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편 한 번 본 것 말고는 어떤 사전지식도 없이 갑자기 어젯밤 신사동 롯데시네마 브로드웨이극장에 혼자 가서 [마스터]를 봤다. 올해 12월 31일까지 쓰지 않으면 휴지가 되는 영화초대권이 있어서였다. 별 생각 없이 선택한 흥행작이었는데 감독이 [감시자들]의 조의석 감독이라는 걸 알고 나서 '최소한 스피디하고 영리하긴 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감시자들]을 보고 조금 놀랐었다. 특히 서울시내에서 감행한 몹씬이나 추격신이 인상 깊었다.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나 [도둑들]이 생각나는 케이퍼 무비. 등장 인물들의 선악 구분이 뚜렸하고 사건도 명쾌하지만 이리저리 속도감 있게 엎치락 뒤치락 하는 쾌감을 선사하기 위해 색다른 금융지식을 등장시키고 실제 인물들의 일화까지 반영하는 등 시나리오에 골고루 양념을 쳤다. 그러다 보니 러닝타임이 무려 143분. 영화 두 편을 한꺼번에 몰아본 기분이 든다. 하지만 길다고 꼭 지루한 건 아니다. 일단 이병헌이라는 확고부동한 스타가 중심을 잡아주고 강동원과 김우빈도 놀라울 정도로 연기를 잘 하기 때문이다. 연기를 잘 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역할을 성실하게 잘 수행하는 느낌이랄까. 왜 그런 거 있잖은가. 수퍼세션맨들이 모여서 한 무대에 섰는데 어느 하나 튀지 않고 각자의 연주가 온몸으로 골고루 스미는 쾌감. 엄지원, 진경, 오달수는 물론 잠깐 나오는 원로 연극배우 박정자까지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적절하게 열연을 펼친다.

이상하게 들릴진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끝까지 가벼움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영화다. 악당들은 수 조원의 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도 표정이나 말투가 장난치듯 경쾌하고 경찰들도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악당들에게 이죽거리는 여유를 부릴망정 크게 주눅이 들지 않는다. 나는 이게 이 영화의 승리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최근의 대한민국은 영화나 소설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역동적이고 엽기적인 일이 많았는데 영화에서까지 그렇게 극단적으로 달려나간다면 참 견디기 힘든 노릇이 아니겠는가. 최근 김성수의 [아수라]가 대박을 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도 그거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입만 열면 들리는 3조 원, 6조 원 등의 금액이 좀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걱정 마시라. 내년에도 박근혜 최순실 패거리들이 벌인 국정농단 사건이 베일을 벗을 때마다 우리는 계속 그런 단위에 익숙한 서민들이 되어야 할 테니까.  

이 영화가 '천 만 관객'을 찍을지 안 찍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몇 년 후 다시 봐도 배우들의 활약만큼은 '미친 존재감'의 레퍼런스로 남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영화가 끝나고 송년 회식을 하고 있는 아내에게 뒤늦게 전화를 했다가 치사하게 혼자 그런 영화를 보느냐고 야단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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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각박해지고 국정농단까지 겹치는 바람에 겨울이 와도 크리스마스 기분이 안 나는 건 꽤 오래 되었지만 그래도 이맘때쯤엔 연극이나 뮤지컬을 꼭 한 편 보고 지나가자고 약속했었다. 그래서 올해도 아내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맞춰 창작 뮤지컬을 하나 예매했다. 유정민 작가가 극본을 쓰고 연기도 하는 일인극 뮤지컬 [오늘 하루]다.

유정민의 출연작으로는 [식구를 찾아서]와 [스페셜 딜리버리]에 이어 세 번째 작품인 것 같다. 유산을 한 번 한 경험이 있는 30대 동화작가가 4년만에 새 아기를 임신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작가가 직접 쓰고 연기를 해서인지 세세한 디테일까지 대사가 아주 수다스러우면서도 오밀조밀하다. 유정민은 주인공인 동화작가 민지원도 되었다가 친구인 자현도 되었다가 남편 태주도 된다. 심지어 둘이 결혼할 때 반대했던 경상도 시어머니와 전라도 친정엄마 역할까지 '변검'처럼 척척 해낸다. 디테일도 훌륭하다. 속이 타는 연기를 할 때는 백산수 한 병을 벌컥벌컥 다 마셔버리고 휴대전화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네 번이나 기종이 바뀐다.

일인극이라고는 하지만 휴대전화 통화, 스크린 이용 등을 통해 여러 배우들을 보고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고 무대 왼쪽엔 일렉과 어쿠스틱을 오가며 연주하는 기타와 키보드, 바이얼린 연주자들, 그리고 극 중간 중간 동화를 낭독하는 여섯 살짜리 꼬마 오유주까지 있어 무대가 꽉 찬다(오유주는 이 연극의 연출가인 오준석 PD와 유정민 배우의 딸이다. 딸이 셋인데 갓난아기까지 둘이 이 연극에 잠깐 출연을 한다).

