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을 넘게 서가 앞에서 서성이던 앳띤 고교생은 결국 ‘엠마누엘부인 시리즈 특집’ 이란 기사가 실린 [월간 스크린]을 내밀며 ‘누나, 이것 좀 싸주세요’ 라고 은밀하게 말했다.
 
막 사춘기에 들어섰던 나는 소문만 무성하던 그 영화 '엠마누엘 부인'의 스틸 컷 몇 장이 실린 잡지 표지에 이미 정신이 혼미해져 있었던 것이다. 서점 주인 누나는 알았다는 듯 씽끗 웃으며 코팅 포장지와 스카치테이프로 정성껏 책을 싸주었다. 그게 재희 누나와의 두 번째 만남이었던 것 같다.
 

1982년 겨울, 그때 나는 고등학교 일학년이었다. 당시 내가 살던 시커먼 동네 구파발엔 서점이 딱 한 군데 있었는데 그게 바로 전철역 앞의 [진양서점]이었다. 기자촌 입구 쪽에 있는 헌책방 하나를 제외하면 도대체 책을 살 수 있는 곳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여기밖에 없었던 것이다.
 
누구나 마찬가지였겠지만 언제나 용돈이 풍족하지 못했던 나는 그 후로도 가끔 서점에 들러 한 시간이 넘도록 이 책 저 책을 집적거리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서너 번을 들러 야 겨우 소설책 한 권을 사는 게 고작이었는데, 어느 날 주인 누나가 한숨을 쉬며 차 한 잔을 타더니 난로가에 앉으라고 했다. 이젠 올 때마다 책을 안 사도 괜찮으니 언제든지 놀러 오라는 얘기였다.
 

누나의 이름은 재희였다. 서재희. 서른이 넘은 노처녀였으며 신춘문예 6수생. 그닥 예쁘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가진 선량하고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매일 서점에 가서 놀았다. 책 얘기를 많이 했고 광주사태, 김대중, 계훈제, 전두환, 장영자 사건 등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했다.
 
 

“언니, 용이 아제가 죽었어. 흑흑…”
 
당시에 박경리의 <토지>를 열심히 읽던 동네 누나가 책방 문을 열고 들어오며 애석해 하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진양서점엔 나 말고도 단골손님이 많았다. 당연히 우리들은 쉽게 친구가 되었고 저녁이면 사랑방처럼 난로가에 둘러앉아 이런 저런 책 얘길 나누었다.
 
 
이외수의 <들개>, <훈장>, <장수하늘소>, 한수산의 <부초>, <해빙기의 아침>, 윤흥길의 <장마>,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 <내 마음의 풍차>, 김성동의 <만다라>, <기차길옆 오막살이>, 김홍신의 <난장판>, <인간시장>, 함석헌의 <씨알의 노래>, 황석영의 <객지>, <장길산>, <죽음을 넘어, 시대의 아픔을 넘어>, 김주영의 <객주>, <아들의 겨울>,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김지하의 <오적>, 최인훈의 <광장>, <회색인>, 이병주의 <지리산>, <행복어 사전>…
 
춘천 거지로 유명했던 이외수, 여자보다 더 여성적인 문체를 만들어내던 한수산, 술과 여자가 없으면 글을 쓰지 못한다던 이병주, 읽다 보면 정부 발표보다 훨씬 더 많은 광주 희생자의 숫자가 까발려짐으로써 당국의 미움을 샀던 황석영, 김지하와 박경리의 거룩한 관계 등 우리는 서로 앞다투어 읽은 책들과 그 주변에 얽힌 뒷얘기들을 나누었고 또 읽고 싶은 책들에 대해 듣고 말하고 감탄했다. 
 
당시에 한 문학월간지에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막 연재를 시작했었는데 경상도 억양이 심한 재희 누나는 이 소설에서 쏟아지듯 펼쳐지는 전라도 사투리들을 그렇게 재밌어 했다.

염상진의 아내 죽산댁이 주재소로 끌려가 빨치산인 남편에게서 연락이 오면 신고하란 말을 듣고 ‘고로코럼은 못하지라!’’ 라고 하는 대사를 억지로 흉내 내는 걸 보고 우리들은 박수를 치며 웃었다.
 
