20대들에겐 외면을 받았던 경험을 떠올린 것 같았습니다. 

정아름 씨가 입사 10년차의 고민은 무엇일까 얘기를 시작했더니 김하늬 씨가 '회사 생활보다는 그 나이에 찾아오는 우울증 등 개인적인 심리가 더 큰 일'이라고 했고 이어 정아름 씨가 책 안에서 싱크홀에 빠졌던 여자의 슬럼프 부분이 마음에 와 닿았다고 하며 자신도 정신과 의사나 전문가의 상담을 한 번 받고 싶다고 했더니  윤혜자 씨가 상담은 자기가 해줄 테니 어서 돈을 내라고 농담을 해서 다들 웃었습니다. 

어쩌다가 대학교 얘기가 나왔고 '통페합'에 대한 비판이 중구난방으로 쏟아졌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윤혜자 씨는 '출판사의 기획'에 의해 쓰여진 책인 거 같은데 너무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다 보니  중간중간 기복이 느껴져 작가가 겨우겨우 썼을 것 같은 안쓰러운 느낌도 받았다고 했고 정아름 씨가 차라리 장편소설이라는 얘기를 안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내놓았습니다. 그래도 젊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다루는 시선이 좋았고 특히 장유라 편에서 화물연대에게 빵을 주는 장면을 읽으며서 이 작가가 사회적인 문제도 잘 다루는 것 같다고 윤혜자 씨가 잠깐 칭찬을 했습니다. 

그후 관장합시다, 10년 후 영점 조정, 문용림 교조적이더라, 진선미 아줌마의 딸...등등 아무말 대잔치 같은 순간이 있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김성희 씨도 통폐합 얘기를 오래 했고 소설에서 귀에 벌 들어간 사람이나 컬에 찔린 사람 얘기는 너무 '잘 기획된 느낌'이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임기홍 씨가 대학 얘기에 나도 공감한다고 하면서 9월이 수시입학이 절정인데 교사로서 입시를 대하는 부모들을 보면 마치 자녀의 배우자를 고르는 느낌이라는 얘기도 했습니다. 

서동현 씨는 여기 모인 사람 중 자기만 공대 출신(건축과)이라고 얘기를 꺼내면서 이번 책은 많이 읽지 못하고 왔지만 일단 문체가 매우 좋았고 눈에 띄는 표현들도 많았다고 했습니다. '통속적이고 적나라한 일상을 잘게 다져서 계속 카메라로 비추는 느낌'이었다고 간단한 총평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건축가들도 다 스타일이 달라서 어떤 사람은 전체부터 구상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작가처럼 장면장면을 그려서 나중에 한덩이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했습니다. 소설을 건축에 비교하니 또다른 재미가 있었습니다. 

김성희 씨가 자신은 '병원 드라마 성애자'라는 고백을 하며 그래서 이 책을 더 각별하게 읽었다는 얘기를 했고 그러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싫었던 기억들에 대해 얘기를 하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참여해 그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그러다가 임기홍 씨가 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에스] 얘길 꺼내며 '우리는 개체가 사라지기 전에도 진화를 하는 놀라운 일을 한다. 그래서 인간 세상은 그냥 쫓아가기에도 정신이 없다'는 내용의 얘기를 해서 모임의 종말을 재촉했습니다. 

이날은 '혜화칼국수'로 이차를 가서 전과 칼국수 등을 먹고 약간의 술을 마신 뒤 약속대로 저희집 '성북동소행성'에 올라갔습니다. 각자 마실 맥주를 사가지고 옥상에 올라가 노을을 바라보며 놀있습니다. 커다란 다라이에 얼음물을 채우고 맥주를 담가놓았더니 뭔가 피크닉을 온 것 같았습니다. 김하늬 씨가 우크렐레를 꺼내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불렀고 저도 답례삼아 기타를 가져와 노래를 불렀습니다. 같은 뚜라미 출신이지만 저와 다르게 기타를 매우 잘 치는 임기홍 씨가 반주를 해줘서 사람들이 이런저런 노래를 많이 부르고 놀았습니다. 원래는 노을 지고 달 뜨면 헤어질 생각이었는데 너무 재미 있어서 열한 시 넘어서까지 놀았습니다. 

'독하다 토요일'을 시작할 때 함께 읽기로 했던 책들(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 한강의 [흰] 김언수의 [뜨거운 피] 배명훈의 [안녕, 인공존재]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이 모두 끝났습니다. 다음엔 번외편인 김탁환의 소설 [이토록 고고한 연예]를 읽을 때 만나기로 하고 그때 다음 책들은 뭘로 정할까도 얘기해 보기로 했습니다. 

끝으로 제가 써 본 세줄평을 첨부해 봅니다: 

50여 명의 등장인물들이 희미한 끈으로  이어진 이 연작소설은 로버트 알트만의 [숏컷]을 생각나게 한다. 병원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많다. 생과 사를 다루기에 적합해서 그럴 것이다.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도 병원을 중심으로 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태피스트리처럼 엮여지는데 마지막엔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영화처럼]이 그랬듯이 극장에서 감동적인 결말을 맺는다. 가볍고 따뜻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살인이나 불륜, 연애, 섹스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섞어도 차가워지지 않는 건 정세랑이라는 작가만의 능력일 것이다. 


Posted by 망망디
,

* [킬링 디어]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시작은 이랬다. 점심시간에 서점에 가서 벼르고 있던 신형철의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다시 내려놓고 나왔다. 그날 산 다른 책들과 신형철의 책을 번갈아가면서 읽고싶지 않아서이기도 했고 신형철의 책을 읽으면서 다른 책들을 같이 읽을 자신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그만큼 신형철의 문장들은 밀도가 높고 생각의 깊이가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책의 목차를 펼쳤을 때 1부의 첫 번째 단락이 '당신의 지겨운 슬픔 - <킬링 디어>가 비극인 이유'였기 때문이었다. 좋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나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놓쳤던 것이다. 어떻게 맨 처음 나오는 글부터 텍스트의 내용을 몰라 공감대가 전혀 없이 책을 읽을 수가 있겠는가, 라는 고지식한 이유에서 나는 당장의 독서를 포기했다. 

