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보고 재밌으니 한 번 보시라고만 했는데 오늘 아침 출근하면서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러고 끝나면 안 될 것 같아 매우 간단하게라도 리뷰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니까 이건 영화를 한 명이라도 더 보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쓰는 '낚시성' 글입니다. 

왜 이렇게 흥분하냐 하면 이 영화는 우리가 예고편을 보면서 가졌던 나쁜 기대들을 배반하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나쁜 기대냐. 제목에서 풍기는 아마추어 같은 느낌, 성의만 넘치는 독립영화일 것 같은 느낌, 카메라 한 대 가지고 조지는 어설픈 일인칭 시점일 것 같은 느낌. 네, 맞습니다. 이 영화는 일본 돈 300만 엔의 터무니 없는 제작비로 완성된 인디영화 맞습니다. 그러나 100석 규모의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했지만 점점 입소문이 커져 결국 각종 국제영화대회의 상들을 휩쓴 최고의 코미디 영화입니다. 

영화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전반부는 2차세계대전 때 군수공장으로 쓰였던 건물 안에서 좀비 영화를 찍던 감독과 배우 스태프들이 진짜 좀비를 만나 고생하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37분의 원컷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까지 올라가고 나면 이 영화를 찍기 전의 상황이 펼쳐집니다. 발단은 방송국에서 좀비물을 찍는 영화인들의 고군분투를 생방송으로, 그것도 원컷으로 보여준다는 기획안입니다. 기획안부터 워낙 황당하다보니 아무도 안 할 것 같아 뭐든지 대충대충 찍는 것으로 우명한 어느 퇴물 감독에게 기회가 돌아간 거죠. 

처음엔 말도 안 되는 기획이라며 이 감독 역시 거절을 하지만 자신처럼 영화 일을 시작한 딸이 이 좀비 영화에 출연하기로 한 아이돌 가수를 너무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는 승락을 합니다. 그러면서 우여곡절 끝에 감독과 배우 출신인 감독의 부인까지 영화에 출연하게 됩니다. 영화를 찍는 장면들이 보여지면서 왜 1부의 장면들이 진지하면서도 약간 어설픈 구석들이 있었는지 밝혀지는데, 이 복선과 전복의 아이디어들이 정말 기가 막힙니다. 

생방송 좀비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스태프들의 야단법석 코미디를 그린 영화.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렇게 될 수 있겠습니다만 이 영화엔 그런 웃음 포인트 말고도 찡한 감동과 페이소스까지 있는 멋진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뒤늦게 전 세계의 극찬을 받고 다시 개봉이 된 것이겠죠. 우리나라에서도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화제가 되었다가 다시 개봉이 된 케이스랍니다. 상영하는 극장이 많지 않으니 성의를 갖고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안 보면 손해인 영화니까요. 맨 마지막에 지미집이 망가져 고공촬영을 못하게 되었을 때 이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아, 그리고 호신술에 대한 복선도...음, 입이 간지러워 못견디겠습니다. 그냥 , 얼른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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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영화를 처음 봤던 건 [원더플 라이프]라는 작품이었다. 꽤 오래 전 광화문에 있는 극장에 예약을 했는데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혼자 전철역에서부터 미친듯이 달려 영화 시작 직전에 겨우 입장을 했고 뛰어오느라 너무 숨이 차서 몇 분간 민망할 정도로 숨을 헐떡거리며 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죽은 사람들이 저승으로 가기 전에 림프계에 머물면서 일 주일간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고 작은 단편 영화를 한 편씩 찍은 다음에 비로소 다음 세상으로 간다는 내용이 참 우화적이면서도 통찰력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경험을 묻는 질문에  ‘도쿄 디즈니랜드에 가서 놀았던 기억’을 대는 사람들이 의외로 너무 많았다는 사실이 서글퍼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는 감독의 인터뷰를 ‘씨네21’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그리고 [아무도 모른다]라는 영화를 정말 인상 깊게 보았고 [걸어도 걸어도]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도 무척 좋아하는 영화가 되었다. 게으른 탓에 데뷰작 [환상의 빛]이나 오다기리 조가 나오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오늘 본 [바닷마을 다이어리] 역시 좋았다. 정말 악인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드라마인데도 이렇게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저력은 아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번 작품은 어렸을 때 가족을 버리고 다른 가정을 꾸몄던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는 시건을 계기로 배다른 여동생과 살게 되는 세 자매의 이야기인데,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차분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스토리텔링이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특히 여성들과 아이들, 노인들 각각의 심리를 묘사하는 상황설정과 대사의 섬세함은 정말 최고다. 내친 김에 영화의 내용을 자세하게 쓰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아무리 그 내용을 상세히 전달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는 아야세 하루카는 예전엔 그저 예쁘다는 생각만 했는데 이젠 공력이 쌓여서 그 어려운 맏언니 역할도 참 똑부러지게 잘 하는구나 하는 생각, 가세 료가 어느새 저렇게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 릴리 프랭키는 정말 멋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그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앞으로도 무조건 봐야겠구나, 라고 생각했다는 것 등을 짧게 메모해 놓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아내는 ‘릴리 프랭키 아저씨는 우리나라 김창완과 참 비슷하다’는 얘기를 했다. 맞는 얘기다. 소설도 쓰고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도 하는 릴리 프랭키는 여러 가지로 김창완과 많이 닮았다. 특히 둘 다 어깨에 힘을 빼고 자유스러운 일상과 영혼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 그렇다. 