연기는 물론 노래 솜씨까지 빼어난 유정민의 스토리를 따라 깔깔거리고 웃다보면 어느새 따뜻한 눈물이 흐르게 되는 뮤지컬이다. 유정민은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데 6년 전 첫 딸을 낳고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이럴게 재미 있고 진심으로 가득한 연극이 내일까지 단 나흘간만 상연된다는 게 안타깝다. 아마 또 다른 곳에서 또 볼 날이 곧 오겠지, 라고 희망을 걸어본다. 크리스마스가 여름에 있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오늘 본 [오늘 하루]는 힘겹게 또 한 해를 살아온 우리 부부에게 주는 작은 선물 같은 작품이었다. 모두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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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V 예매 어플에 뜬 <비치 온 더 비치>라는 영화 제목은 단박에 'Sex on the beach'라는 칵테일의 이름을 떠올리게 한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정가영이라는 감독이 만든 영화인데 홍상수가 생각난다는 평이 있었다. 조금 더 궁금해져서 유투브에 들어가 그가 만들었다는 단편영화 <내가 어때섷ㅎㅎ>이라는 작품을 먼저 찾아 보았다. 그냥 콘도 응접실 같은 데에 카메라 한 대 뻗쳐놓고 13분동안 두 남녀가 앉아 맥주 마시며 수작질하는 내용이 전부였는데 놀랍도록 재미가 있었다. 감독이자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한 정가영은 '여자가 들이대는 영화를 만들어보면 재밌을 거 같아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는 정말 그의 생각대로 어이 없이 웃기면서도 귀여운 맛이 있었다. 내친 김에 <처음>이라는 단편도 찾아보았다. 연기과에 다니는 남학생이 두 여학생이 있는 방에 찾아와서 영화 촬영 전 첫 키스를 경험하고 싶으니 협조해 달라고 얘기하는 황당한 내용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정가영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 특히 평범하면서도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억양이 일품이다. 성적 욕망에 충실하지만 실제로는 잘 되지 않는 캐릭터, 하면 그동안 윤성호 감독만 떠올랐었는데 이제 정가영이라는 막강 캐릭터가 하나 더 생긴 거 같아서 반가웠다. 개봉한지 며칠 되지 않은 영화 <<비치 온 더 비치>. 극장에서 내리기 전에 보러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사실은 <라라랜드>가 더 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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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 작은 연못이 있습니다. 거기 수련 한포기가 살고 있습니다. 
나는 수련에게 왜 더러운 진흙 속에 뿌리 내리고 있느냐고 묻지 않습니다. 
진흙이야말로 존재의 바탕이요 수련의 현실이요 운명입니다. 

사람들은 제게 왜 진흙탕 속으로 들어가느냐고 묻습니다. 
진흙이야말로 있는 그대로의 우리의 현실 아닐까요.
아비규환의 현실, 고통과 절규와 슬픔과 궁핍과 몸부림의 현실. 

그 속에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을까요. 집을 짓기 위해 벽돌을 찍으려면 몸에 흙이 묻습니다. 집을 고쳐 지으려면 흙먼지를 뒤집어쓰게 됩니다. 지난 사년간 온몸에 흑을 묻히고,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이 시들을 썼습니다. 

구도의 길과 세속의 길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수행을 통해 가고자 하는 길과 사랑을 실천하면서 가고자 하는 길이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2016년 10월 
도종환


오늘 점심시간에 서점에서 집어든 도종환의 새 시집 [사월 바다]에 실린 '시인의 말' 전문이다. 도종환은 그 옛날 [접시꽃 당신]이라는 베스트셀러를 낸 시인이기도 하지만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가 현재 재선에 성공한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서정시인이었던 그가 왜 뒤늦게 국회의원이 되어 시정잡배들과 어울릴까. 왜 스스로 문체부장관이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려가며 답답한 현안들을 붙들고 시장바닥보다 지저분한 곳에서 나딩구는 걸까.
 
브레히트는 나치 이후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고 했지만 도종환은 이미 브레히트의 절망도 아도르노의 엄살도 아랑곳하지 않을 결심이 선 모양이다. 그래서 기꺼이 아이들이 수장된 사월의 바다로 들어가고 중상모략과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진흙탕 속에 들어가 온몸으로 세상과 역린한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이런 서정시들을 손바닥에 쓴다. 

나는 그런 그가 든든하다. 이런 강철 같은 정신력의 서정시인이 우리 옆에 하나 존재한다는 사실이 기쁘다. 사무실에 들어와 급하게 휘리릭 들춰본 시집 중 '해장국'이라는 시가 눈에 띈다. 우리 시대의 서정시는 이런 것이라는 듯, 시에서 김이 난다. 따뜻하다 못해 이내 뜨거워진다. 일단 그 시를 여기에 남기며 짧은 메모를 접는다. 



