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 생각들
영혼의 문신, 이름
망망디
2018. 10. 26. 08:59
페이스북 친구 신청자 명단을 보고 있노라면 이상한 이름 때문에 눈쌀을 찌푸릴 때가 있다. 일단 도저히 사람 이름이라고는 여길 수 없는, 닉네임이 분명한 단어나 문장 뒤로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는 것도 탐탁지 않지만 그보다는 너무나 의도가 명백하게 드러난 이름의 부담감 때문에 선뜻 친구로 받아들이기 망설여진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만 그런 건 아니다. 책을 쓴 작가나 방송에 나오는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김구라, 같은 이름은 말을 청산유수로 잘 한다는 것을 '구라' 라는 속어로 치환한 것인데 처음엔 정말 듣기 거북했다(지금은 워낙 오래 되기도 했고 김구라라는 개인의 진정성이 많이 인식되어서 괜찮아졌지만). 마찬가지로 이름에 '글'이나 '작가'가 들어간 경우도 안쓰럽다. 내가 그런 불만을 토로했더니 같이 술을 마시던 한 선배는 "그 사람은 얼마나 작가가 되고 싶었으면 그랬겠어?"라고 반문했다.
딴에는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전적으로 공감할 수는 없다. 작가가 되고 싶으면 글을 열심히 쓸 것이지 왜 이름으로 배수진을 치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에도가와 란포'라는 이름은 처연하기까지 하다. 추리소설 작가 에드거 앨런 포우를 너무나 존경한 나머지 일본어를 가지고 그 이름을 차용한 것이다. 물론 일본 추리문학엔 '에도가와 란포상'이라는 게 있을 정도로 그 사람 역시 훌륭한 작가가 되었다지만(그의 작품을 읽어보진 못했으니 이런 글을 쓰는 나도 떳떳하진 못하다)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름은 그렇게 지었는데 막상 뛰어난 추리소설가가 못 되었으면 어쩔 뻔했느냔 말이다.이름은 영혼의 문신과도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냥 김철수, 이영아 같은 이름이 자연스럽게 몸에 난 점이나 무늬라면 '에도가와 란포' 같은 예명은 난 이런 사람이 될 테야, 하고 온몸에 문신을 새기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문신은 쉽게 눈에 띄고 한 번 새기면 쉽게 지우기 힘들다.
어렸을 때 라디오에서 어떤 음악 평론가가 나와 새로 생긴 헤비메틀 그룹(이름이 로즈였던가) 멤버 전원이 결속을 과시하기 위해 온몸에 장미 문신을 새겼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그가 덧붙인 걱정은 '장미 문신은 가까이서 보면 아름답지만 멀리서 보면 매우 기괴하다. 게다가 밴드는 걸핏하면 깨지기 쉬운데 탈퇴 후 그 문신은 어떡할 것인지 걱정된다' 정도였던 것 같다. 지금 그 멤버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조니 뎁의 어깨에도 문신을 지운 흔적이 있다. 위노나 라이더와 살 때 새겼던 '위노나 포에버'라는 글자였다. 사람의 마음이나 처지는 쉽게 변한다. 그래서 인생에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절대로'라는 부사다, 라는 농담도 있다. 안 그래도 피곤한데 이름에까지 그렇게 명백한 의도를 넣고 살아야 하나. 그냥 좀 설렁설렁 사는 건 정녕 죄악이란 말인가. 일 때문에 일찍 나온 주제에 엉뚱한 생각에 젖어 자판 앞에 달라붙어 있는 나는 또 뭐냔 말이다. 어서 일이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