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짧은 여운

토요일이 좋은 이유

망망디 2018. 2. 3. 11:11


일주일 중 어느 때가 가장 좋으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토요일 아침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주중의 아침은 일어나자마자 라디오 켜고 화장실 가고 씻고 밥 먹고 출근하느라 다람쥐처럼 바쁘지만 토요일 아침에 우리 부부는 그야말로 한껏 게으름을 피우며 이불 속에서 한참을 시시덕거리기 때문이다.

잘 잤냐는 아침인사부터 시작해 고양이 순자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오늘은 영화를 한 편 보든지 서촌이나 홍대로 가든지 아무튼 뭘 하며 놀아볼까 하는 사소한 계획들을 세우기도 한다. 우리 둘은 모두 '토요식충단' 창단멤버들이라 토요일엔 근사한 외식을 꿈꾸는 경우가 많은데 요 몇 주는 내가 주말에도 계속 회사를 나가는 바람에 모임이 이루어지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은 오늘도 오후에는 회사를 나가야 한다(아내는 내가 어제 '일요일 저녁 회의가 토요일 저녁 아홉 시로 변경되었다'라고 하자 도대체 그 회의를 소집한 사람이 제정신이냐고 물었다. 그 회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는지 알면 아마 놀라 자빠질 것이다). 

내가 토요일 아침을 유난히 좋아하는 이유는 '방해 요소'가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통 금요일에 술을 마시고 잠들면 늦게까지 잘 것 같지만 의외로 토요일 새벽에 깨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나는 다시 잠드는 대신 기쁜 마음으로 거실로 나가 차를 끓이고 책을 읽는다. 아내는 고른 숨소리를 내며 쌔근쌔근 자고 있고 온 세상은 아직 고요하다. 식탁에 의자를 바짝 붙여놓고 스툴 위에 발을 올려놓은 채 책을 읽는 시간은 그 무엇보다 충만하고 소중하다. 나는 이런 시간에 전에 읽었던 하루키나 윤대녕이나 정미경의 옛 단편, 테드 창이나 배명훈의 SF단편, 또는 장석주 시인의 에세이 등을 다시 뽑아 읽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이 시간의 독서는 정보 수집이나 지식 충전이 아니라 순전히 즐기는 시간인 것이다. 이렇게 책을 읽다가 졸리면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자면 그만이다. 

가끔은 밖으로 나가 집 주변을 산책하거나 옥상에 올라가기도 한다. 옆집 총각 말고는 우리집 위로 아무도 살지 않는 산꼭대기라 맑은 공기와 하늘은 온전히 나의 차지다. 이럴 땐 성북동으로 이사오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평일엔 일에 쫓겨 이렇게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즐기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반성도 하게 된다.  

아내가 밥을 짓는 동안 이 짧은 글을 썼다. 자판을 두드리고 있으니려니 압력솥이 치익~소리를 내며 밥이 다 되었음을 알려왔다. 김치찜에 가까운 김치찌개에 하얀 쌀밥을 비벼 먹고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아내가 차를 준비했다. 차를 마시며 '무한도전 스페셜'을 시청한다. 사소하고 게으른 아침이다. 비록 오후에는 회사에 가서 일을 해야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