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V강변에서 옴니버스 영화 [키스]를 관람했습니다. 2년 전에 만든 영화인데 우여곡절끝에 이제야 개봉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덟 편의 키스에 얽힌 이야기들로, 거의 하룻동안에 다 찍은 영화들이라고 합니다. 제작비도 적고 시간, 장소 등에 제약이 많은 인디영화였기 때문이겠죠. 

저는 북한의 핵발사로 인해 라디오 생방송 스튜디오에 갇힌 채 청취자들에게 유언처럼 서로의 오랜 사랑을 고백하게 되는 디제이와 PD의 이야기인 '행복한 오후 2시' 와 골목에서 친구 삥뜯던 반장을 혼내주던 여고생 이야기 '소녀시대', 그리고 키스방에서 일하는 키스 알바생에게 훈계를 당하는 고시생 시봉이 이야기인 '달인' 이 재밌었습니다. 

배우 김혜나 씨는 제 여친과 친분이 있는 사이인데, 마침 이 영화에 출연하는 열 아홉 명의 배우 중 열 한 명을 감독과 제작진에게 소개한 '캐스팅' 담당으로 오늘 와서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잠깐 인사를 하더군요. 아마 인간성이 좋거나 대인관계가 대단히 넓은 배우인 거 같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저희와 잠깐 만나 대화를 나눴는데, 요즘은 이런저런 재능기부도 하고 EBS에서 무슨 낭독 프로그램도 맡아 한다고 하더군요. 저와 예전에 일로 잠깐 만날뻔했던 얘기를 했더니 당시 상황을 너무나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어서 놀랐습니다. 김혜나 씨는 앞으로 소셜테이너로서의 활약이 기대되는 영특한 배우입니다.

이 영화엔 제 페친인 연극배우 서민성 씨도 잠깐 나옵니다. 실력 있는 연극배우들과 홍대앞 인디밴드 멤버도 배우로 출연을 하는 꽤 흥미로운 프로젝트입니다. CGV강변에서 사흘간 상영을 하고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데 앞으로 다른 극장에 더 걸리게 될지 아니면 IPTV등으로 옮기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2년 전 부산국제영화제 발표 때는 전회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었다던데 이렇게 상영관을 잡지 못하고 있다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나중에 케이블이나 IPTV로라도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적은 예산으로 만들었지만 이야기나 연기는 결코 허술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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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토커]를 봤습니다. 월요일 오후라 극장 안이 좀 한산하더군요. 영화는 시종일관 묘한 긴장감으로 팽팽하고 흥미로웠습니다. 다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데 우리 뒤에 앉아있던 50대 아주머니 두 분이 일어서며 “박찬욱, 한국사람 맞아? 어이구 미친놈…” 하시며 화를 내시더군요. 전 이런 평가를 들을 때마다 묘하게 즐겁습니다. 캐슬린 비글로의 [하트 로커]를 볼 때도 영화를 견디지 못하고 제 뒤에 있던 아주머니가 욕을 하며 나가신 적이 있습니다.

 

영화는 막판에 미아 바시코프스카가 집 밖으로 나가면서 좀 세계 던져놓은 느낌이 없진 않지만, 어쨌든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자신의 취향을 포기하지 않는 박찬욱은 멋집니다. 미아 바시코프스카를 비롯해 니콜 키드만, 매튜 구드 등 출연 배우들도 모두 작품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군요. 지난 주 박찬욱 감독의 인터뷰를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었는데 스마트폰이나 전자제품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언제인지 좀 애매하게 느껴지도록 설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장면들이 나올 때마저도 본 듯 안 본 듯, 아는 듯 모르는 듯, 생시인 듯 환상인 듯…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들간의 팽팽한 긴장감과 매혹적인 분위기를 놓치지 않는 박찬욱표 장면장면들이 꽤나 황홀합니다. 특히 오래된 와인 얘길 하며 "어린 것들을 따는 것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라는 대사를 치는 순간  매튜 구드와 미아 바시코프스카, 니콜 키드만을 순간적으로 교차편집한 장면은 짧지만 강렬하고, 아주 교활합니다. 이 영화, 강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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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많은 글입니다. 


