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짧은 여운
망망디
2018. 3. 17. 09:26
<억울해>
아침에 일어나 고양이 순자 밥을 챙겨주고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와 요즘 출퇴근길에만 읽던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를 꺼내 읽고 있는데 아내가 방금 꾼 꿈 얘기를 한다. 자기가 어떤 회사에 들어갔는데(어떤 회사인지는 모른단다) 거긴 외국인들이 많았고 어떤 아랍 가족이 있었는데 그 중 남편이 죽어버렸고 나머지는 같이 어떤 어두컴컴한 방으로 끌려가서 특수 교육을 받았는데 아내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도 모르면서 한 방에 있어야 하는 처지였다. 한 여자 강사가 와서 말하길 이제부터 너희들에게 거절은 있을 수 없고 오로지 복종만 가능하다고 선언했다. 강의는 영어와 한국말이 혼용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그 방으로 내가 들어와 아내는 반가운 마음에 나를 침대로 끌어들이며 같이 자자고 했는데(꼬시려고 민감한 부위를 애무까지 했는데) 내가 뻣뻣하게 버티며 응하지 않는 바람에 화가 많이 났었다고 아내가 말했다. 난 대체로 아내의 꿈에 등장해 뭔가를 하지 않아서 야단을 맞는 경우가 많다. 아내를 두고 다른 곳으로 가버려서, 아내를 버리고 오늘부터 다른 여자를 만나기로 했다고 선언해서, 아내가 먼 데서 부르는데 못 알아봐서 등등. 오늘도 억울하게 야단을 맞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내를 깨우지 않는 건데. 내가 소설책을 읽는다고 안방 불을 켜는 바람에 아내가 꿈 도중에 깨버렸다. 나는 당신이 특수공작원이 될 수도 있었는데 내가 개입하는 바람에 무산되어 미안하게 되었다고 사과했다. 그러게 말이야, 하고 나를 한참 야단치던 아내는 남편 배고프겠다며 아침밥을 차리러 부엌으로 갔다. 순자가 아까부터 마루에 깔아놓은 양탄자 위에 길게 누워 놀아달라고 야옹거리고 있다. 좀 게을러도 되는 토요일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