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씨에게 

유창선 씨, 안녕하십니까? 유창선 씨가 쓴 책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를 읽고 문득 편지글로 독후감을 써보고 싶어졌습니다. 당장 저자와 만날 수는 없지만 편지글이라면 함께 앉아서 얘기하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해서요. 그런데 우리나라 말이나 글은 종적인 인간관계 덕분인지 호칭이 꽤나 까다롭습니다. 처음 말을 거는 경우엔 더 조심스럽지요. 약간 고민을 해보다가 그래도 요즘 많이 쓰는 '님'보다는 '씨'가 더 꾸밈이 없고 무심한 것 같아서 그냥 '유창선 씨'라고 부르기로, 제멋대로 정해 버렸습니다. 괜찮으시죠? 


세상은 그대로인데 변덕스러운 것은 나의 마음이다. 지난 밤 그렇게 절망스러웠던 세상의 색깔이 다음 날 아침이면 환해 보이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다.

유창선 씨가 사는 게 힘들고 외로울 때 읽었다는 니체에 대한 글 중 출근길 지하철에서 읽다가 팍 꽂힌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세상은 잔인하지도 따뜻하지도 않고 그저 늘 냉정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라는 평소의 생각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고 앞으로 사는 게 힘들 때마다 나도 이 구절을 다시 한 번 떠올려야겠다 생각하게 된 것인데, 이는 시사평론가로 활동하다가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방송 일이 다 끊기자 정권에 줄을 서거나 반대편에 서는 대신 동네 독서실에 틀어박혀서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던 유창선 씨의 이야기가 너무 마음에 와닿았기 때문이었겠죠. 

근대의 탄생과 함께 신으로부터 개인을 되찾아왔다는 우리들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현대인들은 일과 일상에 매몰되어 또다시 '나'를 잃어버린 삶을 살고 있습니다. 혼자 있을 시간, 즉 가만히 앉아 자신을 물끄러미 들여다 볼 시간을 좀처럼 가질 수 없게 된 것이죠. 그래서 늘 버릇처럼 '정신이 없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TV 광고 만드는 일을 이십 년 넘게 하고 있 는 저도 그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허구헌날 남의  상품이나 브랜드를 어떻게 하면 빛나게 할 수 있을까 궁리하느라 정작 자신의 인생은 챙기지 못하는 악순환을 반복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카피라이터는 배우 이나영의 입을 빌어 '내 생각이라는 녀석은 잘 지내고 있는지 커피를 마시며 생각해 봅니다'라는 카피를 쓰기도 한 것이겠죠. 

광고 일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광고주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물건이 많이 팔리거나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광고를 만들어 줄 것을 원하지만 그게 어떤 각도로, 어떤 포인트로 제작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는 광고뿐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 생각됩니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어떻게 해야 자신이 행복해지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어느 순간 일상을 멈추고 자신을 들여다 볼 계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유창선 씨가 동네 독서실로 들어가면서 비로소 진짜 내가 하고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처럼 말이죠.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한 번밖에 살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의 결단에 따라서는 여러 번의 삶을 살 수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삶이 나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새로운 삶을 위한 결단을 내린다면 우리는 또 한 번의 삶을 살 수 있다. 

이 책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행위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근무하던 곳에 사표를 내고 나오며 '돌아갈 다리를 내 손으로 끊어버린 셈'이라 생각했던 유창선 씨. 저도 사표를 여러 번 써보았기 때문에 그게 어떤 심정이었을지 약간은 이해가 됩니다만 다른 건 몰라도 당시의 결심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했을 것이라는 것만은 확신합니다. 마음이 온전히 내 것이고 나를 채우는 전부라면 정신은 그저 테크니컬하게 사용하는 무형의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마음이 시킨는 대로 사는 것, 결코 쉽지 않습니다.

진보적인 정치평론가였던 유창선 씨는 양심이 시키는 대로 세상을 버리고 책을 통해 더 넓은 세상으로 깊이 들어가는 길을 택했죠. 그리고 그 결심은 '나의 고민은 이천몇백 년 전 소크라테스의 고민과 다를 바가 없다'는 깨달음을 얻으면서 추진력을 얻은 것 같습니다.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그대로 당시 유창선의 처지를 설명하는 우화이기도 했고 유창선을 대신해 선배 철학자가 목숨 걸고 먼저 써 놓은 '양심선언'이이기도 했으니까요.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을 읽으며 '나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고  카프카가 쓴 소설 [변신] 속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보면서 현대인의 태생적인 불안을 실감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백이 숙제의 신화를 해체했던 루쉰의 글은 또 어떤가요. 정치를 비롯한 인간의 삶은 그것 자체가 욕망의 덩어리일진대, 지고지선한 얼굴을 한 영웅의 모습은 존재할 수 없다는 그의 통찰은 빅토르 위고가 쓴 [파리의 노트르담]에서 보여준 절대악도 절대선도 없다는 깨달음과 상통하는 이야기일 겁니다. 