해장국


사람에게서 받지 못한 위로가 여기 있다
밤새도록 벌겋게 달아오르던 목청은 쉬고
이기지 못하는 것들을 안고 용쓰던 시간도 가고
분노를 대신 감당하느라 지쳐 쓰러진 살들을
다독이고 쓰다듬어줄 손길은 멀어진 지 오래
어서 오라는 말 안녕히 가라는 말
이런 말밖에 하지 않는
주방장이면서 주인인 그 남자가 힐끗 내다보고는
큰 손으로 나무 식탁에 옮겨다놓은
콩나물해장국 뚝배기에 찬 손을 대고 있으면
콧잔틍이 시큰해진다
어디서 이렇게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으랴
떨어진 잎들이 정처를 찾지 못해 몰려다니는
창밖은 가을도 다 자나가는데
사람에게서 위로보다는 상처를 더 많이 받는 날
세상에서 받은 쓰라린 것들을 뜨거움으로 가라앉히며 
매 맞은 듯 얼얼한 몸 깊은 곳으로 내려갈 
한숟갈의 떨림에 가만히 눈을 감는 
늦은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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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어떤 평론가가 작가 이병주를 평하면서 그가 일제시대와 815해방, 625사변, 419혁명, 516쿠데타 등등 파란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어온 세대라 그만큼 할 이야기도 많은 작가라고 쓴 걸 읽은 기억이 난다. 작가에게 할 얘기가 많다는 것은 일단 축복일 것이나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몸에 저장하기 위해 그가 살아내야 했던 힘겹고 유난한 세월 또한 그에겐 축복이었을까. 


김이정의 소설 [유령의 시간]을 읽으면서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 이 소설은 작가의 아버지 이야기이며 동시에 그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일제시대에 일본에 가서 공부를 할 정도로 똑똑하던 이섭은 독립운동을 하던 실천적 지식인인 숙부의 영향으로 인해 사회주의자가 된다. 그리고 한때 '이마가 아름다운 여인' 진을 만나 아이 셋을 둔 행복한 가장이었으나 자신이 수배되어 도망 다니는 동안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남과 북으로 갈린 생이별을 하게 된다. 실의에 젖어 살던 이섭에게 미자라는 여자가 왔다. 그녀 또한 전쟁이 터지던 날 폭발사고로 남편을 잃은 불운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며 네 아이를 더 낳게 된다. 작가의 분신인 ‘지형’은 그들의 첫째 딸인 것이다. 

제주도에서 말을 키우기도 하고 서해안에 와서 새우를 키우기도 하던 이섭. 사람들은 신수가 번듯하고 배운티도 많이 나는 이섭이 왜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못하고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사업을 하며 전국을 떠돌아야 하는지 궁금해 하지만 이섭은 그저 술잔을 기울이며 쓰게 웃을 뿐이다. 대한민국에서 한 번 사회주의자로 낙인 찍힌 사람은 취직을 하기도 어디 한 군데 정착하며 살기도 힘든 것은 물론 오촌 친척의 해외 지사 발령까지 불가능하게 만드는 ‘연좌제’의 시절이었던 것이다. 별 재미를 보지 못했던 제주도 말 목장도 해안의 새우 양식장도 결국 예전 장인의 도움 없이는 차릴 수 없었던 것에 심한 콤플렉스를 느끼며 살았던 이섭. 그는 새로운 가족들과 생활을 꾸려가면서도 예전 아내와 아이들을 잊지 못한다.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자칫 무겁고 답답하기만 한 내용일 수도 있는 이야기는 김이정의 물 흐르듯 유려한 필력으로 생명력을 얻는다.  작가의 글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낄 만한 문장들이 많이 나온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 건너 온 이모 윤과 그녀의 딸 미희를 지형이 처음 만날 때의 느낌을 간단하게 묘사한 이런 글을 보라. 

“서울 사람들은 전부 얼굴이 하얗디야. 우리 언니가 서울 갔다 왔는디 거기 사람들은 수돗물을 먹어서 얼굴이 다 그렇게 하얀 거랴.” 
  지난봄, 숙자가 자랑처럼 한 말이었다. 숙자의 언니가 방직 공장에 취직하러 서울에 다녀 온 직후였다. 
  일본은 서울보다 수돗물이 더 잘 나오는지, 그들은 유난히 희었다. 몸 전체에 석회라도 발라 놓은 것 같았다. 미희는 밑단에 흰 수술이 달린 큰 꽃무늬 반팔 상의와 곧은 다리가 허벅지까지 드러나는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녀가 신고 있는 흰 에나멜 구두가 내리꽂히는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작가는 소설에서처럼 실제로 어느 날 아버지가 자기 형제들을 불러 앉혀놓고 이제부터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다고 알리며 ‘유령의 시간’이라는 제목까지 그때 정해 두었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다. 김이정은 아버지가 시작한 글을 40년 만에 완성하게 된 셈이고 어차피 그 일은 오빠 대신 소설가가 된 자신의 몫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 소설의 초고를 쓰기 시작한 것은 뜻밖에도 절명의 위기에 봉착했을 때였다고 한다. 모든 것을 다 잃은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일 도서관에 나가 글을 쓰는 것 뿐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그는 이 소설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이 글이 그에게 구명보트가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누구에게나 살면서 꼭 해야 할 자신의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그게 김이정의 개인사처럼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의 질곡과 만나는 지점에 있을 경우에는 많은 독자들에게 더욱 묵직한 울림이 되는 것이다. 최순실과 박근혜의 국정 농단 등으로 모든 의욕이 사라지는 시기에 허무를 견디는 심정으로 출퇴근 시간마다 전철 안에서 악착 같이 이 책을 읽었다. 책 뒷표지에 실린 소설가 김미월의 글 일부가 내 소감과 거의 똑같기에 이 글의 결론을 대신해 여기에 옮겨둔다.

