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12.29 <2017년 나의 국내 소설 Best 5>
  2. 2014.09.28 문어체의 아름다움 – [百의 그림자]

2017년 역시 너무나 바쁜 한 해였습니다. 개인적으로 회사 일도 바빴고 정치 사회적으로도 엄청 바빠서 한가하게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청와대 국정농단 사태 때문에 모든 영화와 연극 공연들이 망했습니다. 제가 그 기간에 봤던 한국 영화 [불한당: 나쁜놈들의 세상]이나 [스플릿]도 도 대중적 흡인력이 뛰어난 영화들이었는데 흥행에는 실패했습니다. 오죽하면 박근혜와 최순실 때문에 평범한 직장인들이 난생 처음 치킨과 맥주를 시켜놓고 저녁 뉴스를 기다렸다고 할까요. 그러나 이런 모든 핑계에도 불구하고 '낭중지추'처럼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책들이 있습니다. 일단 우리나라 소설들이 더 많이 읽혔으면 하는 마음에서 '2017년의 국내 소설 Best5'를 마음대로 뽑아 보았습니다. 물론 제가 읽은 책 중에서만 뽑은 거니까 한 번 읽어보고 무시하셔도 좋습니다(순전히 제가 아직 못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김영하, 김애란 같은 일급 소설가들의 작품이 빠졌습니다). 

[82년생 김지영] 

방송작가 출신인 조남주가 쓴 이 소설을 올해의 베스트로 올리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1982년도에 서울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렵게 대학 가고 연애하고 직장 잡고 결혼하고 애 낳았던 김지영 씨에 대한 이야기. 마침 레베카 솔닛 등의 저작으로 불붙기 시작했던 페미니즘 논쟁은 이 담담하면서도 탄탄한 소설에 이르러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여성'에 대한 폭력적인 관습과 사고가 반성의 시간을 시간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의의는 충분합니다. 쉬운 문장과 탄탄한 구성이 어우러져 흡사 르포타쥬를 읽는 듯한 사실감까지 선사합니다. 대통령 당선 이후 노회찬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을 처음 만나러 가는 자리에 선물해서 화제가 된 책이기도 하죠.



[거짓말이다]

우리 윗세대들에게 '한국전쟁'이나 '광주항쟁'이 큰 상흔을 남긴 사건이라면 우리 세대는 '세월호'라는 커다란 트라우마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습니다. 소설가 김탁환은 단순히 세월호 유족의 슬픔을 다루는 데서 벗어나 세월호 잠수사의 눈으로 사건을 바라봅니다. 소설가의 임무는 당사자들과 같이 슬퍼하는 것보다 그 사건의 내면으로 들어가 원인과 과정을 체험하게 하는 데 있으니까요. 그래서 만나 사람이 바로 김관홍이라는 잠수사였습니다. 배가 물에 잠긴 뒤 희생자들이 다 숨진 후에 김관홍 잠수사가 진도 앞바다로 달려간 이유는 무엇일까,부터 시작한 이 소설은  냉정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인터뷰와 분명한 사건 재구성 등으로 읽는 이의 눈물샘을 자극해 기어이 몇 번의 눈물을 쏟아내게 합니다. 자신이 주인공인 소설의 진행과정을 지켜보며 기뻐하다가 결국 목숨을 버린 김관홍의 이야기는 이 소설의 작업 일지처럼 쓰인 [그래서 그는 바다로 갔다]에서도 자세히 만날 수 있습니다. 두 권 다 추천합니다. 뒤늦게라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쓴 [거짓말이다] 리뷰를 첨부합니다. http://mangmangdy.tistory.com/346?category=470827  


[사랑의 생애] 

우리나라에서 관념적인 지식인 소설을 가장 완성도 있게 쓰던 이는 아마도 [광장], [회색인]의 작가 최인훈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그 대를 잇는 작가로 저는 이승우를 꼽고 싶습니다. [생의 이면]이나 [식물들의 사생할] 등에서 보여준 그 사유의 힘은 정말 눈부신 것이었죠. 그런 그가 '사랑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다룬 소설을 냈습니다. 책의 제목은 '사랑의 생애'. 사랑이라는 관념을 유기체로 여기는 순간 인간의 몸 또는 마음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사멸하는 과정이 생겨닙니다. 이승우는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라는 냉정한 문장을 시작으로 사랑의 본질을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합니다. 그의 문장은 관념적이지만 논리의 고리가 탄탄해 지루하지 않고 같은 계보라 할 수 있는 최수철이나 이인성, 한유주 등에 비해 지나치게 난해하지 않아 호감이 갑니다. 마침 며칠 전 쓴 리뷰가 있으니 그것도 첨부를 할까 합니다. http://mangmangdy.tistory.com/431?category=470827 