오독일 수도 있겠지만 책의 목차를 다시 더듬으며 유창선 씨가 책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누었던 대화들을 제 마음대로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왜 제목이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였는지 다시 생각해 봅니다. 사랑하는 삶을 살려면 부단히 싸워야 한다는 유창선 씨의 말에 공감하기에 일단 책에서 언급되었던 책들을 찾아 꼼꼼히 읽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독서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이 예쁜 여자에 대한 동경만 채우는 일이라면 그 텍스트를 찾아 읽는 일은 직접 그녀를 만나 손을 잡고 살결을 만지고 입김을 불어넣어 결국 내 애인으로 만드는 일이니까요. 

자신의 결단에 따라 누구나 여러 번을 살 수 있다는 유창선 씨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제 생각에 당신은 두 번째 인생을 멋지게 살고 계신 것 같습니다. 요즘은 문화계도 허지웅처럼 얄쌍하거나 김어준처럼 지랄스럽거나 아무튼 좀 튀어야 하는데 유창선 씨는 너무 고지식한 아저씨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좀 걱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깊게 읽고 넓게 생각함으로써 얻은 정신의 수려함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책의 부제가 '존엄하게 살기 위한 인문학 강독회'인 것처럼 존엄하게 살고 싶은 눈 밝은 독자들이라면 유창선 씨의 숨은 가치를 단박에 알아볼 테니까요. 너무 일이 바빠 사 놓고도 읽지 않을 게 뻔해 전작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를 아직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음 주쯤엔 사서 읽도록 하겠습니다.


요 며칠 날씨가 미친듯이 춥고 미세먼지도 많았습니다. 건강 유의하시고 더 좋은 글 많이 써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총총.

독자 편성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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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778350.html 


생은 하나의 문을 닫으면 다른 문이 열린다. 매일 머리 아프게 걱정하며 사는 것보다는 정리하고 다시 시작하는 게 낫다. 자신이 싫어하는 상황에 본인을 둘 필요가 없다. 인생의 한 부분이 끝나버렸다고 해서 (전체가) 다 끝난 건 아니다. 나는 영화 몇 편이 될 정도의 재밌는 삶을 살았다. 그런 삶이 ‘좋은 인생’이다. 늘 재밌는 일이 생겨 인생이 불안하지 않다.


일 년 전 오늘 아내가 소개해줘 읽고 공유했던 요리사 스스무 요나구니의 인터뷰. 머리가 복잡했던 당시에 많은 용기와 위로를 받았는데 다시 읽어봐도 여전히 좋다. 좋은 위스키처럼 킵해 놓고 가끔 꺼내 음미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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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다 가기 전에 이승우의 [사랑의 생애]에 대해 몇 자 기록해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2017년 1월부터 지금까지 읽은 책이 몇 권이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 중 딱 한 권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한국 소설 쪽에서는 이 작품을 꼽고 싶으니까(외국 작품은 로런 그로프의 [운명과 분노]).


형이상학적 소설을 쓰기로 유명한 '심각 보이' 이승우가 이번에 잡은 주제는 '사랑'이다. 그런데 소재도 '사랑'이다. 주제가 사랑이라는 건 따지고 보면 거의 모든 소설에 적용되는 것이니 그렇다 친다 해도 소재조차 사랑이라는 건 일단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주인공도 사람이 아니라 사랑이다. 첫 문장을 보자.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

영화 [에이리언] 시리즈에서 우주괴물들이 인간의 몸을 인큐베이터처럼 이용한 것처럼 이번엔 형체도 체취도 없는 사랑이라는 개념이 우리 몸을 빌려 세상에 나오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주장이다. 언뜻 관념의 장난이나 궤변처럼 느껴지는 이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작가는 형배와 선희라는 구체적인  인물들을 데려온다. 소설 초반에 "나는 사랑할 자격이 없어."라는 말로 이별을 통보하는 형배. 그 말을 듣고는 기가 막혀서 " 지금, 사랑할 자격이 없다는 말을 흡사 독립선언문 낭독하듯 하고 있는 거 알아?" 라고 묻는 선희. 두 남녀는 그렇게 헤어지고 그들이 헤어지는 과정에서 사랑이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인가, 형배가 자학에 가까운 선언을 함으로써 얻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에 있어서 진정한 약자와 강자는 누구인가 등에 대한 작가의 상념들이 유려하면서도 집요한 문장으로 쫀쫀하게 이어진다. 