(난 염상구의 쫀득쫀득한 전라도 사투리들 - ‘서울말 고것이 워디 붕알 단 남자덜이 헐 말입디여? 밑구녕 째진 것덜이나 헐 말이제. 밥 먹었니이? 잘 잤니이? 고 간사시럽고 방정맞고 촐싹거리는 말이 워디가 좋다고 배우것습디여?’ - 이 단연 좋았다)
 
 
아직 이명박이 현대건설 사장이었고 정광태가 <독도는 우리땅>이란 노래를 부를 때였다. 어둡고 돈은 없었지만 또한 좋은 시절이었다. 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매일 술을 마시고 매일 담배를 피웠으며 연애를 했고 또 군대도 갔다. 이제는 그때 나를 가르치던 선생님들 보다 나이가 많아졌다. 그리고 책은 거의 인터넷으로 산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과 대학 초반을 진양서점과 함께 보냈다. 그곳에 모였던 사람들은 지금 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재희 누나는 잘 있을까.
 
빠알갛게 달아오르던 연탄난로에 모여있던 사람들. 어제는 무슨 책을 읽었으며 이번엔 또 무슨 책을 읽을까 얘기하던 사람들. 이젠 가물가물해져 추억의 책갈피도 되지 못한다. 그래도 가끔은 그립다. 토토가 어린 시절의 극장을 다시 찾아갔던 것처럼 나도 꼭 한 번 다시 가보고 싶은 곳. 진양서점. (2008.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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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나서 오줌을 누고 물을 한 잔 마셨는데 잠이 안 오는 경우가 있다. 어제처럼 모듬전에 소주를, 그러나 아주 조금, 아주 간단히 마시고 살짝 졸린 김에 얼른 쓰러져 잔 경우가 그렇다. 계속 자리에 누워있어 봤자 더 자기는 틀렸고 나아가 대한민국 창조경제나 동아시아 문제해결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나는 옆에서 자고 있는 여친이 깰까봐 조심조심 깨끔발을 하며 마루로 나왔다.

 

 

책장앞을 오래도록 서성이다 고른 게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잽싸게 자기 소설 제목으로 써먹는 바람에 늘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했던 소설가 이기호의 단편집이었다. 그나마 마음에 들어했던 [원주통신]이나 [나쁜 소설]을 다시 한 번 읽을까 하다가 ‘그래도 표제작을 읽어줘야지, 이 새벽엔’ 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단편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이미 짐작은 했지만) 이 소설도 전에 내가 읽은 소설이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다시 읽어도 이렇게 재미가 있는 건지. 예전엔 별로 안 웃고 넘어갔던 대목까지 다시 읽어보니 새롭게 웃기네. 이거 이거. 아하하하. 어슴프레 밝아오는 여명을 배경삼아 미친놈처럼 낄낄거리며 책을 읽다 보니 문득 배가 고파졌다. 다행히 부엌엔 그저께 점심에 사다 놓은 유기농 모닝빵이 다섯 개나 남아 있었다.

 

 

커피를 끓일까 하다가(양에 맞춰 커피를 갈고, 비알레떼 주전자에 곱게 넣은 뒤 가스레인지에 얹어 끓이고, 에스프레소 원액에 뜨거운 물을 붓기 전에 재빨리 뜨거운 주전자를 씼어 개수대 위에 널어 말리고 하는 과정을 상상하니, 모든 게 너무 귀찮았다. 더구나 이 새벽에!) 포기하고 씽크대를 뒤져보니 차가 있었다. 그래 우아하게 차를 한 잔 하는 거야. 무심코 손에 잡힌 ‘다미안’이란 차를(뭐가 다 미안한지는 모르겠지만) 한 잔 마시며 책을 마저 읽었다.

 

 

이기호의 소설은 재밌다. 그리고 이기호는 소심하고 찌질하면서도 그 찌질함을 자양분 삼아 전혀 다른 소설을 쓰고야 말겠다는 젊은 소설가로서의 원대한 포부를 펼칠 줄 아는 멋진 사나이다. 그러니 이기호여, 빨리 새 책을 내라. 내 당신 책은 돈 아끼지 않고 엄벙덤벙 사줄테니.