SNS와 모바일의 시대로 변하면서 ‘스포일러’에 대한 경각심은 어느 때보다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이젠 누구나 영화를 본 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사회적 관계망’에 감상평을 실시간으로 올리기 때문에 영화의 주요 내용이나 감상평도 미리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것이죠. 그래서 영화를 보기 전에 그 영화에 대한 기사나 리뷰를 절대 보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 스포일러는 그렇게 나쁜 것일까요? 아니, 그보다 먼저 스포일러가 정말 그렇게 흔한 걸까요? 스포일러는 스릴러나 추리물 등에서 반전이나 의외의 결말을 미리 알려 보는 이의 김을 빼는 행위를 말합니다. 종로3가 피카디리극장 앞에서 [유주얼 서스펙트]를 보려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남자가 버스 창문을 열고 “범인은 절름발이다!”라고 소리친 사건이 가장 유명한 스포일러 사례입니다. 물론 저도 어느날 저녁 [디 아더스]를 보러 간다고 했을 때 제 자리로 일부러 와서 “걔네들, 다 귀신이다?”라고 속삭였던 사악한 후배 카피라이터년의 만행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스포일러라는 단어는 스릴러나 추리물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 다 쓰이게 되었습니다. 이젠 영화에 대해 무슨 얘기만 좀 하면 다 스포일러라고 합니다.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러 갔을 때도 스포일러를 조심하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주인공인 파이가 마지막 부분에서 일본인 보험조사원들에게 두 개의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목이 이 영화의 반전이라는 것이죠. ‘두 개의 이야기’라는 반전, 맞습니다. 그런데 이걸 미리 알고 가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요? 감동의 폭이 줄어든다구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교롭게도 전 얀 마텔의 원작 소설을 읽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파이가 구출되는 장면까지만 읽고 (아마 바쁜 일이 생겨서 거기까지만 읽다가 팽개치고 다시 안 집어 든 거겠죠) 병원 부분부터는 읽지 않았더군요.

가장 중요한 장면을 빼먹은 덕에 저는 극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 영화가 ‘리처드 파커라는 호랑이와 파이라는 소년이 작은 구명보트 위에서 227일간 표류하다가 결국 살아남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기’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맨 마지막에 파이가 영화의 화자인 소설가에게 “두 가지 이야기 중 어느 게 더 마음에 드느냐?”라고 물었을 때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요. 이건 정말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소년과 호랑이의 믿을 수 없는 227일간의 표류기’에서 그쳤다면 이 이야기는 신기하고 감동적이지만 그저 흥미로운 이야기에 머물렀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구요.

하지만 마지막에 또 한 가지의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관객은 어떤 이야기를 선택해야 하는가, 라는 새로운 차원의 문제에 도달하게 됩니다. 즉 [파이 오브 라이프]는 많은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믿거나 또는 믿고 싶은 이야기들도 그 껍질을 한 겹 벗겨냈을 때는 본질이 얼마만큼 달라질 수 있는가, 라는 깨달음으로 외연을 확장합니다. 소년의 성장담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단숨에 인식론의 사다리를 성큼성큼 걸어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집에 와 원작 소설을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파이가 일본 운수성 해양부 직원들의 과자를 빼앗아 먹으며 두 가지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책 어디에도 그로 인한 새로운 인식에 대한 얘기는 없었습니다. 황당하더군요.

 


부커상 수상에 빛나는 언어의 마술사 얀 마텔이 펼치는
놀랍고 감동적인 227일산의 인도 소년 표류기

- 인간이 이토록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드문 경험이었다. 중앙일보
- 파이의 희망이 점점 커져 당신 심장 안에서 노랫가락이 되어 흐르기를. 조선일보
- [로빈슨 크루소] [걸리버 여행기] [백경]을 잇는 최고의 모험소설 마거릿 애트우드
- 거칠고, 의미심장하고, 드라마틱하며, 재미있는 진정한 소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소설책 [파이 이야기]의 책 뒷면과 띠지에 붙어있는 서평들입니다. 어느 것 하나 ‘또 다른 이야기’에 대한 언급조차 없습니다. 번역자의 후기를 읽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이 책이 나올 당시 서평자들이나 번역자까지도 이 작품의 진짜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인간승리’나 ‘희망, 또는 신의 문제’ 등으로만 파악하려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안 감독이 [라이프 오브 파이]를 영화로 만들면서 파이의 또 다른 이야기에 방점을 찍지 않았다면 이것은 그냥 소설의 부록쯤에 해당하는 에피소드로 남았을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이 대목은 이안 감독이 얼마나 대단한 시네아티스트인지 다시 한 번 증명해주는 사례이기도 하구요.


