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계획, 전략, 우린 그딴 거 없다. 목표도 없다.”
 “우리 기업은 3년 혹은 5년이면 망할 것이다.”

인터뷰를 하면 회사나 개인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자폭 발언만 일삼아 '야노 어록'이란 것까지 떠돌았던 100엔숍 '다이소'의 창업자 야노 히로다케의 말들이다. 도대체 회장이 이런 정신상태를 가진 기업이 어떻게 지금까지 망하지 않고 성공했을까. 하지만 이런 기행을 통해 야노 회장은 다이소라는 브랜드를 소비자들 머릿속에 깊이 새기는 데 성공했다. 더구나 모든 상품을 100엔에 팔기로 한 이유가 젊었을 때 아내가 임신을 하자 장사하는 게 귀찮아져서 물건값을 100엔으로 통일했다는 재미 있는 스토리텔링까지 만들어냈다. 그래서 다이소는 망하기는커녕 전 세계로 사세가 점점 확장되고 있다.

브랜딩 얘기를 하면서 나는 왜 엉뚱하게 다이소의 얘기를 꺼냈을까. 그들의 이야기는 아주 극단적 사례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 보면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들은 결코 놓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이 자기다운 것이고,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그리고 나는 이 일을 통해 어떤 가치를 세상에 전달하려 하는가. 우리는 이런 질문과 대답을 통해 얻어지는 유무형의 자산을 '브랜딩'이란 부른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지금까지 수없이 검증된 방법론을 통해 꾸준히 브랜딩을 하는 게 최상의 방법이라 여기고 또 그렇게 한다. 그러나 시간과 돈이 부족한 스타트업들은 대기업과 같은 침착한 브랜딩을 할 수가 없다. 마음은 급하고 가진 자산은 없다. 그런 신생 기업들의 브랜딩을 도와주기 위해 나온 책이 바로 [창업가의 브랜딩 - 브랜드 전략이 곧 사업전략이다]이다. 

먼저 외국 기업과 국내 스타트업 등을 고루 거친 저자들(우승우, 차상우 두 명이다)은 'Why me?'라는 화두를 던진다. 사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브랜딩을 하기에 앞서 먼저 '나답다'라는 것은 무엇이며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소비자들은 왜 다른 브랜드가 아닌 나를 선택해야 하는가, 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명확하게 한 문장으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제대로 규명되어야만 '좋은 브랜드란 무엇인가?'라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배달의 민족, 29CM, 72초TV...지금 가장 확실하게 자기만의 브랜딩에 성공한 핫한 브랜드들이다. 그들은 무슨 방법을 썼길래 자금과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모두가 뛰어난 브랜딩을 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정해진 방법론은 그 누구도 말해줄 수 없다. 즉 브랜딩의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는 브랜드 수만큼 많은 것이다. 다만 변하지 않는 원칙은 몇 가지 존재한다. 저자들은 그 몇가지 기준을 중심으로 열 개의 챕터를 나누고 각 장마다 요즘 뜨고 있는 스타 창업가 10명과의 인터뷰를 실었다. 

원래 브랜드라는 말은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소의 엉덩이에 찍던 불도장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영어라서 그런지 몰라도 브랜딩, 하면 굉장히 어렵고 복잡할 것이라는 생각부터 든다. 책에도 나오는 내용인데 브랜딩에는 많은 선입견이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브랜드를 개발하려면 많은 리소스가 필요하고 반드시 전문가를 거쳐야 한다는 생각 등이다. 그런데 마포구 도화동에서 한국의 스페셜티 시장을 견인해 온 프릿츠커피 컴퍼니(사실은 'ㄷ'받침인데 자판이 말을 안들어 이렇게 썼다)의 김병기 대표는 '브랜드를 위해 특별히 한 것이 없다'라고 말한다. 오히려 "내부적으로 성실하게 일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고객들에게 잘 전달될 거라 생각한다. 커피 한 잔이라는 결과물을 훌륭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프릿츠가 존재하는 이유와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를 강조한다. 

진리는 늘 단순명쾌하다. 책을 자세히 읽어볼수록 단순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단순하게 본질에만 집중해야 브랜드가 산다. 내가 왜 이걸 만들어야 하는지, 소비자는 왜 우리를 선택해야 하는지, 내가 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세상에 하고 싶은 얘기는 무엇인지 정확하게 핵심을 꿰뚫어야 한다.  

'당신의 일이 세상에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책 표지에 제목과 함께 적혀 있는 문장이다. 브랜딩을 너무 특별하게 생각하면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된다고 한다. 쫄지 말고 거창하게 덤비지도 말고 본질에만 집중하면 된다. 브랜딩은 짧게 말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널리 알리고, 그래서 누군가의 행동을 바꾸고, 나아가 세상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일에 다름 아니니까. 그래서 저자들은 브랜드 전략이 곧 사업전략이고 결국은 브랜딩이 모든 것이라고 말한다. 본질이라든지 질문의 중요성 등은 얼마 전 읽었던 최상학의 [Change The Question]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 중 한 명이자 페이스북 친구인 우승우 대표가 우리 부부에게 각각 한 권씩 보내왔는데, 우리가 좋아하는 브랜드 '셰어하우스 우주'와 '로우로우' 대표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어서 더욱 즐거운 독서였다. 책의 마지막 부분 맺음말의 제목은 '이제 나만의 브랜드를 시작하자'이다. 아마도 편성준, 윤혜자라는 이름이 좋은 브랜드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두 권을 선물한 것이리라 생각한다. 고마운 마음으로 푹 빠져 읽었고 우선 급한대로 짧은 리뷰를 써본다. 물론 더 중요한 건 저자들의 바람대로 당장 '퍼스널 브랜딩'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렇다. 나는 결국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어떤 브랜드로 남고 싶은가. 덕분에 다시 한 번 내면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게 된다. 그래서 또 고마운 책이다. 