 

 

여친은 자고, 나는 책을 읽고. 해도 뜨지 않은 신새벽부터 이 무슨 추태란 말인가.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나는 다시 자야지. 아, 시도때도 없이 즐거운 나는 아무래도 타고난 백수 체질인 모양이다. 백수체질…아냐, 뭐 다른 말이 없을까? 문화인. 그래, 문화인 체질이 훨씬 낫네. 새벽부터 문화인이 된 나는 이제 슬슬 다시 자러 들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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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고민이 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나는 길을 걷는다. 하염없이 걷다보면 고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때도 있고 마음이 좀 가라앉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은 아무 생각이 없어지지만. 그런데 머릿속이 어지러울 때 길을 좀 걷는 게 아니라 아예 지리산을 시작으로 백두대간 종주를 결심한 대책 없는 남자가 있다. 원순 씨다. 지금의 서울시장 박원순 씨 말이다.

 


“무식한 자가 일을 저지른다”

 

2011년 7월 19일부터 49일간 계속된 박원순의 백두대간 종주기 [희망을 걷다] 본문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희망제작소 등등 사회적기업 활동으로 평소 일정도 초분 단위로 쪼개 써야 하는 형편이고 등산 경험이라고는 지리산 등반 두어 번이 전부인 데다가 결정적으로 심한 평발이라 남들보다 걷는 게 훨씬 더 힘든 체질이라는 걸 알면서도 덜컥 저질러버린 자신의 무모함을 개탄하며 하는 소리다.

 

박원순은 “이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기 위해 산에 올랐다 한다. 사색의 시간이 절대로 필요한 그 중요한 순간에 그는 오히려 육체적 괴로움을 택한 것이다.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원래 몸과 마음은 그런 식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그는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시작부터 좌충우돌 박원순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사실, 남자들끼리 매일 이 산 저 산 옮겨다니는 얘기가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 책은 재미가 있다. 단순한 등산이 아니라 백두대간을 한 발 한 발 힘겹게 밟아가는 동안 박원순이 버리고, 가려내고, 정리하고, 듣고, 배우고, 자라는 생각의 모습들이 때로는 여유롭게 때로는 비장하게 또는 유머러스한 문장들로 촘촘히 들어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건 박원순의 처절하도록 철저한 기록 정신이다. 등산을 해본 사람이면 다 공감하겠지만 누구나 등산길에 나서서 한나절만 지나면 발이 아프고 기운이 쪽 빠져 아무 것도 하기 싫어진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휴식시간마다 우리의 원순 씨는 작은 수첩에 메모를 하고 또 했다. 그리고 산장에 들어 모두들 곯아떨어지거나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는 시간에도 홀로 컴퓨터 앞에 앉아 하루 종일 그동안의 일기를 정리하곤 했다.

 


누군가를 알고싶다면 그 사람과 여행을 해보라는 말이 있다. 이 책은 박원순이라는 인간이 궁금해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솔직하고 친절한 안내서와 같다. 그는 여행을 하면서 끊임없이 일행들과 대화하고 질문하며 자연과 교감한다. 그러니 가는 길마다 새록새록 새로운 이야기와 성찰이 피어난다.

 

예를 들어 육십령이라는 고개는 예전에 산적들이 들끓어서 육십 명이 모여야만 비로소 고개를 넘어가던 곳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미리 알지도 못하고 나중에라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면 같은 곳을 가더라도 “와, 여기 무척 험하네.”에서 그치고 말 것이다. 만약 김훈이 아무 생각 없이 자전거를 타고 경치 좋은 산천만 구경하고 돌아다녔다고 생각해 보라. [자전거 여행] 같은 책이 나왔겠는가.

 


“무기수 중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들어오자마자 구두를 닦는 사람”이란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 더 오래 살기 때문이란다. 이 말은 박원순이 함께 팀을 꾸려 온 백두대간 종주팀 ‘다섯 손가락’의 석 대장님이 쉬는 시간에 박원순에게 해준 말이다.

