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를 보았다. 과연 눈물 없이 이 영화를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미루고 미루다 가긴 했지만 상영관 입구에서 곽티슈를 한 통씩 나눠주길래 '에이, 이건 좀 오버 아냐?'라고 했던 아내는 막상 안에 들어가서 상영 내내 휴지를 뽑아 눈물을 닦고 코를 팡팡 풀었다.

눈물의 포인트는 안희정의 인터뷰였다. 별로 슬픈 얘기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노무현은 확실히 별종이었다. 노무현의 운전기사와 전 국정원 직원의 인터뷰를 보면 알 수 있다. 평생을 생각한 대로 행동하고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사내. 그에게 우회도로나 지름길은 없었다. 그냥 정도를 뚜벅뚜벅 걷다가 절벽을 만나자 거기서 수직낙하했다. 그가 바로 노무현이다.

아내는 영화를 보고 나서 "이인제는 확실한 악역, 강원국은 유머와 코믹 담당"이러고 깔끔하게 정리를 해줬다. 나는 나레이션 한 번 없이 내러티브가 이렇게 잘 연결될 정도면 감독이나 구성작가들이 자료화면을 얼마나 많이 봐야 했을까를 생각하며 그 노고에 감탄했다. 감독과 함께 이 영화의 구성을 담당한 작가는 아내의 친구인 양희 씨다. 

우리는 영화를 보고 나와 남대문 부원면옥에 가서 냉면과 닭무침, 그리고 소주를 주문했다. 아내는 한 병만 마시라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닭무침 안주가 남아서 할 수 없이 한 병을 더 주문해야 했다. 그리고 나와 서울로를 걷다가 서울로 기획에 첨여했던 시청 직원 온수진 주무관을 만나 커피도 한 잔 했다.

영화는 슬펐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오히려 역설적인 희망이 생겼다. 우리는 노무현이라는 성공 케이스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선한 사람들이 이기는 경험. 그게 중요하다. 광고회사도 성공경험은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경쟁PT를 선호한다. 가끔은 우리가 옳다는 걸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막판에 죽음을 선택했다고 해서 그 누가 이를 실패라 말할 수 있겠는가.

비록 '노사모'는 아니었지만 우리 모두 노무현과 함께 한 시간을 기억하자. 어쨌든 그런 희망과 환희를 안겨 준 사람이 있었다니, 고마운 일 아닌가. 노무현의 눈물을 딛고 일어선 문재인 정부는 좀 더 강하고 더욱 세련되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이라 믿는다. 그게 '동업자' 노무현을 기리는 최선의 방법이니까.


(* 어제 낮술에 취해 페이스북에 올린 리뷰인데 기록 차원에서 여기에도 남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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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북악산 등산길에 오르면서 측근과 경호원들에게 조선의 도읍을 정하기까지 태조 이성계와 무학도사에게 있었던 일화를 해설사처럼 설명해주는 장면은 드라마 [웨스트윙]에서 걸핏하면 미국의 국립공원에 대해 강의하는 걸 즐기던 대통령 마틴 쉰를 떠올리게 한다. 아론 소킨이 각본을 쓴 이 드라마의 대통령도 노무현처럼 민주당 출신이있다. 차이가 있다면 노무현이 마틴 쉰은 경제학자 출신이지만 노무현은 인권변호사였다는 점 정도일까. 그보다 더 중요한 차별 포인트는 아무래도 노무현이 우리나라 최초의 고졸 대통령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노무현을 싫어하는 사람들 중엔  아직도 그의 학력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경우가 있지만 정작 그는 그 사실을 부끄러워 하기는커녕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편이었다. 학력은 고졸이었지만 그는 뛰어난 변호사였고 영어도 뛰어나게 잘했으며 그 누구보다도 아는 것이 많은 지식인이라는 프라이드가 강했으니까.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이런 유서를 남기고 불현듯 세상을 버린 전직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총리가 읽을 추도사를 써야하는 연설기획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건 아마 본인이 아니면 아무도 영원히 알 수 없으리라. 그래서였을까. “다시는 정치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다시는 바보 노무현으로 살지 마십시오”라는 눈물 나는추도사를 썼던 '노무현의 筆士’ 윤태영이 노 전 대통령과의 이십 년 인연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 

소설 [오래된 생각]을 읽으면서 연설 잘 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각이 많이 났다. 그의 시원하면서도 조리 있고 품격 넘치는 연설을 다시 듣고 싶어졌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유투브로 노무현의 연설을 찾아 들으면 눈물이 찔끔 날 때가 많다. 그래서 아내는 친구 양희 작가가 각본을 쓴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어떻게 봐야하나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눈물이 날까봐. 그저 대통령을 좋아했던 사람들이 이 지경이니 거의 24시간을 곁에서 붙어지내던 사람의 심정은 어떠할까.