그리고 몇 년 후 두 사람은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그때 형배는 그녀의 귀가 하트 모양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고 뒤늦게 혼자 사랑에 빠진다. 쉽게 말해 사랑의 포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왜 대개의 사랑은 이렇게 타이밍이 잘 맞지 않는 것일까.

자기가 찍은 거의 모든 여자와 자는 바람둥이 준호는 그런 형배를 '진실한 사랑은 평생 한 번 뿐'이라는 그릇된 신화에 사로잡혀 그런 것이라고 비판한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작가는 평생 세 번 약혼하고 세 번 파혼한 프란츠 카프카의 예를 들며 준호의 입장을 옹호한다. 카프카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중 '감옥에 갇힌 죄수'의 욕망과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죄수는 탈옥을 해서 감옥 밖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감옥을 잘 개조해서 그 안에 살고 싶은 욕망도 가지고 있다. 누구나 갑자기 나타난 해결점 앞에서 망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흡사 영화 [빠삐용]에서 드가가 그랬던 것처럼. 

이 소설은 작가가 카프카의 약혼 이야기를 몰스킨에 메모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몰스킨에 적힌 단상이 스마트폰의 메모장으로 옮겨 갔고 그 후에 생각날 때마다 메모한 문장들이 그대로 소설의 소제목들이 되었다. 그리고 형배, 선희와 그녀의 새로운 사랑 영석, 그리고 친구 준호와 민영, 그리고 형배의 어머니까지 소환해 사랑이라는 이 복잡미묘한 감정이 인간을 어떻게 이용하고 지배하는지를 세밀하게 관찰한다.

책을 읽으면서 그의 집요한 문장에 매번 감탄했다. 처음엔 형이상학적인 것 같아 저항이 일었지만 곧 저항을 포기하고 리드미컬하게 그 문장에 몸을 실으면 어느 순간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쾌감이 몰려왔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사랑에 대처하는 어이 없는 상황마다 카프카는 물론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등 고전들이 등장해 인간 심연에 숨어있는 보편적인 심리를 새삼 일깨워주기도 해서 더 흥미로웠다. 

이승우는 프랑스에서 특히 인기가 높은 소설가다. 그만큼 관념적으로 뛰어난 직조를 선보인다는 뜻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황석영이나 고은 선생이 노벨문학상을 못 타고 작고한다면 나중에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상은 아마 이 작가에게 돌아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점쳐보기도 한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아주 어렸을 때 나는 어른들이 부르는 이 노래를 듣고 자랐다. 아마 그때도 사랑은 중요했고 그 본질이 무엇이지에 대해서도 다들 궁금해했던 것 같다. 그러나 사랑이 무엇이냐 묻는 것만큼 어리석을 일이 또 있으랴. 물어봤자 답이 없는 것이 사랑일 텐데. 다행히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라로 소설책 한 권을 채운 이승우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신은 일한다. 일하는 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신의 존재 근거나 방식에는 관심 없다. 사랑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 사랑하느라 바쁜사람은 사랑이 무엇인지, 그것의 근거나 방식이 어떠한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살지 않는 자가 삶이 무엇인지 묻는다. 참으로 사랑하지 않는 자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삶을 하고' 사랑을 하는 것이다. 정의 내리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니 걸핏하면 '도대체 자기는 나를 사랑하긴 하는 거야?'고 묻는 여자친구가 았다면 이 책을 선물하라.  그리고 사랑은 하는 것이지 묻는 게 아니라고 점잖게 말하라. 이때 모텔 간판을 가리키며 말하면 빰을 맞을 것이요, 꽃이나 목도리를 내밀고 말하면 미소와 키스를 받을 것이다(자매품으로 조중걸의 [러브 온톨로지]라는 에세이도 있다. 사랑에 대한 철학적 탐구와 아포리즘으로 가득한 책이다. 내 아내 윤혜자가 기획한 책이라 그런 건 물론,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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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계획, 전략, 우린 그딴 거 없다. 목표도 없다.”
 “우리 기업은 3년 혹은 5년이면 망할 것이다.”