 

박원순은 여행의 의미를 확충시킬 수 있는 감성과 지식을 둘 다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그 지역에 얽힌 일화와 전설을 들춰내고 거기에 얽힌 고사성어를 떠올린다. 어떤 곳에서는 [장자]의 도척 편에서 공자가 도척이라는 도둑을 설득하러 갔던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신영복 선생이 즐겨 이야기 한다는 ‘독버섯의 우화’를 떠올리기도 한다. 힘든 산행 도중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라는 책이나 시시포스의 신화를 되새겨보기도 한다. 쏟아지는 여름 빗속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이 강산의 미래를 걱정하는가 하면 고장난 스마트폰 때문에 더 이상 SNS를 할 수 없게 되자 “드디어 난 세상을 버렸다”라고 귀여운 한탄을 하기도 한다.

 


이 책은 백두대간 깊은 산속까지 서울시장 보궐선거 얘기가 스며들어와 결국 정치의 바다로 뛰어들 것을 결심하고 안철수 후보와의 만남 때문에 5일 정도 일정을 앞당겨 산을 내려가는 것으로 해서 끝을 맺는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것처럼 두 사람은 극적인 단일화를 이루어 냈고 박원순은 서울시의 시장이 되었다.

 

사색의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 골방에 숨어 몇 날 며칠 끙끙대는 것도 방법이다. 그리고 박원순처럼 ‘무조건 저지르는’ 방법도 있다. 어느 것이 더 옳은 길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그 사색의 과정과 결과가 중요하다. 박원순의 사색은 누구보다도 의욕적으로 합리적으로 일하면서도 세상의 어두운 부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현재의 시정을 통해 그 빛을 발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 더 멋진 건 책 뒷부분에 적혀있는 ‘다섯 손가락’ 석락희, 박우형, 김홍석, 홍명근, 그리고 보급대장 신충섭이 쓴 글이다. 20대부터 50대까지 모든 멤버들이 하나같이 박원순을 ‘원순 씨’라고 부르고 있지 않은가! 박원순 씨는 정말 멋진 사람이다.

 

 

2월 어느날, 일산에서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던 날 우리는 강남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이 책과 마주쳤다. 여자친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 책을 다섯 권이나 사더니 우리가 읽을 책 한 권만 빼고 모인 친구들 부부에게 선물로 주었다. 결과적으로 여덟 사람에게 책을 선물한 셈이다. 그러나 아마도 내 친구들은 여덟 개의 ‘희망’을 선물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 친구들도 꽤 멋진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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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언어].지난 주말에 우리집에 와서 술을 마시던 친구가 최근에 읽은 책 중 최고라며 추천한 책인데 알라딘에서 중고서적을 주문했더니 오늘 도착했네요. ‘이재룡의 문학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맨 처음 번역한 이재룡 교수가 2004 1월부터 2005 12월까지 [현대문학]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평론집이랍니다.

 

택배봉투를 열고 표지를 넘기니 누군가 지인에게 선물했던 흔적이 남아 있네요. 서글픈 일입니다. 책을 열어보면 압니다. 책을 받은 후 단 한 장도 읽지 않고 곧장 내다판 게 분명하군요. 이 책을 선물한 남자는 그날 저녁에 “모처럼 그녀에게 좋은 책을 선물했다는 흐뭇한 마음으로 한 잔 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그녀 대신 저라도 열심히 읽고 나중에 독후감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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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누군가 제게 그동안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을 다섯 편만 꼽아보라고 하면 무슨 책을 대야 할까 잠깐 생각해 봤습니다. 아마 저는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아사다 지로의 [칼에 지다], 주노 디아스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커트 보네거트의 [제5 도살장], 그리고 조너선 샤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얘기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 소설 중 하나인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영화로 옮긴 작품을 IPTV를 통해 보았습니다. 이런 영화는 국내에서 개봉하지 않습니다.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나 누구든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정말 오랜만에 찰진 작품을 하나 만나게 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당장 원작소설을 찾아 읽어보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게 해줄 것입니다.

 

감독은 [빌리 엘리어트]와 [더 리더 : 책 읽어 주는 남자]를 만든 스티븐 달드리. 톰 행크스와 산드라 블록 같은 스타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주인공 오스카 역을 맡은 소년 토마스 혼의 연기가 대단합니다. 오스카의 할아버지로 나오는 막스 폰 시도우는 그 존재만으로도 대배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주고요. 오스카네 맨션의 도어맨으로 특별출연하는 뚱땡이 존 굿맨도 참 반가웠죠.

