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31일'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7.01.07 세월호 카피 이야기
  2. 2017.01.03 새해 편지
  3. 2016.06.03 이세돌, 공익광고를 통해 경쟁을 이야기하다 21

이용택이라는 아트디렉터가 있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광화문 집회 때마다 나가 전경버스 차벽에 영화 패러디 포스터를 붙이는 열혈 청년입니다. 왜 그런 일을 하냐고 물었더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도 광고일 해서 먹고사는 사람이라 그리 한가하지 않을 텐데 그 열정과 정성이 놀랍습니다. 이용택 실장은 작년에 제가 존경하는 카피라이터 정철 선배님과 세월호를 잊지말자는 공익광고를 몇 편 제작해서 페이스북에 공유를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제게도 세월호 카피를 쓸 수 있는지 문의를 해왔습니다. 망설였습니다. 자칫 하찮은 잔재주나 공명심으로 비쳐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친한 사이도 아닌데 프로젝트를 제안한 이용택 실장의 용기와 진심을 믿고 몇 개의 카피를 썼습니다. 


'너희를 가라앉힌 건 우리가 아니지만 너희를 건져내지 못한 건 우리들이기에, 우리는 죄인이다’라는 카피를 제일 먼저 썼습니다. 써놓고 나니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렇게 다이렉트하게 써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슬픈 빅뱅.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에서 304개의 우주가 사라졌다’ 라는 카피를 썼습니다. 세월호 아이들 하나하나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모르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우주들이었으니까요. 


푸르른 하늘과 힌 구름들 위에 떠 있는 노란 종이배 그림을 보며 천국을 생각했습니다. 아직도 세월호 안에 안에 갖혀있는 아홉 명을 생각하며 ‘그 누구도 하늘나라로 가지 못했어. 아직도 아홉 명은 바닷속에 있으니까. 함께 가야지’ 라는 카피를 썼습니다. ‘세월호를 인양하라. 진실을 인양하라’라는 카피를 붙일까 말까 하다가 붙였습니다.

 

‘4월 16일’이라는 날짜를 가지고 카피를 써봐야지 생각한 뒤 '4월16일'이라는 헤드라인 밑에 ‘4월 16일 생일인 분들 미안합니다. 4월 16일 결혼기념일인 분들 미안합니다…해마다 4월 16일만은 옷깃을 여미고 조용히 눈물을 흘립시다’라는 바디카피를 썼습니다. 마지막 줄은 '4월16일이 소중한 날인 모든 분들 죄송합니다'로 고치고 싶었는데 업무에 쫓겨 그러지 못했습니다. 제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 첫 출근일이 4월 14일인데 해마다 그때가 되면 세월호 생각만 하는 저의 처지를 떠올리면서 그런 분들이 많을 거란 생각에 써본 카피였습니다. 



이용택 실장이 보내온 의자 그림에 ‘다시는 가만히 있으라 하지 않으마. 다시는 어른들을 믿으라 하지 않으마. 다시는 대한민국으로 너희를 부르지 않으마’라는 카피를 썼습니다. 마지막 문장이 너무 과격한 것 같다는 이 실장의 의견을 받아들여 ‘다시는 너희들을 그냥 보내지 않으마’라는 문장으로 고쳤습니다(지금 보니 오자가 나 있군요. 나중에 고치겠습니다). 



어두운 막에 손을 대고 절규하는 듯한 그림이 왔길래 ‘2014년 4월 16일 이후 대한민국 사람은 누구나 세월호 안에 있습니다’라는 카피를 썼습니다. 사실 지금 대한민국은 거대한 세월호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너무 미안해서 미안하다는 말은 못하겠다’라는 카피는 제 업무수첩에 적혀 있던 글입니다. 언젠가 광고에 써먹으려고 메모해 놓은 글이었는데 이렇게 세월호 카피로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네이버사전을 찾아서 ‘미안하다는 말은 못 하겠다’의 ‘못’은 떼고 ‘그 누구도 하늘나라로 가지 못했어’의 ‘못’은 붙이는 것이라는 맞춤법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우리말은 참 어렵습니다. 