인터뷰를 하면 회사나 개인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자폭 발언만 일삼아 '야노 어록'이란 것까지 떠돌았던 100엔숍 '다이소'의 창업자 야노 히로다케의 말들이다. 도대체 회장이 이런 정신상태를 가진 기업이 어떻게 지금까지 망하지 않고 성공했을까. 하지만 이런 기행을 통해 야노 회장은 다이소라는 브랜드를 소비자들 머릿속에 깊이 새기는 데 성공했다. 더구나 모든 상품을 100엔에 팔기로 한 이유가 젊었을 때 아내가 임신을 하자 장사하는 게 귀찮아져서 물건값을 100엔으로 통일했다는 재미 있는 스토리텔링까지 만들어냈다. 그래서 다이소는 망하기는커녕 전 세계로 사세가 점점 확장되고 있다.

브랜딩 얘기를 하면서 나는 왜 엉뚱하게 다이소의 얘기를 꺼냈을까. 그들의 이야기는 아주 극단적 사례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 보면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들은 결코 놓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이 자기다운 것이고,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그리고 나는 이 일을 통해 어떤 가치를 세상에 전달하려 하는가. 우리는 이런 질문과 대답을 통해 얻어지는 유무형의 자산을 '브랜딩'이란 부른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지금까지 수없이 검증된 방법론을 통해 꾸준히 브랜딩을 하는 게 최상의 방법이라 여기고 또 그렇게 한다. 그러나 시간과 돈이 부족한 스타트업들은 대기업과 같은 침착한 브랜딩을 할 수가 없다. 마음은 급하고 가진 자산은 없다. 그런 신생 기업들의 브랜딩을 도와주기 위해 나온 책이 바로 [창업가의 브랜딩 - 브랜드 전략이 곧 사업전략이다]이다. 

먼저 외국 기업과 국내 스타트업 등을 고루 거친 저자들(우승우, 차상우 두 명이다)은 'Why me?'라는 화두를 던진다. 사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브랜딩을 하기에 앞서 먼저 '나답다'라는 것은 무엇이며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소비자들은 왜 다른 브랜드가 아닌 나를 선택해야 하는가, 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명확하게 한 문장으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제대로 규명되어야만 '좋은 브랜드란 무엇인가?'라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배달의 민족, 29CM, 72초TV...지금 가장 확실하게 자기만의 브랜딩에 성공한 핫한 브랜드들이다. 그들은 무슨 방법을 썼길래 자금과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모두가 뛰어난 브랜딩을 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정해진 방법론은 그 누구도 말해줄 수 없다. 즉 브랜딩의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는 브랜드 수만큼 많은 것이다. 다만 변하지 않는 원칙은 몇 가지 존재한다. 저자들은 그 몇가지 기준을 중심으로 열 개의 챕터를 나누고 각 장마다 요즘 뜨고 있는 스타 창업가 10명과의 인터뷰를 실었다. 

원래 브랜드라는 말은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소의 엉덩이에 찍던 불도장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영어라서 그런지 몰라도 브랜딩, 하면 굉장히 어렵고 복잡할 것이라는 생각부터 든다. 책에도 나오는 내용인데 브랜딩에는 많은 선입견이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브랜드를 개발하려면 많은 리소스가 필요하고 반드시 전문가를 거쳐야 한다는 생각 등이다. 그런데 마포구 도화동에서 한국의 스페셜티 시장을 견인해 온 프릿츠커피 컴퍼니(사실은 'ㄷ'받침인데 자판이 말을 안들어 이렇게 썼다)의 김병기 대표는 '브랜드를 위해 특별히 한 것이 없다'라고 말한다. 오히려 "내부적으로 성실하게 일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고객들에게 잘 전달될 거라 생각한다. 커피 한 잔이라는 결과물을 훌륭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프릿츠가 존재하는 이유와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를 강조한다. 

진리는 늘 단순명쾌하다. 책을 자세히 읽어볼수록 단순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단순하게 본질에만 집중해야 브랜드가 산다. 내가 왜 이걸 만들어야 하는지, 소비자는 왜 우리를 선택해야 하는지, 내가 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세상에 하고 싶은 얘기는 무엇인지 정확하게 핵심을 꿰뚫어야 한다.  

