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 생각들

하기 싫은 걸 안 할 자유 - 한량한림

망망디 2018. 11. 13. 11:05



"뭐라고 새길까?" 
"같이 죽자, 어때?" 
"좋네. 같이 죽자!" 

내가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한다고 했더니 별 모양의 도자기로 유명한 '나니쇼 공방'의 창시자이자 후배인 란영에게서 결혼선물을 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공방에서 굽는 머그잔에 란영 특유의 멋진 캘리그래피로 문구를 새겨주는데 그 내용을 미리 주문할 수 있다고 하길래 '같이 죽자'와 '늦은 연애는 없다'로 해달라고 했다. 아내와 나는 '태어난 날은 다르더라도 죽는 날은 같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자주 했으므로 '같이 죽자'라는 문장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얼마 후 정말 그 글씨들이 새겨진 머그잔과 시계, 그리고 스마트폰용 도자기 스피커 등이 도착했다.  물론 도자기 스피커는 조심성 없는 내가 떨어뜨려서 깨져버렸지만 소주잔과 글씨가 새겨진 머그잔, 시계 등은 아직도 잘 간직하고 있다. 

결혼한지 5년이 지났다. 

아무런 계획 없이 졸지에 11월 한 달 휴가를 쓰게 된 나는 아내의 배려로 혼자 제주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출판사 북스피어에서 기획한 '제주유랑단'이라는 북콘서트 겸 독립책방 순례 여행길에 참석하는 게 주 목적이지만 행사가 끝난 뒤엔 나 혼자 나니와 우동 부부가 운영하는 렌트 하우스 '한량한림'에 묵기로 일정을 잡았던 것이다. 눈코 뜰 새 없이 이박삼일 간의 일정이 끝나고 일요일 낮에 한림읍에 있는 란영의 집 근처로 와 연락을 했더니 두 사람이 차를 가지고 나왔다. 이 부부는 일산에 있는 공방을 여전히 운영하면서 제주에서 사는 생활을 일 년 반째 이어오고 있었다.  트렁크와 배낭을 들고 매고 나타난 나를 보고 란영과 우동 씨가 반가워했다. 한량한림은 '한 달살이'를 원칙으로 하는 게스트하우스라고 생각했었는데 란영의 말을 들어보나 기간이든 뭐든 특별한 규칙은 없는 '렌트 하우스'라고 했다. 아무튼 이 집은  주인들의 숙소와 손님동이 나란히 서 있는 건물이었고 마침 장기 예약이 차지 않아서 내가 손님동에 묵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넓은 집을 나 혼자 써도 되나 싶을 정도로 쾌적하고 좋은 숙소를 받았다. 소파와 식탁이 조화를  이룬 거실은 천정이 높았고 식탁 옆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또다른 침실 두 개가 있었다. 어느 침실을 써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아무 데나 쓰세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원래는 한 가족이 쓰는 집인데 지금은 나 하나밖에 없으니 당연한 얘기이긴 했다. 란영은 주인집이나 손님집이나 문을 잠그지 않으니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자기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라고 한다. 첫날 저녁은 란영이 무명서점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한다고 해서 우동 씨와 내가 먼저 저녁을 먹었다. 우동 씨는 평소 바다에 나가서 물고기나 문어 등을 수렵하는 것을 즐긴다고 했는데 덕분에 첫 날 저녁에 냉방고에 보관되어 있던 문어와 한치 숙회에 칡주를 마실 수 있었다. 뒤늦게 란영이 한라산 소주를 사오기도 했다. 나는 내가 이렇게 환대를 받을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뻔뻔하게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까지 혼자 놀다보면 란영이나 우동 씨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온다. 그럼 나는 아침을 먹으러 간다. 요즘 위염으로 고생하는 란영 때문에 식탁은 부담이 적고 신선한 식재료들로만 채워진다. 덕분에 나도 미니멀한 자연식단으로 매 끼니를 먹는다. 아침을 먹고 내 숙소로 돌아와 놀고 있노라면 제주도 구경을 시켜줄 테니 나오라는 연락이 또 온다. 나는 또 달려나가 그들의 차를 타고 제주 어딘가를 돌아다닌다. 그래도 내 생활은 자유롭기 그지없다. 어제도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끄적이고 하다가 란영과 함께 곶자왈에 갔었다. 한낮인데도 나무와 덩쿨이 어우러져 하늘이 잘 보이지 않는 원시림을 걷는 기분은 각별했다. 함께 걸으며 란영이 오래 전 여행길에서 우동 씨 형제와 여행 파트너로 만난 이야기, 인사를 나눈지 한 달만에 외국 여행지에서 함께 손을 잡고 걸으며 떨리는 마음으로 열 살 아래 신랑을 맞을 결심을 한 이야기 등을 들었다. 나이는 아래로 차이가 나지만 정신적인 면에서는 자기보다 더 성숙한 인간인 남자를 만났다는 것이었다. 그때의 선택이 지금의 삶을 만든 것이리라. 란영은 그러면서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날이면 이 숲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려줬고 아름드리 나무들을 감싼 넝쿨들을 가리키며 나무와 덩쿨들의 보이지 않는 사투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었다. 나무들은 덩쿨이  마음대로 자라는 걸 막기 위해 다른 나무보다 더 많은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꾀를 낸다는 것이었다. 곧자왈이에서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신기한 이야기였다. 이 곳은 자신이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오면 늘 좋은 기운을 전해 준다고 하며 나에게도 심호흡을 크게 하고 숲의 기운을 받아보라고 했다. 

