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과 문체의 향연’에 있어서 우리 글이 도달할 수 있는 빼어남의 정점에 서 있다고 생각되는 에세이 [자전거 여행] 어딘가에서 김훈은 시장에서 파는 해산물들을 바라보며 ‘인간은 기본적으로 개불과 다를 바 없다. 입과 항문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 나머지는 다 부속물이다’라는 생각을 토로한 적이 있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매우 인색한 평가지만 평소 거대담론이나 인간의 신념따위를 도무지 믿지 못하는 그의 솔직한 심정이 서려있는 글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비록 역사소설이라 하더라도 권력이나 영웅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먼 ‘개인’으로 귀결된다. <칼의 노래>가 임진왜란 당시의 전지적 시점이 아닌 이순신 개인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된 것이나 <흑산>도 천주교 박해 당시 나라 안팎의 역사정치적 상황을 파고드는 대신 황사용이나 정약전이라는 개인의 선택에 집중했던 게 그 까닭이다. 

그런 김훈이 일제시대부터 8.15해방, 6.25와 월남전을 지나 10.26과 1980년대를 아우르는 소설을 쓴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그 해답이 바로 6년 만에 새로 나온 소설 [공터에서]다. 소설은 마동수라는 한 사내의 초라하고 쓸쓸한 죽음으로 시작된다. 독립문 근처 빈민들이 모여 사는 쪽방촌에서 쓸쓸하게 죽어가는 그의 생애는 일제시대 서대문형무소에 끌려가서 매 맞던 모습에서부터 만주를 떠돌아 아나키스트 운동을 하다가 실패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도 영원히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던 인물의 약전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1979년에 독재자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찾아온 그의 죽음이 다른 소설에서처럼 한 세대를 마감시키고 새로운 탄생을 축복하는 도식도 아니다. 그는 북에서 젖먹이를 잃고 내려온 아낙을 만나 그 사이에서 두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첫 아이는 장세, 둘째는 차세라 이름 지었다. 

마장세는 월남전에 나가 훈장까지 탔지만 그 이력을 자랑스러워 하지 않는다. 심지어 제대 후 고국으로 돌아오지도 않고 괌으로 가서 고철 사업을 하며 살아간다. 적진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아직 살아있던 동료를 죽였던 죄책감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하면 너무 뻔한 이야기가 될 터이고 정작 그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묘비 사이를 걸어가면서 마장세는 1972년 9월 25일 롱하이에서 덜 죽은 김정팔을 사살한 일은 잘한 일도 아니고 잘못한 일도 아니며, 거기에 잘잘못을 들이댈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가을빛에 반짝이는 말뚝들이 마장세의 마음 속에 그런 생각을 끌어당겨주었다. 그때 죽이지 않았더라면 김정팔은 밀림 속에서 혼자 죽거나, 적에게 끌려가서 심문받다가 죽었을 것이고, 실종으로 분류되어 무공훈장도 묘비도 없었을 것이지만 딱히 어느 쪽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때 김정팔을 쏘아 죽인 것은 일이 그렇게 되어질 수밖에 없는 대로 되어진 것이라고 마장세는 비석들 사이를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가? 무엇이 잘못되었단 마인가. 마장세는 스스로에게 되물어서 마음을 안정시켰다. 

김훈의 소설에서 인간은 똥을 싸고 토악질을 하거나 물비린내에 시달리며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존재들이다. 주인공이라고 해도 좀처럼 착한 사람이나 악한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닥친 상황과 세상을 겨우 또는 기진맥진 ‘살아내는’ 개인들이 존재할 뿐이다. 김훈의 이러한 비관은 역사소설에서는 비장함과 멋스러움으로 다가오는데 현대소설에서는 그대로 비참함이 된다. 그들은 역사의 중심에 설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변방을 떠돌며 고철이나 쓰레기 수거사업을 하고 광야를 달리는 대신 어중간한 ‘공터에서' 서성일 뿐이다. 동생 차세도 오랜 실직 상태에 시달리다 형과 친구의 일을 돕지만 다시 실직 상태가 된다. 모두 지금의 상태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달리 방법을 알지 못한다. 