회고록일수도 있었던 글이 소설로 탄생한 것은 열린정부 시절을 보다 입체적으로 그리고 싶었던 작가의 야심 때문이었으리라. 작가 윤태영은 운동권 경력 때문에 취직이 요원해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시절부터 시작한 글쓰기가 평생 직업이 된 '프로페셔널 라이터'다. 노무현 캠프 일을 맡으면서 방송원고와 홍보물들을 주로 썼고 노무현의 자서전 [여보, 나 좀 도와줘]의 집필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당선 후에는 그의 연설기획 비서관이 되어 가장 지근거리에서 대통령이 하는 모든 말을 기록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당연히 노무현 정권의 속사정에 대해 그 누구보다 밝을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노무현 정부가 몰락의 길을 걷던 2006년부터 시작된다. 김대중에 이어 민주정부의 길을 이어갔던 참여정부는 한미FTA와 부동산 가격 폭등, 북한 핵실험에 대한 반응, 작전통제권 환수문제, 대연정 제의 등등으로 인해 계속 하락세의 길을 걸어야 했다. 어느 정권이나 레임덕은 있었지만 노무현 정부는 처음의 그 기대만큼이나 실망감도 커서 그 댓가도 더 가혹했던 것이다. 게다가 노무현은 스스로 권력을 독점하지 않으려 제도적 노력을 기울인 최초의 집권자였다. 집권 초기 벌였던 ‘평검사들과의 대화’는 지금 보면 답답할 정도로 순진한 시도였고 결국 그는 검찰에 의해 자신의 모든 것을 잃는 신세가 된다. 

소설이 사실을 바탕으로 한 팩션이라고 하더라도 수기나 백서와 다른 것은 가상의 인물들을 설정해 사건을 보다 감성적이고 입체적으로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은 물론 글쓴 이 윤태영도 진익훈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의 여릴 적 친구이자 훗날 야당 대변인으로 대립각을 세우게 되는 인수, 그리고 그의 첫사람이었으나 결국 인수와 결혼하게 되는 희연 등이 등장해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권력이란 손잡이가 없는 칼과도 같은 것이었다. 쥐고 휘두를 수는 있지만 그러는 동안 자기 손에서도 피가 흐를 것을 감당해야 했다. 어설프게 사용했다가 자신만 다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조심해야 하는 것이 권력이었다. 

윤태영이 소설 속에서 진익훈의 입을 빌어 권력의 양면을 묘사한 문장이다. 일단 이 소설은 그의 안정되고 의미 있는 문장들을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소설가로서 또 문장가로서 그가 보여줄 수 많은 가능성에 대해 헤아려 본다. 노무현과 가장 가까웠던 필사 윤태영은 문재인 대통령의 수락연설 중 백미로 꼽히는 이런 문장을 쓴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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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이 복잡하고 집중이 안 될 때는 책장에서 아무 책이나 꺼내 펼쳐보는 습관이 있다. 세스 고딘의 [보랏빛 소가 온다2]를 펼쳤다. 전에 줄 쳐놓은 페이지들이 눈에 띈다. 그러나 내가 밑줄 친 곳엔 별 게 없다. 다른 페이지를 뒤적인다. 그러다가 230페이지에서 멈췄다. 

완전히 기대의 반대로 하기 

텍사스의 한 은행가로부터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자기네 은행이 경쟁사보다 더 많은 ATM 기계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선전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내 아이디어? ATM기의 20달러 지폐 칸에 100달러짜리 지폐를 몇 장 넣어두라고 했다. 많이는 말고, 아주 조금만. 
틀림없이 소문이 퍼질 것이다! 사람들의 기대를 깨고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을 함으로써(아아, 그러나 내 아이디어를 닮은 그 사람은 '챔피언 되기'에 관해 아는 것이 없었던 관계로 이 방법은 실현되지 못했다). 


왜 이 아이디어는 실현되지 못했을까? 터무니 없는 조언이라고 생각했겠지. 아이디어 실현 여부보다 더 아픈 건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세스 고딘처럼 재빨리 빛나는 아이디어를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보기에는 굉장히 위험하지만 사실은 절대적으로 안전한 유아용 장난감을 만들 수도 있다. 교회에 록밴드를 소개시키는 것은 어떨까? 시끄러운 물건을 소리 안 나게 내놓는다든가, 뚱뚱한 물건을 날씬한 물건으로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청구서를 보낼 때 막대사탕 하나를 같이 넣어 보내는 것도 괜찮겠지. 




