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연대기'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2.03.27 네멋대로 해라 2
  2. 2012.03.27 결혼행진곡 9
  3. 2012.03.27 여로

 

2003년, 남은 휴가를 긁어 모아 짧은 유럽 여행을(그것도 배낭여행이 아니라 폼 안 나게 여행사 패키지 상품으로) 갔다 온 저는 귀국하자마자 호쾌하게(!)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대책 없이 그만둔 회사였기 때문에 그 즉시부터 전혀 할 일이 없었고, 시간은 누에똥처럼 펑펑 남아돌기만 했습니다. 이른바 술과 장미의 나날이었죠. 그때 제가 회사를 그만 두고 제일 먼저 한 일은 [고우영 삼국지] 박스세트와 MBC 드라마 [네멋대로 해라] DVD 세트 구입이었습니다.


지금은 홍자매나 김도우, 김지우([마왕]과 [부활]을 쓴) 등 마니아층을 형성하는 작가들이 꽤 많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거짓말]의 노희경과 [넷멋]을 쓴 인정옥 등이 그나마 가장 튀는 작가들이었습니다. 인정옥은 그 동안 잠잠하다가 얼마 전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의 애인으로 밝혀져 다시 화제를 불러모은 적이 있죠.

아무튼 고다르의 데뷔작 제목을 그대로 따온 이 드라마는 처음엔 그리 기대가 가지 않는 작품이었습니다. 양복을 입고 다니는 소매치기 얘기라니 식상하잖아, 였던 거였죠.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이상한 관심과 애정이 뭉게뭉게 피어 오르는 드라마였습니다. 일단 인정옥의 대사가 신선했습니다. TV 여주인공들이 좀처럼 쓰지 않던 “새끼”를 무심하게 내뱉게 했고, 공효진의 말버릇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돈 버느라 그랬지…’도 “내가 돈 버니라 그랬지” 처럼 입에 붙는 말 그대로를 대사로 쓰는 게 신기하고도 정감 있었습니다. 심지어 무슨 소린지 잘 들리지 않던 양동근의 웅얼거리는 말투도 단점이 아니라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참 가슴이 아픈 드라마이기도 했습니다. 양동근이 자신을 그렇게 좋아하던 공효진을 버리고 어쩔 수 없이 새로 생긴 애인 이나영에게로 가는 얘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끔은 ‘도파민의 과다분비 현상’으로 오해 받기도 하는 ‘사랑’이라는 이상한 감정의 불가해성이 진정 아프고도 실감나게 드러난 작품이었던 거죠.

그리고 높은 완성도도 이 드라마를 더욱 사랑하고 싶은 작품으로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대개 시청률로 몰아치는 인기 작가들은 모든 시퀀스를 주인공들과 주요 사건에만 집중시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네멋]은 주변 인물 한 명 한 명이 전부 다 살아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별스런 대사 없이도 사보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신구의 연기를 비롯, “그 대가리나 까딱까딱 하는 게 무슨 음악이냐?”고 이나영에게 야멸차게 굴다가도 아내 이해숙만 나타나면 금방 활짝 웃으며 “응, 당신 왔어?”라고 말하며 바보가 되는 조경환. 그리고 “이 아저씨 은근히 느끼하다?”라는 공효진의 대사에 “야, 은근히는 무슨 은근히냐. 나 보는 사람마다 다 느끼하다고 하던데.”라고 맞받아치는 이세창. 마지막 장면에서 야쿠르트 아줌마로 변해 공효진에게 봉변을 당하고 “아유, 그 아가씨 참 싸가지 없네.”라고 중얼거리는 윤여정까지 모든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균등하게 그 존재감을 부여 받고 있었습니다.

