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를 푸는 시간
그동안 나사를 너무 조이고 살아왔다. 초등학교 때 남들과 똑같이 조여져 있던 나사를 중고등학교 때 시도 쓰고 소설도 읽고 하면서 조금씩 풀기 시작했는데 대학 들어가서는 술 담배를 너무 해서 그랬는지 나사가 계속 왼쪽으로만 돌아갔다. 더 이상 견디기 힘들 정도가 되자 군대를 갔다. 군대에서는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선임과 간부들이 차례로 달려들어 십자드라이버로 몸과 마음의 나사를 꽉꽉 조여주었다. 지금도 그 분들의 친절함을 잊지 못한다.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한 뒤에도 '너는 현실감이 떨어진다'면서 선배와 동료, 경영진까지 시시때때로 기름을 치고 나사를 조이고 태엽을 감아 주었다. 나사를 꽉 조일수록 안정감이 생겨서 좋긴 한데 벽이나 바닥에 딱 붙어야 하기 때문에 시야가 좁아지고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발이 아프고 몸이 갑갑했지만 세상이 그런 것이려니 하며 살았다.
어느날 아침 일어나 보니 두 발이 땅에 붙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수십 년 넘게 착 달라붙어 살았는데 이젠 나사 좀 풀고 살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지난 5월 말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나사를 헐겁게 했더니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심신이 덜컹거렸다. 아내는 원래 그런 거니 너무 놀라지 말라며 웃었지만 그녀의 웃음을 순진하게 다 믿을 순 없었다. 바지 주머니에 몰래 넣어 두었던 십자드라이버 하나를 손으로 만지작거려 보았다. 아직은 이걸 꺼낼 때가 아니지. 그동안 박아 놓은 세월이 있으니 쉽게 나사못이 빠지진 않을 거야. 당분간은 이렇게 흔들흔들하며 가보자. 내일부터는 혼자 제주로 여행을 떠난다. 바닷바람이 세찰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나사를 조일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