세스 고딘은 끊임없이 생각한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이런 건 너무 정직하니 거꾸로 한 번 생각을 해볼까...? 지름길은 없다. 자꾸 새로운 생각을 해보는 사람만이 새로운 길을 찾는 법이다. 세스 고딘의 얘기에서 절망을 느낄 것인가, 희망을 느낄 것인가. 선택은 오로지 당신의 몫이다. 

(*위 글 중 '뚱뚱한 물건을 날씬한 물건으로'는 다이어트 코크 자판기 아이디어에서 이미 실현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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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한의원에 들러 침을 맞고 회사 가기 전에 강남교보에 들러 책을 한 권 샀다. 윤태영의 장편소설 [오래된 생각]이다. 참여정부 청와대 대변인과 제1부속실장을 지내며  '노무현의 필사(筆士)'라 불릴 정도록 가까이에서 노 전 대통령의 생각을 읽고 이를 글과 말로 옮겼던 이가 쓴 소설이다. 주인공은 대통령연설기획관인 진익훈이고 대통령은 임진혁이지만 상황이나 말투, 태도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빼다박은 걸 보면 이건 일종의 팩션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요즘 베스트셀러가 된 강원국의 [대통령의 글쓰기]를 살까 하다가 문재인 정부 출범을 맞아 노무현 시절을 좀 입체적으로 느껴보고 싶어져서 이 책으로 골랐다. 제목은 노무현의 유서에 쓰여 있던 바로 그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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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동쪽 어딘가에 있다는 행복의 나라를 상상해 본다. 그 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정치에 관심이 없다.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민주적인 생각의 틀이 전통으로 잘 이어져 내려오고 있고 중앙정부는 때때로 민의를 물어 법률을 개정하거나 곧바로 현실에 적용하기 때문에 따로 국회의원들이 발의를 미끼로 유세를 떨거나 협박을 할 수 없다. 그나마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들은 언론과 비정부기구들이 힘을 합쳐 퇴출하기 쉬운 구조를 만들어 놓아 함부로 까불지도 못한다.막말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그날로 정치 인생이 끝나기 십상이다. 


그 나라엔 과로사가 거의 없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하루 4시간 정도만 일한다. 그래서 어떤 직장은 4교대까지 가능한 곳도 많다. 생산직이나 공무원들만 그런 게 아니다. 물론 작가나 프로그래머, 기획자 같은 사람들 중에서는 하루 10시간 이상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개인의 선택에 의해서다. 그리고 그렇게 일하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큰 사회적 존경과 보상을 받는다. 

초등학생들은 숙제가 없다. 그날 배운 걸 그날 학교에서 다 소화하고 나머지 시간엔 놀면 된다. 아이들은 하고 싶은 공부를 선택해서 배울 수 있고 일년에 한 달은 자율학습을 할 수 있어서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 선행학습은 전면 금지되어 있다. 

부자들은 세금을 많이 내고 가난한 사람은 세금 혜택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부자들 중엔 집을 사지 않고 전세나 월세로 사는 사람이 많고 서민들은 집을 사는 경우가 많다. 서민일수록 대출 받기가 쉽기 때문이다. 

상을 받는 경우 애든 어른이든 거의 대부분 부상으로 여행의 기회가 주어진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경험은 여행이라는 사회적 합의 때문이다. 상품은 배낭여행부터 크루즈까지 다양한데 예를 들어 용감한 시민상을 받은 경우엔 몇 달씩 크루즈 세계여행을 시켜 주기도 한다.

벌을 받는 경우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교도소는 수만 권의 책이 꽂혀있는 대형도서관이다. 재소자들은 휴대폰이나 컴퓨터 등 전자기기를 몰수 당한 후 도서관에 갇혀 책을 읽어야 한다. 읽어야 할 책의 할당량이 주어진 것은 아니나 책을 읽은 뒤 독후감을 쓰는 경우엔 글의 질과 양에 따라 복역기간이 줄어들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 수감생활에 만족하는 편이기 때문에 독후감에 목숨을 거는 사람은 드물다. 일시적인 전자기기 사용 금지로 금단증상을 겪는 경우가 있으나 대부분 쉽게 아날로그적인 상황에 적응한다. 교도소에 다녀 온 사람일수록 삶이 여유롭고 윤택해졌다고 고백하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 선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만약 교도소가 도서관이라면 어떨까?'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던 게 떠올라서 아무렇게나 써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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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음이 어지럽거나 뭔가 머릿속이 정리가 잘 안 되는 느낌이 들 때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들을 다시 꺼내 읽는 버릇이 있다. 오늘도 그런 이유로 하루키의 [도쿄 기담집] 중 <시나가와 원숭이>를 먼저 읽고 다음 작품으로 <어디에서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를 골랐다. 신기한 것은 읽은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군데군데 내가 볼펜으로 밑줄을 쳐놓은 문장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 단편은 메릴린치에서 증권 거래인을 하다가 갑자기 아파트 계단 사이에서 맨몸으로 사라져버린 남편을 찾으러 온 여자의 사연을 듣게 된 탐정의 얘기다. 그런데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얼마 전에 읽은 [달과 6펜스]를 연상시키는 대목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폴 고갱도 주식 중개인이었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어느 날 부인과 아이들을 남겨둔 채 혼자서 타히티로 떠나 버렸다. 어쩌면...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설사 고갱이라고 하더라도, 지갑을 두고 떠나지는 않았을 테고, 만약 그 시절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가 있었다면, 그것도 잊지 않고 가져갔을 것이다. 어쨌든 타히티까지 가야 하니까.