원작소설도 끝까지 읽지 않고 다른 매체의 리뷰도 읽지 않은 채 영화관에 간 덕분에 전 영화를 보고 나서도 이 영화의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씨네21]에 쓴 글을 읽고 거기에 제 나름의 생각까지 보탠 뒤에야 극장에 가서 이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그 진가를 마음껏 즐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 전에도 [팅거 테일러 솔저 스파이]가 화끈한 첩보물인 줄 알고 갔다가 그 진중한 분위기에 눌려 두 시간 동안 몸을 배배 꼬며 고생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야구에 대한 지식이나 비즈니스적 감각이 전무한 상태로 [머니볼]을 보고 나와 “이게 뭐지?” 하고 당황한 적도 있구요. 스필버그의 [뮌헨]도 1972년 당시의 국제 정세와 사회적 분위기를 좀 더 익히고 갔더라면 훨씬 더 풍부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었을 텐데, 라고 후회를 했습니다.

 

스포일러를 두려워한다는 건 텍스트를 대하는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변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난 아무 것도 모르는 순수한 상태에서 그것과 마주치고 싶어요”는 언뜻 들으면 순결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눈앞에 있는 것만 겨우 보고 듣고 만족하겠다는 심뽀인 것입니다.

여행을 가면서 그 지역에 대한 역사나 문화를 일부러 공부하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로마를 여행하면서 로마의 역사나 로마 황제들의 에피소드를 하나도 모르고 간다면 포로로마노의 콜로세움에 가더라도 그에겐 그저 무너져가는 오래된 돌담에 불과하겠죠. 나중에 “야, 로마가 경치는 참 좋더라,” 뭐 이런 정도의 얘기야 할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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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잔치’라고 외면하려다가도 자꾸만 보게 되는 아카데미 시상식.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제니퍼 로렌스의 여우주연상 수상이었습니다. 무엇이 엠마누엘 리바, 제시카 차스테인, 나오미 왓츠 같은 관록의 후보들을 제치고 스물세 살 여배우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안기게 했을까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을 보고나니 결론은 역시 연기력이더군요. 만만치 않은 캐릭터를 완전히 장악한 채 온몸을 던져 때론 웃기고 때론 울리는 제니퍼 로렌스의 포스는 정말 대단합니다. 그리고 영화 자체도 무척 재밌습니다. 미국의 소도시에 사는, 뭔가 잘 안 풀리고 정체되어 있는 등장인물들을 배경으로 섹스와 정신병원, 스포츠 도박, 댄스 경연 등을 시트콤처럼 아주 수다스럽고 구수하게 풀어놓습니다.

남편이 죽은 뒤 한동안 너무 슬퍼서 회사 사람 전부와 잤다고 말하는 제니퍼 로렌스나 다니던 학교 교장과 싸우고 일찍 퇴근해 보니 같은 학교 문학선생인 아내가 역사선생과 샤워를 하며 자신들의 ‘웨딩송’을 틀어놓고 있었던 게 도저히 극복이 안 되다고 말하는 브래들리 쿠퍼나 다들 파격적인 사연들을 많이 가지고 있으나, 정작 야한 장면 보다는 욕이 많이 나와서 19금이 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대사에 ‘Fu**’이 자주 등장합니다.

남자 주인공 브래들리 쿠퍼도 거의 완벽한 연기를 펼치지만 로버트 드 니로의 쪼잔한 아버지 연기는 그야말로 명불허전입니다. 어젯밤 CGV압구정에서 10시 영화로 봤는데 관객 모두 깔깔거리고 즐거워하며 보다가 극장을 나섰습니다.

이 영화, 좋습니다. 강추입니다. 몇 년 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나 [데어 윌 비 블러드] 같은 무시무시한 작품들 틈에서도 기죽지 않고 선전하던 [주노]를 만났을 때의 기분이랄까요? 참, ‘실버라이닝(silver lining)’은 구름의 흰 가장자리라는 뜻이랍니다. 한줄기 희망이란 뜻이지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언제나 그렇듯 ‘희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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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라는 제목은

우리를 향한 엄중한 경고인지도 모릅니다

 

 

 

네이버에 이 영화의 제목을 치면 엉뚱하게도 ‘19이 뜨며 주민번호를 입력하라고 나옵니다. 아마 제목에서 풍기는 성인스러운느낌 때문인가 봅니다. 그러나 영화의 제목은 최초의 토키 영화 [재즈 싱어]에서 여가수의 노래에 환호하는 관객들을 보고 무대 사회자가 지금까지 본 건 아무 것도 아니고 다음 무대가 더 죽이니 기대하시라라는 뜻으로 한 말이랍니다.