모든 훌륭한 소설이 그러하듯이 [유령의 시간]은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고 세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고 마침내 나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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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는 재법 선이 굵은 사회파 드라마를 연출했으나 요즘은 '살짝 막장성 드라마'로 외도를 함으로써 시청률의 달콤함을 맛본 모 PD에게 동료 PD가 장래가 촉망되는 어린 작가를 하나 소개해 줬다. 

"야, 얘가 아주 골때려요. 제2의 임성한이라는 소릴 듣는다는 앤데, 사고가 아주 자유롭고 튀어." 

호기심이 생긴 모 PD는 다음날 그녀를 방송국으로 불렀다. 마치 준비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 자신이 요즘 구상하고 있다는 작품에 대해 피처링을 시작하는 그녀.

"일단,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해요. 그런데 대통령직을 시작하는 수락 연설문부터 그녀 대신 읽고 고쳐주는 여자가 있어요. 최 마담이라고. 그녀는 대통령이 어렸을 때부터 따르던 어떤 사이비 교주의 다섯번째 딸이에요. 어렸을 때부터의 인연으로 그녀는 대통령이 읽는 모든 연설문의 초고를 첨삭지도해요. 아, 인사에도 개입해요. 장관도 추천하고 고위 공직자도 자르고 그래요. 그리고 대통령 옷이나 핸드백도 죄다 이 여자가 챙겨줘요..." 


잠깐, 그럼 대통령은 뭘 하지? 모 PD가 중간을 자르고 물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대통령은 그녀가 시키는대로 읽고 말하고 입고 오가며 대통령 코스프레를 하게 돼요. 그녀 역할이 좀 비는 거 같아서 제가 '유체이탈화법'을 하나 고안했어요. 자기 책임이 불거질 일이 생길 때마다 남의 일처럼 얘기하는 화법이에요. 그녀는 스스로는 얘길 잘 안 해요. 어쩌다 최 마담이 바빠서 첨삭지도를 놓치는 날엔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하는 것을 정신만 차리고 나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걸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셔야 할 것입니다'

같은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이 튀어나와요. 이렇게 대본을 쓰면 욕을 먹겠지만 상관 없어요. 사람들은 욕하면서도 계속 이 드라마를 볼 테니까요. 그리고 아주 가끔씩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 같은 코엘류 식의 잠언을 하나씩 심어요. 여당은 살아남기 위해 이 사실들을 다 알면서도 모르는척 하죠. 야당은...에, 야당은 그냥 병신들이라 몰랐다고 할까요? 좀 리얼리티가 떨어지긴 하지만 뭐 꼭 틀린 말도 아닌 거 같고. 

최 마담이 재단을 설립하면 하루만에 허가가 나와요. 자주 다니던 마사지센터 사장을 바지사장으로 앉혀도 다 돼요. 재벌들이 수백 억씩 거둬주니까. 아, 그리고 막판엔 CF감독도 하나 등장해요. 그 사람을 거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 문화판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데 그를 최 마담한테 소개한 남자는 전직 호빠 마담쯤으로 하는 건 어떨까요? 황당할수록 재밌잖아요. 이왕 지르는 거 막 쓰죠 뭐. 최 마담의 딸은 말을 타는데 얘가 말 타면서 여러 사람의 목을 베요. 스물 살에 애도 하나 낳구요. 애 아빠는 아직 어리니까 그냥 '전직 삐끼' 정도로 처리할까요?

그러다가 최 마담이 도망가면서 컴퓨터를 건물 관리인한테 맡겨요. 그런데 어떤 기자가 그걸 우연히 손에 넣고 보니 거기 그동안의 대통령 연설문이나 외교문서가 고스란히 다 들어있는 거죠. 말하자면 최 마담의 집이 사실상의 청와대 집무실이었다는 게 밝혀지는 거죠. 바로 전날 대통령은 개헌을 하자고 쉴드를 쳐놓은 상태인데...

눈이 동그래져서 그녀의 얘기를 듣던 모 PD는 손을 번쩍 들어 그녀를 멈추게 하고는 급히라 부하직원을 불렀다. 