여기까지 읽고 나서 나는 에버노트에 끄적여놨던 [달과 6펜스] 독후감의 초안을 다시 꺼냈다. 책을 읽은 다음날 급하게 메모를 조금 했다가 일이 바빠져서 중단한 상태 그대로였다. 그래, 오늘은 이 책의 독후감을 마져 써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20세기 초반의 영국 런던. 성실한 가장이자 증권 브로커였던 평범한 남자가 갑자기 집을 나간다. 그런데 그 이유가 여자나 노름에 미쳐서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화가가 되고 싶어서란다. 너무나도 유명한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의 도입부다. 나는 이 소설을 고등학교 때 삼중당문고라는 작은 문고판으로 읽었다(신기하게 아직도 내 책꽂이에 그 문고본이 꽂혀 있다). 어린 나이에 읽기에는 조금 버거운 내용이었는데 당시에도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의 일탈은 꽤나 매력적이었고 그게 화가 폴 고갱의 일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대목에 더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누군가 [달과 6펜스]를 마흔 살쯤 다시 읽어보면 새로운 게 보일 것이라고 쓴 글을 읽었다. 마음이 혹했다. 다시 읽어서 새롭지 않은 소설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서울 변두리에 살던 어느 고등학생의 겨울을 흔들어 놓았던 찰스 스트릭랜드의 이야기라면 다시 한 번 만날 만 하지, 라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라 회고록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스스로가 성공한 극작가이기도 했던 서머싯 몸은 화자를 런던에서이제 막  필명을 얻기 시작한 풋내기 극작가로 정하고 그가 만나게 된 찰스 스트릭랜드의 첫인상으로부터 시작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아무런 느낌이 없는 평범하고 덩치가 큰 남자였다, 로 요약된다. 주인공이라고 멋지거나 특이하거나 굳은 신념이 있거나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가는 시작부터 사람들이 흔히 빠질 수 있는 영웅담을 경계해야 한다 말하며 자신만의 '현대적인' 캐릭터 작법을 펼친다. 즉, 신화나 옛날 이야기에 나오던 멋진 주인공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만으로도 얼마든지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1919년에 발표된 소설임을 생각하면 놀랍도록 모던하고 스마트했던 작가다. 훗날 영국 첩보국의 비밀 스파이로도 활동한 것으로 밝혀졌던 서머싯 몸은 작가이면서 동시에 멋진 카피라이터이기도 했다. 자신의 소설을 팔기 위해 백만장자 미망인의 이름으로 '서머싯 몸의 신작 장편에 등장하는 주인공 남자와 닮은 남편감 구함'이라는 가짜 신문광고를 냈던 것이다. 그 꼼수 덕에 그의 소설이 날개 돋힌듯 팔렸음은 물론이다. 

이야기가 조금 옆길로 샜다. 아무튼 그렇다면 이 평범하던 남자 찰스 스트릭랜드는 어떻게 해서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 서머싯 몸은 그 이유를 알고 싶어 고갱의 일화를 찾아 타히티로 여행을 갔었다고 한다. 그러나 타히티에 찾아 간다고 고갱의 일생이 일목요연하게 짠, 하고 펼쳐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작가는 판단하기보다 알고자 하는 데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달과 6펜스>에 나오는 서머싯 몸의 이 문장은 소설가라는 직종이 학자나 기자와는 어떻게 다른지를 정확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여기 어떤 남편이 이유 없이 가출한 사건이 있다고 치자. 기자는 육하원칙에 따라 그 사건에 대한 기사를 쓸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쓴 짧은 기사는 그것만으로 명쾌하게 사건의 개요를 말해 준다. 필요하다면 왜 그런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해 심리학자의 의견을 덧붙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몇 줄의 기사만으로는 그 사건의 주인공들이 어떤 인생을 살아오다가 어떤 순간에 그런 일을 벌이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예술사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 알 도리가 없다. 그리고 그런 일은 잘 설명되지도 않는다. 인간은 논리적으로만 행동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사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소설가의 몫이다. 소설가는 단 몇 줄로 요약될 수도 있는 사건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이야기의 뼈대를 다시 맞추고 살을 붙여 입체적인 작품으로 만든다. 그래서 우리에겐 서머싯 몸 같은 입심 좋은 소설가가 필요한 것이다. 작가는 찰스 스트릭랜드의 부인을 옆에서 지켜보는 젊은 극작가를 등장시켜 주인공이 떠난 파리에 가서 그를 만나게 한다. 그런데 막상 만나본 그는 예술가로서 성공하려는 야심에 사로잡혀 있지도 않고 딱히 돈이나 편안함을 바라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열심히 그림을 그리지만 남의 평판에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뼈져 죽어요.' 라고 뇌까리며 그림에 대한 본능적인 욕망만을 표출할 뿐이다.

