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란한 마음을 달래는 방법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노래방이나 단란주점에 가서 남자답게 술을 마시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두컴텀한 극장에 혼자 들어가 나보다 더 찌질한 인생을 그린 영화나 연극을 관람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 두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이건 예전 한석규, 김지수 주연의 영화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을 보고 썼던 리뷰의 첫 대목이었다. 오늘 연극 [모럴 패밀리]를 보고 소주를 한 병 마시고 집에 와서 리뷰를 써볼까하고 노트북을 펼쳤더니 십여 년 전 썼던 그 대목이 고스란히 다시 떠올랐다. 

큰 언니는 술집에 나가고 고등학생인 여동생은 인터넷 방송으로 자신이 입었던 팬티를 판다. 공부를 제법 하는 남동생은 성정체성이 게이라서 너무 괴로워 가출을 할까 생각 중이다. 그리고 늘 침대에 누워 지내는 폐인 오빠는 어렸을 때 본드를 너무 많이 해서 몸도 가누질 못해 남들이 시간 날 때마다 똥을 닦아줘야 하는 존재다. 큰 언니가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남자를 데려와 소파에서 오럴 섹스를 하고 있을 때도 동생들은 무심히 들어와 말을 걸거나 훼방을 놓는다. 고등학생 여동생은 인터넷 방송으로 자신의 팬티를 경매에 붙이다가 마침 들어온 언니에게 한 마디 하라고 하고 언니는 픽 웃으며 카메라 앞에 서서 "야, 니네들 이런 거 왜 보냐? 이 병신 새끼들아."라고 욕을 한다. 카메라를 이어받은 동생은 우리 언니, 존나 이뻐서 더 나오면 안 된다. 니네들 언니 보고 딸딸이 쳐서 안 된다, 하는 멘트를 거침없이 날린다.

거실에 놓인 소파의 뒷모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심란한 가족의 이야기는 흡사 영국에서 시작해 미드로까지 리메이크 되었던 [셰임리스]와 비슷하다. 실제로 미드에서 에미 로썸이 맡았던 역할은 오늘 본 연극의 큰 언니 연설하 배우와 많이 겹치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 연극이 [셰임리스]와 가장 다른 점은 아마도 '언어'일 것이다. 물론 영어가 짧은 내가 미국 드라마의 슬랭을 다 알아 들었을 리가 만무하지만 그래도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씹'이나 '보지', '자지' 같은  날것 그대로의 언어들을 듣고 있다보면 처음엔 재미 있다가도 나중엔 오히려 슬퍼지는 경지에 이른다. 특히 동생 역을 맡은 강선영의 찰진 욕들은 성인 인터넷 방송을 할 때 빛을 발하는데 너무 잘 해서 오히려 마음이 아프다.  

더구나 이 연극은 1회에 들어올 수 있는 관객 수를 딱 50명으로 제한하고 원래 있던 무대를 더욱 축소해 스테이지와 관객이 거의 같은 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구성을 했다. 거기에 배우들의 거침 없는 노출 연기, 동성애, 근친상간 암시까지 겹치니 웬만한 사람들은 숨도 쉬기 힘들 지경이다. 그런데 그런 극단적 상황들이 계속 되다 보니 오히려 자학적 쾌감을 지나 기분이 신선해지는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고나 할까.

가족은 선택할 수도 없고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는 삶의 굴레다. 오죽하면 일본의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이란 남들이 안 볼 때 어디론가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했을까. 그만큼 힘든 존재인 가족 얘기 중에서도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을 다루면서 '모럴 패밀리'라는 반어법적인 제목을 붙인 감독의 감성이 믿음직하다. 

우리에게 작품을 권한 연극배우 이승연은 '작품이 너무 세서 일반인들에겐 권하기 꺼려지지만 혜자 언니 부부 정도면 좋아할 것 같아서'라는 말을 덧붙였는데, 결과적으로 너무나 고마운 추천이었다. 이승연 자신은 이 연극을 보고 한 사흘 정도 빙의가 되어 헤어나질 못했다고 한다. 늘 열정적인 연기를 선보이는 그다운 반응이요 리뷰였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연극을 본 날은 3월 4일 일요일인데 4월 1일까지 대학로 드림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응답하라 1988'에서 호연을 했던 김선영 배우가 대표로 있는 <극단 나베>의 작품이고 김선영 배우의 남편 이승원 감독이 극본과 연출을 모두 맡았다. 이제 막 데이트를 시작한 커플이나 각별히 예의를 지켜야 하는 사돈지간만 아니라면 누구랑 같이 봐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재미있는 연극이라 단언한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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