"야, 이년 당장 치워라. 어따대고 이런 개막장을...도대체 지금 니가 씨부린 것들이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냐, 이 미친년아?"


그 후로 장래가 촉망되던 그 어린 작가는 모 PD가 하도 여기저기 치를 떨며 악소문을 내는 바람에 아주 연예계에 발을 붙일 수 없게 되었고 그리하여 우리는 '제2의 임성한'이 될 아까운 재목 하나를 놓치게 되었다는 아주 슬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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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새벽 산길을 혼자 걷는 상상을 해보자. 아니면 해가 뉘엇뉘엇 지는 풍경이 무심히 펼쳐지는 홍대앞이나 서촌의 골목 또는 이면도로도 좋다. 이 그림들이 내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펼쳐지는 건 상상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 시간에 그 길을 걸어본 적이 있어서다. 그렇다. 나도 산책을 좋아한다.

'나도' 라고 쓴 이유는 동서고금의 수많은 인간들이 산책을 좋아한다고 이미 고백을 했기 때문이다. 니체는 어지간히 걷는 것을 좋아했는지  “심오한 영감, 그 모든 것을 길 위에서 떠올린다”라고 했고 칸트는 매일 마을길을 산책했는데 그 시간이 늘 일정해서 마을 사람들이 그를 보고 시계를 맞췄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그러나 칸트처럼 강박적으로 일정한 시간에 산책을 하는 건 미친 짓이다. 왜냐하면 산책의 진정한 묘미는 '목적이 없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은 어디어디까지 걸어봐야지' 하는 정도의 마음을 먹을 수는 있다. 그러나 목적지가 너무 분명하거나 몇 시까지 어디를 꼭 갔다와야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걸 산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마 이번에 [산책 안에 담은 것들]이라는 산문집을 낸 이원 시인도 나와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새벽에 깨어 홀로 걷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원 시인. 그녀는 왜 산책을 좋아하는 것일까. 내 생각엔 산책은 '걸으면서 하는 독서'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또는 걸으면서 하는 '비움'일 수도 있겠다. 산책하는 사람의 발걸음은 가볍고 허허롭다. 두 다리는 길을 걷고 있지만 마음은 머릿속에 있는 상념들 사이를 거닐고 있다. 그 상념들은 도서관에서 마주쳤던 책들이기도 하고 극장에서 보았던 수천 편의 영화이기도 하고 자신이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원 시인이 걷는 길은 그곳이 절두산 성지든 홍대앞이든 결국은 시인의 마음 속 길에 다름 아니다.

어떤 때는 울 일이 있어 9Kg의 몸무게가 빠지도록 몇 달을 계속 울기도 했던 시인은 결국 또 다시 힘을 낸 자신의 두 다리 위에 몸을 실어 산책길에 나선다. 그녀에게 '산책은 한가로운 시간인 동시에 뜨겁고 깊은 시간'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는 곳이 달라질때마다 어떤 날은 경복궁역 2번출구로 나와 이상이 살았던 집터 앞에 무한정 서서 "예술가의 흔적을 찾아 골목을 찾게 만드는 힘, 문화는 다름 아닌 그것이다'라고 중얼거리기도 하고 어떤 날은 은평구에 있는 진관사 입구까지 걸어가 합장을 하기도 한다. 그녀가 그동안 걸어다닌 홍대, 한강, 명동, 시장, 골목, 동네, 갤러리는 물론 멀리 파리의 골목에 가서도 그녀는 어떤 특별한 것을 하지 않는다. 그저 걸음으로써 마음에 빈 공간을 만들 뿐이다. 


이 산문집은 한 번에 휘리릭 읽히는 책이 아니다. 어떤 때는 시인다운 아름다운 문체로 이루어진 깊은 잠언을 들려주기도 하고 어떤 때는 수다스러운 누나처럼 우리가 가보지 못한 길의 비밀들을 알려주기도 하는 이원의 산문들. 그러니 이 책을 한 번에 휘리릭 읽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거니와 저자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우리가 하루에 한 번씩 짧은 산책을 하듯 이 책도 한 챕터씩, 또는 몇 장씩 아껴가며 읽는 것은 어떨까. 나는 이번주 토요일에 저자와 함께 이 책을 들고 홍대와 절두산 주변을 산책할 것이다. 아내가 일하는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라 나도 운 좋게 그 행사에 초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모두 같은 책을 들고 시인과 함께 조근조근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산책이라니. 벌써부터 토요일 아침이 기다려진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쓴 '우리동네'에 대한 짧은 글을 여기에 옮겨본다. 