어제 영화 [킬링 디어](요르고스 란티모스, 2017)를 내려받아 노트북으로 보았다. 굉장한 영화였다.  아르테미스와 아가멤논에 얽힌 고대 그리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놓은 차갑고 상징적이며 현대적인 이 영화는 겉으로는 복수극을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은 '딜레마'에 대한 내용이었다. 외과의사인 스티븐 곁으로 마틴이라는 소년이 맴돈다. 처음엔 그 둘이 무슨 사이인지 관객은 알 수가 없는데 차차 대화가 이어지면서 스티븐이 예전에 수술을 하다가 실수로(아마도 술을 마신 채 수슬을 하다가) 마틴의 아버지를 죽였음이 밝혀진다.  스티븐은 죄의식과 측은지심으로 마틴에게 매우 친절하고 다감하게 대해주지만 마틴은 그 정도로는 곤란하다고 말하며 더 큰 것을 요구한다. 니가 내 가족을 죽였으니 나도 니 가족을 죽여야겠다는 것이다. 

마틴에게는 저주의 능력이 있다. 스티븐의 아들 밥에게 하체 마비가 오더니 딸인 킴까지 똑같은 증세가 나타난다. 이제 그들은 피눈물을 흘리다 죽게 된다고 말하는 마틴. 방법은 마틴이 자신의 가족 중 한 명을 직접 죽여야 하는 것뿐이란다. 그렇지 않으면 세 명이 모두 죽는다. 망설이는 것은 더 큰 비극을 부르는 옵션일 뿐이다. 이제 중요해진 것은 마틴이 가진 초능력이 아니라 그로 인해 아무 잘못도 없이 죽어야 하는 마틴 가족의 입장이 되어버렸다. 가장 고전적인 복수란 무엇인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아니던가. 그러나 타인의 슬픔을 내 아픔처럼 똑같이 이해하고 공감해서 기꺼이 상대의 복수극에 생명을 내어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형철은 선택의 기로에 선 스티븐을 보며 '여기에는 고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고역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스티븐은 어떻게 해야 할까.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음을 알게 된 가족들은 목숨을 건지기 위해 스티븐에게 비굴하게 사정한다. 어차피 한 사람이 죽어야 하는데 그게 꼭 나일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이 책의 제목이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고 붙은 것은 아내 신샛별 평론가의 조언 덕분이었다고 한다. 신형철이 슬픔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 것은 2014년 4월 16일 때문이기도 하고 2017년 1월 23일 때문이기도 한데, 아다시피 전자는 세월호가 침몰한 날짜이고 후자는 아내가 수슬을 받았던 날짜였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슬퍼해야 할 일이 일어난다면 그 일이 다른 한 사람을 피해가는 행운을 전혀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다. 같이 겪지 않고는 서로의 슬픔을 이해할 수 없는데, 그 상황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세월호를 추모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지겨우니 그만 해라'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킬링 디어]에서도 마찬가지다. 마틴의 원한과 억울함을 다른 등장인물들은 이해할 수 없다. 야멸찬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인간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신형철은 이 영화가 그 명제를 확인시켜주는 훌륭한 영화이므로 슬픈 작품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영화가 '슬픔을 이해하는 슬픔'이라는 책의 맨 처음 이야기로 등장하게 된 된 것이다. 

이 글을 영화일기에 올려야 할지 독서일기에 올려야 할지 잠깐 망설였는데 결국은 독서일기에 올리기로 했다. 신형철의 책이 [킬링 디어]라는 영화로 나를 이끌었으니까. 그리고 얼마 읽지 않은 채 독서일기까지 써놓았으니 이제 할 일하고는 앞으로 이 책을 천천히 한 장씩 한 장씩 곱씹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뿐이니까. 




Posted by 망망디
,


권여선의 음식 산문집 [오늘 뭐 먹지?]에서 오이지무침 부분을 읽다가 난데없이 반성 아닌 반성을 해야 했다. 오이지무침은 소설가 권여선이 여름 내내 떨어뜨리지 않고 해먹는 밑반찬인데 탈수가 생명이란다. 그런데 여자의 악력으로는 꼬들꼬들한 오이지 식감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손목을 보호하기 위해 오이지를 짜던 베보자기를 그대로 펼쳐 냉장고에 넣고 서너 시간 말렸다 무치는 꾀를 내기도 했다고 한다. 평소 음식용 짤순이가 있는 작은어머니를 부러워하던 그녀가 그러다 어느 날 발견한 방법은...


"요즘은 한결 수월하게 애인을 불러 짤 것을 명한다. 애인이 인정사정없이 쥐어짠 오이지는 꼬들꼬들을 넘어 오독오독하다. 정말 내 애인이라서가 아니라 이 친구가 악력 하나는 타고났다. 그러니 날 놓치지 않고 잘 붙들고 사는 것이지 싶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그렇지. 애인이나 남편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지...'라고 중얼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악력이 약하다. 일단 손이 작기도 하고 요령도 없다. 태어날 때부터 손재주를 타고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집에서 와인을 딸 때도 늘 아내가 와인병을 잡는다. 내가 따면 따개 스프링이 코르크마개를 비뚤게 관통해 마개가 쪼개지기 일쑤라 늘 야단을 맞는다. 게다가 난 손목도 약하다. 군대 가서 오른쪽을 다쳤기 때문이다(군대 가서 다쳤다고 하면 다들 훈련하다 다친 것으로 오해해 줘서 약간 폼이 나긴 하는데 사실은 이등병 때 내무반에서 걸레질 하다가 손목에 너무 힘을 주고 미끄러져 크게 접지른 것이었다). 

아무튼 안 그래도 약한 게 많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그 항목에 '악력' 하나를 더 추가하게 되었다는 슬픈 얘기다.  



Posted by 망망디
,


문정희 시인의 시집을 한 권 샀습니다. 수백 편의 시 중 아무 페이지나 넘기다가 전부터 좋아했던 '남편'이나 '초대받은 시인' 같은 시도 다시 만나고 슬픈 억척 어멈을 그린'찬밥'이라는 시도 만나고 '치마', '내가 한 일', 동백꽃', 칸나' 같은 싱싱한 시들이 발견될 때마다 페이지 윗쪽 귀퉁이를 접어놓고 하다가 마침내 '그 소년'이라는 시를 만났습니다.