 

영화는 매우 독창적이면서 유려하게 만들어졌습니다. 다만 오스카의 할아버지가 왜 말을 못하게 됐는지, 또 왜 양 손에 ‘YES’와 ‘NO’를 문신으로 새기고 다니며 의사소통을 하게 됐는지가 원작소설에선 자세히 다뤄지는데 영화에서 생략된 게 아쉽습니다. 소설에선 뉴욕 이야기 못지않게 2차대전 당시의 드레스덴 얘기가 기가 막히게 전개되거든요.

 

천재 작가가 쓴 엄청난 작품을 안정된 연출로 잘 만든 영화이고, 9/11을 다룬 영화라고만 쳐도 폴 그린그래스의 [플라이트93]을 능가하는 작품입니다. 전 이 책이 두 권이나 있었는데 모두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고 받지를 못했습니다. 누구한테 빌려줬는지 기억도 안 나고 해서 결국 오늘 서점에 가서 또 한 권을 샀네요. 전에 써놨던 독후감을 다시 한 번 올려봅니다. 영화도 책도 강추입니다.

 

 

 

 

비극적인 내용을 다루다 보면 글은 당연히 무거워지기 쉽다. 반면에 아무렇게나 몸을 놀리며 가볍게 칠렐레팔렐레 쓰는 거 같으면서도 유치하지 않게 보이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비극적인 내용을 가지고 칠렐레팔렐레 천의무봉으로 자유롭게 쓴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이런 불가능한 일을 해낸 사람도 가끔은 있는 법이다. 내 생각엔 그가 바로 조너선 사프란 포어다. 그리고 그가 쓴 책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란 소설이다.

 

  이 책의 주인공 오스카는 아홉 살이다. 그의 아빠는 9·11 때 무역센터에서 회의를 하다가 죽었다. 아빠는 죽기 직전에 다급하게 집으로 여러 통의 전화를 했고 오스카는 그때 자동응답기에 녹음이 되는 걸 알면서도 너무 무서워서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비극적인 일이다. 오스카는 그 이후로 전화를 무서워한다. 자동차나 비행기도 무서워한다. 전화기를 무서워하는 오스카는 길 건너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할머니와 얘기를 할 때는 무전기를 사용한다. 난 신선하고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와 말투를 창조해 낸 이 장면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나는 침대에서 나와 창가로 가서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할머니? 할머니, 제 말 들리세요? 할머니? 할머니?” “오스카니?” “전 잘 있어요. 오버.” “밤이 늦었어. 무슨 일이냐? 오버.” “저 땜에 깨셨어요? 오버.” “아니다. 오버.” “뭐하고 계셨어요? 오버.” “세입자한테 얘기를 좀 하던 참이었다. 오버.” 그 사람도 아직 안 자고 있어요? 오버.” 엄마는 세입자에 대한 질문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묻지 않을 수가 없는 때가 종종 있었다. “그렇단다. 하지만 방금 막 나갔어. 심부름할 것이 좀 있어서. 오버.” “하지만 지금은 새벽 4시 12분인데요? 오버.”

 

 

  오스카는 전화를 무서워하지만 사람들에게 편지 쓰는 건 좋아한다. 그래서 스티븐 호킹에게 자기를 제자로 삼아달라고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제인 구달에게서 답장을 받기도 한다. 호킹도 나중에 정중한 답장을 보내온다. 그는 쉴 때마다 공상을 하고 발명을 한다. 보통 아홉 살이 아니다.

 

  어느날 오스카는 아빠의 방을 뒤져보다가 파란색 꽃병을 깼는데, 그 속에서 ‘블랙’이라고 씌여진 봉투와 열쇠 하나를 발견한다. 그는 인터넷으로 블랙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낸 뒤 여덟 달에 걸쳐 그 사람들을 방문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유는 그 열쇠에 맞는 자물쇠를 찾기 위해서다.