우리 동네가 된다는 것. 슬리퍼를 신고 트레이닝복을 입고 헝클어진 머리로 어슬렁거리는 동선이 생긴다는 것. 잘 모르는 가게 주인과도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눌 수 있다는 것. 뒷골목에 있는 오래된 빵집과 오래된 떡집을 비교할 수 있다는 것. 가장 맛있는 떡과 빵을 고를 수 있다는 것. 지도에 생겨나고 사라지는 곳을 표시할 수 있다는 것. 길을 자꾸자꾸 발견하게 된다는 것. 알게 되는 골목만큼 잠시 멈춤, 즉 간단(間斷)의 시간도 늘어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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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라고 하는 한심하고 야비한 방송사를 그래도 시청자들이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한도전’이나 ‘복면가왕'과 같은 킬러 콘텐츠가 아직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엔 ‘PD수첩’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런데 황우석 사건 등등에 대한 정권의 입맛을 해치는 취재와 방송 이후 PD수첩의 주요 PD들이 좌천되고 해직되었다. 뉴스타파로 간 최승호 PD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다. 그는 뉴스타파에서 일하면서 만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라는 이상한 사건을 한 번 깊게 파보기로 결심한다.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이니까. 요즘 같은 세상에 서울시 공무원이 간첩이라니,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은  ‘21세기 액션 블럭버스터’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다분히 과장된 유머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그리 틀린 타이틀도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일단 ‘스파이’가 등장한다. 거짓말이 난무하고 강력한 방어기제가 있으며 그걸 파헤치는 PD의 담대함은 ‘저러다 어디 한 군데 크게 다치는 거 아냐?’라고 염려가 될 정도로 ‘무대뽀’일 때가 많다. 이 영화는 최승호라는 ‘공익적인’ 인간의 집념이 어떻게 실천적으로 진행되고 구현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소중한 결과물이다.

북한에서 살았던 유우성의 동생 유가려는 오로지 친오빠와 함께 살고 싶다는 이유로 서울에 온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와 국정원은 그녀를 합동신문센터라는 곳으로 데려가 6개월 간이나 감금한 채 협박과 회유, 폭행을 일삼는다. 하이힐이나 구둣발로 자신을 때리다가 조금 후엔 같이 눈물을 흘리고 껴앉아주는 ‘언니’와 ‘큰삼촌’ 수사관들의 농간에 판단력이 흐려진 그녀는 결국 '오빠를 위해’ 유우성이 간첩이라고 거짓 자백을 하게 된다. 당연히 그것 때문에 유우성은 체포되어 감방으로 끌려간다. 아무래도 이 나라엔 ‘간첩’이 꼭 필요한 모양이다. 영화 곳곳에 재판정에서의 실제 녹음 분량이 나오는데 자신들이 원하는 대답을 살살 유도하는 검사의 목소리는 간교하기 이를 데 없고 기가 막힌 유우성의 목소리와 주눅이 든 유가려의 목소리는 절망으로 가득차 있다. 최승호PD팀과의 인터뷰 내내 눈물을 흘리던 유가려는 결국 오빠를 만나지도 못하고 중국으로 추방되고 만다. 공항에서 취재진의 카메라에 대고 힘없이 웃으며 마지막 인사를 하던 그녀의 모습이 아련하다. 

모든 것은 국정원이 꾸민 짓이다. 유우성 사건을 취재하다가 만난 한종수 사건(본명은 한준식. 역시 간첩으로 몰려 수사를 받다가 감옥에서 자살했고, 무연고자 묘지에 묻혀있다)도 마찬가지다. 간첩은 해마다 생겨났고 그때마다 억울한 사람들이 잡혀가 고문을 당하고 죽거나 병신이 되었다. 70년대 대학생 간첩사건이나 유학생 간첩사건 얘기가 나올 때 등장하는 남산의 살벌한 지하 고문실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최승호는 안기부를 찾아간다. 법원 앞에서 몇날며칠을 기다려 유우성을 간첩으로 만드는 검사를 인터뷰하고 유가려를 때렸던 ‘언니’에게 말을 건넨다. 중국으로 날아가 유우성이나 한준식의 주변인물들을 만난다. 중국에서 북한에 있는 열여덟 살짜리 한준식의 딸과 통화하며 뒤늦게 아버지의 죽음을 알려주는 대목에선 정말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런데 합동신문센터는 영화팀이 묻는 것에 대해 ‘일체에 대한 아무 것도 확인해줄 수 없다’라고 말한다. 들이대는 카메라를 손으로 막고 끄라고 고함을 치는 건 어디서나 똑같이 벌어지는 일이다. 당장 달려들어 깨버릴 기세다. 그래도 최승호는 머뭇거리지 않는다. 국정원장이었던 원세훈에게 달겨들어 유우성 사건에 대해 묻고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예전 대공분실 팀장이었던) 김기춘에게 가서 학생 간첩단 사건에 대해 묻는다. 당신이 직접 쓴 메모가 여기 있지 않냐고. 지금이라도 미안하다는 말을 할 용의는 없냐고. 당신은 대답할 의무가 있다고. 그러나 묵묵부답. 소이부답. 외면이 이어진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모르는 일입니다. 왜 이러세요? 당신 누굽니까. 명함을 주십시오. 적반하장. 철면피…이것만이 그들의 대답이다.  원세훈과 그의 부인은 결국 우산으로 카메라를 가려버리고 공항에서 만나 처음엔 반가워하던 김기춘은 최승호의 정체를 알고나자 굳은 얼굴로 돌아선다. 