'당신의 일이 세상에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책 표지에 제목과 함께 적혀 있는 문장이다. 브랜딩을 너무 특별하게 생각하면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된다고 한다. 쫄지 말고 거창하게 덤비지도 말고 본질에만 집중하면 된다. 브랜딩은 짧게 말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널리 알리고, 그래서 누군가의 행동을 바꾸고, 나아가 세상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일에 다름 아니니까. 그래서 저자들은 브랜드 전략이 곧 사업전략이고 결국은 브랜딩이 모든 것이라고 말한다. 본질이라든지 질문의 중요성 등은 얼마 전 읽었던 최상학의 [Change The Question]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 중 한 명이자 페이스북 친구인 우승우 대표가 우리 부부에게 각각 한 권씩 보내왔는데, 우리가 좋아하는 브랜드 '셰어하우스 우주'와 '로우로우' 대표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어서 더욱 즐거운 독서였다. 책의 마지막 부분 맺음말의 제목은 '이제 나만의 브랜드를 시작하자'이다. 아마도 편성준, 윤혜자라는 이름이 좋은 브랜드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두 권을 선물한 것이리라 생각한다. 고마운 마음으로 푹 빠져 읽었고 우선 급한대로 짧은 리뷰를 써본다. 물론 더 중요한 건 저자들의 바람대로 당장 '퍼스널 브랜딩'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렇다. 나는 결국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어떤 브랜드로 남고 싶은가. 덕분에 다시 한 번 내면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게 된다. 그래서 또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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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첫단추를 잘못 끼우면 단추를 다시 다 풀어야 하고 지휘관이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면 부대원들이 엉뚱한 곳으로 가서 몰살을 당하기도 한다. 광고도 마친가지다. 클라이언트는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거나 매출을 올려줄 답을 간절히 원하는데 정작 자신은 정답이 뭔지 모른다. 그건 광고회사나 컨설팅 회사가 할 일이고 그래서 클라이언트는 돈을 낸다. 그런데 광고회사가 떳떳하게 돈을 받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질문'을 바꾸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 책 [Change The Question]의 저자 최상학이다. 

최상학은 광고에 있어서 중요한 건 답이 아니라 질문이라 말한다. 맞는 말이다. 옳은 답을 찾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을 해야 한다.  저자는 책 초반에 소설가 이윤기의 자전적 소설 <하늘의 문>에서 할머니와 인민군의 대화를 예로 들며 질문이 어떻게 생각의 프레임을 바꾸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정치에서도 광고에서도 '진실'보다 중요한 건 진실인 것처럼 믿게 만드는 '프레임' 인 것이다. 

그래서 의심이 필요하다. 광고주가 지금 목말라하는 게 맞는 단계일까. 광고회사인 우리가 정한 광고 목표는 맞는 설정일까. 하지만 말이 쉽지 이게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를 생각해 보자. 하루 대여섯 개의 과목을 바꿔가며 계속 공부한다. 시험 시간엔 45분동안 풀어야 할 문제가 수십 개다. 하나하나 곰곰히 생각해보고 본질을 따져볼 시간 같은 건 전혀 없다. 정해진 시간 안에 누가 더 빠르게 문제를 풀고 실수를 안 하느냐가 우등생과 열등생을 만들고 당락을 결정한다. 그러니 시험지나 시험문제를 의심해 본 적이 있을 리가 없다. 문제(질문)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라고 생각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질문'은 당신이 가장 중요한 문제를 무엇이라고 규정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이 한 마디를 하기 위해 쓰여진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가 하고 싶은 얘기들은 앞부분에 모두 집중되어 있고 나머지는 부록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렇다고 뒤쪽에 있는 내용이 쓸 데 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앞부분에 있는 '질문'과 '본질'이 그만큼 중요하게 반복적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저자가 광고회사 AE 출신이라 그런지 이 책은 독서를 한다기보다 잘 만들어진 PPT 기획서로 프리젠테이션을 받는 느낌이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나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은 모르고 있는 소중한 덕목들을 이 책이 하나하나 다 일깨워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도 쉬운 언어로, 풍부한 경험과 메타포를 통해서. 

예전에 다른 회사에 있을 때 최상학 이사와 함께 일해본 경험이 있었는데 책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그는 매우 치밀하고 박식하며 무엇보다 '성의'가 있는 기획자였다. 당시에 그가 원하는 것에 비해 내 능력이 받쳐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고 미안해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아는 거 다 가르쳐 줘도 괜찮아. 왜냐고? 가르쳐 줘도 안 해. 다들 안 하더라." 

책이나 강의에서 당신이 아는 것들을 다 쏟아부으면 나중에 어떡하냐는 아내의 말에 그가 했다는 대답이다. 그렇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다 똑똑해지는 것도 아니고 당장 현업에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안 읽은 사람과는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난 앞으로 이 책을 책상에 놔두고 막연할 때마다 한 번씩 들춰볼 생각이다. [CTQ]는 당장 물고기를 주는 게 아니라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니까. 