"그 사람 정말 천재일세. 확실해. 지금부터 백 년 후에 말일세. 사람들이 자네나 나를 조금이라도 기억해 준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찰스 스트릭랜드와 알고 지낸 덕분일걸세." 

지금이라도 누군가에게 팬심을 나타내고 싶을 때 써먹으면 정말 좋을 것 같은 이 문장은 파리에서 찰스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감탄하던 더크 스트로브의 말이다. 그러나 찰스는 자신을 극진하게 대접하는 더크에게 내내 시쿤둥할 뿐 아니라 나중에 찰스에게 반해 남편을 버리고 자신에게로 달려 온 블란치 스트로브에게도 매몰차게 굴어 결국 자살에 이르도록 만든다. 그런데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찰스는 자신의 생활이나 행복에 대해서도 철저히 무관심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의자에 앉을 때도 편한 의자에 앉는 법이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인간이 생겨났을까. 

위에서도 한 번 얘기했듯이 작가는 판단하기보다 알고자 하는 데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서미싯 몸은 이런 이상한 사내의 삶을 파고들어 역설적으로 보편적 인간들의 특질에 대해 알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소설을 빌어 '한 인간이 얼마나 다양한 특질로 형성되는지 아직 모르고 있었'다고 고백하고 '이제는 한 인간의 마음안에도 좀스러움과 위엄스러움, 악의와 선의, 증오와 사랑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안다'라고 털어놓는다. 그렇다. 사람은 단순하지 않다. 그리고 그런 인간의 모순과 순리를 잘 나타내기 위해 작가는 찰스 스트릭랜드처럼 인생의 굴곡이 뚜렷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이다. 

'달과 6펜스'란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여기저기서 마르고 닳도록 다루어 새삼 얘기하기에도 입이 아프니 생략하기로 하자. 다만 덧붙이자면 이 소설은 찰스의 인생을 따라가는 것도 재미 있고 그의 그림에 대한 묘사를 읽는 것만으로도 눈부시지만 그것 말고도 사랑이라든지 사람, 소설 작법 또는  하다 못해 인상파 화가들에 대해서까지 서머싯 몸이라는 작가가 지뢰처럼 여기저기 심어놓은 영리하고도 능숙한 달변들을 찾아보는 즐거움도 크다는 것을 일러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예를 하나만 더 들어보면 소설 쓰는 일과 소설가의 자세에 대한 서머싯 몸의 독설은 이런 식이다.

"세상에 쏟아져 나오는 무수한 책들, 책들이 출판될 때 저자들이 갖는 밝은 희망,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운명을 생각하다 보면 그것이야말로 유익한 수양이 된다. 어떤 책이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봐야 한철의 성공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다가 책을 산 독자에게 그저 몇 시간의 휴식을 제공하기 위해, 또는 여행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 저자가 얼마나 애를 썼으며, 얼마나 쓰라린 체험을 하였고, 얼마나 골머리를 앓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서평을 통해 판단해 보건데, 이들 책 가운데는 심혈을 기울여 쓴 좋은 책들이 많다. 구상에 고심한 책도 많다. 심지어는 평생의 노고를 바친 책들도 있다. 내가 여기에서 얻는 가르침은 작가란 글쓰는 즐거움과 생각의 짐을 벗어버리는 데서 보람을 찾아야 할 뿐, 다른 것에는 무관심하여야 하며, 칭찬이나 비난, 성공이나 실패에는 아랑곳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의 소설가 지망생들이 읽으면 한숨을 내쉬며 절망할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정작 서머싯 몸은 글로 돈을 아주 많이 벌어 대저택에서 살다가 1965년 91세로 영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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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말 중에 '간이 부었냐'는 표현이 있죠. 겁을 상실했냐는 놀림성 질문입니다. 