영화의 뒷부분에 최승호 팀은 서울대를 다니다가 끌려가 간첩으로 몰려 고문을 당한 뒤 정신병에 걸려 평생을 허비한 재일교포 김승효를 찾아간다. 40년 만에 찾아간 친구들을 잘 알아보지도 못하던 김승효는 차츰 기억이 돌아오자 수십 년간 쓰지 않았다는 한국말로 ‘한국 무서워’, ‘한국 나빠’를 중얼중얼 외친다. 누가 이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가. 영화 말미엔 지금까지 있었던 간첩사건 일지가 연도별로 쭈욱 나온다. 모든 간첩사건 끝엔 ‘무죄 판결’이라 씌여 있는데, 지금까지 해마다 빠지지 않고 간첩 사건이 있었다는 기막힌 사실이 기록에 의해 밝혀진다. 신기하게도 중간에 딱 십 년 간만 간첩사건이 없었는데 그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다. 그때만 북한이 정신을 차려 간첩을 양성하지 않았던 것일까. 간첩은 북한이 만드는 걸까, 안기부가 만드는 걸까.


서울극장에서 있었던 시사회장엔 영화 상영 직전 최승호 PD가 나와 인사를 했다. 보통 영화를 개봉하고 무대인사를 할 때는 감독이 주연배우들을 데리고 나와 인사를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 영화의 ‘주연배우'들은 모두 고위직인데다 한결 같이 바쁜 사람들이라 나오지 못했노라 너스레를 떠는 그는 이 영화가 개봉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준 ‘뉴스타파’ 회원들과 이름 없는 후원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천안함 프로젝트]도 [다이빙벨]도 멀티플렉스라는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좌절됐다. 영화를 만들어도 극장을 잡지 못하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멀티플렉스에서 상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철저하게 상업논리로 무장한 멀티플렉스 시스템을 뛰어넘는 방법은 역시 많은 사람들이 봐주는 것 뿐이다.

엔딩 크레딧엔 이 영화의 제작과 상영이 가능하도록 펀딩을 해준 사람들의 명단이 ㄱㄴㄷㄹ순으로 나온다. 길고 긴 그 명단이 우리에게 남은 힘이고 시대를 바꾸는 희망이다. 영화를 같이 본 배우 김혜나는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해져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지경이었다는 심정을 토로했고 배우 박호산은 쉽게 흥분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영화의 흐름이 마음에 들었으나 또한 그것 때문에 조금 아쉽기도 했다는 말을 남겼다. 많은 사람들이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박수를 치는 것으로 제작진의 노고를 치하했다. 

논리적인 이론과 언변으로 보는 이를 설득하는 텍스트가 있는가 하면 단지 보여주는 것만으로 강한 펀치를 날리는 영화도 있다. 다큐멘터리 [자백]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괜찮다고 생각하냐 질문을 던지는 문제작이다. 물론 그 대답은 영화를 보기 전과 후로 확실히 달라질 것이다. 골치 아프고 힘든 것일수록 외면하면 마음은 편해진다. 그러나 두 눈 부릅뜨고 현실과 마주하는 사람이 있어야 희망의 불씨는 생겨난다. 어렵지만 지금 그런 걸 만드는 사람들과 공감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지점, 그곳에 영화 [자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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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도 추리소설이 있다는 걸 몰랐다. 그런데 우연히 어떤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찬호께이라는 직가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의 작품 [13.67]이라는 책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한 마디로 매우 뛰어난 추리소설이라는 것이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휴대폰에 제목과 작가 이름을 메모해 놨다가 서점에 가게 된 어느날 드디어 사서 읽게 되었다. 한창 일이 바쁜 때라서 일과시간엔 읽지 못하고 자기 직전이나 출퇴근하는 전철에서 주로 읽었는데 내용이 흥미진진해서 그런지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며칠 만에 다 읽어버렸다. 

이 소설은 탁월한 추리력과 기억력을 가진 관전둬라는 홍콩 경찰이 사건을 해결해가는 여섯 개의 이야기다. 첫 번째 이야기인 <흑과 백 사이의 진실>은 놀랍게도 혼수상태에 빠져 병원에 누워있는 관전둬가 등장한다. 관전둬의 후배인 뤄샤오밍 독찰은 ‘Yes’또는 ‘No’만 할 수 있는 그의 두뇌 반응을 이용해서 살인사건의 진범을 밝혀낸다. 처음부터 독자의 예상을 벗어나는 전개다. 그게 2013년의 일이고 그 다음 작품부터 시간을 거슬러 점점 젊어지는 관전둬의 활약성이 펼쳐지는데 맨 마지막 작품인 <빌려온 시간>에서는 이제 막 경찰이 된 관전둬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게 1967년이다. 즉 이 책의 제목 ‘ 13.67’은 은 2013년과 1967년에서 따온 것이다. 책을 다 읽고나서 생각해보니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한 것은 독자들의 흥미를 돋구는 것은 물론 주인공의 숨은 사연이나 캐릭터의 입체성을 구축하는 데에도 매우 효과적인 장치였다고 생각된다. 작가인 찬호께이는 홍콩에서 태어난 공학도였는데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취미로 추리소설을 쓰다가 작가가 된 케이스다. 그러나 취미로 시작했다고 하기엔 믿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필력을 자랑한다.  

