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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가방 안엔 노트북과 지갑, 신분증 등 귀중품들이 모두 들어 있었다. 가방을 두고 갔었네요. 내가 가방을 들고 탈의실에서 일하는 아저씨에게 멋적게 웃으며 말했더니 "여기 그냥 놔둬도 돼요."라고 말씀하신다. 당장 가방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기가 멋적어 그냥 들고 나오다 스무 발자국쯤 지나 작은 지퍼를 열어보니 지갑이 그대로 있었다. 다행이었다. 나중에 나이가 더 들어 고속버스 대합실 같은 데서 고개를 돌리다 아내를 만나면 '아, 나 결혼했었지!' 하고 깜짝 놀랄까봐 약간 걱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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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잘난 놈들
다 죽어버려라,
소리치고 싶다가도
막상 다 죽어버리고
나만 남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입을 다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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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날이었는지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계속 욕을 내뱉는 것이었어. 아, 씨. 아, 발. 아씨. 이런이런. 난 욕 정말 안 하는 인간이었는데 오늘은 미친놈처럼 혼자 열 번도 넘게 욕을 하네. 이거 신종 정신병인가. 회의실에서 카피라이터 박수 앞에서 욕을 하려다가 흠칫 놀라 아, 나 왜 이렇게 욕을 자꾸하지? 라고 한탄을 했더니 실장님은 욕 잘 안 하시다가도 한 번 하면 찰지게 하시잖아요, 라며 웃는 것이었어. 그랬던가? 내가 욕을 찰지게 했던가. 일을 하려고 모니터를 노려보다가 머리가 아파서 들어왔어, 이런 날은 혼자서 수육이나 오뎅에 소주 한 병 마시고 쓰러지면 딱 좋은데 내일 아침 건강검진이라 저녁 아홉 시부터 금식이야. 아, 씨. 하필 내일로 예약을 잡은 거야.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시집 가는 날 등창 난다더니. 자꾸 욕 나오네. 오늘밤은 잠꼬대도 쌍욕 쓰리콤보로 해대겠군. 순자야, 놀라지 마라. 아저씨 원래 이런 사람 아니다. 그냥 오늘까지만 욕하고 일요일 혜자 아줌마 오는 순간부터 예쁘고 고운 말만 쓸 거야. 뭐, 지랄이 풍년이라고? 요 며칠 세상 사는 게 힘들어서 그러니 좀 봐다오. 고양이인 니가 뭘 알겠냐마는. 자야겠어. 자자. 순자야, 즐겁게 노래 부르며 자자. 우라질레이션. 제기랄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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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저버리겠습니다"
"뭐든 열심히 하지 않겠습니다"
"되는 대로 살아보겠습니다"
"많이 노시기 바랍니다"
"심심한 일상 되십시오"
'과한 것보다는 살짝 부족한 게 낫다'는 어떤 소설가의 짧은 포스팅을 읽으면서 이번 추석엔 이런 덕담을 주고 받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아주 잠깐 해봤다. 물론 진짜 이런 얘기를 주고받으려면 정말 친하거나 정말 안 친하거나 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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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후두둑
살아가는데
뭐 그리 대단한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건만
날마다 노심초사 하느라
하루를 다 쓴다
방금 카톡으로 받은
오늘의 따끈한 근심거리
네, 알겠습니다
내일 연락드리겠습니다
오늘도 일용할
사소한 거짓말을 담아내고 있는데
창밖에서 문득
비가 후두둑 떨어진다
후두둑 후두득
이 소리좀 들으라고
살아가는데
뭐 그리 대단한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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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열한시 반쯤 퇴근해서 오늘 아침 출근하기 직전까지 자는 시간 빼놓고는 계속 아내에게 야단을 맞는 대기록을 세웠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냐고 물으시겠지만, 그게 가능하다.
발단은 퇴근 직후 나의 행태였다. 언덕길을 올라오느라 숨이 차고 더웠던 나는 들어오자마자 창문을 앞뒤로 열고 옷을 활활 벗어 아무 데나 집어던졌는데 그러느라 현관문을 미처 닫지 못한 관계로 이른 여름모기들이 방충망이 없는 현관문으로 대거 난입했고, 그 중 몇 마리가 날아다니다 아내의 몸을 물고 달아났던 것이다. 아내는 빨리 현관문을 닫으라고 소리를 질렀고 모기약을 들고 와 자신에게 바르라고 명령했다. 모기약을 발라준 뒤 샤워를 하고 돌아와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나에게 등이나 긁으라고 핀잔을 주던 아내는 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갔다가 내가 욕실을 물바다로 만들어 놓았다고 또 화를 냈다. 그러면서 아내는 내가 한 번 입은 옷을 빨래통이 아닌 옷장에 다시 처넣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아내의 말을 듣고 세탁실 앞을 보니 내가 한 번씩 입었던 티셔츠와 바지, 반바지, 잠자리 옷 등이 작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 밖에도 뭔가 사소한 야단을 몇 가지 맞았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내가 왜 이렇게 왜 이렇게 하루 종일 야단을 맞아야 하나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런대로 성실하고 듬직한 남편이다. 담배도 피우지 않고(끊은지 10년이 되어간다) 술도 많이 마시지 않고(자주 마시긴 한다) 도박도 하지 않으며 바람도 피우지 않고 일도 열심히 한다(잘 한다는 애긴 아니다). 더구나 아내를 사랑한다. 그런데 왜 이러는 걸까.
출근 준비를 다 한 뒤 마당을 쓸고 있는 아내에게 인사를 하러 갔더니 "당신은 왜 물건을 제자리에 못 둬?"라고 묻는다. 나는 그런 일 없다고 항변을 하고 있는 사이 아내는 내가 사용하고 재활용 쓰레기박스 옆에 세워놓은 큰 빗자루를 옥상 계단 밑으로 옮기는 것을 보았다. 생각해 보니 그 빗자루는 늘 계단 밑에 있었다.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세무서에 왔는데 종소세가 너무 많이 나와 슬프다는 것이다. 오늘은 5월 31일. 종합소득세. 그렇다. 남편은 잘못이 없었다. 문제는 늘 그놈의 돈, 또는 나라, 시스템에 있었던 것이다. 좋은 나라에서 살면 좋은 남편은 저절로 되는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부터 하루에 한 번씩 나라에 책임을 전가하자. 새 정부에게는 좀 미안한 일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