여기 그런 표현과 딱 맞는 광고가 있습니다. 콘돔 광고입니다. 원자력 사고 현장에서 보호 장구 없이 일을 한다거나 시가전에서 혼자 빨개벗고 있다거나, 유조선 화재사고에서 방화복 없이 일을 하는 것이나 모두 정신 나간 짓이겠죠. 콘돔 없이 섹스 하는 게 이런 것과 똑같은 행위라는 얘기를 직설화법으로 풀어놨습니다. 그리고 패키지엔 '너 자신을 보호하라(D'ONT BE STUPID : Protect yourself)는 경고가 크게 쓰여 있구요. 외국의 콘돔 광고들은 재미있는 게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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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으로 이사를 와서 생긴 변화 중 하나가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일이었다. 아파트에서는 없던 우리만의 뒷마당이 생겼고 거기엔 동네 길고양이들이 이따금씩 출몰했다. 단독주택이긴 했지만 내부는 단칸방처럼 좁디좁은 집이고 또 우리 부부는 고양이나 개를 기르는 일을 두려워하고 있었으므로 지나가는 고양이라도 우리에겐 반가운 손님이었다. 아내가 어느날 고양이 사료를 사오더니 뒷마당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에 사료와 물을 놓아 두기 시작했다. 그릇은 이가 빠지긴 했지만 노란색 루꾸르제 대접이었다. 그러자 길고양이들이 와서 먹이를 챙겨 먹었다. 계단 밑에 스티로폴 상자에 담요를 깔아두기도 했지만 거기 와서 잠을 자는 고양이는 없었다. 

길고양이들의 겨울나기는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길에서 아무 거나 먹고 돌아다니는 것은 물론 시동이 꺼진지 얼만 안 되는 자동차 엔진 밑에서 잠을 자다가 아침에 변을 당하는 일도 허다하다. 병원에 데려가주는 주인이 없으니 병에 걸리면 저절로 낫기를 기다리거나 앓다가 그대로 죽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길고양이들의 수명은 아주 짧다고 한다. 

아내는 고양이들의 이름을 제멋대로 지어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 와서 사료를 먹던 고양이 두 마리를 양일이, 양이라고 불렀다. 어미와 새끼로 보이는 녀석이들이었는데 새끼가 먹이를 먹을 동안 어미는 조금 떨어져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제 새끼가 배불리 먹이를 먹고 나면 비로소 자기도 와서 먹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양일이 양이 사이로 양삼이가 나타나기도 했고 나중에 양사까지 나타나 먹이를 두고 서로 으르렁거렸다. 우리는 큰 덩치로 기존의 고양이들을 윽박지르고 먹이를 독차지하는 양삼이를 미워했다. 게다가 어느날인가부터 양일이와 양이가 차례차례 보이지 않게 되자 그 미움은 더 커졌다. 양삼이는 덩치가 크고 검은 색깔 털을 가진 고양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양삼이도 양사도 결국은 오갈 데 없는 길고양이 신세인 것을. 그래, 너라도 많이 먹어라. 아내는 양삼이, 양사, 그리고 양오까지 누구든지 오기만 하면 아낌 없이 사료를 퍼주었다. 양오는 한쪽 귀가 조금 잘린 놈이었다. 나는 고양이들끼리 싸우다가 그랬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내는 어딘가 잡혀가서 중성화를 당하고 다시 풀려났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그렇게 번갈아 먹이를 나누어 먹다가 어느날인가엔 결국 모두 사라지고 양오 하나만 남게 되었다. 

양오는 도대체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면 베란다 위에 앉아서 우리를 힐난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이제야 일어나는 거야? 이 게으른 것들. 어서 먹이를 줘."라고 하는 듯한 얼굴을 한 채 발걸음을 계단쪽으로 향했다. 어떤 날은 저녁때도 찾아와 먹이를 요구했다. 아내는 기가 막힌다고 하면서도 그때마다 양오에게 먹이를 주었다. 

그런데 이틀 전부터 양오가 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우울한 목소리를 “여보, 양오가 안 보여.” 하며 걱정을 했다. 아침마다 마당으로 나가면 늘 우리를 쳐다보던 놈이 안 보이니까 그렇게 섭섭할 수가 없었다. 산꼭대기에 있는 작은 집에 사는 두 사람에겐 길고양이 한 마리의 존재가 생각보다 컸던 것이다. 