그는 원래 현장에 나가지 않고 셜록 홈즈처럼 추리력만으로 범인을 찾아내는 ‘소파탐정소설’을 구상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원고가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원하는 공모전에 낼 수가 없게 되어버리자 아예 다른 이야기를 덧붙여 장편소설을 쓰기로 마음을 바꾸었다고 한다. 다행이다. 그의 열려있는 사고 덕분에 ‘관전둬’라는 멋진 경찰이 탄생하게 된 것이니까. 찬호께이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홍콩이라는 도시에 대한 애정과 어렸을 때부터 흠모했던 용감하고 정직한 경찰의 모습을 소설 속에 함께 녹여냈다. 원해 추리소설을 좋아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촘촘한 트릭과 정교한 플롯들이 이야기 하나하나를 빛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건이 해결된 후에도 완벽한 반전이 하나씩 등장해 독자들의 뒤통수를 친다. 놀라운 것은 그러면서도 사회파 추리소설적인 면모를 잃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경찰 내부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과 이해관계에도 밝은 편이다. 마치 수십 년 동안 경찰에서 근무한 사람이 나와서 회고록을 쓴 게 아닐까싶을 정도로 사실성이 넘친다. 

홍콩 반환 이전과 이후 얘기가 공존하는 이 소설들은 점점 서구화되는 홍콩 사람들, 그리고 홍콩에 와서 점차 홍콩사람들처럼 변모하는 영국 사람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홍콩이라는 작고 복잡한 도시에 대한 역사적인 인식은 ‘홍콩 느와르’라 불리는 많은 영화들을 통해서도 언뜻언뜻 비춰졌었는데 이 소설에서도 범죄조직을 소탕하는 이야기는 두기봉이나 오우삼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다가 사건의 피해자들과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 들어가면 홍콩이라는 도시를 관통하는 어떤 슬픈 정서와 만나게 된다. 이런 식의 사회파 추리소설 속에 경찰 내부의 내막에 얽힌 이야기까지 고루 담는 걸 보면 작가의 역량이 참 대단하다 아니할 수가 없다. 

이 소설엔 유머가 거의 없다. 대신 정직하고 진지하고 어른스러운 주인공들의 면면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즉 잔재주 없이 선명한 사건과 캐릭터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고전소설의 틀 안에서도 얼마든지 현대성과 함께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찬호께이는 안정된 필력을 통해 증명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타이페이 국제 도서전 대상을 수상했고 곧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이야기의 뼈대만 남고 디테일들은 새롭게 변할 것이다. 오랜만에 소설 읽는 재미를 만끽하게 해줬던 ‘웰메이드’ 추리소설이라 웬만하면 책으로 먼저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그의 데뷔작이자 '시마다 소지 추리소설상'을 받은 [기억나지 않음, 형사]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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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61243.html



김훈이 쓰면 '추석 에세이'도 이렇게 다르다. 뭐 꼭 이 글이 다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 글엔 기자들의 의무감과 클리쉐가 만들어내는 한가위의 풍성함이나 가족애에 대한 기대따위는 없다. 서울이 고향인 김훈은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라는 향수 대신 임진왜란 때 전소된 경복궁으로 생각의 물꼬를 튼다. 임금이 도망가자 격분하여 경복궁을 불태웠던 백성들, 그리고 돌아와서 전소된 성터를 끼고 앉아 그냥 살았던 당시 지도층과 지식인들.

그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를 생각하던 김훈은 어린 시절 더러운 하천이 흐르던 자신의 동네를 회상한다. 박완서의 <그남자네 집>이 있던 바로 그 동네였고 박수근의 <빨래터>라는 그림보다 더 비참하고 고단했던 고향의 모습이다. 뼛속까지 리얼리스트인 그는 "나는 정지용의 시 ‘향수’에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을 읽을 때마다 내 고향의 저 더러운 하천을 생각한다."라고 쓴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의 눈은 1592년의 경복궁 방화, 2008년의 남대문 방화, 2009년의 용산참사로까지 이어져 머문다.


한가위라고 갑자기 고향이 아름다워지는 건 아니다. 명절이라고 냉랭하던 가족관계가 갑자기 살가워지는 게 아니듯이. 이래저래 난 명절이 싫다. 일년에 큰 명절이 두 번 있고 내 나이 이제 빼도박도 못하는 50세니 평생 백 번 가까이 명절을 싫어하면서 살아왔구나. 올 명절도 술이나 마시며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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