 

이 작품은 [히로시마 내사랑] 등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을 만든 알랭 레네 감독의 신작입니다. 이 분은 무려 아흔 살이 넘었다는데 아직도 이렇게 영화를 만들고 있으니 참 대단한 노익장이죠?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차례로 “***씨입니까? 앙뜨완 감독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고인의 유언대로 귀하를 * *일 저녁 고인의 저택으로 초대하는 바입니다…”라는 똑같은 내용의 부고전화를 받는 장면으로 흥미롭게 시작합니다.

 

앙뜨완의 유언대로 배우들은 산꼭대기에 있는 저택으로 찾아오죠. 이 장면은 예전 헐리우드의 고전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나 [바람에 쓰여진 편지]처럼 아주 고풍스럽고도 우아한 느낌으로 표현됩니다. 여기 모인 배우들은 모두 과거에 앙뜨완의 영화나 연극에 출연한 적이 있는 주연급들입니다. 며칠 전 사냥총으로 자살해 이미 화장까지 마쳤다는 감독 겸 극작가 앙뜨완은 죽기 전 오늘 모일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영상으로 미리 찍어놨습니다. 최근 한 극단으로부터 자신의 옛날 작품 '에우리디스' 리허설 영상을 받았는데 과연 이 극단에게 공연을 허락해도 되는지 당신들이 한 번 보고 판단해달라는 거죠.

 

리허설 영상에서는 아주 현대적이고 아방가르드적인 느낌의 무대를 배경으로 젊은 배우들이 '에우리디스'를 연기합니다. 그런데 불이 꺼진 거실에서 이 영상을 보던 배우들은 어느 순간부터 젊은 배우들의 대사를 함께 치고 들어갑니다. 자신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작품들이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것이죠. 이 장면은 참으로 멋집니다. 가만히 소파에 앉아 입술을 달싹거리던 배우들은 어느새 필름 속의 주인공으로 변하고 자연스럽게 같은 시대에 공연을 했던 배우들과 짝을 이뤄 연극 속의 연인이 됩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영화의 신비로움은 여기까지입니다. 전 영화를 보기 전 이동진 기자의 [언제나 영화처럼]에서 읽은 리뷰 때문에(너무나 훌륭한 작품입니다, 걸작입니다) 많은 기대를 하고 갔었지만, 이 장면 이후 반복되는 영상과 연극의 교차편집, 나아가 연극과 영화, 인생에 대한 본질적 외연 확대 등이 너무 뻔해서 그만 흥미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만듦새가 허술하다거나 연기의 질이 떨어지거나 하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다만 계속 반복되는 형식 실험이 좀 지겹다고나 할까요?

 

 

상영관도 별로 없고 해서 피곤을 무릅쓰고 밤 930분 영화를 억지로 보고  11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와 TV를 켰더니 박근혜 후보의 대선후보 TV 단독토론이 방송되고 있더군요. 국민면접관 정진홍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아니, 화 안 나세요? 평소에 화를 어떻게 참으세요?”라는 아부성 질문을 던지지 제가 그 동안 참 별별 소릴 다 듣고 살았는데자꾸 듣다 보니까 내공이 쌓이더라구요그때마다 책을 읽었습니다. 명심보감, 정관정요뭐 이런 거근데 나중에 그게 다 제 게 되더라구요같은 차마 맨정신으론 하기 힘든 자화자찬을 듣고 있자니 그만 TV를 벽에서 떼어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 만약에, 절대 그러면 안 되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박후보가 12 19일에 우리나라 대통령이 된다면, 우린 그때부터 참으로 기가 막힌 말과 믿을 수 없는 장면들을 끊임없이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굳이 그날 밤 이 영화를 찾아본 게 저 자신에게 보내는 무의식의 경고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선후보 'TV단독토론'이란 말이 웃긴다고? 아이고, 아직 멀었군. 당신은  아직 아무 것도 보지 못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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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막차 탄 기분으로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 를 봤습니다. 어떤 사람은 영화 속 최익현을 보고 ‘우리 시대 가장들의 비애’를 느꼈다고 하던데, 그게 어디 가장들만의 문제겠습니까. 인간의 모습 자체가 그렇지 않나요. 살기 위해 발버둥치고, 누군가에게 줄을 대고, 허세를 부리다가 졸지에 역전 되기도 하고.