일상이 바쁘고 단조로워서 밀린 영화들이 많다. 개봉한 지 꽤 지난 타란티노의 영화도 봐야 하는데. 어쨌든 오늘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한 편 보았으니 이 또한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일은 월요일. 또 다시 일상과의 전쟁이다. 뭐 어쩌겠는가. 오늘 본 영화의 좋은 에너지를  연료 삼아 내일 하루를 또 무사히 잘 버텨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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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은 촬영 전 자기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에게 평소 입던 옷을 몇 벌 가져오게 한다고 한다. 그리고 조감독이나 스텝들을 몰래 집으로 보내 그 배우의 옷장에서 영화에 어울릴만한 헌옷들도 더 골라오게 한다고 한다. 과연 꾸며진 이야기나 전형적인 연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홍상수 감독이 할 만한 짓이다. 그가 천착하는 ‘자연스러움’은 그런 세심한 과정을 거쳐서 탄생하는 것이다. 덕분에 홍상수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연기에서도 자의식에서도 새로운 배우로 다시 태어나는 느낌을 준다.


홍상수 영화에 자주 출연하는 배우 김태우와 예지원이 함께 나오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 제목은 [내가 고백을 하면]. 일요일 밤에 [SBS스페셜] ‘가면 뒤의 눈물’을 보고 나니 기분이 너무 꿀꿀해져서 견딜 수가 없어서 혜자를 꼬셔 IPTV로 보게 된 영환데, 둘 다 차츰 영화 속으로 빠져들어가 아주 흐뭇한 마음이 되어 잠자리에 들었던 작품이다. (사실은 비비아나킴 님의 페이스북 담벼락에 처음 갔을 때 이 영화에 대한 칭찬을 마구마구 해놓은 걸 보고 ‘언젠가 한 번 꼭 찾아봐야지’, 하고 있긴 했던 영화다)

 


광화문에 있는 스폰지하우스의 극장주이며 영화제작에도 손을 대는 바쁜 몸이지만 주말이면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강릉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커피도 마시며 혼자 멍때리는 시간이 즐거운 영화감독 인성. 그리고 강릉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쭉 그곳에서 일해 왔지만 주말이면 어김없이 서울로 올라가 영화나 뮤지컬을 보며 문화생활을 만끽하는 게 유일한 낙인 간호사 유정.

 

두 사람에게 해결해야 할 거의 유일한 문제는 '주말 잠자리'인데, 인성은 매번 모텔 옆방에서 모르는 남녀가 질러대는 교성을 들으며 자는 것도 지겹고 호텔이 깨끗하긴 하지만 경제적으로 좀 부담이 된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유정은 올라갈 때마다 머물던 서울 친구에게 남자친구가 생기는 바람에 졸지에 찜질방에서 자야 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서로 엮일 게 별로 없을 것처럼 보이던 두 사람은 둘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강릉의 단골 카페 주인의 주선에 의해 주말마다 서로의 집을 바꿔 쓰기로 합의한다. 얼핏 도입부만 따져보면 잭 블랙과 케이트 윈슬렛이 주연한 [로맨틱 할리데이]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렇게 술렁술렁 얘기가 진행되는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다.