또 한숨이 나옵니다. 도대체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난 걸까요. 우리는 평생 세월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운명입니다. 카피를 쓰면서 너무 가슴이 아프고 괴로웠지만 한 조각이라도 진심을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해야할 일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우리에겐 저 말고도 더 훌륭한 카피라이터, 아트디렉터, 감독님들이 많이 계시니 광고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작업은 계속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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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출근날, 우리회사는 시무식에서 특별한 프로그램을 하나 진행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선물과 손편지 전해주기였습니다. 사실은 출근 전날 저녁에나 이 행사를 하기로 한 게 겨우 기억나는 바람에 집에 있는 썬블럭으로 선물은 겨우 마련했지만 편지는 쓰지 못했죠. 누가 받을지 모르는 편지를 도대체 어떻게 쓰란 말야, 하면서.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을 한 저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예전에 한참 유행했던  '행운의 편지'를 인용하기로 했습니다. 자리에 앉아 인터넷으로 '행운의 편지'를 검색하고는 펜을 꺼내 단숨에 쓰기 시작했죠.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년에 한바퀴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지금은 당신에게로 옮겨진 이 편지는 4일 안에 당신 곁을 떠나야 합니다. 이 편지를 포함해서 7통을 행운이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 주셔야 합니다. 복사를 해도 좋습니다. 혹 미신이라 하실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라는 편지를 받았다면 당신은 기분 더러운 한 해를 시작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편지는 그런 행운의 편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당신이 지금 2월31일이라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고,  그래서 저와 함께 따뜻한 차 한 잔이라도 나눈 사이라면 말입니다. 우리 '2월31일'은 올해도 더 발전하고 더 인간적인 회사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침에 당신이 받은 이 편지는 행운의 편지가 분명합니다. 

2017년 1월1일 편성준 드림 



이 편지는 저와 같이 일하는 후배 카피라이터 이승찬 씨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 친구가 편지를 받고 잠깐이라도 좋아했다면 다행입니다. 아니면 말구요.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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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tvcf.co.kr/YCf/V.asp?Code=A000285210



2016년 봄, 구글의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은 여러모로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인공지능과 사람의 최초 대결이었으니까요. TV와 인터넷으로 대국을 지켜본 저희들은 마침 한국방송공사에서 공모하는 <경쟁위주 사회문화> 공익광고 모델로 이세돌 씨가 적역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최근에 그보다 더 큰 경쟁을 한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아이디어를 내고 시안을 공모전에 보내기 전에 이세돌 씨 측에게 연락해 공익광고의 취지를 설명하고 출연 허락을 구했습니다. 이세돌 씨는 지나친 경쟁위주의 사회문화를 진단하고 반성해 보자는 저희들의 생각을 단박에 이해하고 무료 출연까지 약속해 주었습니다. 아직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고마운 일이었죠. 이세돌 씨의 약속에 힘입어서 그랬는지 저희들의 아이디어는 무사히 공익광고 본선을 통과해 당선작이 되었습니다.


막상 이세돌 씨가 공익광고 모델로 정해지고 나니까 저희회사는 물론 한국방송광고공사 담당자들도 다들 욕심을 내게 되었습니다. 더 좋은 광고를 만들자는 하얀 욕심이었죠. 그래서 다시 머리들을 모았습니다. 카피를 새로 쓰고 회의를 거듭 했습니다. 


마침 우리 회사 막내 카피라이터가 자신이 듣고싶은 이야기라며 쓴 '경쟁에서 이기라는 말보다는 넌 이미 잘 하고 있어, 라고 말해주고 싶다'는 카피가 좋아서 그걸로 최종 안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촬영장에 가서 이세돌 씨에게 경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진 뒤 그 이야기들을 모으고 골라서 한 편을 더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촬영장소는 상수동의 '이리카페'였습니다. 


조금 위험한 결정이었죠. 그런데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저희가 미리 여섯 가지 정도의 질문을 작성해서 가져가긴 했지만, 역시 이세돌은 그냥 이세돌이 아니었습니다. 경쟁에 대한 남다른 이해력과 통찰력이 있었고 대인배다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세돌 어록'이 괜한 말이 아니더군요. 생각지도 못한 명카피들이 그의 입에서 마구 흘러 나왔습니다. 공익광고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지만 결국 이세돌 9단이 출연한 공익광고는 A안, B안 이렇게 두 편으로 온에어가 결정되었습니다(오늘은 A안만 보이더군요. B안도 지켜봐 주십시오). 


'지금 우리는 지나친 경쟁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저희가 공익광고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이 한 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이세돌의 입을 통함으로써 더 큰 공감과 파급력을 얻은 듯합니다. 물론 지겨운 경쟁사회를 반성해보자는 뜻으로 기획된 이 광고 역시 치열한 '경쟁PT'를 통해 뽑히고 만들어졌다는 점이 좀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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