[채식주의자] 


조용하지만 자기 색깔이 분명하고 형식은 엄격하지만 내용은 늘 파격적인 소설을 쓰는 젊은 소설가,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한강입니다. 그의 연작소설집 [채식주의자]는 이미 오래 전에 출간되었지만 작년에 이 작품이 번역자에게 주어지는 맨부커상을 수상함으로써 다시 한 번 화제가 되었죠. 저는 수록되어 있는 세 작품 중 두 번째인 <몽고반점>의 끝부분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로 치면 이안 감독의 [아이스 스톰]을 볼 때의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올해의 책은 아니었지만 수상 이후 계속해서 팔려 '스테디 셀러'의 반열에 오른 작품입니다. 광주항쟁을 다룬 [소년이 온다]를 혹시 안 읽으셨다면 나중에라도 꼭 읽으시길 권합니다. 단지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넘어 '내가 이렇게 잘 쓴 소설을 이제야 읽게 되다니!'라는 감탄을 하실 거라 장담합니다. 



[아무도 아닌] 


그런 소설이 있습니다. 뭔가 개인적인 경함담을 읽은 것 같은 현실감을 느끼다가 다 읽고 책 밖으로 나와보면 비로소 한 편의 우화로 느껴지는 이야기. 황정은이 쓴 소설들이 그렇습니다. 저는 맨 처음 그의 소설 <백의 그림자>를 읽고 너무 좋아서 며칠간 몸살을 앓았습니다. 진지하게 하는 농담을 듣다가 홀딱 빨려 들어간 느낌이랄까요. 이번 소설집에 있는 <명실>이나 <상류엔 맹금류>를 읽고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정은은 착하고 선량한 사람도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다, 는 걸 보여주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작가와 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입니다만, 괜히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상하죠?  제가 예전에 썼던 [백의 그림자] 리뷰를 첨부합니다. http://mangmangdy.tistory.com/197



[피프티 피플] 

'베스트5'라고 시작은 했지만 섭섭해서 한 작품 더 붙이렵니다. 바로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입니다. 한두 명이 주인공이 아니라 등장하는 50명이 모두 주인공인 소설을 쓸 순 없을까, 생각하면서 창비 블로그에 연재했던 소설. 그러나 62.5매를 쓰고는 힘에 부처 그만 쓰겠다고 말했을 때 편집자의 격려에 힘입어 마저 쓸 수 있었던 소설. 정세랑은 정말 이야기를 잘 만드는 작가입니다. [보건교사 안은영] 같은 본격 엔터테인먼트 소설도 잘 쓰고 [이만큼 가까이] 처럼 아련한 청춘소설도 씁니다. 그리고 이번 소설처럼 병원이 무대인 경우엔 '56번 찔린 남자'를 다루거나 '케이크 자르는 칼로 270도로 목이 잘린 여자'를 등장시키기도 합니다. 물론 비극적인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닙니다. 무슨 곤란한 일도 하하하하하, 라는 웃음소리와 함께 긍정적인 일도 돌려버리는 중년 여자가 등장하고 그녀가 자르면 수술부위에 피가 나지 않는다고 소문이 날 정도로 수술을 잘 해서 '천재소녀'라 불리는 외과 여의사를 짝사랑하던 마취과 의사가 결국 그녀와 데이트를 하게 되는 귀여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소프트하지만 섹스나 불륜 얘기도 아무렇지 않게 잘 다루는 작가입니다. 제가 요즘 제일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해서 마지막에 붙였습니다만, 특히 이 소설집은 인물과 인물들이 희미한 끈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 같은,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영화 [숏컷]이 생각나는 소설입니다. 올해가 아니라면 내년 초라도 일독을 권합니다(작가가 재목을 '피프티 피플'이라고 쓰고사실은 51명을 등장시켰다고 작가의 말에 썼던데, 저도 'Best 5'라고 쓰고 6 작품을 등장시켰네요. 뭐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한 권이라도 더 소개할 수 있으면 좋지요)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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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이나 영화는 전체에 대해 말하기보다 부분만 발췌해서 소개하는 효과적일 때가 있다. 황정은의 [百의 그림자] 그런 경우 아닐까. 소설 중간쯤 나오는 노래칠갑산 대한 부분이 그렇다


