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 리얼리즘으로 빚은 존재의 비극, 그러나 좀 안이한 결말 - [가버나움]
금요일 저녁 갑자기 시간이 애매하게 비어서 혼자 일을 더 할까 하다가 압구정에 있는 극장으로 달려가서 거의 제목만 알고 있던 영화 [가버나움]을 보았다. 사무실에서 예매를 하고 급하게 극장 앞까지 가서 폰을 켜보니 예약이 안 되어 있었다. 휴대폰 결제를 하는 과정에서 승인번호를 넣아야 하는데 깜빡 잊고(다 했다고 생각하고) 그냥 달려온 것이었다. 자동 취소된 예매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니 상영 시작 5분 전이라 이번엔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경고문이 떴다. 취소할 생각이 없으므로 그대로 예매를 진행했다. 사용할 수 있었던 오천 원 할인권도 포기하고 급하게 만이천 원에 예약을 했다.
유럽 어디에선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죄목으로 부모를 고발한 아이가 실제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영화는 그 이야기에서 착상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레바논 베이루트 빈민가에서 사는 소년의 이야기인데 누군가(소년의 말에 의하면 '개새끼')를 찌른 사건 때문에 열린 재판정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부모들이 지나친 생활고에 시달리느라 아이들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친 노동과 장사 등에 시달리는 소년. 길거리 캐스팅이었다는 소년의 연기가 너무나 뛰어나고 빈민과 불법체류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이 거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으로 가슴 미어지게 펼쳐진다.
살인미수 소년범이 되어 수용시설에 있던 소년이 TV생방송에 전화를 해서 자신을 낳은 부모와 세상을 저주하는 장면은 짜릿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소년이 새로 증명서를 얻는 과정에서 짓는 미소나 체포되었던 불법체류자 여성이(그동안 소년이 돌봐주었던) 자신의 아이를 다시 만나는 장면 등은 그동안 켜켜히 쌓아놓은 비극을 너무 가볍게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영화를 다 보고나와 '가버나움'의 뜻에 대해 검색해보니 구약성서에 언급되었던 어떤 도시를 말하는 것 같았으나 현재는 '지옥 같은 곳'이란 의미로도 쓰이고 있었다. 마지막에 이 영화를 계기로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된 소년을 돕는 '가버나움 재단'도 생겼다는 자막이 떴다. 영화가 현실을 바꾸어 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쩌면 이런 건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누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린 나이에 어른보다 더 뛰어난 연기를 한 소년 배우에 대한 감탄과 아랍지역의 여성 감독이 일구어 낸 묵직한 주제의식이 칸에서 15분간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관객수 십만이 넘었다고 하니 일단 흥행 성공이라 다행이다. 다른 건 몰라도 소년의 리얼한 연기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충분하니까.
어린 나이에 어른보다 더 뛰어난 연기를 한 소년 배우에 대한 감탄과 아랍지역의 여성 감독이 일구어 낸 묵직한 주제의식이 칸에서 15분간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관객수 십만이 넘었다고 하니 일단 흥행 성공이라 다행이다. 다른 건 몰라도 소년의 리얼한 연기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