 

저는 방송을 지켜보다가 서서히 [네멋]의 팬이 되었고 DVD를 사서 반복 시청하면서부터는 ‘네멋 폐인’이 되었습니다. 여기엔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이동건이 이나영을 좋아하는 신문기자로 나왔었고 나중에 [커피 프린스]에 나왔던 김재욱이 양동근의 꼬붕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니 이 드라마도 참 오래되었네요. 엊그제 같은데 벌쎄 10년이 지났어요. 근데 지금도 서울 하늘 아래 어디선가 복수와 미래, 경이가 피시피식 웃으며 살고 있을 것만 같으니, 전 이 드라마를 참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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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일’이란 말을 아십니까? 예전엔 토요일을 반공일이라고 불렀죠. 제가 어렸을 땐 토요일에도 학교나 직장에 평일처럼 나가 오전에 공부나 일을 하는 척 하다가 점심 시간 전에 집으로 돌아오는 싱겁기 짝이 없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래서 ‘월차’라는 말은 있어도 ‘반월차’라는 말은 없을 겁니다. 아, 월차란 말도 사라졌나요? 아무튼 저도 직장 다닐 때 홍상수의 데뷔작이 너무 보고 싶어서 ‘반월차’를 내고 종로2가의 ‘씨네코아’에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조조로 본 적이 있습니다. 아, 이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었는데.

 

지금은 주말 2회가 당연하지만 예전엔 토요일은 TV에서 주말연속극을 틀어주지 않았습니다. 즉 일요일 저녁에만 주말연속극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규칙을 바꾸고 토/일 방송을 시작한 게 바로 TBC의 주말드라마 [결혼행진곡]부터였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너무 재밌어서’였구요.

[결혼행진곡]은 정말 대단한 드라마였습니다. 당시의 청춘 스타였던 장미희, 유지인, 한진희가 모두 출현했고 한진희의 “죽갔네”라는 대사는 전국적인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청춘 스타들만 나온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 TV 드라마에서 이 사람 없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싶었던 김세윤이 홍세미와 커플로 나왔고, 잘 기억이 안 나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보니 김동훈과 서우림도 커플로 나왔더군요. 안옥희도 나왔구요. 안옥희라는 이지적인 탤런트는 나중에 소설가인가 극작가로 변신을 하기도 했죠. 김동훈은 안국동에 있던 실험극단과 실험극장의 대표이기도 했었는데요, 저도 어렸을 때 거기서 [에쿠우스]니 [신의 아그네스] 같은 화제작을 보았고 대학생일 때도 [스티밍, 욕탕 속의 여인들] 같은 연극을 보러 다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욕탕 속의 여인들은 번역극이었는데 영화배우 최민식의 전 부인 등 실력 있는 유명 여배우들이 모두 가슴을 벗고 나와서…음.음. 그리고 김동훈은 가수 김세환의 아버지일 걸요 아마.

[결혼행진곡]은 정말 유행어도 많은 드라마였습니다. 한진희의 “죽같네” 말고도 얄개 이승현의 “인생무상” 그리고 김순철의 “바쁘다 바빠”가 있었습니다. 김순철은 투박하게 생겼지만 전천후로 연기를 참 잘 하던 ‘한국의 잭 니콜슨’같은 배우였습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했던 [여보 정선달]이란 드라마에선 정선달 역의 김성원과 콤비를 오래 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이 장사 해서 떼돈 버는 것도 아니고, 세금 꼬박꼬박 내고…”도 분명 김순철의 유행어였는데 어느 드라마인지 도대체 생각이 나질 않네요. 무슨 호스티스들이 떼로 나오는, 지금으로서는 말도 안 되는 파격적인 드라마였던 거 같은데. 지금은 고인이 된 미남 배우 임성민이 말 더듬는 남자로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만)

 

우리나라에서 난데없이 ‘비목’이란 가곡이 전국을 뒤흔든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결혼행진곡]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레스토랑에서 얘기를 하고 일어서려다가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녁에~” 라고 ‘비목’이 흘러나오면 “아! 조금만 더 있다 가자. 내가 좋아하는 곡 나오네.”라고 말하던 장미희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비목’의 유행은 나중에 작가 임성한이 [보고 또보고] 같은 드라마에서 조랭이 떡국이나 유행시키던 것과는 정말 차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인터넷도 있고 게임도 있고 멀티플렉스도 있지만 그 시절엔 오로지 TV뿐이었습니다. 김수현의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간엔 수돗물 사용량이 줄고 도둑이 들어와도 몰랐다는 전설 같은 우리나라의 TV시청 역사엔 이미 이런 막강한 콘텐츠들이 이미 시범을 보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얘기는 여기서 끝. 자려고 누웠다가 갑자기 얘기들이 떠올라서 주책스럽게 마구 지껄여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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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