 

  한편, 할머니는 오스카의 아버지를 임신했을 때 남편과 헤어졌던 뼈아픈 과거가 있다. 2차대전 당시 드레스덴에서 폭격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오스카의 할아버지는 뉴욕에서 할머니를 다시 만났을 때 말을 못하는 상태였다. (커트 보네거트의 [제5 도살장]에서처럼 여기서도 드레스덴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그 책도 비극적인 현실을 블랙유머로 펼쳐낸 책이었다. 보네거트와 사프란 포어는 이렇게 만나는 건가?)

 

  노트에 필기를 해서 대화를 했고 왼손엔 “예스”, 오른손엔 “노”라고 문신을 해서 의사소통을 했다. 할머니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제발 저랑 결혼해 주세요.” 그리고 둘은 결혼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사람을 또 잃을까 봐 그들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비극적인 일이다. 둘 다 아주 젊었을 때의 일이었다...

 

  아아, 줄거리를 소개하려고 하다 보니 이상해진다.

 

  그냥 짧게 말하겠다. 이 소설은 엄청난 입심과 다채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시도들로 이루어진 멋진 작품이다. 페이지 사이사이 사진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글이 딱 한 줄만 써있는 페이지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글씨들이 서로 겹쳐져 볼 수 없게 만든 페이지도 있다. 근데 놀라운 건 그런 시도들이 조금도 치기로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작가가 말하려는 감정이 절실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글을 워낙 잘 쓰다 보면 그렇게도 되는 모양이다.

 

  정말 슬픈 사람은 울지 않는다. 아니, 너무 슬프면 울지 못한다. 그래서 오스카도 아빠의 장례식에 가는 날 리무진 운전기사와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할머니는 그런 오스카를 정확히 꿰뚫어보고 완벽하게 이해한다.

 

 

넌 운전사와 농담을 하고 했지만, 속으로는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운전사를 웃겨야 할 만큼 넌 고통스러웠던 거야.


 

 

  이 소설은 마치 여러 대의 카메라로 똑 같은 장면을 찍을 것처럼 동일한 사건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해준다. 그리고 화자가 바뀌어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때는 ‘아, 그때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깨달음을 선사해 준다. 그런 시선들과 사건들이 쌓이면서 여덟 달 만에 이야기는 마침내 이상한 감동과 함께 따뜻한 위로와 화해의 지점으로 향하게 된다.


 

이 책은 현대의 고전으로 남을 게 확실해 보인다. 아직 새파란 1977년생인데. 아무래도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엄청나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천재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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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빌 브라이슨 식의 유머를 구사한 글이 읽고 싶어졌다. 빌 브라이슨 식의 유머를 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빌 브라이슨이 쓴 글을 읽으면 된다. 며칠 전에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미국 산책]이라는 신간이 서점에 나왔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지만 그걸 읽으려면 당장 서점까지 가야 하므로 그냥 집에 있는 책을 찾아서 읽기로 했다. 책꽂이를 찾아보니 [나를 부르는 숲]이 있었다.


그런데 320페이지에 내가 좋아하는 초록색 3M 테잎이 붙어있는 걸 보니 빌 브라이슨이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를 끝내지 못한 것처럼 나도 이 책을 끝까지 완독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나를 부르는 숲]이라는 책이 나오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빌 브라이슨의 친구 카츠가 등장하는 장면을 읽다가 이상한 문장들을 발견했다. 어떻게 이상하냐면…음. 매우 ‘좀스럽게’ 이상하다. 제정신인 사람들이라면 절대 나누지 않을 어색한 대화들이 들어있는 것이었다. 길게 설명하는 것보다 일단 이 책 88페이지에 있는 메리 앨런이란 여자와 빌 브라이슨의 대화를 인용해 보자.

 


“우리도 거기서 시작했어. 여기까지 13.44킬로미터밖에 안 돼.”
그녀는 마치 집요한 파리라도 흔들어 쫓아내려는 듯 머리를 강하게 흔들며 “22.7킬로미터가 맞아.”라고 말했다.
“아니야. 정말로 그건 13,44킬로미터밖에 안 돼.”