시인이 삼성동까지 가는 택시 안에서 만난, 입이 거친 남도의 택시운전사와 얘기를 나누다가 어린 시절 어떤 소녀를 사랑했던 순수한 소년까지 만나게 되는 이야기('그러고는 속으로 이 시를 시대 풍자로 끌고 갈까 그냥 서정시로 갈까 망설이는 순간그에게서 믿을 수 없는 한 소년이 튀어나왔다')를 시로 풀어놓은 내 누님 같은 시인 문정희.


택시라는 곳은 일차적으로 장소 이동의 수단이지만 때로는 정치 토론의 장, 나아가 인생의 축소판처럼 느껴지는 공간이기도 하지요. 저도 예전에 '심야택시'에 관한 글을 두 편 쓴 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택시운전을 하는 초등학교 동창 한식이한테 들었던 얘기고 또 하나는 야근을 하고 오다가 택시 운전사와 죽이 맞아 인생과 죽음에 대해 수다를 떨었던 내용입니다. 감히 대 시인의 글과 제 글을 나란히 놓는 게 죄스럽긴 하지만 '택시'라는 공통분모가 있는데 못 할건 또 뭐냐, 라는 건방진 마음으로 이어붙여 봅니다.


그 소년 / 문정희


터미널에서 겨우 잡아탄 택시는 더러웠다

삼성동 가자는 말을 듣고도 기사는

쉽게 방향을 잡지 않더니

불붙은 담배를 창밖으로 획 던지며

덤빌 듯이 거칠게 액셀을 밟았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욕을 하기 시작했다

삼성동에서 생선탕집을 하다가

집세가 두 배로 올라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했다

적의뿐인 그에게 삼성동까지 목숨을 내맡긴 나는

우선 그의 사투리에 묻은 고향에다 안간힘처럼

요즘 말로 코드를 맞춰보았다

그쪽이 고향인 사람과 사귄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고는 속으로 이 시를 시대 풍자로 끌고 갈까

그냥 서정시로 갈까 망설이는 순간

그에게서 믿을 수 없는 한 소년이 튀어나왔다

한 해 여름 가난한 시골 소년이 쳐다볼 수 없는

서울 여학생을 땡볕처럼 눈부시게 쳐다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가을날 불현듯 그 여학생이 보낸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마치 기적을 손에 쥔 듯

떨려서 봉투를 쉽게 뜯지 못하고 있을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친구 녀석이 획 낚아채서

편지를 시퍼런 강물에 던져버렸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밤이 되면 흐르는 불빛 속을 가면서

그때 그 편지가 떠내려가던 시퍼런 급류 앞에서

속으로 통곡하는 소년을 본다고 했다

어느새 당도한 삼성동에 나는 무사히 내렸다

소년의 택시는 그 자리에서 좀체 움직일 줄을 몰랐다


<심야택시>


야근을 하고 열두 시 넘어 택시를 타고 오면서 기사 아저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내가 마흔일곱 살에 뒤늦게 결혼을 했다고 하니 깜짝 놀라며 자긴 서른넷에 하면서도 늦게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때 결혼한 게 결정적인 실수였다며 웃는다. 다시 할 수만 있다면 혼자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저희는 아이 없이 살 거니까 둘이서만 재밌게 살다 깨꾸닥 죽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했더니 그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맞장구를 친다.


'저는 어머니가 삼 년을 꼬박 앓다가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아파트 한 채를 병원비로 다 쓰고 가셨어요. 근데 그 뒤로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이게 복구가 안 되네...'라고 말하는 기사 아저씨. '저는 어머니가 너무 갑자기 돌아가셔서 그게 정말 가슴 아팠는데' 라고 말하는 나.


이미 택시기사와 손님이라는 관계를 망각한 우리는 죽을 때 돼서 금방 죽는 것도 복이라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얘기가 흘러간다. 아저씨는 행여 자신이 죽기 전에 오래 아프거나 치매 같은 거 걸려서 자식들에게 폐라도 끼칠까봐 그게 걱정이라고 한다. 나도 우리 부부 둘이 재밌게 살다가 같이 죽는 게 바람이라고 소원을 얘기한다.


앞으로 원하는 사람들에겐 인도적인 안락사나 자살 같은 방법은 좀 열어놔야 하는 것 아니겠냐는 데까지 얘기했을 때 택시가 집 근처에 도착했다. 우리는 '서로 알아서 잘 죽읍시다' 라는 이상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밤 12시 52분이었다.


<심야택시에 두고 내린 옛사랑들>


몇 년 전에 술 마시면서 택시운전하는 초등학교 동창 한식이한테 들은 얘기가 기억난다. 택시를 몰다 보면 별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된다고 한다. 이런저런 취객은 말할 것도 없고 가끔 요금 안 내려고 문 열리자마자 냅다 튀어나가는 놈들도 많은데 그런 놈들은 그냥 놔둬야 한다고 한다. 쫓아가갔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농염한 자세와 멘트로 기사를 유혹하는 아줌마들도 꽤 있었다고 한다. 노르스름한 잡지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기억에 남는 얘기는 택시비 대신 주고 갔다는 반지나 목걸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긴 이 세상엔 사랑을 시작하는 옵티미스트들도 많지만 사랑을 끝내는 페시미스트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아저씨, 저 이거 더 이상 필요없는 물건인데 택시비 대신 받아주시면 안 될까요?"


손님들은 야밤에 술에 취해 또는 맨정신에 고즈녁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사연이 붙어있는 금붙이나 보석들을 택시에 두고 내린다고 한다. 그날 그 친구가 보여준 목걸이도 그런 스토리가 내장된 물건이었다. 처음 그가 들고 온 진주목걸이를 보고 놀라던 그의 아내도 이젠 그런 물건들을 가져다 주면 태연하게 처리한다고 한다.


잠도 오지 않는 초여름 심야. 내가 심야택시에 두고 내렸던 기억은 어떤 것들이 있었나 생각하다가, 이런 건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떠올려야 하는 이야긴데...하고 창밖을 힐끔 내다본다. 자야겠다. 내일은 일요일이지만 출근을 해야 하니까.




Posted by 망망디
,


이경미 감독의 [잘돼가? 무엇이든]을 어제 오늘 휘리릭 다 읽었다. 이 에세이는 문화웹진 <채널예스>에 연재했던 글과 <씨네21>에 기고했던 글, 그리고 10여 년 전부터 현재까지 썼던 짤막한 일기 등을 발췌해서 꾸민 책이다.