그런데 만우절인 오늘 아침에 일어나 밖에 나가보니 거짓말처럼 양오가 돌아와 있었다. 없어진지 사흘 만이었다. 다행이다. 어딜 갔다 이제 온 거야. 물어도 대답이 없다. 그저 어서 밥을 달라고 우리를 노려볼 뿐이다. 아, 이런 놈에게 계속 밥을 줘야하는 건가. 생각해 보면 우리도 참 불쌍하다. 그래도 잘 돌와왔어. 웰컴백이다, 양오야.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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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tvcf.co.kr/YCf/V.asp?Code=A000311812


누구나 일탈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들이 다 가는 정해진 길은 재미 없으니까요. 그래서 자우림이라는 밴드는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점프를~ 신도림역 안에서 스트립쇼를~'하고 노래했었죠. 그런데 그런 현대인의 욕구를 잘 건드린 캠페인이 나왔습니다. On-air 된지 며칠 안 된 유니클로 '감탄바지'바이럴입니다. 사실 본편 CM까지 그리 재미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좀 더 길고 자유롭게 생각을 펼칠 수 있는 바이럴에서는 드라마틱한 설정과 과장, 유머를 마음껏 살렸습니다. 남궁민이라는 모델도 흡입력이 있고 '감탄바지'라는 네이밍조차도 캠페인을 도와주고 있는 느낌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보셨나요? 뭐,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아이디어 아니냐고 애기하실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 아이디어를 끝까지 밀어 붙이고 유머의 디테일을 이토록 살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바이럴이 범람하는 요즘 같은 시대라면.  요즘은 클라이언트들마다 바이럴을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요구사항을 다 넣고 오너들의 개인 취향까지 반영한 이상한 바이럴을 만들게 하고는 그게 널리널리 퍼지길 바라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실 바이럴은 말 그대로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퍼지는' 건데 말입니다.

오늘 이 바이럴을 보고 많이 반성했습니다. 외국 레퍼런스를 보고 잘 만들었다고 하는 것과 우리나라 동업자들이 만든 작품을 보고 좋다고 칭찬하는 건 정말 다른 일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저도 당장 '재미있는' 바이럴 아이디어를 내라는 명령을 받고 끙끙대고 있는 빚쟁이 같은 입장이라서 괴롭습니다. 방법이 있나요. 그저 열심히 하는 수밖에. 점심 맛있게 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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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맨체스터 그라나다 방송국에서 송출감독으로 20여 년간 일했던 리 차일드라는 사내는 어느날 갑자기 직장에서 쫓겨난다. IMF가 기승를 부리던 시절,구조조정에 휩쓸린 것이다. 퇴직 소식을 들은 그는 밖으로 나가 곧장 '6달러짜리 펜과 노트'를 산 뒤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던 이야기들을 소설로 쓰기 시작했다. 그 소설은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 머리 좋은 람보 - '잭 리처' 시리즈의 첫 권이었다. 


근대 이후 어떤 시대든 사람들을 잠 못 들게 하는 가장 크고도 지속적인 고민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명제일 것이다. 존재론과 맞닿는 이 고민은 자연스럽게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고민으로 옮겨가기 일쑤인데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이 두 가지 질문에 힌트를 주는 반가운 책이 한 권 나왔다. 바로 홍순성의 [나는 1인 기업가다]이다. 과연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위에서 예를 든 리 차일드 같은 경우는 정말 꿈 같은 얘기다. 직장을 그만 두고 이렇게 대중소설을 써서 단박에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분명한 건 싫든 좋든 누구에게나 직장을 그만두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인해 평균 수명은 점점 늘어 이제 우리는 거의 80세까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저자가 책 앞머리에서 소개한대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나 [쿨하게 생존하라]의 저자 김호 씨는 '직장과 직업을 혼동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직업은 직장과 관련은 있지만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생 직장'보다 중요한 '평생 직업’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 것일까. 

먼저 모험이 필요하다. 이 책의 저자 홍순성은 블로그 필명 '혜민 아빠'로 잘 알려진 1인 기업가다. 그도 한 때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직장을 버리고 독립을 결심했다. 그의 전공은 IT와 스마트 워킹이었지만 점점 작업과 공부의 지평을 넓혀 지금은 스마트워킹 컨설턴트, 전문 인터뷰어(팟캐스트 운영), 1인 기업 매니저(액셀러레이터), 그리고 8권의 책을 쓴 작가 등 다양한 직업을 소화하는 멀티 플레이어가 되었다. 

무엇이 그를 ‘1인 기업가’로 변신하게 만들었을까. 그는 우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불필요한 일에 시간을 빼앗기는 게 싫었다’고 말한다. 아침에 출근해서 회의 한 번 하고 서류 작업 좀 하다가 점심 먹고 들어오면 시간이 훌쩍 간다. 자기 일만 해도 모자랄 판에 단체 생활을 위한 ‘쓸데 없는 일들’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독립을 하면 최소한 그런 일들에서는 벗어날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직장에서는 좋아서 하는 일보다 시켜서 하는 일이 더 많다. 물론 전문적인 일일 순 있다. 그런데 회사를 떠나서도 그 전문성이 나를 따라다니며 계속 아이덴티티를 지켜줄까? 뭔가 나만의 컨텐츠를 개발해야 했다. 그는 그 길을 ‘온라인’에서 찾았다. 