원래부터 여행을 좋아하고 자유를 갈망하던 란영 부부는 판에 박힌 서울생활에 싫증을 느껴 여기저기를 노마드처럼 돌아다니다가 이런저런 연이 닿아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을 하고 살지는 정확히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량한림'이라는 렌트 하우스를 만들고 에어비앤비에 등록한 뒤 한 달살이 하는 사람들을 맞기 시작했다. 손님을 맞이하는 것 말고도 가끔은 섬에서 필요로 하는 일들을 과외로 하며 돈을 벌기도 하는데 정기적으로 하는 일은 없단다. 이들 뿐 아니라 제주도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일주일 내내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뭔가를 하는 보람보다는 뭔가를 하지 않을 자유를 선택한 이들은 '앞으로 뭐해 먹고 살려구?' 라는 질문에서 하루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들에 비하면 확실히 특별한 존재다. 

아침을 먹으며 내가 오늘은 새벽 네 시부터 일어나 놀았다고 했더니 왜 그렇게 일찍 일어나느냐고 묻길래 언제든지 졸리면 다시 잘 수 있기 때문, 이라고 대답했다. 그들이 한 달에 삼주일은 제주 생활을 하고 일주일은 서울에서 보내기로 했지만 너무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엔 가지 않는 것처럼 나도 여행지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라고 했더니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와서 선배처럼 제주도 관광지를 전혀 돌아다니지 않는 사람은 처음이에요, 라는 말도 하며 웃었다. 생각해 보면 '하기 싫은 걸 안 할 자유'라는 컨셉이 그들과 나를 묶어주는 지점이었다. 다만 그게 나에게는 이박삼일 간의 꿈에 불과하지만 그들은 일 년 반 전부터 시작해 앞으로 먼 나날까지 계속 된다는 게 큰 차이였다. 공항으로 가기 전 두 사람의 권유에 의해 차를 타고 '봄날의 카페'와 GD가 만들었다는 카페까지 가 해안길을 걷고 있노라니 화요일 오전에 제주 앞바다에 서 있는 내가 매우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고마운 한량 부부다. 

부록) 제주도에서는 극장에 가는 게 큰 행사이므로 대부분의 영화는 다운을 받아서 본다고 한다. 곶자왈에서 내려오면서 두런두런 영화 얘기를 좀 했더니 란영이 요즘 볼 만한 작품들을 좀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작년부터 올해까지 내가 본 영화 중 몇 편을 꼽아보았다. 

어느 가족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서치
레이디 버드
킬링 디어
체실비치에서
여배우는 오늘도
혹성탈출:종의 기원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러스트 앤 본
류조와 일곱 명의 졸개들
태풍이 지나가고
스포트라이트
팬텀 쓰레드
쓰리 빌보드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그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