배우들의 연기는 말 그대로 쩝니다. 명불허전. 최민식은 최익현을 위해 몸까지 둔중하게 만든 듯하고 하정우도 절정의 연기력을 보여 주죠. 조연으로 나오는 조진웅, 곽도원 등 남자 배우들은 물론 기상캐스터 출신 김혜은의 모습도 깜찍하니 좋습니다.


끝까지 엎치락뒤치락하는 서사구조가 과잉스럽다는 느낌이 있고 러닝타임도 좀 길다 싶지만 힘 있는 내러티브에 디테일까지 잘게 신경 쓴 윤종빈의 연출에는 별 불만이 없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돌연 마음이 무거워지던군요. 뭔가 해야 할 일을 잔뜩 쌓아둔 일요일 저녁에 삶의 신산함을 다룬 컴컴한 영화를 봐서 그런 모양입니다. 뭐 그렇다고 주말에 늘 팝콘영화만 볼 순 없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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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도 생전에 신용카드를 만드신 적이 있었을까. 영화 <화차>를 보면서 이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카드빚과 사채에 몰려 자신의 인생을 버리고 남이 되어 살아보려고 했던 한 여인의 이야기다. 법정 스님께서는 누군가가 선물한 난 화분을 키우다가 무소유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는 걸 깨달았다지만, 그건 도 닦는 분들이나 가능한 얘기고 우리 같은 장삼이사들은 사랑이든 건강이든 집이든 뭐든지 소유해야 행복을 느낀다. 아니 그래야 행복과 조금 더 가까워지리라 믿는다.


결혼을 앞두고 이제 막 나온 청첩장을 들고 예비 시댁을 찾아가던 선영과 문호. 그런데 휴게소에서 선영이 사라진다. 감쪽같이. 문호는 급하게 줄행랑을 친 흔적이 역력한 선영의 집안을 확인한 뒤에야 망연자실 한다. 전직 형사였던 사촌형 종근의 수사에 의해 선영의 사연이 점차 밝혀진다. 우선 선영이는 강선영이 아니라 차경선이란다. 그리고 전 직장도 가짜, 고향도 가짜. 어제까지 한 침대에 누워 신혼 살림을 꿈꾸던 여자에 대해 문호는 도대체 아는 게 하나도 없다.

<화차>는 미야베 미유키 원작 소설을 변영주 감독이 5년이나 주물러 2012년 대한민국에 맞춰 재구성한 영화다. 이전 영화들이 좀 느슨했고 비교적 저예산에 김민희라는 카드도 그리 미덥지 않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보다 아주 잘빠진 작품이 나왔다.

차경선은 아버지의 빚에 몰려 사채를 쓰게 되고 그 빚에 의해 개인파산을 당한 고아다. 세상에 의지할 데 하나 없는 그녀는 결국 자신과 비슷한 여자를 골라 살해하고 그녀의 신분을 차지해야만 살 수 있다. 물론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에게 용서라는 말은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잘못된 길임을 알면서도 그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달려야 하는 사람의 내면은 얼마나 외로운가.

김민희의 순간 집중력은 놀랍다. 펜션 장면에서 김민희는 놀라운 연기를 펼치는데, 정작 본인은 그 장면을 어떻게 찍었는지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한다. 촬영이 끝나자마자 기절했다고 한다. 얼만 전 서울아트시네마 ‘친구들 영화제’에서 로만 폴란스키의 <차이나타운> 상영 후 변영주 감독과 함께 관객과의 대화에 나섰던 김민희는 “페이 더너웨이가 잭 니콜슨에게 뺨 맞는 장면을 더 일찍 봤더라면 <화차>에 응응할 수 있었을 텐테…” 라고 아쉬워했다. 그런데 그 마음가짐이 헛되지 않았나 보다. 이번 영화를 보면 누구든 그녀가 이미 연기파 배우의 반열에 올랐음을 확인할 수 있을테니. 

