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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2.25 독하다 토요일 2기 두번째 모임에서 읽은 [가시나무 그늘]




어느덧 2018년 12월 말일을 향해 달려가고 있네요. '독하다 토요일' 2기 첫 번째 모임은 서울파이낸스센터 지하 1층에 있는 이스트빌리지에서 열렸습니다. 메르스 사태를 다룬 김탁환의 [살아야겠다]를 읽고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실제 있었던 비극적이고 어처구니 없는 사건을 다룬 사회파 소설이라 많은 회원들이 분노 때문에 책을 읽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는 소감을 털어놓을 정도였습니다. 책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제가 게으름을 피우느라, 또 개인사가 너무 버러이어티하다 보니 후기를 쓸 시간을 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어짜할 바를 모르고 앉아있다 보니 시간은 흘러흘러 두 번째 모임이 다가오더군요. 결국 첫 번째 모임 후기는 쓰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어쨌든 [살아야겠다]는 영화화가 결정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고 있으니 다행이지요. 

2018년 12월 8일 오후 2시에 '독하다 토요일' 2기 두 번째 모임이 열렸습니다. 이번엔 서소문에 있는 '청춘여가연구소'에서 일곱 명이 모여 이승우의 [가시나무 그늘]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저희 동네에 '파란대문집'이라는 공간이 생겨서 우연히 들렀는데 거기서 그날 만난 사람들 중 한 분이 청춘여가연구소 소장인 정은빈 대표였던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서소문 피어선 빌딩에 있는 이 공간을 독하다 토요일의 새 아지트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건축을 전공한 서동현 씨의 설명에 의하면 이 건물은 1971년 미국인 선교사가 지은 아파트였다고 합니다. 당시 최고급 건물이었고 차가 건물을 통과해 현관 앞까지 들어와서 입주민이 비를 맞지 않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독특한 구조라 입구를 찾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정말 건물로 들어가는 메인 출입구는 필로피를 통과해야 그 모습을 드러내더군요. 예전엔 아파트였지만 지금은 개인 사무실이나 NGO들의 메카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11층에 있는 '청춘여가연구소'에 들어서니 널찍한 공간과 커다란 창문이 눈에 띄는 훌륭한 공간이었는데 특히 창밖으로 돈의문 박물관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풍광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들은 커피 머신이 제공하는 따뜻한 커피를 한 잔씩 들고 넓다란 공간 아무 데나 마음에 드는 곳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읽은 책 [가시나무 그늘]은 제겐 [생의 이면], [식물들의 사생활], [사랑의 생애]에 이어 이승우 작가 작품으로는 네 번째 소설이었고 나중에 생각해보니 예전에 여행 가면서 헌책으로 사서 한 번 읽었던(읽다가 그치긴 했지만) 소설이기도 했습니다. 성북동으로 이사를 오면서 처리한 책 속에 들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그만큼 다시 읽기는 힘든 책이라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읽자고 추천한 사람이 또 저란 걸 생각하면 저는 참 일관성 없는 인사인 것 같습니다. 

제가 헌책을 사서 읽었듯이 이 책은 절판이 되어 청소년판 아니고는 책을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덕분에 회원들이 삽화가 들어 있는 청소년판을 저마다 들고 나타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습니다. 한 분은 책을 구할 수가 없어 남산도서관에서 빌려왔다고 했습니다. 김하늬 씨는 작가의 심각한 문체 때문에 다자이 오사무의 [금각사]나 [인간실격] 같은 작품들이 떠올랐던 것 같습니다. 다만 일본 작가들이 인간 본연의 부조리에 천착한다면 이승우는 시대상이 배경으로 깔린다는 게 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조지 오웰의 [1984]나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도 연상되었다고 했습니다. [가시나무 그늘]이 훨씬 뒤에 나왔으니 아마도 작가가 이 책들을 다 읽어보지 않았을까 하는 개연성 있는 추측도 전해주습니다. 작가가 신학대학을 나와 사유가 깊을 것이라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서른두 살에 이런 작품을 썼다는 것은 놀랍다는 평도 내놓았습니다. 진행이 세련되었고 짜임새도 좋아서 지금 읽어도 전혀 올드하지 않다는 의견에 저도 찬성을 표했습니다. 

개, 가시나무, 몰록으로 이어지는 요소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것들에 대해 때로는 친절하게 때로는 불친절하게 자세를 취하는 작가의 설명도 적절해 읽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김하늬 씨가 다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롯데의 편지를 인용한 것 등은 존 '중2병'스럽게 느껴진다고도 했고 저는 작품 전체의 분위기만 생각하면 코난 도일의 [바스커빌의 개]도 떠오른다는 엉뚱한 소리를 했습니다. 

윤혜자 씨는 청소년판으로 책을 대하니 뭔가 정답을 찾아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생기더라고 하며 웃었습니다. 청소년, 하면 뭔가 시험이 떠오르는데 이 책을 가지고 시험 문제를 내면 내는 것 자체가 무척 힘들 것 같다는 김하늬 씨의 농담에 오히려 정답이 없어야 할 것이라며 자기는 청소년이라는 단어 때문에 책 읽는 새로운 방법을 소환한 느낌이라며 지금까지 독하다 토요일에서 다룬 책 중 가장 흥미로운 독서였다는 말도 했습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힘, 권력, 집단과 그에 비해 도드라지는 개인의 나약함 등을 생각하면 마음이 굉장히 아프고 씁쓸했고 마지막 희규의 아버지를 암시하는 썬글라스의 사내 대목에서는 이 소설이 격동의 시대를 얘기하고 있지만 결국은 지금의 이야기로 확장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ㅇ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이런 저런 사건과 현상들에 대해 얘기하다가 '윤창호법'에 대한 얘기까지 주제가 뻗어나가기도 했습니다. 