제목인 '잘돼가? 무엇이든'은 이경미 감독이 처음 만든 단편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경미 감독이 졸업을 하고 '성공 신화를 이룬 거대 중소기업'에 다니던 시절의 얘기를 각색해서 만든 단편인데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는 등 대단한 히트를 기록했었다. 아마 이 작품 때문에 박찬욱 감독과 공동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 감독이니까 당연히 영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첫 챕터의 제목이 '실연당하는 게 끔찍할까, 시나리오 쓰는 게 더 끔찍할까?'일 정도로 영화 만드는 고충은 사사건건 크다.  그런데 이경미 감독 글의 미덕은 자신의 이야기를 재료로 자조적인 유머를 잘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소심하거나 이기적인 성격이 많이 드러나고 연애나 사회생활, 영화, 친구 관계 등 각종 분야에서 발생했던 다양한 실패담들이 자주 등장한다.

우선 아름답고 총명한 여성 감독이 쓴 글답지 않게 똥이나 변비 같은 더러운 얘기가 많이 나오고 고학력 지식인의 처지에 어울리지 않게 점이나 운세를 보는 장면도 자주 나온다.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가 이 책의 주제인 모양인데 [미쓰 홍당무]와 [비밀은 없다]를 만들면서 있었던 여러 가지 얘기들과 [비밀은 없다]를 개봉하고 나서 그 영화 때문에 만난 백인 남성과 결혼을 하게 되는('백인 포비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까지 읽고 나면 '인생은 알 수가 없다' 쪽으로 조금 괘도를 수정하는 듯도 하다.

아무튼 찌질한 듯하면서도 공감대를 자아내는 글들은 매우 경쾌하면서도 솔직한 면이 있어 어느덧 이경미 감독이라는 캐릭터와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데, 특히 창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계속해서 꾼 꿈들을 일기로 기록한다든지 대작가의 글을 읽고 절망하는 대목 등이 특히 공감감다.

창작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자산은,
습작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작가의 삶아다. (박완서)

아이 씨, 어떡하지.

2005. 05.12


뒷부분엔 평소 기도를 열심히 하면서 틈만 나면 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엄마 얘기, KBS <동물의 세계>에서 "짝짓기를 합니다" 같은 나레이션을 했던 유명한 성우인 아빠 얘기, 언니와 심하게 싸우지만 결국 이 책의 일러스트를 맡아주었던 여동생 얘기 등도 재미있게 펼쳐진다. 

책이 많이 팔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무도 솔직하고 유머러스한 글솜씨에 잘난 척하지 않는 마이너한 감성이 독자들을 끌어들였으리라. 책도 예쁘게 나왔다. 추천한다. 서점 가판대에 누워서 '괜찮아, 그냥 너 생긴 대로 살아' 라거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는데 안 그래서 차암 다행이야'라고 외치는 설탕물 같은 에세이들보다 열 배는 낫다.  


Posted by 망망디
,


존경하는 광고인이자 글쟁이인 카피라이터인 정철 선배는 [틈만 나면 딴생각]이라는 저서의 책날개에 '좋은 생각, 맞는 생각만 하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머리가 굳는다'라고 썼다. 나는 거기에 이렇게 덧붙여보고 싶다.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다보면 몸 축나고 머리도 비어 결국엔 바보가 되거나 기계로 전락한다고.

30대 초반에 회사를 그만두고 놀던 시절이 있었다. 남들은 다 열심히 일을 할 시기에, 놀면 안 되는 상황에서 나만 놀게 되었으니 당연히 돈도 없고 친구도 없었다. 더구나 내게는 학력, 학식, 재능, 배경, 배짱 등 사회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부족하기만 한 상황이고 남아도는 건 오로지 시간 뿐이었다. 그래도 뭔가 재미있는 게 없을까 몇날 며칠 시간을 펑펑 써가며 고민하다가 생각해낸 게 바로 '월조회'라는 단체였다. '월요일 아침에 조조를 보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이었는데 명색이 단체이긴 했지만 회원은 달랑 나 하나뿐이었다. 그 시간에 나와 놀아줄 사람은 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재미가 있었다. 남들은 월요병에 시달려가며 주간업무회의를 하고 있을 시간에 혼자 텅 빈 극장에 앉아 조조영화를 보는 맛은 각별했다. 아, 이게 주류 이탈자의 쾌감이구나. 나는 그 새로 취직이 될 때까지 그 소심한 행복을 많이 즐겼다. 

월조회에서 한 번 깨소금맛을 경험한 나는 틈만 나면 '쓸 데 없는 짓'을 구상하는 편이다. 어느날은 아내와 옆집 총각 이렇게 셋이서 밥을 먹으며 '수요미식회'처럼 우리도 날을 정해서 뭘 먹으러 다녀보면 어떨까? 라는 얘기를 하다가 즉흥적으로 '토요식충단'을 만들기도 했다. 이름은 내가 제안을 했는데 자칫 '벌레 충 자'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 먹을 것에 충성한다는 뜻의 '토요食忠團'을 병기하기로 했다. 토요식충단은 미식가인 옆집 총각의 취재력과 출판 기획자인 아내의 추진력 덕분에 정식 회원도 모집하고 페이스북에 페이지를 개설하여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여전히 토요일에 성북동 삼총사가 식당을 찾아다니는 일이 주업무지만 두 달에 한 번씩은 회원들을 불러모아 맛있는 식당을 소개하고 함께 즐기는 정기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나만큼이나 쓸 데 없는 일을 좋아하는 아내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아내는 아침밥을 먹지 않으면 하루를 시작하지 못하는 남편 덕에 매일 아침 식사 준비를 하는 수고를 떠안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식탁 사진을 찍어 올리는 '매일매일밥상'이라는 페이지를 운영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이제는 수많은 구독자들이 우리들의 소박한 아침 밥상 사진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쓸 데 없는 생각이라 여겼던 행위가 사실 아주 쓸 데 없는 생각은 아닌 경우가 많은데 지나고 보니 '매일매일밥상'이 그런 경우였다. 