 

13.44킬로미터, 22.7킬로미터…황당한 수치들이다. 난 우리가 대화 중에 절대로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에 거액을 걸 용의가 있다. 이건 빌 브라이슨 식의 유머와도 거리가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아마 미터법 표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킬로미터보다 마일을, 밀리리터보다 온스나 갤론을 많이 쓴다. 물론 그건 그들의 잘못이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미터법이 기준이 된 마당에 아직도 자기들에게 익숙한 단위를 멋대로 쓰는 건 엄연한 반칙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책에 나오는 대화까지 “13.44킬로미터” 식으로 번역하는 건 좀 오버가 아닐까? 내 짐작엔 이건 번역자인 홍은택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출판사가 정한 엄한 기준이 있거나 관련 법규를 지키려다 보니 일어난 해프닝일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짜장면을 짜장면이라 부르지 못하고 자장면이라 해야 했던 우리의 웃긴 과거가 떠올랐다. 뭐든지 억지로 하는 건 좀 이상해지기 마련이다. 이봐요, 빌. 당신이 원체 웃기기도 하지만 한국에 있는 당신 책에는 이렇게 당신이 의도하지 않았는데 웃긴 일도 좀 있다오. 듣고 있나요, 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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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들은 속수무책으로 떨어져내렸다. 그것들의 삶은 시간에 의하여 구획되지 않았다. 그것들의 시간 속에서는 태어남과 절정과 죽음과 죽어서 떨어져내리는 시간이 혼재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태어나자마자 절정을 이루고, 절정에서 죽고, 절정에서 떨어져내리는 것이어서 그것들의 시간은 삶이나 혹은 죽음 또는 추락 따위의 진부한 언어로 규정할 수 없는 어떤 새로운, 절대의 시간이었다. 꽃잎 쏟아져내리는 벚나무 아래서 문명사는 엄숙할 리 없었다. 문명사는 개똥이었으며, 한바탕의 지루하고 시시껍적한 농담이었으며, 하찮은 실수였다. 잘못 쓰여진 연필 글자 한 자를 지우개로 뭉개듯, 저 지루한 농담의 기록 전체를 한 번에, 힘 안 들이고 쓱 지워버리고 싶은 내 갈급한 욕망을, 천지간에 멸렬하는 꽃잎들이 대신 이행해주고 있었다. 흩어져 멸렬하는 꽃잎과 더불어 농담처럼 지워버린 새 황무지 위에 관능은 불멸의 추억으로 빛나고 있었다.    

 

 밑줄을 긋는다는 것은 언젠가는 그 부분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기에. 불현듯 김훈의 [풍경과 상처]를 열어 맨 처음 밑줄 그었던 문장들을 읽는다. 도대체 떨어지는 벚꽃들을 이토록 찬란하게 추모해도 되는 일인가. 아닌밤중에  마음속에서 벚꽃들이 지랄염병 흩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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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이 점심 때 건대입구역에서 비즈니스 미팅이 있다는 말을 듣고 쭐레쭐레 쫓아가 롯데백화점 푸드코트에서 그녀가 비즈니스를 하는 동안 옆에서 꾸역꾸역 점심을 얻어먹고 혼자 지하1층 반디앤루니스에 들른 나는, 느닷없이 이 땅의 문화 부흥에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야 한다는 일말의 책임감과 나의 페친인 류근 시인을 더욱 긍휼히 여겨야 한다는 갸륵한 마음이 두서없이 일어나 마침내 그의 시집을 찾아내고야 만 것이었다.

[상처척 체질]…”아 제목도 참 슬퍼…” 하다가 “아니지. 이런 건 류근 식으로 아 씨바 제목도 조낸 슬퍼…해야지” 라고 마음을 고쳐먹고 문제적 시집을 펼친 것이었다. 페이지마다 술냄새가 진동하는 이 퇴폐적인 시집은 뒤적뒤적할수록 읽을 만한 시들이 꽤 많이 나오지만 나는 특히 ‘유부남’이라는 야비한 시와 ‘가족의 힘’이란 뻔뻔한 시가 마음에 쏙 드는 것이었다. 일단 ‘가족의 힘’이라는 시를 소개한다.