Posted by 망망디
,



오늘은 오랜만에 광고 얘기를 좀 해야겠네요. 바로 겐조가 새롭게 내놓은 향수 '겐조 월드' 캠페인입니다. 


〈존 말코비치 되기〉, 〈Her〉 등을 연출한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 감독의 작품인데, 한 마디로 기존의 향수 광고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을 지향하는 작품이라고나 할까요. 광고주의 생각이 웬만큼 열려 있지 않다면 시도하기도 힘든 작업입니다. 저도 페이스북으로 처음 보고 놀랐는데 인터넷을 조금 찾아보니 본 사람들마다 모두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더군요. 


제가 잘 아는 감독님의 소개글에서 "예전 스파이크 존즈 감독이 만들고 크리스토퍼 월큰(Christopher Walken)이 출연한 Fatboy Slim의 Weapon of Choice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같은 감독이 연출. 그의 동생 Sam Spiegel이 작곡한 Mutant Brain을 OST로 사용했으며 동시에 곡의 뮤비이기도 하다"라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밑의 URL을 누르시면 유투브로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vGmNwbWRKs



파티장에서 멀쩡하게 연설을 듣고 있던 여주인공이 갑자기 울먹이며 밖으로 뛰쳐나가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고 기괴하게 몸을 비틀면서 춤을 추는 이 광고, 확실히 뭔가 이상하고 충격적입니다. 조각상을 핧질 않나 경호원을 때려눕히질 않나, 하는 짓마다 이브닝드레스를 차려 입은 예쁜 여주인공이 하긴엔 굉장히 '또라이'스럽습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강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여성을 위한 향수'라는 ‘Kenzo World’의 컨셉을 스파이크 존즈 감독만의 시선으로 해석한 결과랍니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하는 분도 계시는데,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이런 광고야말로 분석하는 대신 그냥 느끼면 되는 것이니까요. 저는 감독도 감독이지만 연기를 한 여배우도 참 대단힌 것 같아요. 마가렛 퀄리(Margaret Qualley)라는 친구네요. 그리고 이 친구를 이 이상한 음악에 맞춰 미친 듯 춤추게 만든 사람은 가수 시아(Sia)의 〈샹들리에(Chandelier)〉 뮤직비디오의 안무를 연출한 라이언 헤핑턴(Ryan Heffington)이랍니다. 




겐조는 신제품을 내면서 왜 이런 광고를 만들었을까요? 한 번 생각해 보죠. 나이키 제품을 입거나 신는 사람은 왠지 그냥 승부에만 집착하는 대신 스포츠맨십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자신의 내면 어디에선가 그걸 구현하고 있는 인간처럼 보입니다. 코카콜라를 마시는 사람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행복을 누리는 것처럼 느껴지구요. 겐조도 자사의 제품을 쓰는 여성들에게 '난 굉장히 고급스러운 환경에서 살고 그걸 즐기면서도 원할 땐 언제든 그곳에서 과감히 벗어날 수 있는 능력과 기질을 가진 사람이야' 이라는 포지셔닝을 선물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만약 맞다면 이게 바로 우리가 자주 말하는 '브랜딩'이라는 것일 테고요. 


‘Kenzo World’ 공식 홈페이지(www.kenzoworld.com/en)에 가면 좀 더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고 음악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덤으로 화면 오른쪽 아래 그녀의 익살스런 표정들이 시시각각 바뀌는 디테일도 체험하실 수 있습니다. 홈피에도 한 번 들어가 보세요. 






'광고인으로 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월호 카피 이야기  (0) 2017.01.07
새해 편지  (0) 2017.01.03
첨단의 피곤함  (0) 2016.06.16
이세돌, 공익광고를 통해 경쟁을 이야기하다  (21) 2016.06.03
초콜릿이 주는 행복 - Hersheys : My Dad 편  (0) 2016.04.08
Posted by 망망디
,

"돈을 정말 많이 벌었다 치자. 그 다음에 하고 싶은 게 뭔가. 인간 본능으로 들어가보면, 정말 인간이 하고 싶은 건 디지털 세상 안에 있지 않을 거다. 친구랑 놀고, 요트 타고, 책 내고, 옷 만들어 팔고, 자기 집 짓고 싶어 한다. 나는 ‘지금’ 그걸 하고 있는 거다. 우리 회사 미션이 ‘나중에 하고 싶은 걸 지금 한다’다.” 

"나는 이렇게 보이고 싶어, 이게 브랜딩이다. 브랜딩이 잘 되면 디자인은 거저 주워 먹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식당 인테리어를 할 때 ‘벽 컬러를 뭐로 할까’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우선 ‘이 가게를 왜 하려는 것인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 그걸 명확하게 답할 수 있다면 디자인은 저절로 나온다. 옷을 입을 때 ‘당신이 어떤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가’가 중요하지, ‘진한 수트가 좋은가, 밝은 수트가 좋은가’가 중요한 게 아닌 것처럼.”


                                                                                    JOH&컴퍼니 조수용 대표 






"예를 들어 식당 인테리어를 할 때 ‘벽 컬러를 뭐로 할까’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우선 ‘이 가게를 왜 하려는 것인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 그걸 명확하게 답할 수 있다면 디자인은 저절로 나온다."


내가 하는 일인 광고도 그렇지 않을까? 왜 하려는지를 알면 답은 쉽게 나온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가 그 일을 왜 하는지 모르면서 알고 있다고 거짓말 하는 경우가 많다. 클라이언트도그렇고 크리에이터나 기획자들도 그렇다. 그래서 세상 대부분의 일은 더디고 힘들어진다. 





Posted by 망망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