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저명한 보수주의자가 내놓은 진보적 대북관의 짜릿한 반전 - 홍석현의 [한반도 평화 오디세이]

망망디 2019. 1. 23. 18:00



광고회사를 다니는 내가 작년에 '2018평창동계올림픽' 홍보영상을 만들 때만 해도 영상의 마지막엔 '세계인이여, 평창으로 오라. 대한민국은 안전한 곳이다'라는 식의 메시지를 넣어야 했다. 당시엔 북한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말폭탄을 쏘아올릴 때였고 미국도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심'이 바닥난 듯 보이던 일촉즉발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실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도 낙관하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롤러코스터를 타듯 변화를 거듭하던 한반도 문제는 작년 한 해만도 전격적인 남북영수회담과 북미영수회담이 줄지어 열리는 등 '상전벽해'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일단 부시와 오바마를 거쳐 북한에 가장 적대적이었던 트럼프 대통령이 복핵 문제 해결의 주역으로 떠오른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 보수지의 사주를 지냈던 홍석현이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기 위한 고민으로 책 [한반도 평화 오디세이]를 낸 것도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보니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면서부터 남북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보수지의 회장을 지낸 저자가 가지고 있는 진보적인 대북관이다. 그는 지금 한반도에는 통일보다 평화가 더 필요하다고 역설하면서 우리가 할 일은 북한의 개혁개방과 경제발전을 돕는 일이라고 한다. (심지어 통일부 명칭도 '남북교류부'로 바꿔보면 어떨까 하는 얘기까지 한다). 지난 보수정권 때였다면 '종북발언'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내용들이다.

책이 쉽게 술술 읽힌다. 홍석현 이사장이 가지고 있는 한반도에 대한 지식과 견해를 스무 고개 넘듯 하나하나 펼쳐나가기 때문이다. 하루 만에 휘리릭 다 읽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급변하는 한반도 상황에 대입해봐도 큰 무리가 없다. 이는 그가 언론사를 경영하고 다년 간 국제활동을 해서 국제정세 파악에 능한 점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현상이 아니라 본질을 짚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꺼림직하다면 홍석현이라는 이름을 가리고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중대 현안을 인터넷 기사로 읽는 것과 책으로 읽는 것은 그 느낌이 다르다. 더구나 대표적 보수주의자가 내놓은 진보적 주장을 읽는 짜릿함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