 

 


가족의 힘

                          류근


애인에게 버림받고 돌아온 밤에
아내를 부둥켜안고 엉엉 운다 아내는 속 깊은 보호자답게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등 두들기며 내 울음을 다 들어주고
세상에 좋은 여자가 얼마나 많은지
세월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따뜻한 위로를 잊지 않는다
나는 더 용기를 내서 울고
아내는 술상까지 봐주며 내게 응원의 술잔을 건넨다
아 모처럼 화목한 풍경에 잔뜩 고무된 어린것들조차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노래와 율동을 아끼지 않고
나는 애인에게 버림받은 것이 다시 서러워
밤늦도록 울음에 겨워 술잔을 높이 드는 것이다
다시 새로운 연애에 대한 희망을 갖자고
술병을 세우며 굳게 다짐해보는 것이다

 

 

 

다들 류근 시인이 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가사를 쓴 사람이란 것은 아실 것이다. 이 시를 읽고 ‘유부남’이라는 시의 내용까지 궁금해진 분들은 나처럼 돈을 내고 이 시집을 사시기 바란다. 물경 팔천 원밖에 안 한다. 그마저 비싸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알리딘 중고서점을 뒤져보는 것도 좋겠다. 류근의 시들이 야리야리하고 좀 슬프고 많이 웃기긴 하지만 연애편지에 인용하기에는 지나치게 궁상맞거나 자학적이라 다만 한 번 읽고 즉시 내다 판 놈들도 대략 많을 것이란 것이 나의 짐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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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재능이 얼마나 되는지 걱정하는 것보다 더 쓸모없고 흔해빠진 에너지 소모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ART&FEAR)]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능력을 의심하고 미리 걱정하며 노력도 해보지 않은 채 지레 포기하고 맙니다. 그것은 어떤 분야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알고 보면 이‘재능’이라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서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할 뿐이라고 합니다. 성공은 타고난 재능과 크게 관계가 없다는 말이죠. 과연 그럴까요? 물론입니다. 이 책에 소개된 한 가지 실험을 살펴보면 더 이해가 빠를 겁니다.

수업 첫날 도예 선생님은 학급을 두 조로 나누어서, 작업실의 왼쪽에 모인 조는 작품의 양만을 가지고 평가하고, 오른편 조는 질로 평가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평가 방법은 간단했다. “양 평가” 집단의 경우는 수업 마지막 날 저울을 가지고 와서 작품 무게를 재어, 그 무게가 20킬로그램 나가면 “A”를 주고 15킬로그램에는 “B”를 주는 식이었다. 반면 “질 평가”를 받는 집단의 학생들은 “A”를 받을 수 있는 완벽한 하나의 작품만을 제출해야만 했다. 자, 평가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가장 훌륭한 작품들은 모두 양으로 평가 받은 집단에서 나온 것이다. “양” 집단들이 부지런히 작품들을 쌓아 나가면서 실수로부터 배워나가는 동안, “질” 집단은 가만히 앉아 어떻게 하면 완벽한 작품을 만들까 하는 궁리만 하다가 종국에는 방대한 이론들과 점토 더미 말고는 내보일 게 아무 것도 없게 되고 만 것이다.
훌륭한 작품을 완벽한 작품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예술은 사람이 하는 것이며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처음부터 명작을 만드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완벽하게 조건이 다 갖춰진 상태에서 일을 시작하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만약 작가가 되고 싶다면 그저 미련하게 읽고 꾸준하게 쓰고 무조건 해보는 게 성공할 수 있는 ‘재능’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린 이미 재능을 다 타고 난 셈이네요. 다만 그 재능을 쓰지 않고 걱정만 터지게 하고 있으니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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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는 '나만이 절대적인 진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자각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들 중 누구도 정답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데서부터 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가 잠정적으로 정답이라고,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면서 언제든지 수정 가능한 것이어야 합니다. 상대방과 나누는 대화에 의해 내가 가진 정보의 양이 늘어나다 보면 분명히 어느 지점에선가 내 생각을 바꿔야 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대화'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므로써 내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는 재미있는 작업입니다.

(김두식의 [헌법의 풍경]이라는 책을 읽다가요. 메모를 하고싶은 구절이 생겨서 오랫만에 만년필로 베끼고 나중에 제목을 달았더니 글씨들이 손에 닿아 번지고 난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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