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디 2019. 3. 28. 18:47

웬만하면 이런 얘기는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오늘 아침에 또 수영복을 잃어버렸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잃어버린 건 어제 점심때일 것이다. 20분 간의 자유수영을 서둘러 마치고 나온다는 게 수영복과 수영모자를 탈수기에 그냥 넣고 나온 모양이다. 하얀색 수영모자도 함께 안 보였다. 옷을 다 벗고 라커를 잠그고 샤워실로 들어가다 보니 아쿠아백이 지나치게 가벼운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백을 열어보니 수영복과 모자가 없었다. 다행히 모자는 전에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검은색이 하나 남아 있었다. 청소하시는 아저씨와 함께 탈의실 여기저기를 찾아보았지만 내 분실물은 보이지 않았다. 수업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수영복이 없으니 풀장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청바지와 반팔 티셔츠만 다시 챙겨입고 매점으로 갔다. 매점 아줌마가 또 반가워하면 어떡하나 약간 걱정을 하며 갔는데 왠일인지 돌연 처음 보는 척을 하시는 것이었다.

 

성준) 사장님, 수영복 하나 주세요. 

아줌) 수영복이요? 날씬허시네. 95 입으슈.

 

아줌마가 행거에 걸린 수영복을 손으로 훑다가 점점 왼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왼쪽은 비싼 쪽이다. 이 아줌마가 또 바가지를 씌우려고 하는구나. 나는 얼른 아줌마에게 소리를 질렀다.  

 

성준) 저렴한 걸로 주세요!

아줌) 저렴한 거라...마침 저렴하면서도 좋은 게 하나 있는데!

 

아줌마가 중간쯤에서 까만색 수영복을 하나 꺼내보였다.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얼른 달라고 했다. 아줌마가 내 카드를 그으러 간 사이 내가 가격표 플라스틱 줄을 가위로 끊으려다가 가격을 확인하고 놀라 소리를 또 질렀다.

 

성준) 10,3000원이요...?

아줌) 70프로 할인이에요.

 

성준) 70프로 할인이라구요? 그러면...

아줌) 아니, 30프로 할인. 70프로만 받는다구.

 

성준) 아, 네.

아줌) 더 비싼 것도 있는데.

성준) 아뇨. 됐어요.

 

아줌마와 더 신경전을 벌이기 싫어서 나는 얼른 수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새 수영복을 입고 열심히 수영을 했더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옷을 갈아입고 출근을 하는데 스마트폰 알람이 울리길래 열어보니 국민카드 사용금액 72,000원이 찍혀 있었다. 아줌마가 계산은 정확한 분이네. 아침부터 선량한 아줌마를 도와드린 것 같아서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