연말에 동네에 있는 커피숍 '성북동 콩집'에 앉아 '올해 읽은 책 베스트5'를 작성하고 있는 나를 보고 아내가 '그러지 말고 사람들과 같이 모여서 소설을 읽는 모임을 한 번 만들어 보면 어떠냐'고 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라 생각해서 만들어진 게 '독하다 토요일'이다. 우리가 만든 이 모임은 이름만 독할 뿐 사실은 매우 널널한 독서클럽이다. 다른 그룹처럼 책을 전투적으로 읽고 와서 열띤 토론을 벌이거나 하는 것은 우리 성격에 맞지도 않으니 자제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모인 회원들은 내가 미리 공지한 6권 중 '이달의 책'을 들고와 모임 장소에서 한 시간 정도 묵독한 뒤 각자 책에 대한 소감을 얘기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사실 처음엔 한 시간 뒤 각자 '세 줄 평'을 작성해 읽어보기로 했었으나 이마저도 시들해져서 요즘은 나만 하고 있다). 우선 육 개월만 시험삼아 모임을 가져보기로 하고 내가 6권의 한국 소설을 선정했는데 생각보다 회원들도 빨리 모였고 다들 우리나라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 쏠쏠하다고 말해줘서 나름 보람을 느끼고 있다. 오늘이 여섯 번째 모임이니 빨리 이 글을 마감하고 대학로 '책책'으로 달려가야겠다. 

생각해보면 위에 열거한 짓거리들 중 돈이 되는 모임은 하나도 없다. 요즘 인스타그램에 쓰고 있는 '공처가의 캘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떠랴. 언제나 그랬듯이 인생에서 돈보다 중요한 게 바로 이런 '즐거움' 아니던가. 그러니 쓸 데 없는 짓을 두려워하지 말자. 장담하건데 가끔 딴생각을 할수록 인생은 즐거워진다. 


Posted by 망망디
,


저는 배명훈이라는 작가를 폐간된 잡지 [판타스틱]에서 처음 발견했습니다. 그 잡지엔 별별 기괴한 상상력을 지닌 SF작가들이 많이도 등장했는데 SF를 잘 모르는 제게는 역설적으로 듀나나 김보영 같은 인기작가들보다는 배명훈이나 정세랑 같은 '약간 삐딱한' 작가들이 더 눈에 띄었습니다. 약간 삐딱하다는 것은 우주나 물리학을 다루거나 하는 본격 SF라기보다는 개인들의 사소한 관심사들이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새로운 이야기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배명훈은 어디에선가 인터뷰에서 '일반 소설에다가 과학적 지식을 첨가해서 쓴 다음 SF라고 우기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스마트 D>라는 데뷔작을 준비했다는 얘기를 읽은 기억도 있었구요. 아무튼 그래서 오래 저부터 제가 좋아했던 [안녕, 인공존재]라는 작품집을 '독하다 토요일'의 다섯 번째 작품으로 선정을 했습니다. 

꽤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크레인 크레인>, <누군가를 만났어>, <안녕, 인공존재!>, <변신합체 리바이어던>만 다시 읽고 대학로 책책으로 갔습니다. 손영연 씨는 SF인지 모르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데 일단 글이 신기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표제작에 나오는 쓸 데 없는 물건, 즉 '무용지물'에 대해 호감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느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반면 윤혜자 씨는 시종일관 불편한 책이었다고 했습니다. 일단 '너희들은 이렇게 못 쓰지?'라고 뻐기는 듯한 작가의 잘난 척이 싫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책 뒷쪽에 붙어있는 '출간사유서'를 읽고 더 심해졌다고 했습니다. 존재성에 대해서 나는 이 정도 쓸 수 있어,라고 말하는 듯한 작가의 태도가 몹시 거슬린다는 것이었죠.  윤혜자 씨는 언제나 그랬듯이 남편이 가진 책 말고 이번에 새로 똑같은 책을 구입했는데 2010년 초판인쇄를 시작한 책이 아직도 초판인 것은 그런 태도에 기인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내놓았습니다. 작가의 태도에 대해서는 저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다만 저는 배명훈의 작품엔 적어도 '인간'이 들어 있는 것 같다고 소심한 항변을 했습니다. 

서동현 씨는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읽는 것처럼 새로웠다고 말했습니다. 자기는 아이작 아시모프를 좋아하는데 이 작품은 그 기발함이 정통 SF와는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과학이나 기술을 소재로 샤먼이나 초월까지 자유롭게 다루는데 이는 마치 예전 [퇴마록] 시리즈를 썼던 이우혁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얘기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기발함에 대한 칭찬이 이어졌는데 <안녕, 인공존재!>에 등장하는 발명품들은 만약 실제로 존재하기만 한다면 당장 구입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고 했고 특히 <얼굴이 커졌어>를 읽고 많이 웃었다고 했습니다. 

김성희 씨는 다른 사람처럼 별다른 의심이나 고민 없이 그냥 읽었는데 <변신합체 리바이어던>이 제일 재미 없었고 기중기의 신이 등장하는 <크레인 크레인>의 상상력이 돋보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리오의 침대>는 동화 같았다고 소감을 피력했습니다. 그러면서 '안녕, 인공존재?'의 안녕이라는 말이 만나서 하는 인사일까 아니면 헤어질 때 하는 인사일까도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존재는 아름답다'라는 것에 대한 얘기가 아닐까 하는 의견도 내놓았습니다. 

외교학과를 나온 작가의 이력 때문에 '요즘은 뭐 할까?'라며 혹시 외교관으로 일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궁금함도 등장했습니다. 솔직히 글만 써서 먹고 살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했고 글 쓰는 스타일로 봐서 다작을 하거나 전업작가로 생활 할 것 같지는 않아서 나온 궁금증이었겠죠. 윤혜자 씨는 자기 혼자는 절대로 읽지 않을 작가인데 이런 모임 덕분에 억지로라고 읽에 되어 좋다고 하며 웃었습니다. 정아름 씨는 세 번이나 이 책을 읽었다는 말로 소감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이해가 안 돼서 되풀이 읽기 시작했다는데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도 받았다고 했습니다. <얼굴이 커졌다>는 너무 웃겼는데 좀 유치하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매뉴얼>은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연대기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1500년 전 얘기가 갑자기 나와버려서 어리둥정 했다는 것이었는데 저는 그 작품 내용이 생각나지 않아 더 의견을 보탤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정아름 씨는 <누군가를 만났어>에 나오는 '고고심령학자'라는 직업이 실제로 있는지 알았다며 웃었는데 얼마 전 같은 제목으로 장편소설이 또 나온 걸 보면 배명훈은 이 가상의 직업에 대한 애착이 매우 큰 것 같습니다. 진주 씨는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계속 참석을 못하다가 이날 처음 책책에 와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안녕, 인공존재!>에 나오는 신우정 박사의 유서의 내용과 비슷하게 최근에 4년 전 남자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펼쳐주었습니다. 소설에 나온 존재론적 이야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쿨하게 엮어 얘기하는 모습이 멋져보였습니다. 