김훈이 이렇게 여러 세대를 이야기한 적이 없다. 다섯 권짜리 대하소설이 될 수도 있었던 이 이야기는 역사와 사회로 곁가지를 치고 뻗어나가지 않고 개인 차원으로 수렴하는 작가의 특질 때문에 3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소설로 마감되었다. 그러면서도 근 60년을 살아온 한 집안의 내력과 그 주변인물들에 대한 쓸쓸한 소회가 마음을 서늘하게 적신다. 더구나 형용사와 부사를 배제하는 그의 글쓰기는 주어와 술어의 단조로운 반복이지만 화려하지 않아서 더 화려해지는 역설을 낳는다. 

그도 몬테크리스토 백작 같은 멋진 영웅담이나 복수극을 쓰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심장에 깊은 허무를 탑재하고 있는 김훈이라는 캐릭터는 결코 그런 글을 쓰지 못할 것이고 쓰지도 않을 것이다.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인 장석주는 [글쓰기는 스타일이다]에서 ‘허무를 말할 때 그의 문체는 가장 화사해진다’라고 했다. 나도 김훈이 쓴 벚꽃 지는 날에 대한 짧은 글을 기억한다. 미인은 화장을 하지 않은 맨얼굴일 때 그 아우라가 더욱 빛난다. 김훈의 글이 그렇다.   


*사족 : 내가 읽은 것은 초판5쇄인데, 188페이지 마동수의 묘지 얘기를 할 때 ‘마차세의 동지들이 거기 묻을 것을 요구했다’라는 문장은 ‘마동수의  동지들’을 잘못 쓴 게 아닐까 생각된다. 아무리 읽어보아도 마동수에 관한 이야기이고, 마차세에겐 이렇다 할 동지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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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고민이 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나는 길을 걷는다. 하염없이 걷다보면 고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때도 있고 마음이 좀 가라앉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은 아무 생각이 없어지지만. 그런데 머릿속이 어지러울 때 길을 좀 걷는 게 아니라 아예 지리산을 시작으로 백두대간 종주를 결심한 대책 없는 남자가 있다. 원순 씨다. 지금의 서울시장 박원순 씨 말이다.

 


“무식한 자가 일을 저지른다”

 

2011년 7월 19일부터 49일간 계속된 박원순의 백두대간 종주기 [희망을 걷다] 본문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희망제작소 등등 사회적기업 활동으로 평소 일정도 초분 단위로 쪼개 써야 하는 형편이고 등산 경험이라고는 지리산 등반 두어 번이 전부인 데다가 결정적으로 심한 평발이라 남들보다 걷는 게 훨씬 더 힘든 체질이라는 걸 알면서도 덜컥 저질러버린 자신의 무모함을 개탄하며 하는 소리다.

 

박원순은 “이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기 위해 산에 올랐다 한다. 사색의 시간이 절대로 필요한 그 중요한 순간에 그는 오히려 육체적 괴로움을 택한 것이다.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원래 몸과 마음은 그런 식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그는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시작부터 좌충우돌 박원순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사실, 남자들끼리 매일 이 산 저 산 옮겨다니는 얘기가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 책은 재미가 있다. 단순한 등산이 아니라 백두대간을 한 발 한 발 힘겹게 밟아가는 동안 박원순이 버리고, 가려내고, 정리하고, 듣고, 배우고, 자라는 생각의 모습들이 때로는 여유롭게 때로는 비장하게 또는 유머러스한 문장들로 촘촘히 들어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건 박원순의 처절하도록 철저한 기록 정신이다. 등산을 해본 사람이면 다 공감하겠지만 누구나 등산길에 나서서 한나절만 지나면 발이 아프고 기운이 쪽 빠져 아무 것도 하기 싫어진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휴식시간마다 우리의 원순 씨는 작은 수첩에 메모를 하고 또 했다. 그리고 산장에 들어 모두들 곯아떨어지거나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는 시간에도 홀로 컴퓨터 앞에 앉아 하루 종일 그동안의 일기를 정리하곤 했다.