미미 여사(미야베 미유키의 별명)의 원작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손에 땀을 쥐고 긴장을 늦추지 못한 것은 변영주 감독의 탄탄한 각본과 구성 덕분일 것이다. 거기다 조성하의 안정된 연기는 또 얼마나 영화를 빛내 주는가.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 왕세자의 스승으로 나올 때부터 정말 인상 깊었던 배우 조성하는 오락 프로그램 덕에 우연히 뜬 ‘꽃중년’ 이 아니라는 것을 이 영화에서 여실히 증명해 준다. 하다 못해 용산역으로 급하게 달려가야 할 상황이 닥치자 주차장에서 후배 형사에게 “야, 너 나 알아 몰라?” 라고 묻고는 “알죠. 선배님.”이라는 대답을 듣자마자 열쇠를 낚아채고는 “그럼 됐어.”하고 차를 몰고 가는 장면조차도 조성하가 연기해서 쾌감이 더 큰 것 같았다. 그에 비하면 다소 경직되고 전형적이었던 이선균의 작품 해석력은 좀 아쉽다.


자크 라캉은 “욕망은 빈 공간이 만드는 환상이므로 바랐던 것이 채워지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라고 했다. 문제는 바랐던 것이 채워져도 결국 제로에 가까워지는데 그게 채워지지 않았을 때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그건 차경선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건설회사 CEO 출신 대통령과 5년 간 살아온 대한민국 구성원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참 무섭다. 일요일 심야영화로 봐서 더 후회했다. 욕망을 싣고 달리는 지옥행 급행 열차, <화차>는 마음이 스산해지는 공포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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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이정재와 함께 [정사]를 찍을 때 이재용 감독은 어디선가의 인터뷰에서 “10년 후에 봐도 촌스럽지 않은 화면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그 이후 이재용의 영화들은 좀 들쭉날쭉한 면이 없지 않지만 적어도 그 영화만큼은 기름기가 다 빠진 무채색의 배경들이 많이 등장하고 또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와 대사들도 어느 정도 텍스트의 품격을 높여놓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미셸 아자나비시우스의 [아티스트]를 보면서 드는 생각도 ‘역시 기본은 힘이 세다’ 라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컬러 사진도 흑백 사진의 깊이 앞에서는 무릎을 꿇듯이 흑백 영화가 주는 묘한 향수와 클래식함은 3D영화 시대에도 여전히 그 빛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전에 허우 샤오시엔이 [쓰리 타임즈]의 첫 번째 에피소드를 무성영화 형식으로 처리했을 때도 참 신선하고 고급스럽다고 느꼈었는데 이 영화는 아예 러닝타임 내내 흑백 무성 영화의 관습을 그대로 재현한다.


때는 1937년. 무성영화의 전성기다. 당대 헐리우드 최고의 인기 배우인 조지, 그리고 그와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정을 키워가는 한편 차세대 스타로도 발돋움하고 있는 여배우 페피. 그러나 그 때는 무성 영화가 가고 토키 영화가 상승세를 타는 변곡점의 시기였다. 토키 영화를 혐오하던 조지는 자신이 만든 무성 영화가 연이어 흥행에 실패하자 실의에 빠지고 조지를 흠모하는 페피는 그런 그를 도우려 한다…


애잔하고 단순한 스토리 라인은 흑백 영화의 단호함 덕분에 더 크게 탄력을 받는다. 대사가 들리지 않는 주인공들의 마음도 더 애절하게 전달된다. 거기다가 인자하고 따뜻하게 미소를 지을 줄 아는 배우 쟝 뒤자르뎅과 손가락을 입에 넣어 휘파람을 불며 손바닥 키스를 날리는 베레니스 베조의 과장된 연기들은 마침내 들리지 않는 않던 것을 들리게 하고 무채색의 화면 위로 풍부한 색감을 상상하게 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조금 더 위대한 이유는 결핍을 상상력으로 채울 줄 아는 능력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굳이 영화관까지 찾아가서 흑백 영화를 찾아보는 것도 이러한 ‘결핍의 위대함’을 무의식적으로 체득하고 있기 때문임은 물론일 것이다.

화려한 음악과 춤이 있고, 영화사의 계단 장면 같은 멋진 미장센도 있고, 존 굿맨이나 제임스 크롬웰 같은 든든한 조연들의 명연기도 있다. 그리고 인간보다 더 연기를 잘 하는 개도 한 마리 나온다. 다 보고 밖으로 나오면 잠깐 세상이 행복해지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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