임기홍 씨는 이 소설집을 읽고 자신이 고리타분한 사람이 아닌가 의심하게 되었다는데, 예를 들면 건축에 있어서도 자신은 벽의 마감은 물론 조명 벽지색깔까지 모두 맞아야 집이 완성되었다고 보는 입장인 반면 이 소설들은 어딘가 미완성 같다고(마치 당인리에 있는 커피숍 '엔트러싸이트'처럼 벽마감이 안 되어 있고) 느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게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과학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 작가의 경우는 여러가지 매력에도 불구하고 과학을 자기 필요한 대로 써먹는 느낌이라 그게 못마땅하다고도 했습니다. 마치 착한 친구를 자신의 목적에 맞게 이용해먹는 느낌이라는 것이죠. 독특한 견해였습니다. 

윤혜자 씨는 최근에 읽은 두 권의 책, 즉 김탁환의 [이토록 고고한 연예]와 배명훈의 [안녕, 인공존재!]를 비교해본 느낌을 전했는데 [이토록 고고한 연예]가 물흐르듯 이어지는 스토리텔링의 전형을 보여준다면 [안녕, 인공존재!]는 SF이면서도 문학의 완결성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게 오히려 '문청'이 쓴 소설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누군가 조금 더 자유로워도 되지 않을까, 하는 얘기를 했더니 이 책이 나온 곳이 '북하우스 퍼블리셔스'라는 곳이라 어느 정도는 전형성을 갖추게 되었을 것이라는 얘기도 했습니다. 공식적 루트로 등단한 작가들이게는 뭔가 '공식'이 있다는 것이죠. 물론 이건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습니다. 그동안 우린 모여서 등단한 작가의 작품만 읽었는데 만약 그렇지 않은(이를테면 웹작가라든지)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다면 고른 문장력이나 작품성을 보증받기 힘들다는 점도 있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서동현 씨의 지적대로 정통 SF도 아닌 소설에 제목도 SF 팬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 아니라 잘 안 팔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솔직히 배명훈은 장편보다는 단편이 좋다고 하며 특히 감동스러웠던 작품 중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를 인터넷 이용자들이 집단으로 구해내는 이야기가 있다고 했더니 누군가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 <타클라마칸 배달사고>라고 제꺼덕 알려주었습니다. 그밖에도 배명훈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은경'이라는 이름에 얽힌 이야기, 예전에 인기 높았다가 이제는 존재감이 없어진 웹작가 '귀여니'에 대한 이야기, 우리나라에만 남아 있다는 신춘문예 이야기 등등이 중구난방으로 이어지다가 다음엔 정세랑의 연작소설집 [피프티 피플]을 읽자고 합의하며 2차를 가기로 했습니다. 원래 윤혜자 씨와 손영연 씨는 광화문 월향에서 이여영 대표가 번개를 쳤던 '브라쟈 풀고 마십시다' 라는 여성들만의 행사에 참여하기로 했었으나  시간이 애매해서 포기하고 같이 2차에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대학로에 있는 삼겹살집에서 이어진 이차에서 매우 많은 양의 고기와 술을 먹고 마셨고 3차로 대학로 '나무요일'에 가서 또 맥주를 마시다 헤어졌습니다. 사실은 위에 쓴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는데 제가 회사 일이 바빠서 - 사실은 다음날 즉시 써야하는데 숙취와 게으름 때문에 - 후기를 너무 늦게 쓰는 바람에 빼먹은 내용들이 많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 모임은 더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제가 쓴 세 줄 평과 함께 이번에 참석하지 못했던 김하늬 씨가 카톡으로 보내온 작품평을 첨부합니다. 

편성준의 세줄평 : SF이면서도 서사가 능숙한 소설을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안녕, 인공존재!]는 반짝이는 아이디어 뒤에 존재론적 성찰까지 깔려 있어서 읽는 맛이 남다른 단편들이었다. [팔란티어] 이후 종적이 묘연한 김영민과 달리 배명훈은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활동을 계속 해줄 것으로 묻는다. 


김하늬 씨가 카톡으로 보내 온 평들 : 헉... 보낸다는게 시간을 못봤습니다ㅠㅜ 뒤풀이중이실거 같지만 첨부합니다.

안녕, 인공존재! / 배명훈

■ 총평
데우스엑스마키나를 사랑하나보다. 뭘 말하려는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구성이 흔들리지 않아서 제목만 봐도 내용이 기억난다. 재미있다! 각 단편 별로 화자에 따라 분위기가 다르다. 인물의 특성을 잘 살린 것 같다. 그간 읽은 단편작가들(김애란, 레이먼드 카버 등)은 그들의 특징이 글에 많이 묻어났다. 배명훈의 소설 연결고리는 발랄함과 SF라는 점 정도만 있고 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 본받을 점이 보이는 소설집.

■ 크레인 크레인
크레인을 신적 존재로 보는 것 까지 참신하고 좋았는데 신이 등장하며 참신함을 부셔버렸다.

■ 누군가를 만났어
세 국가를 모은 이유는 외교상황을 빗대고 비꼬려고 하는 것이었을까? 역시 데우스엑스마키나...

■ 안녕, 인공존재!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 교류를 해야 존재를 증명하는 사람과, 스스로를 증명해 폭발함으로써 존재를 증명한 자갈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글의 전개 내용도 안정적이다.

■ 매뉴얼
참신하다. 매뉴얼을 마로하, 신적 존재와 연결한게 인상적이지만, 끝이 너무 허무하고 끝나지 않은 느낌이 아쉽다.

■ 얼굴이 커졌다
알레고리 소설이었다. 얼굴이 커짐을 프로로 의미했으나 가정, 즉 행복을 찾은 나는 얼굴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행복을 얼굴의 크기로 비유한 것 같다. 가장 좋다.

■ 엄마의 설명력
아이의 세계는 부모라고들 하는데, 그런 걸 보면 주인공은 30대가 되어서도 부모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건 현 세대를 풍자한게 아닐까.