 


누군가를 알고싶다면 그 사람과 여행을 해보라는 말이 있다. 이 책은 박원순이라는 인간이 궁금해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솔직하고 친절한 안내서와 같다. 그는 여행을 하면서 끊임없이 일행들과 대화하고 질문하며 자연과 교감한다. 그러니 가는 길마다 새록새록 새로운 이야기와 성찰이 피어난다.

 

예를 들어 육십령이라는 고개는 예전에 산적들이 들끓어서 육십 명이 모여야만 비로소 고개를 넘어가던 곳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미리 알지도 못하고 나중에라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면 같은 곳을 가더라도 “와, 여기 무척 험하네.”에서 그치고 말 것이다. 만약 김훈이 아무 생각 없이 자전거를 타고 경치 좋은 산천만 구경하고 돌아다녔다고 생각해 보라. [자전거 여행] 같은 책이 나왔겠는가.

 


“무기수 중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들어오자마자 구두를 닦는 사람”이란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 더 오래 살기 때문이란다. 이 말은 박원순이 함께 팀을 꾸려 온 백두대간 종주팀 ‘다섯 손가락’의 석 대장님이 쉬는 시간에 박원순에게 해준 말이다.

 

박원순은 여행의 의미를 확충시킬 수 있는 감성과 지식을 둘 다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그 지역에 얽힌 일화와 전설을 들춰내고 거기에 얽힌 고사성어를 떠올린다. 어떤 곳에서는 [장자]의 도척 편에서 공자가 도척이라는 도둑을 설득하러 갔던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신영복 선생이 즐겨 이야기 한다는 ‘독버섯의 우화’를 떠올리기도 한다. 힘든 산행 도중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라는 책이나 시시포스의 신화를 되새겨보기도 한다. 쏟아지는 여름 빗속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이 강산의 미래를 걱정하는가 하면 고장난 스마트폰 때문에 더 이상 SNS를 할 수 없게 되자 “드디어 난 세상을 버렸다”라고 귀여운 한탄을 하기도 한다.

 


이 책은 백두대간 깊은 산속까지 서울시장 보궐선거 얘기가 스며들어와 결국 정치의 바다로 뛰어들 것을 결심하고 안철수 후보와의 만남 때문에 5일 정도 일정을 앞당겨 산을 내려가는 것으로 해서 끝을 맺는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것처럼 두 사람은 극적인 단일화를 이루어 냈고 박원순은 서울시의 시장이 되었다.

 

사색의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 골방에 숨어 몇 날 며칠 끙끙대는 것도 방법이다. 그리고 박원순처럼 ‘무조건 저지르는’ 방법도 있다. 어느 것이 더 옳은 길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그 사색의 과정과 결과가 중요하다. 박원순의 사색은 누구보다도 의욕적으로 합리적으로 일하면서도 세상의 어두운 부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현재의 시정을 통해 그 빛을 발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 더 멋진 건 책 뒷부분에 적혀있는 ‘다섯 손가락’ 석락희, 박우형, 김홍석, 홍명근, 그리고 보급대장 신충섭이 쓴 글이다. 20대부터 50대까지 모든 멤버들이 하나같이 박원순을 ‘원순 씨’라고 부르고 있지 않은가! 박원순 씨는 정말 멋진 사람이다.

 

 

2월 어느날, 일산에서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던 날 우리는 강남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이 책과 마주쳤다. 여자친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 책을 다섯 권이나 사더니 우리가 읽을 책 한 권만 빼고 모인 친구들 부부에게 선물로 주었다. 결과적으로 여덟 사람에게 책을 선물한 셈이다. 그러나 아마도 내 친구들은 여덟 개의 ‘희망’을 선물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 친구들도 꽤 멋진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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