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의 연작 소설 [맏물 이야기]를 이틀 간에 걸쳐 재미있게 읽었네요. 페이스북 간서치의 읍장님께서 예전에 추천하신 걸 잊지 않고 적어놓고 있다가 휴가 막판에 사서 읽게 된 거죠.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몇 년 전 [용은 잠들다]를 시작으로 해서 [모방범] 이후에도 꽤 많이 읽은 편인데 막상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그녀의 역사 소설은 처음입니다. '맏물'은 한 해의 맨 처음에 나는 과일, 푸성귀, 해산물 따위를 일컫는 말이죠. 작가는 이 식자재들을 등장시킴으로써 각각의 사건들을 좀 더 서민적이고도 입체적으로 만듭니다.


미미여사 소설의 특징은 살인 사건 등이 등장하는 장르물인데도 따뜻하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맏물 이야기]는 '에도시대'라는 특정 시간대에 벌어지는 일들인데도 어쩌면 그렇게 자연스러운지. 에도 막부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어지는 삼장군 시대의 일이라죠. 마치 [두 도시 이야기]나 [프랑스 중위의 여자], [핑거 스미스]의 배경이 되는 빅토리아 시대처럼. 당연히 기록과 상상력에 의지해 글을 썼을 텐데 그 당시의 음식들은 물론 공동주택과 골목골목의 풍경, 옷차림, 바느질에 이르기까지 마치 방금까지 그곳에서 살다 나온 사람처럼 묘사가 자연스럽고 정겹습니다.


저는 아홉 편의 단편 중에서도 <천 냥짜리 가다랑어>와 <원한의 뿌리>가 특히 좋았습니다. 아마도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스며 있거나 어긋나 버린 인간관계에 대한 회한이 스며 있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저는 <천 냥짜리 가다랑어>에서 모시치가 생선장수의 아내에게 냅다 빰을 얻어맞는 장면에서 뭉클해져 하마터면 눈물을 떨굴 뻔했습니다.


이 아홉 편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의 이름은 모시치인데 직업이 '오캇피키'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어느 읍의 파출소장 정도나 될까요. 그에겐 두 명의 부하가 있습니다. 어리고 성급하지만 동작이 재빠르고 밥을 많이 먹는 이토키치, 그리고 덩치가 소처럼 크고 둔중하지만 침착하고 세련된 곤조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들은 모시치의 밑에서 수사를 돕지만 저마다 따로 생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토키치는 목욕탕에서 일하는 젊은이고 곤조는 술도매상에서 삼십 년 일해 대행수까지 지냈던 사내입니다.


이밖에도 의문의 무사 출신 노점 요리사와 건달 가쓰조도 간간히 등장해 흥미를 돋웁니다. 미미여사는 책날개에 있는 짧은 글에서 "에도 시대는 사람의 목숨을 간단히 뺏을 수 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연대감이 매우 강했습니다. 제가 에도 시대를 계속 쓰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렇게 따뜻한 인간의 정이 있는 사회를 향한 동경 때문입니다. 작은 것도 함께 나누고 도와가며 살았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전합니다.


작은 마을을 커버하는 선량하고 고지식한 오캇피키에게 무슨 어마어마한 사건이 일어나겠습니까. 더구나 옛날이야기라 CSI 같은 과학수사도 없습니다. 누가 식중독으로 쓰러졌는데 그 동기가 수상하더라, 누가 가다랑어 한 마리를 천 냥에 사겠다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 등등 사소한 사건들의 연속입니다. 그런데도 읽다 보면 흥미가 생겨 나도 모르게 그 이야기 속으로 쭉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이게 바로 미야베 미유키라는 소설가의 공력이겠죠. 흔히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뒷맛이 쓰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미미여사의 소설은 읽고 나면 마음이 짠하고 애틋해집니다. 그래서 더 권하고 싶은 소설가이기도 합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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