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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편 1 - <나무들의 반란>

망망디 2018. 11. 21. 17:00


십 년 전쯤 모든 나무들이 한꺼번에 걸어다니던 적이 있었다. 보통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그때 나라에 큰 일이 생겨서 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졌다거나 어느 절의 탑이 밤새 소리를 내고 눈물을 흘렸다느니 하는 얘기가 나오기 마련이다. 아니니 다를까 십 년 전쯤에도 일시적인  은하계의 균열로 태양과 목성, 금성이 나란히 선 순간이 잠깐 있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난다. 아무튼 수백억 년 만에 한 번 있을까말까 한 우주적 사건이 있었던 날, 하루 아침에 지구 위에 있는 모든 나무들이 천연덕스럽게 걸어다니는 이변이 함께 일어난 것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자신의 발로 걸어다닐 수 있게 된 나무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출퇴근'이었다. 인간의 발처럼 뿌리를 인식하게 된 도시의 가로수들은 저녁이 되어 가로등에 불이 켜질 때쯤 스스로 땅에서 뿌리를 뽑아내고 자신이 빠져나온 지점을 탁탁 다진 뒤 퇴근을 감행했고 각자 어디론가 사라져서 평생 처음 안락한 수면을 취한 뒤 아침에 해가 뜨자 다시 출근을 해 근무를 섰다. 수많은 가로수들이 광화문과 을지로는 물론 뉴욕과 씨애틀, 모로코에서도 시내 곳곳으로 걸어 들어와 근무처로 향하는 광경은 그자체로 장관을 이루어 인터넷과 TV뉴스를 장식했다. 

물론, 출퇴근보다 더 특이한 행보를 보인 나무도 있었다. 용문사에 있는 오래된 은행나무는 이제 나도 세상 구경을 하겠다며 거대한 몸통을 일으켰다. 그가 크게 기지개를 켜고 일어서자 용문사 근처에 있던 모든 나무들이 앞다투어 길을 비켰다.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에 나오는 나무는 자그마치 천 년을 한 자리에 서 있었대. 그러면서 수십 세대로 이어진 인간들의 희노애락을 다 지켜 본 거지. 얼마나 힘들고 지루했겠어? 난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을 거야. 나도 오백 살이나 되었으니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가뿐히 열 권은 넘을 걸?" 

나무들 중에서도 큰 어른에 속하던 용문사 은행나무가 던진 메시지는 젊은 나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날 밤부터 나무들은 저마다의 자의식을 갖게 되었으며 급기야 자아를 찾겠다며 인도나 산티아고, 방디르드 등으로 명상여행을 떠나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나무들이 산과 수목원을 벗어나자 목재상들과 출판계는 난리가 났다. 가구값이 상승했고 건축자재 품귀현상이 일어났으며 새 책을 찍어낼 펄프가 부족해서 만년 인기 없을 것만 같던 전자책이 뒤늦게 호황을 맞는 기현상까지 일어났다. 가장 큰 문제는 종이박스가 귀해서 졸지에 노숙자들이 찬서리를 맞게 된 것이었다. 인류는 20세기부터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지배를 받는다고 엄살 섞인 잘난 체를 했지만 사실은 아직도 땅이나 하늘, 나무 등에 너무 많은 것을 의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작가가 거부했지만)이자 영화로도 유명한 작품 [닥터 지바고]에도 등장했던 자작나무들이 남쪽으로 내려 갔다가 태양열을 못이겨 말라죽는 사건이 일어나자 나무들의 긴급회의가 시베리아에서 열렸다. 거기 모인 자작나무, 측백나무, 소나무, 너도밤나무 등은 그 누구도 인간이라는 존재를 좋아하진 않지만 수억 년 지구 역사상 가장 진회된 생명체인 인류를 위해 나무들이 먼저 자숙을 하자는 성숙한 결론을 내렸다. 모든 나무가 다시 이전처럼 땅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기로 한 것이었다. 회의의 진행은 나무들의 인트라넷인 '트리파시(Tree-Pathy)'를 통해 태양계 전체에 실시간으로 전달되었고 투표 결과 '48대 52'라는 극적인 합의가 이루어졌음이 선언되었다. 

합의는 이루어졌지만 이런 사안이 공감을 얻으려면 먼저 어른들의 시범이 있어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아마존 밀림에 있던 만년수가 가지들을 꺽고 몸을 접어 스스로를 불태우는 용단을 내렸고  그 불꽃은 지상 5킬로미터까지 치솟아 전 세계인들에게 목격되었다. 신기하게도 그 불꽃을 본 순간부터 사람들은 나무가 움직였다는 사실 자체를 모두 잊었다. TV나 인터넷, 모바일로 그 장면을 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하필 나무가 움직이는 것을 본 직후 절벽 아래로 떨어져 기절했다가 실명된 채 구조된 나만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 졸지에 시각장애인이 된 나는 의사에게 외쳤다. 

"저기요...나무가 걸어다녔다구요!"

그러나 내 말을 귀담아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일시적인 쇼크로 머리가 어떻게 된 거라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무가 걸어다니던 시절의 일은 나무들과 나만 아는 비밀이 되었다.  지금도 나는 대숲에 가면 그들에게 속삭인다. 나는 알아. 니들이 한때 걸어다녔다는 것을. 대숲은 아무도 몰래 고개를 끄덕인다. 대숲이 가끔 내 얘기를 듣고 울음소리를 내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행동' 사람들과 양평에 놀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차창 밖 나무들을 보고 문득 생각이 나서 메모했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