노래할까요.
무재 씨가 말했다.
은교 씨는 무슨 노래 좋아하나요.
나는 칠갑산을 좋아해요.
나는 그건 부를  없어요
칠갑산을 모르나요?
알지만 부를  없어요.
왜요.
콩밭,에서 목이 메서요.
목이 메나요?
콩밭 매는 아낙네는 베적삼이 젖도록 울고 있는 데다포기마다 눈물을 심으며 밭을 매고 있다고 하고새만 우는 산마루에 홀어머니를 두고 시집와 버렸다고 하고….
그렇군요.




어찌보면 연인끼리 하기엔 너무 싱거운 얘기를 진지하게 주고받는 사람이 우습기도 하지만 가만히 그럴까 하고 천천히 읽어나가다 보면 어떤 기이한 진정성이나 순결함이 느껴지는 [百의 그림자] 작가 황정은의 문체이고 작법인 것이다목이 멘다는 것은 어떤 상황이나 처지에 공감하여 마음이 움직인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철거되기 전의 세운상가쯤으로 짐작되는 소설 공간과 등장인물들을 묘사하는 작가의 섬세하면서도 짐짓 무심한 척하는 시각에 매료되었고, 그런 배경이나 시간 묘사와는 달리 감각적인 구어체를 포기한 느릿느릿한 문어체로 진행되는 사람의 대화가 단연 소설의 백미라고 느꼈다.

나중에 무재는하얀 위에 구두 발자국이라는 노래를 불러달라는 은교의 청도 거절한다. 이것도새벽에 떠나는데 강아지만 같이 갔다고 하고, 발자국만 남았다고 하고해서 목이 멘다는 것이다. 구어체로 썼다면 말도 되게 싱거울 대화가 문어체라는 옷을 입자 뭔가 자신만의 개성과 조심성을 확보하는 느낌이다. 그러니 이건 내가 평소에 애써 피하려고만 들었던 문어체의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이상한 방법으로 일깨워주는 소설인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무재가 은교에게노래할까요라고 다시 묻는 장면으로 끝난다. 아마 그들은 어떤 노래 하나를 가지고 이건 목이 메네 메네 하고 싱거운 소리를 늘어놓으며 가만가만 둘만의 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나는 소설의 이런 결말이 좋았다. 다시 노래하는 사람 덕분에 나는 전자상가에서 일하던 아저씨도, 가끔 복권 돈을 꾸러 오던 유곤 씨도, 어느 갑자기 사라져버린 오무사의 할아버지도 이상 안부를 궁금해 하거나 걱정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 뒤를 따르던 그림자가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서 벗어나 조금 뒤에서 일어나 쫓아오더라도 이상 이상하지 않은 그림이 되었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뭔가 좋은 소설을 읽었다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소설을 읽고 나서 소설에 대해 무언가 쓰지 않으면 된다는 다급한 의무감 같은 느끼고 출판사에 연락을 취했다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말미에 붙은 해설에 이런 글을 썼다.


소설을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도심 한복판에 사십 전자상가가 있다. 상가가 철거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곳을 터전 삼아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내력이 하나씩 소개된다. 와중에 소설은 시스템의 비정함과 등장인물들의 선량함을 대조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과연 만한 곳인지를 묻는다. 소설을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소설은 우선 은교와 무재의 사랑 이야기로 읽힌다. 그러나 사랑은 선량한 사람들의 선량함이 낳은 사랑이고 이제는 선량함을 지켜 나갈 희망이 사랑이기 때문에 소설은 윤리적인 사랑의 서사가 되었다. 소설을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소설은 사려 깊은 상징들과 잊을 없는 문장들이 만들어낸, 일곱 개의 () 장시(長時). 소설을 단어로 정리하면 이렇다. 고맙다. 소설이 나온 것이 그냥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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