최상학은 마지막에 로버트 드 니로를 예로 들면서 연기자에게 '메소드 연기'가 있다면 광고인에겐 '메소드 광고'라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광고인이 직접 소비자나 생산자 입장이 되어 몰입하는 광고 창출과정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론 삼아 이런 글로 그 챕터를 마감한다. 

"Method Advertising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8개의 키워드가 모두 필요합니다. '합목적적 상상력'이 있어야 하고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DOING'해야 합니다. 'YOU'의 입장에서 새롭고 진정성이 느껴져야 하고, 가고자 하는 그것이 브랜드, PT의 '본질'과 관련이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며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예측'을 통해 객관적으로 직시하고 수정, 보완해야 합니다. 아무도 안 했던 방식이라고 머뭇거리지 말고 과감하게 당당하게 해버리는 'MINOR'가 되면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항상 지금 갖고 있는 '질문'이 틀린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합니다. 결국 'Method Advertising '은 '진짜 질문을 통해 진짜 답을 찾는' 일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광고를 더 잘 하고 싶고 답을 더 잘 찾고 싶어서 쓴 아홉 가지 방법론들이지만 모든 좋은 책이 그렇듯 이 책 역시 크게 보면 인생을 잘 사는 방법과 흐름이 같다. 우수한 광고인의 생각법을 엿보기 위해 산 책에서 인생의 길까지 탐색할 수 있다면 이거야말로 남는 장사 아닌가. 당신이 광고인이든 아니든 상관 없다. 이 책을 사서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하고 싶은 얘기를 일목요연하게 펼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고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비로소 정말 알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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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그대로인데 변덕스러운 것은 나의 마음이다. 지난 밤 그렇게 절망스러웠던 세상의 색갈이 다음 날 아침이면 환해 보이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다." 

그제 산 유창선의 [삶은 사랑이며 싸움이다]를 출근길에 읽다가 이 대목에서 팍 꽂혔다. 그렇다. 세상은 잔인하지도 따뜻하지도 않다. 그저 늘 냉정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사는 게 힘들 때마다 이 구절을 생각해야겠다. 유창선은 시사평론가로 활동했었는데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방송 일이 다 끊기자 정권에 줄을 서거나 반대편에 서는 대신 동네 독서실에 처박혀서 책을 읽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 독서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것이고 그 첫번 째가 니체를 읽던 때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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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m6bylpWdfFI



[록키]를 다시 극장에서 개봉한다고 하길래 아내에게 이 영화를 꼭 극장에서 봐야겠다고 설레발을 쳤는데 마침 그날은 개봉 전날이었고 그 이후엔 계속 회사 일이 바빠서 예매를 못하고 있다. 다음주엔 꼭 시간을 내서 이 영화를 보고야 말 것이다. 

내가 '록키 시리즈'를 만나 것은 불광극장에서 본 [록키2]부터였다. 고등학교 때였나보다. 그리고 점점 나이가 들고 영화를 좋아하게 되면서 [록키]가 얼마나 대단한 영화인지 알게 되었고 텔레비전에서 성우들의 더빙판으로 이 영화를 한 번 본 후 홀딱 빠지게 되었는데, 거기에 기름을 더 부은 것은 대학생 때 읽었던 어떤 소설에 등장하는 록키였다. [영자의 전성시대]로 유명한 조선작이 예전에 쓴 단편소설 <아메리카>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인 술집 아가씨가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고 무슨 제목인지도 모르고 대낮에 변두리 극장에 들어가서 보게 된 영화가 바로 록키였다. 신나게 권투만 하는 영화인줄 알았던 주인공은 마지막에 록키가 경기에서 지고나서 퉁퉁 부은 얼굴로 여자친구인 에드리안을 애타게 찾는 장면을 보면서 대책 없이 울음을 터뜨린다. 에드리안, 아아 록키. 아아 에드리안.  영화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가장 힘들 때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을 애타게 부른다는 사실만이 그녀의 가슴을 적셨다.  