■ 변신합체 리바이어던
홉스의 사회계약론에서 영감받은듯. 로봇의 합체로 국회를 비꼰 것도 참신. 신을 죽이는 행위로 현대 예술을 일컫는 것 같다. 두번째로 좋다.

■ 마리오의 침대
사랑은 돌고 도는 것? 배우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점도 재미있고 문제를 몰래 해결하는 것도 사랑스럽다. 세번째로 좋다. 



 

Posted by 망망디
,




그러더니 그녀는 그들의 정원에서 키운 당근 하나를 들어 보인다. 이상하게 생긴 돌연변이로, 두 개의 인간 몸이 서로 얽혀 성교 중인 모습과 닮았다. 이걸 해나에게 보여줘. 그녀가 말한다. 우리의 카마수트라 당근이야. 특별할 때 쓰려고 따로 두었던 거란다. 차에서 다시 혼자가 된 비트는 그 외설적인 것을 손에 들자 두 여인의 즐거움이 귓가에 울리는 듯해 기쁘다.




죽어가는 엄마 해나를 간호하던 주인공 비트가 마을 자연식품가게에 들러 당근을 선물로 받던 이 장면을 아침에 전철에서 읽으며 슬며시 웃었다. 로런 그로프의 <아프카디아>를 조금씩 읽고 있다. [운명과 분노]만큼 재밌지는 않지만 이런 대목들은 정말 사랑스럽다.


Posted by 망망디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누군가 생을 달리 하셨을 때 우리가 위로를 전하며 흔히 하는 표현입니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은 후 가는 곳을  명부(冥府)라고 하므로 명복(冥福)을 빈다는 말은 고인이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으로부터 심판을 잘 받고 복을 누리기를 바란다는 뜻이라 합니다. 참으로 상투적인 말이지요. 그러나 막상 이 표현 말고 다른 말로 같은 뜻을 전하기도 참 힘든 게 사실입니다. 얼마 전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이라는 책을 낸 김민정 시인이 오늘 올린 황현산 선생님의 부음 포스팅에 저도 명복을 빈다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전의 책 [밤이 선생이다]부터 황 선생을 곁에서 모시고 흠모했던 김 시인의 슬픔이 그 누구보다 클 것이라 짐작해 봅니다. 

[사소한 부탁] 중 <날카로운 근하신년>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근하신년이라는 네 글자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나 '해피 뉴 이어'에 밀려 이제는 거의 쓰이지 않는 것 같다는 구절로 시작하는 이 칼럼은 이런 상투적인 말도 처음에는 굉장히 날카로운 뜻을 가지고 있었으며 때로 누군가에게는 지대한 영향을 끼치던 언어였음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실제로  젊은시절 불운했던 어느 친구의 얘기를 들려줍니다.  고향에 노모를 두고 서울로 올라가던 그 친구는 고속버스 안에서 안내원이 해주는 "손님 여러분의 행운과 가정의 평화를 빈다"는 인삿말을 그날따라 유심히 들었다고 합니다. 의례적인 인사가 문득 가슴을 파고 든 것이지요. 그리고 그 길로 월부 책 장사를 시작해 지금은 조그만 건물을 소유할 정도로 성공을 했다고 합니다. 그 친구는 그때 고속버스 안내원의 말을 귀담아 들은 덕분에 자신에게 행운이 찾아온 것이라고 믿고 있답니다. 

어쩌면 모든 상투적인 말이 다 비장한 말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늘 염원하면서도 내내 이루어지지 않았던 희망을 그 상투적인 말이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고 끌어안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말이 상투적인 말이 되도록 놓아둔 것은 늘 보던 것 외에 다른 것을 보려 하지 않는, 다른 것을 볼까봐 오히려 겁을 먹는 우리들의 나태함일 것이 분명하다. 말은 제 힘을 다해 우리를 응원하는데, 우리가 먼저 포기해버린 탓일 것이 분명하다. 상투적인 말들도 처음에는 그 날카로운 힘이 우리의 오장에 파고들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말이 나를 넘어뜨리고 내 안일을 뒤흔들 것이 두려워 우리가 철갑을 입을 때 말도 상투성의 철갑을 입기 시작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시인들이 말의 껍질을 두들겨 그 안에서 비장한 핵심을 뽑아내려고 사시사철 애쓰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상투적인 말들이 갖는 의미를 헤아리다가 '말의 껍질을 두들겨 그 안에서 비장한 핵심을 뽑아내려고 사시사철 애쓰고 있는' 시인들에게로까지 생각의 가지가 뻗어나가는 황현산 선생의 따뜻한 사유의 힘이 그립습니다. 그리하여 저도 할 수 없이 상투적인 말을 하나 더 보태겠습니다. 황현산 선생님, 부디 안녕히 가십시오. 오늘 저희는 또 하나의 반짝이는 별을 잃었습니다.  

  

Posted by 망망디
,


어쩌면 이 책은 '독하다 토요일'에 어울리지 않는 작품일 수도 있겠다, 는 생각을 약간 했습니다. 그러면서 또 한 편으로는 '독하다 토요일'이 시작된 이래로 가장 흥미진진한 장편소설을 선정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김언수의 [뜨거운 피]는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1990년대 노태우 정부 시절 부산 바닥에서 활동하던 건달 희수의 얘기. 대학로 책책에서 열린 '독하다 토요일' 네 번째 모임은 이 책을 읽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사실은 지난 모임 직후 바로 후기를 써서 올렸어야 했는데 제가 게으름을 피우는 바람에 계속 미루다가 이제라도 써야지 하고 수첩을 뒤적이고 있습니다)  

그날 모임엔 오랜만에 참석한 손영연 씨, 그리고 윤혜자 씨, 김하늬 씨, 임기홍 씨, 서동현 씨, 임재섭 씨 등이 왔습니다. 재미있긴 하지만 소설이 워낙 두껍다 보니 미처 다 읽지 못하고 온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두 시부터 세 시 넘어서까지 묵묵히 책을 마저 읽는 분위기였습니다. 느와르 영화 같은 소설이라 여자분들보다는 남성들이 더 열광하는 눈치였습니다.  임기홍 씨는 학교 선생님이라 정말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비참한 상황에서 사는 학생들을 대할  때가 많은데 막상 그 어떤 것도 해줄 수가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많이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세상이 참 지저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죠.  