죽기 전에 진실과 정의에 대한 믿음을 지켜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주인공이 마지막에 거대한 사건에 그냥 엮여버리는 것을 보면서 하이어라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 본연의 슬픔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고등학교 때 이 작품을 읽었다면 과연 이런 걸 다 이해할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을 던지자 고등학교 선생님인 임기홍 씨는 그 나이엔 어떤 문제든 이해하는 애들과 못하는 애들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며 웃었고 김하늬 씨가 아마 [어린 왕자]처럼 연령대별로 다 다른 느낌일 것이라는 얘기도 했습니다. 윤혜자 씨는 사람들이 명화라고 하는 그림들을 책이나 다른 매체로 보았을 때 그게 뭐가 좋은데? 라고 생각했다가 막상 루브르 박물관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진품과 마주쳤을 때 느꼈던 경이로움을 이 소설 읽으면서도 비슷하게 느꼈다는 다소 의외의 고백을 했습니다. 이승우가 좋은 소설가라고 불리는 이유를 이번 책에서 깊게 느꼈다는 것이죠. 

책을 읽은 사람들은 모두 희규가 불쌍하다고 아우성을 쳤는데, 그 와중에 서동현 씨는 주문한 책을 어제 택배로 받는 바람에 결국 책을 읽지 못하고 왔다며 아쉬워 했습니다. 그는 독하다 토요일에서 읽은 책 중 제일 재미 있었던 건 [뜨거운 피]였다고 했습니다. 그 책에 '진실은 구리로 된 훈장'이라는 대목이 인상 깊었는데 그건 어떤 가치든 무의미하다는 부정적인 인식이며 그래서 사람들은 안전해지고 싶은 욕구 때문에 교회를 다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시했습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분리불안'은 종교 뿐 아니라 유행하는 롱패딩, 유명한 맛집, 유행어, 실시간 검색어 등등 우리 삶 전반에 걸쳐 존재함으로써 그것 때문에 사는 것 자체가 점점 더 피곤해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김성희 씨는 책의 서문이 매우 좋았다고 했습니다. 작가가 인용한 에리히 프롬의 글도 인상 깊었구요. 책을 읽다보면 우리는 모두 지배당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음을 깨닫게 되어 슬프고 그런 인물의 대표격으로 등장하는 희규가 애처로우면서도 또 한긋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소설에 등장하는 개에 의한 죽음이라는 장치- 명회가 이상해지자 죄책감을 느낀 희규도 그를 모방해 똑같은 방법으로 몸을 던지는 - 가 '길들여진다'는 것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젊은 나이에 남자들끼리 주고받는 이런 기이한 우정의 구조를 혜진이가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소감도 밝혔습니다. 

임재섭 씨는 단체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다룬 이 소설을 읽으면서 군대 시절을 많이 떠올리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내가 군대니까 이렇게 구는 거지 밖에서 만났으면 나도 좋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식으로 말하는 것인데 결국 그런 말이나 표현들이 집단의 억업된 구조가 만들어내는 부조리가 아닌가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임재섭 씨가 군대 얘기를 하니까 갑자기 불행했던 우리의 현대사가 필름처럼 휘리릭 지나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혜진은 희규의 수첩을 들고 다녔을까, 하는 김하늬 씨의 질문부터 시작해 희규는 왜 찌질하게 혜진에게 '사랑합니까?'라고 두 번이나 물어봤는지에 대한 해답들이 중구난방으로 쏟아졌습니다. 남자는 안 변 하는 것 같다,  젊은 베르테르 때부터 그랬다, 라고 말하는 김하늬 씨. 그냥 내 옆에 있는 여자를 좋아하는 게 남자의 속성인 것 같다, 라고 말하는 임기홍 씨. 후진 소설 같았으면 둘이 여관에서 가서 잤을 텐데 안 그래서 다행이었다, 라고 말하는 윤혜자 씨. 임기홍 씨가 모든 남자의 실존은 '이 여자가 나를 좋아하나?'라는 주제에서 떠나지 못한다고 말해 다들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그 밖에도 희규를 괴롭히던 40대 사장을 여성으로 선정한 이유에 대한 토론도 있었고 주인공의 캐릭터 변화 때문에 청소년 문학으로 선정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삽화에 대한 소감들이었는데 모든 삽화에 등장 인물들의 표정이 없이 텅 비어 있는 게 책의 주제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라 좋았다는 중평이었습니다. 깨달을 만하면 끝나는 마지막에 대해서는 좋았다, 아쉬웠다,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고 전체적으로 좀 긴 단편소설 같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올해의 책'으로 꼽을 만하다는 긍정적인 결론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관념적인 면이 많으면서도 작가가 잘 짜여진 블록처럼 소설적 장치들을 많이 마련해 놔서 읽기에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뜨거운 피] 얘기로 다시 돌아가서 만약 이 소설을 영화할 경우 주인공 희수 역으로 누가 가장 잘 어울리냐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영화배우 박신양, 이병헌, 박휘순 등이 물망에 올랐다가 아이고, 다 부질없다, 라는 누군가의 일갈에 모임을 끝내고 이차 장소인  광화문 '안성또순이'집에 가서 먹고 마시고 놀다가 헤어졌습니다. 다음 모임인 2019년 1월 12일엔 구병모의  [네 이웃의 식탁]을 읽기로 했습니다. 




Posted by 망망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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