이 영화는 실패담이다. 나이 든 스파링 파트너 출신의 퇴물 복서가 챔피언의 쇼맨십 덕분에 모처럼의 기회를 얻었지만 처절하게 싸운 뒤 결국은 장렬하게 판정패 한다는 이야기. 물론 사람들은 주인공이 실패하는 이야기보다는 성공담을 좋아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진정성이 있다면 말이다. 모든 진정성 있는 실패담은 여운을 남긴다. 소설가 김탁환은 김관홍 잠수사의 이야기를 쓴 [그래서 그는 바다로 갔다]에서  '이야기를 잘 하는 사람이 이야기꾼이 아니라 간절한 이야기를 많이 가진 사람이 이야기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건 실베스타 스텔론이라는 이야기꾼이 작두를 탔을 때의 이야기가 맞다. 정말 간절하고 궁핍했던 시절에 그가 직접 쓴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실베스타 스텔론은 무하마드 알리의 권투 경기를 TV로 보다가 뭔가 느낀 게 있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단 사흘만에 [록키]의 각본을 완성했다고 한다. [람보] 시리즈의 무식한 근육질이나 최근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2]에서 뭉툭한 몸매와 목소리로만 연상되는 실베스타 스텔론도 사실 젊었을 땐 대학까지 나온 날렵한 인텔리였다. 영화를 하고 싶어서 도시로 나와 험한 일을 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슬라이(그의 애칭)는 '록키'의 각본이 헐리우드를 떠돌며 값이 천정부지로 오를 때도 타협을 하지 않는 뚝심을 보였다. 시나리오에서 흥행의 단초를 예감한 제작자들은 알 파치노 같은 당시 스타나 권투선수 출신의 라이언 오닐 등을 주인공으로 쓰려고 했으나 스텔론이 결사 반대해서 결국 그가 주연까지 맡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으로 영화를 찍게 되었고 작품 안에 나오는 낡은 아파트 등도 실제 슬라이가 살던 당시의 모습 그대로였다. 애드리안과의 스케이트장 데이트 장면도 돈이 없어서 야밤에 찍게 되었는데 이건 가난한 록키가 밤 늦게 스케이트장 관리인에게 뒷돈을 찔러주고 링크 전체를 데이트장으로 쓴다는 순애보적 아이디어에 현실성을 더하는 멋진 설정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던 것이다. 실제 록키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슬라이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온 덕분에 영화는 수 많은 관객들의 가슴을 울릴 수 있었고 실베스타 스텔론은 이 영화 한 편으로 '어메리칸 드림'의 표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실패담이면서 동시에 성공담이기도 하다. [록키]에 비하면 그 뒤 나온 2편 3편 등은 갈수록 기름기가 끼고 거만함이 느껴져 록키라는 복서도 그저 하나의 기름덩어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성공한 밴드의 모든 데뷔앨범이 훌륭했던 것처럼 실베스타 스탤론의 실질적인 데뷔영화 [록키]도 걸작 중의 걸작이다. 이런 전설을 극장 스크린으로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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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뭘 배우러 다니는 걸 좋아한다. 강연도 많이 듣고 음식이나 꽃을 배우러 다니기도 한다. 사실은 나도 아내처럼 뭔가 배우러 다니고 싶지만 회사 일만으로도 벅차 좀처럼 시간을 내지 못할 뿐이다. 세상에 시험 안 보는 공부만큼 재미 있는 건 없다. 인생을 헤아려 보아도 주로 돈 안 되는 일을 할 때가 더 재미 있었다. 일단 누가 시켜서, 또는 먹고 사느라 할 수 없이 하는 일과 내 자유의지로 하는 일은 모든 면에서 천지차이다. 매일 일에 치여 사는 샐러리맨들에겐 그래서 휴일이 필요하고 사생활이 필요한 것이다.

​​"자유의지를 가질 때만 비로소 커피 한 잔이나 럼주 한 잔도 더 맛있게 음미할 수 있을 것이었고, 담배 연기와 무더운 날 바다에서 하는 수영, 토요일마다 보는 영화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메렝게 음악, 이 모든 게 육체와 정신에 더 좋은 느낌을 선사할 것이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 [염소의 축제]를 읽다가 눈에 번쩍 뜨여 잠시 멈추고 밑줄을 그으며 이 대목을 되새겼다. 이승우의 [가시나무 그늘]을 읽을 때도 느꼈던 ‘자유의지’의 소중함에 대한 한 구절이다. 오늘 같은 토요일 한가하게 한 잔 하는 차와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너무나도 소중한 행복이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은 [새엄마 찬양] 이후 처음인데 노벨문학상을 탔던 만큼 대단한 필력과 통찰력에 유머까지 겸비하고 있다. 이런 우수한 작가가 말년에 극우파로 전락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고 가슴 아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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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간서치의 책 이야기’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있다. 책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나도 한때 이 모임의 회원이었으나 그들의 엄청난 독서량과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에 질려 활동은 안 하고 가끔 눈팅만 하고 지내는 신세다. 간서치는 옛날 조선시대에 살았던 이덕무처럼 책만 읽는 바보를 이르는 말이라고 들었다. 아무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기꺼이 이런 바보 소리를 들으면서도 틈만 나면 책속에 파묻혀 지내기를 꿈꾼다.