그전까지는 일단 아침에 사무실에 나가 책상 앞에 앉아야만 사무를 볼 수 있었지만 이젠 거의 모든 게 온라인과 모바일 디바이스로 해결 가능해졌다. 홍순성은 아침에 커피숍으로 출근을 할 때가 많다. 거기서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혼자 생각한 것들을 노트북에 정리하고 자료도 서치한다. 강의 준비를 하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기도 한다. 뭔가 생각한 것을 남기는 곳은 우선 블로그다. 1인 기업으로 살아남으려면 일단 남과 다른 생각이 필요한데 그 생각은 글로 증명되어야 하고 어딘가에 남겨져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책 여기 저기서 ‘글쓰기와 블로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하지만 누구나 블로깅, 또는 SNS를 하기 때문에 글쓰기의 중요성은 한층 더 커졌다. 저자는 무엇보다도 글쓰기가 중요하다고 누차 말한다. 잘 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매일 꾸준히 쓰는 것이라고. 

이 책은 무조건 처음부터 ‘1인 기업가’가 되라는 허무맹랑한 강요를 하진 않는다. 대신 직장에 있을 때 점심 시간을 이용해서라도 차근차근 독립을 위한 준비를 하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하는 일에 더 집중하라고 충고한다.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성이 없으면 아무리 잘하는 일이라 해도 돈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일에 집중하기 위해 세 가지를 버렸다는데 그 첫 째는 운전대다. 자동차를 버리고 걸어다니며 시간적 여유도 즐기고 상념에 잠기기도 한다. 그리고 무거운 가방과 조급한 마음도 버렸다. 새처럼 가볍게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 뿐 아니라 저자는 우리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노하우들도 알려준다. 새로운 생각은 수첩에 적기도 하고 마인드맵이나 워크 플로위, 에버노트 등에 수집, 기록한다. 구글 알리미 서비스를 이용하면 좋다고도 알려 준다(난 아직 쓰지 않고 있지 않지만). 그는 언제부터 이런 것들을 다 알았을까. 아마도 스마트 워킹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공부하다 보니 어느덧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버린 것이고 그 노하우들은 그대로 독자들에게도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나도 홍순성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에버노트 전문가’ 로서였다.



예전에는 10년이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젠 10년 일하면 감각이 다하고 진이 빠져 물러나야 하는 인물이 될  수도 있다. 세상이 그렇게 변한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의 특별한 가치와 ‘즐겁게 일하는 것’의 중요성이다. 저자는 말한다. 초기엔 하고싶은 것만 하는 만용을 부리기 쉬운데 그것은 ‘예술가 마인드’다. 이건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하지만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하는 ‘장사꾼 마인드’도 있다. 예술가에서 장사꾼을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사람만이 ‘1인 기업가’로 즐겁게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에 다닌다고 남의 사업을 다 성공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창업 관련 전문가라고 해서 창업 상담할 때마다 대박이 나는 것도 아니다. 그런 면에서 홍순성은 좀 믿을 만하다. 일단 남들보다 먼저 바람 부는 벌판에 나와 온몸으로 부딪쳐가며 ‘1인기업’을 몸소 일구어봤고 지금도 끊임없이 구체적인 노하우를 축적, 전파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구나 그 경험은 여전히 블로그, SNS, 팟캐스트 등 다양한 채널로 업데이트 되며 누구나 손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저자가 여러번 주장했듯이 책만큼 생각이 잘 정리되고 집약적으로 전파되는 매체도 드물다. 

이 책은 당장 ‘1인 기업’을 준비하려는 사람들에게 눈이 번쩍 뜨이는 고마운 선물이 되겠지만 나는 그보다 지금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장 독립이 필요한 사람에겐 그대로 따라해야하는 메뉴얼일지 몰라도 아직 약간의 심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이 책을 조금 더 비판적으로 읽으며 자신의 생각을 첨가하는 ‘인문학적’ 접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탈무드의 마지막 페이지는 늘 새로운 생각을 위해 백지로 비워져 있다고 했던가. 이 책도 마찬가지다. 처음 마음의 불씨는 홍순성이라는 저자가 피웠을지 몰라도 그 불을 가꾸어 가는 것은 오직 독자인 당신의 몫이다. 정답은 없고 이미 경험한 자의 진솔한 충고만 있을 뿐이다. 다행히 그 충고는 매우 유용하고도 구체적인 듯하다. 

 (*사족 : 내가 읽은 책은 초판1쇄인데, 218페이지 셋째 줄에 이원태 작가를 ‘이원탁’ 이라고 썼다. 아마도 같은 문장에 나오는 김탁환 작가 때문인 것 같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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