나의 드라마 연대기 2012. 3. 27. 13:17

 


여친 : 자, 이제 뭐할까?
성준 : 나 오늘 일찍 들어가 봐야 돼.
 
여친 : 왜?
성준 : 얼른 가서 홍길동 봐야 돼. (당시 SBS에서 [홍길동] 방영 중이었음)

여친 : 어휴, 이게 오빠야, 아줌마야?!(퍽퍽퍽-)
성준 : …어흑.


드라마를 너무 좋아해 옛날 여친에게 ‘아줌마’라는 별명까지 하사 받았던 접니다. 일요일 아침 늦은 산책길에 나섰다가 문득 ‘드라마와 나’라는 사적 문화 연대기를 조금씩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흥적으로 말이죠. 하긴 전 거의 모든 일을 즉흥적으로 하긴 합니다만.

 

전 경기도 백마에서 나고 자랐는데, 어렸을 때 그 마을엔 ‘봄순이네’라는 집 딱 한 집에만 TV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저녁때면 모든 아이들이 그 집으로 몰려갔고, 그 집 아이들의 위세는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우리 형이 울면서 집으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TV를 보러 봄순이네 갔다가 발냄샌가 땀냄샌가가 난다고 몇몇 아이들이랑 같이 쫓겨났다는 것입니다. 분노하신 울 부친은  당장 다음날 서울로 가서 TV를 사오셨습니다. 긴 다리가 네 개 달리고 잘게 쪼개진 나무 셔터를 좌우로 잡아당기면 화면을 잠글 수도 있는 최신식 흑백TV였습니다. 정말 삐까뻔쩍 했죠. 그렇게 해서 우리는 졸지에 마을에서 두 번째로 TV를 가진 집이 되었습니다.

제 기억에 제가 최초로 본 연속극은 TBC의 사극 [연화]였던 것 같습니다. 김창숙 주연이었고 박병호, 김세윤 같은 중견 탤런트들도 나왔습니다. 박병호의 부인이었던 정혜선은 MBC 전속이라서 같이 출연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거 같습니다. (둘은 나중에 이혼했죠) [연화]의 인기는 그 다음 드라마 [윤지경]으로 이어졌습니다. 조선시대 공주의 남편인 ‘부마’를 소재로 한 드라마였는데, 재주는 출중하나 ‘외척 배제의 원칙’에 따라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부마(역시 김세윤이 주인공이었고)의 심정이 어린 가슴에도 꽤 답답하게 느껴졌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저녁 때만 되면 저희집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당시 최고의 인기 드라마인 [여로]를 보기 위해서였죠. 장욱제, 태현실 등이 니왔던 일일연속극이었는데 아마 전국 시청률이 70%는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야말로 국민 드라마였습니다. 장욱제가 바보 영구를 나왔는데 마을 사람들이 “저 사람은 저거 하느라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병원에 주사 맞으러 다닌대잖어. 안 그러면 진짜 바보 된대…” 라고 쑥떡거리며 장욱제의 연기를 칭찬했습니다. 나중에 심형래나 이창훈이 했던 ‘바보 영구’ 캐릭터도 다 이 드라마에서 나온 겁니다. 그리고 ‘난타’로 유명한 탤런트 송승환도 이 드라마로 고등학생 때 데뷔를 했습니다. 장욱제 태현실 사이에서 난 아들로 말이죠... 이런, 벌써 A4 용지 한 장이 넘었군요. 다음에 또 생각날 때 이어서 써볼게요. ^^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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