여기 세계 최고의 간서치라고 소문난 할아버지가 있다. 알베르토 망구엘이라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다. 일찌기 서점 점원으로 일할 때 눈이 먼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었다는 전설적인 이력을 가지고 있는 이 작가는 [은유가 된 독자]라는 이번 저작에서도 책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쏟아내고 있다.

‘은유가 된 독자’라는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의 중요한 주제 또는 아젠다는 독서에 대한 온갖 메타포, 즉 은유들이다. 흔히들 책은 앉아서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고 여행은 걸어 다니면서 읽는 책이라 했다. 여기에 인생이 끼어든다. 인생은 여행이고 독서는 인생을 경험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삼담논법은 이렇게 해서 인생, 여행, 독서로 이루어진 ‘은유 삼종세트’로 완성된다.


망구엘은 기원전 7세기에 쓰여진 ‘길가메시 서사시’부터 구약성서, 아우구스티누스, 몽테뉴, 셰익스피어, 돈키호테, 플로베르, 톨스토이, 그리고 21세기의 전자책을 읽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책을 쓰고 읽는다는 것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 진정한 어른들만 낼 수 있는 경험과 지혜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물론 내가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었을 리가 만무하다. 구약성서나 아우구스티누스도 읽지 못했고 보바리 부인은 어렸을 때 삼중당문고로 겨우 읽었던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오히려 플로베르가 법정에서 ‘마담 보바리는 바로 나다!’라고 외쳤다는 가십이 더 생생하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독서의 대가가 이끄는 대로 한 발 한 발 따라 걸어가기만 해도 햄릿의 고뇌와 돈키호테의 야망, 안나 카레니나의 주체성, 오르한 파묵의 통찰 등을 차례대로 만날 수 있고 결국엔 여행자, 은둔자, 책벌레로 분류되는 독자의 지위를 삼위일체로 한꺼번에 다 경험할 수 있는데.


나는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가 단테의 [신곡] 첫 문장에서 따왔다는 걸 알베르토 망구엘의 이 책을 읽으며 처음 깨달았다. 페터 한트케가 독일 사람이 아니라 오스트리아 극작가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뭐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다만 프롤로그에서 '우리 인간은 세상이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고 간주하는 유일한 종’이라 말하던 작가는 여행자가 됐든, 상아탑의 거주자든 아니면 책벌레든 우리는 모두 ‘독서하는 피조물’이며 단어를 섭취하고 단어로 이루어져 있으며 단어가 존재의 수단임을 잘 알고 있다는 결론을 전해준다.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은 거의 본능에 가까우며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행위라는 소리다. 스마트폰에 둘러싸인 채 자신을 의심하면서도 꾸역꾸역 전철 안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정 위로가 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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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프로필을 다시 써본다.


남자로 태어났지만 남자다운 적이 없었고 
막내로 태어났지만 어리광을 부린 기억이 없었고 
문학소년이었지만 문청은 아니었고

<월간팝송>구독자였지만 이젠 음악을 거의 안 듣고 
‘뚜라미’였지만 기타를 잘 못 치고 
여자를 좋아했지만 연애는 잘 못했고

영문과를 나왔지만 영어를 잘 한 적이 없고
카피라이터 출신이지만 아직도 광고를 잘 모르고

책을 좋아하지만 많이 읽지 않고 
여행을 싫어하지만 가끔 여행을 하고

글 쓰는 걸 좋아하지만 잘 쓰진 못하고 
술을 좋아하지만 소주 두 병이면 취하고

칼럼을 가끔 쓰지만 칼럼니스트는 아니고 
[대부]와 [웨인즈 월드]를 모두 좋아했고

노무현을 좋아했지만 노사모는 아니고 
문재인을 지지했지만 문빠는 아니고

이사 오면서 자전거는 누구 줘버렸고 
십여 년 전부터 차가 없는 뚜벅이고 
수영 배운지 다섯 달만에 겨우 물에 뜨고

결혼을 했지만 아직 철이 안 들었고 
애는 없고 고양이 순자는 우리 애가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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