제가 소설을 읽고 건진 교훈 중 하나가 '더러운 걸 참아야 싸움에서 이긴다'라고 했더니 윤혜자 씨가 자기는 평소에 그런 걸 잘 못해서 안 되는 모양이라고 하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임재섭 씨는 얼마 전 일을 지지부진하게 만들었던 실제 인물 얘기를 하며 그때 후배가 했던 말, '형, 비즈니스는 그게 **전자 안이라고 해도 다 개새끼에요!'를 기억했습니다. 신사적이고 점잖은 사람은 꿈속에서나 존재하는 법인가 봅니다.  

그러자 김하늬 씨가 얼마 전 직업여성이 쓴 책을 읽었는데 그게 소설에 나오는 인숙과 비슷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불행의 모습은 어딘가 비슷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다가 영화 [변산] 얘기가 나와 전라도 사투리 애기를 하다가 잠깐 각자 알고 있는 충청도 사투리에 대한 유머를 털기도 했습니다('너만 안 지치면 되어야~', '출튜?' 등등). 

저는 어쩌면 이 소설이 '이야기의 원형'에 충실한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부영화처럼 왕년에 잘 나갔지만 지금은 쇠락한 주인공이 등장한다든지 탁구 치듯 재기발랄한 대사들을 주고받는 건달들이 나온다든지 하는 모양새가 그랬습니다. 윤혜자 씨는 일단 자기 취향이 아닌 소설을 읽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하면서도 이런 기회가 아니었다면 언제 자기가 이런 소설을 읽어보겠냐며 '페이지 터너'스러운 이 소설의 흡입력에 감탄했고 만약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게 되면 희수 역을 누가 하면 좋을까를 상상해 보았다고도 했습니다(일단 희수 역은 황정민). 

손영연 씨는 요즘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실화는 감정이입이 잘 안 되는 편인데 오히려 이 작품은 자신이 사는 세상과는 너무 다른 얘기이기도 하고 완전한 픽션이라 더 재미있게 읽혔다고 했습니다.  물론 앞부분의 길고 오밀조밀한 설정은 좀 버거웠다고 했습니다. 감하늬 씨도 앞부분을 너무 깔아놓는 게 지겹고 힘들었다며 그런 점이 이 소설의 '진입장벽'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요즘 소설들은 그런 설정 없이 막 치고 들어오는 느낌이라는 것이죠. 그러면서도 친구들과 글 쓰는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쓰는 도중에 심각해지고 그렇게 쓴 걸 나중에 읽다보면  '삶도 힘든데 이런 걸 왜 읽어야 해?'라는 자괴감에 빠진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같은 고전은 예전 작품인데도 오히려 처음부터 그냥 막 치고 들어오는 느낌이라 신기하다고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주인공 희수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김하늬 씨는 빨래공장 관련 에피소드에서 정배와 나누는 대사들과 그 처리 방법 등에 대해 얘기하면서, 사람들이 바라는 이미지 대로 살아가는 희수의 캐릭터가 다지이 오사무의 [인간실격]과 겹치기도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윤혜자 씨는 도대체 작가가 이 이야기들의 취재를 어떻게 했을까 궁금해 했습니다. 손연영 씨는 90년대 장현수 감독의 영화 [게임의 법칙]이 생각난다고 했습니다. 

서동현 씨도 건달들 얘기를 글로 설명하려다 보니 앞부분이 좀 길어진 것 같다고 하면서도 여러가지 한국 느와르 영화들이 생각나는 이야기라고 했습니다([비열한 거리], [해바라기], [넘버쓰리] 등등). 살면서는 결코 만나기 힘든 인물들이지만 영화나 소설에서는 매력적인 캐릭터들 말입니다. 매번 모임 때마다 질문을 하는 김하늬 씨가 이번에도 사건을 제안하는 친구 양동과 용강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했는데 너무 시간이 지나서 질문 내용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제가 메모를 띄엄띄엄 한 결과겠지요. 죄송합니다. 

저는 [형사 매드독]의 제임스 벨루시나 [분노의 주먹]의 로버트 드 니로 등 보스들이 나중에 나이가 들어 클럽에서 스탠딩 코미디를 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깡패의 미덕은 주먹만큼이나 '구라'에 있다고 말했더니 윤혜자 씨도 '칼로 죽이든 말로 죽이든 상대를 제압해야 하는 게 그 세계'라고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희수 역에 박호산을 쓰면 어떨까 애기를 하는 바람에 다시 장진영, 장신영, 전도연 등 일급 배우들이 인숙 역으로 다시 한 번 물망에 오르기도 했습니다(어차피 돈 안 드는 캐스팅이라 생사여부도 상관이 없는 게 특징). 

임재섭 씨는 '여기서 뒷부분 얘기 하면 안 되냐?'며 스포일러로서의 욕망을 토로했지만 아직 끝까 안 읽은 사람들이 많아서 뜻을 이루진 못했습니다. 이  소설은 뒷부분에 몇번이나 뒤집어지는 '반전'이 읽는 맛을 더해주는 바람에 한 번 잡으면 밤을 새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임기홍 씨는 이 소설조차도 성장소설로 읽혔다고 토로했습니다. 나이 서른에도 마흔에도 쉬흔에도 사람은 자란다는 것이죠. 희수의 인생역정을 보면 확실히 그런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그러면서 '소맥'에 대한 멋진 비유를 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역시 죄송합니다). 

책에 대한 수다를 마치고 모두 일어나 을지로에 있는 '영락골뱅이'에 가서 골뱅이를 안주로 맥주를 마시며 '아무말 대잔치'를 이어갔습니다. 이차는 '태성골뱅이'였는데 역시 즐거운 자리였습니다. 다음엔 SF소설을 쓰는 배명훈의 소설집 [안녕, 인공존재!]인데 역시 제가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벌써 8월 11일이 기다려집니다. 모두들 무더위에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사족으로 제가 쓴 세 줄 평을 첨가합니다 : 

인생의 진리는 고매한 지위나 인격을 가진 사람들 틈에서 나오지 않는다. 시궁창에서 딩굴며 악에 받친 인간들끼리 목숨 걸고 싸우거나 한편이 될 때 기름기 쏙 빠진 금언들이 하나씩 튀어나온다. [뜨거운 피]가 그런 소설이다.  



Posted by 망망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