 

유정은 집을 바꿔 써도 괜찮을 거 같다고 하는 지성의 제안을 번번히 거절을 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생활에 침범하는 것이 귀찮은 것이다. 그러나 지성도 유정에게 딴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냥 요즘 떠오르고 있는 '카우치 서핑'이나 '에어 비앤비'처럼 서로의 편의를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하자는 것뿐인 것이다. 둘은 오랜 망설임을 거쳐 '서로의 물건을 건드리지 않는다', '냉장고 안의 음식은 먹지 않는다', ‘이성 친구는 데려오지 않는다’ 등등의 조건을 합의한 후 집 바꾸기에 돌입한다.


주인이 없는 남의 집에서 자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물건에는 그 사람의 삶이 녹아있다. 서로 같은 공간을 사용하지만 동시에 머물지는 않는 ‘이상한 동거’를 시작한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서로의 물건을 살펴본다. 처음엔 냉장고 안. 책꽂이. 그리고 TV옆의 CD와 DVD들. 조심스럽게 열어본 책갈피에서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나 공감 가는 메모를 발견할 때면 시공간을 초월한 친밀감이 느껴지기 않겠는가.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순간을 매개로 둘을 갑자기 확 묶어버리거나 하지 않는다. 인성에게는 투자자의 입맛에 맞게 시나리오를 고치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말썽쟁이 감독이 있고, 자신이라도 시나리오를 고쳐서 보여줘야 할 투자자가 있다. 피곤한 일상이다. 그러나 주말이면 어김없이 강릉으로 간다. 유정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동시에 출장 간호사도 겸임하고 있는데 암 말기 환자 부부를 돌보느라 다른 데 정신을 쏟을 여유가 없다. 자신과 불륜 관계였던 ‘김박’과의 정리도 아직 깔끔하게 끝내지 못한 상태다. 그러나 주말이면 여전히 서울로 올라간다.

 

 

조성규 감독의 [내가 고백을 하면]은 반드시 극적인 사건을 등장시키거나 인물들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서울의 달동네를 찾아 다니며 카메라에 담는 유정의 시선과 강릉의 바다를 바라보는 지성의 시선이 교차편집된 장면들은 아름다우면서도 선량하다.

 

그렇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저절로 [오늘의 사건사고]나 [카모메 식당],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등이 떠오르게 된다. 실제로 감독이 운영한다는 커피숍도 나오는데 이름이 ‘조제’다. 그리고 비슷한 느낌의 영화로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도 있다. 그러나 [해가 서쪽에서…]가 어떤 감동을 위한 촘촘한 준비로 가득 찬 영화였다면 이 작품은 결론을 정하지 않고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입장을 취해서 더 자유롭고 좋다.

 

그래서 등장인물들도 참 자연스럽고 멋진 연기를 펼치는 모양이다. 잘생기고 지적인 역할에 잘 어울리는 김태우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생활연기를 보여준다. 너그러움과 조심스러움, 자유로움을 함께 갖고 있는 조인성 감독은 딱 배우 김태우 그대로인 것처럼 느껴진다. 요즘 코믹한 역할을 많이 맡았던 예지원은 초반에 너무 웃음기 없는 캐릭터라 좀 부자연스러운가 하더니 중간부터 완전 몰입해서 진짜 간호사 유정이 되어버린다. 노래방에서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부르는 장면에선 가슴이 짠해진다. 그리고 안영미는 개그맨이 영화에 나와 희극 연기를 안 할 때 더 멋있게 보인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해 준다.

 


인성의 집에서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을 때 우리는 유정의 마음이 어느덧 인성에게 가 닿고 있음을 느낀다. 새로 준비하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고치느라 고심하던 인성은 자신이 언제부턴가 유정에게 하고싶은 말과 행동들을 시나리오에 넣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늦은 밤 강릉으로 달려간다. 유정의 집앞까지 가서는 잠깐 숨을 고르고 전화를 건다. 술이나 한 잔 하자고. 어서 내려오라고. 유정도 반가워 한다. 한달음에 내려온다. 그런데 이상하다. 막상 만나서는 술 대신 커피를 마시러 간다. 이런 싱거운 사람들. 하지만 이건 그런 영화다. 천천히, 사려깊게,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영화는 끝나가지만 두 사람은 이제 막 시작이다. 급할 거 없다. 그래서 둘은 술 대신 커피를 마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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